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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7권 0호 (2000)

일본어의 경어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

궁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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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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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葉集」の歌の中, 紀伊行幸時に詠まれた歌の百二十三首中, 六十二首が「妹」ゃ「背」を시ぶ歌として約半數になっている. 他の行幸先とは異なって紀伊國で詠まれた歌にこのような戀歌の多い理由は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 紀伊國で詠まれた一六七九番歌を取り上げてその周邊を探りながらその理由を考えてみた. この歌は, ただ輕い感想と美的光景のみを描いたものだと一般に言われるが, 國見的遊覽と言われる紀伊行幸の性格とも違う別途の構想があるだろうという考えから出發し, 歷史學と考古學の硏究結果を文學と接木してみようとした. その結果, 紀伊國の軍事的なこと, 朝鮮と深く關わる紀氏族の據點であることなどが, 坂上氏族とも共通するのが浮かんできて, 坂上氏族の信じていた「神牛」とは, 大陸文化と密接な關係の中, 渡來してきた人人のもたらした牛に關する傳承·七夕傳說と關わり, 死と再生の神神の發祥地として認識された紀伊國のもつ特殊な風土と文化をつくったことがわかった. そして, 紀伊國に一六七九番歌の「妻乞う」という表現や夫婦·戀人を意味する「妹山」「背山」という名稱, および「妻杜」という神社名があることは, 紀伊國の生活感情が自ずから表れたもので, このような基盤であったからこそ「妹」ゃ「背」を시ぶ歌が多く詠まれた必然性があったことを考察した.

만엽집 (万葉集) 에 나타난 여성상 - 생업을 통하여 -

제등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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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万葉集에 등장하는 生業과 관련된 노래에 그려져 있는 女性像을 고찰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古事記』에 등장하는 稙物을 상징하는 女神의 죽음과 관련된 神話나 『續日本紀』의 조칙(詔)을 보면 당시의 生業은 벼농사와 양잠이었음을 알 수 있다. 万葉의 노래에는 종래 영토 확장의 상징이던 호미(鋤)가 아름다운 처자의 가슴으로 비유되어 있는가 하면 모를 심는 처자의 모습을 「붉은 치맛자락을 적신다」 라고 표현하여 붉은 치마가 생명과 생식의 상징이며, 이것이 물에 적음으로서 보다 풍요로운 수확을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누에(蠶)가 껍데기를 벗는 모습이 여성자신의 본능과 일치한다고 여겨 「어머니가 키우는 누에」로 비유하고 있다. 옷감(布)은 여성이 그 생산공정을 통하여 자신의 혼을 넣어 만든 것이므로 「行路死人歌」에서 죽은 자를 鎭魂하는 노래 속에 등장한다. 또한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인 조건에 비추어 漁撈또한 중요한 生業의 하나였다고 여겨진다. 万葉集의 약 2%에 이르는 95首에는 여행자들에게 있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媒介體로 해녀들의 소금이나 해초를 걷어들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이 万葉 속의 生業을 통하여 표현되어 있는 여성의 모습은 활기와 힘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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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의 목적은 創作動機와 配列問題를 論하는데 있다.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시가섬 風土를 論하였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左注의 내용을 이해하게되고 나아가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환경이라든가, 해적들의 존재를 통하여 海上生活者들의 현실이 어떠한가를 이해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10首의 短歌群 內容으로 이어지게 된다. 本論으로 들어가, 왜 10首의 단가군(短歌群)인가를 論하였다. ①∼⑥까지의 歌群과 ⑦∼⑩까지 歌群의 성격이 다른데, 하나의 10首의 歌群을 형성해야할 必然性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이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당시의 지쿠젠(筑前) 지방장관인 야마노우에노오쿠라(山上憶良)와 그의 상관인 다자이후(大宰府) 장관인 오토모노타비토(大伴旅人)와의 관계에서 이 작품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오쿠라는 타비토의 작품을 意識하면서 노래를 짓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많은 작품이 상관인 타비토를 의식한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작품도 그 부류의 하나로 보고자한다. 根據로는, 삼대실록(三代實緣)의 시가섬 지방에 관한 역사적인 史實기록 「香椎廟宮에서는 해마다 春秋祭日에, 시가섬 뱃사람 남자10사람 여자10사람이 風俗樂을 연주한다」에 입각하여 볼 때 시가지방 男女十人의 행위를 意識한 오쿠라의 작품이라는 게 자연스럽다. 시가섬은 오쿠라의 관할하에 있는 섬 지방(지금은 육로로 이어져 있음)이고, 그 섬의 구성원을 중심으로 현실적이고, 서민적이고, 관리적인 냄새가 짙게 베어있는 이 작품은, 인간의 生老病死를 주로 다루는 그의 작품세계에 비추어 볼 때 오쿠라 외에는 생각 할 수 없는 短歌群인 것이다. 이 10首의 短歌群도 오쿠라와 타비토의 독특한 반발관계로 해석하면 보다 자연스럽게 납득이 된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10首의 短歌群을 둘러싸고 30편이 넘는 논문이 발표되었다(1998년7월 미후쿠 시학회에서 발표할 무렵을 기준). 예외 없이 論하여진 것이 配列問題였다. 이 配列問題는 결국 創作動機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創作動機를 論하지 않고 配列問題를 論하는 것은 순서가 거꾸로 인 느낌이 없지 않다. 配列에 대해서는 尼崎本에 입각하여 기존의 순서를 바꾸어 論하는 견해도 있지만, 그러한 견해는 근거가 확실치 않으므로 납득할 수 없고, 현행대로의 配列에 입각하여 필자의 생각을 論하였다.

육조어식소 (六條御息所) 의 원령

촌송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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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령(物の怪)을 다면적으로 파악했던 작자는 夕顔卷에 나타난 원령을 황폐한 건물에 사는 요괴처럼, 六條御息所의 生靈처럼, 또한 源氏의 마음속에 있는 귀신(心の鬼)처럼, 그 정체를 애매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그 결과 夕顔卷의 수상한 분위기가 효과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葵卷에서는 六條御息所의 영혼이 몸에서 유리헤서 빙의하는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고 있는데, 작자는 生靈사건의 필연성을 위해서 여러 가지 조건을 겹쳐서 묘사하고 있다. 첫째 일부다처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源氏의 무책임한 태도와 우차 자리 다툼(車爭い)을 들 수 있다. 둘째 고귀한 신분을 들 수 있는데, 六條御息所는 고귀하기 때문에 원한을 밖으로 표출할 수 없었고, 혼자서 속으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원래 깊이 생각하는 성격, 즉 영혼이 유리하기 쉬운 성격이었던 것이다. 작자는 남자에 대한 집착 때문에, 영혼이 유리해서 生靈이 된 여자의 비극을 그리려고 했던 것이다. 若菜下卷에서는 수호령으로서 하늘에서 딸을 지켜 보고 있던 六條御息所가 원령이 되어서 紫上를 괴롭혔다. 그러나 정체를 나타낸 후부터는 딸에 대한 후견을 源氏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딸에게 충고하기도 하고, 다시 수호령이 되었다. 이처럼 원령과 수호령이라고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六條御息所의 死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柏木卷에서는 女三宮를 출가시킨 六條御息所는 웃으면서 개가를 올리고 있어서, 원령적인 측면이 두드러진다. 작자는 집착 때문에 성불하지도 못하고, 상대를 바꿔가면서 빙의한다는 여자의 업(業)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다만, 작자는 夕顔사건이나 生靈사건, 死靈사건에 있어서 원령을 단순한 빙의 현상으로 묘사하지 않고, 源氏의 마음속에 있는 귀신을 늘 염두에 두면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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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堤中納言物語』は平安後期に成立した短編物語集である. その作品集には, 短編物語10編と一つの未完成文が入っているが, その形式と內容は實に多樣で, ユ-モアに富んでいるなど特異な構成をなしている. この作品集に登場している女主人公たちは「蟲めづる姬君』の女主人公のように, 傳統的習俗に積極的に反發する個性派もいるが, やはり憂愁と悲哀に含まれた悲しくてあはれな人物が物語の主人公, 特に「色好み」の相手として選ぱれたのである. すなわち, 「花櫻折る少將』『ほどほどの懸想」の女主人公などは, 顔や姿がとてもきれいで, 琵琶なども上手であるが貴族のお父さんに先立たれて, 寂しく過ごしている姬君として造型している. また「貝合」の少女は貴族の家柄の娘であるが, お母さんに先立たれ, 賴るところは幼い弟, 若君しかいない. しかし顔は「この世の人とも見えないほど」きれいである. そして「思わぬ方にとまりする少將」の2人の姬君も大納言のお父さんとお母さんを全部先立たれて, 昔のままの邸で寂しく過ごしている. この女性たらも小說に書かれでもいいようにきれいに成長している. こういう女性たちの人物造型は『源氏物語』の若紫や夕顔, また宇治の八の宮の二人の娘から影響を受けている. このように品性はいいがかれんできれいな女性を「垣間見」した, 「色好み」である若い貴族の男性たちはその場で心か引かれて, 彼女たちは戀愛の相手として選ばれるわけである. しかし作者はこのあわれな女性をただ同情するだけじゃなくて, むしろ彼女たちを救うため, 彼女を描寫するのに「垣間見」と人の傳言などを使うことによって, 間接的で客觀的な方法を取っている. つまり, 環境が不遇であわれな立地の女性に, きれいでかわいらしい姿と性格を與えて, それを「垣間見」と傳言によって表現している. そしてその描寫もすごく抑えてほとんど直接的な描寫はしていない. これは彼女たちのあわれさをもっと神秘的に感じられるようにして, 少ない描寫であっても成功的にすばらしい女主人公の役割を果たしている. そして彼女のあわれさを減らしている. これは作者のそういう不遇でかれんな女性たちに, 人間的な配慮と關心を持って, 戀の相手として選んでくれるし, またその書き方によって, 彼女の悲しさをへらしてあげる效果を齎している. それは作者の暖かい人生を願う憧れであろう.

표현으로서의 천황제 - 원씨이야기를 중심으로 -

이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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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모노가타리」는 히카루겐지를 주인공으로하는 모노가타리이다. 모노가타리는 히카루겐지가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을 통해서 왕권을 창출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어머니의 낮은 신분 때문에 마땅히 천황이 되어야 할 히카루겐지가 왕권을 상실하고서, 다시 왕권을 쟁취하는 과정이다. 단지 그가 직접 천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천황의 중궁인 계모와의 사이에, 동생이면서 아들인 레이제이천황을 낳아 그를 통해 왕권을 되찾게 되는 것으로, 이를 잠재 왕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히카루겐지의 왕권창출을 가능케 하는 모노가타리의 논리는 현실의 왜소화 된 천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원적인 왕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원적인 왕의 모습을 가진 히카루겐지가 노화하면서 왕권모노가타리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바로 레이제이천황의 퇴위이다. 즉 모노가타리는 히카루겐지의 노화와 연동하면서, 환상적인 영역의 시원적인 왕권의 베일에 가려진 제도로서의 천황제가 가지는 권력속성을 세대교체의 문맥 속에서 구체적인 언어 표현으로써 무화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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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勢物語の注釋史において古注とは, 鎌倉時代中期から室町時代初期まで廣く用いられた『和歌知顯集』系統に屬する注釋と冷泉家流の注釋を他の若干の注釋とともに稱されるものであるが, これら古注の基本的な注釋態度については片桐洋一先生がすでに明らかにされたように, 一つは, 物語の登場人物すべてに實際の人物名あてて讀むということであり, もう一つは, 各章段に扱われた事件につき, 實際の年月日をつけて讀むということが擧げられる. 古注のこのような注釋態度は, 一見おもしろそうに思われるが, 實際においては事實とはかけはなれた荒唐無稽な說が多い. そのため, 古注のこのような荒唐無稽な注釋態度は, 室町中·後期のいわゆる舊注の時代においては猛烈に批判·反對されるようになるが, 例えば, 舊注の元祖的存在である『伊勢物語愚見抄』はその序文において, 古注でよく見える引用文獻とか登場人物すべてに實名をあてて讀む方法などは「一としてまことある事なし」と批判しているし, また「伊勢物語愚見抄』以後, 舊注の主流をなす宗祇·三條西家流の注釋においても古注の實名をあてて讀む注釋方法を否定しているのである. しかし, 注目すべきは古注的注釋方法の否定を大前提とする室町中·後期のこれら舊注においても, 實際の章段を見ると依然として古注の注釋態度とか古注的發想が殘存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る. それで, 本稿においては舊注に殘存する古注的發想, 中でも物語の登場人物に實名をあてて讀む注釋方法を中心に, その實態を明らかにしてみたが, まず, 『伊勢物語愚見抄』の場合, 物語の登場人物に實名をあてる最大の根據は他の증거に成り得る文獻資料と言えるが, 結果的にはこのような실증주의적な注釋方法が古注の世界から大きく離れていないことか確認できた. 一方, 宗祇·三條西家流の注釋も登場人物に實名を示さないことを原則とするが, 宗祇なりの, 物語の登場人物に對する特定のイメ-ジを强調しようとする場合, 實名をあてて讀んでいる. しかし, それよりは, やはり古注の說の影響を無意識的に受けている例とか, 古注の說を直接的には取っていないが, 一つの實相がいろいろな形で虛構化されて物語の中に散在するという古注的方法をそのまま取り入れている例のほうが多かった. 『伊勢物語愚見抄』より, 宗祇·三條西家流の注釋のほうが古注的發想がより多いということは, 物語を表面的意味だけで握えずに, その背後に隱された「下の心」すなわち, 物語の表現の趣旨を理解しようとする宗祇·三條西家流の注釋方法が, 物語を虛構と見, その裏に存在する實相を明らかにしようとする古注の注釋方法と相通じるものがあるからであろう. これら舊注が物語の至る所で古注の注釋方法を强く否定しているということは, 言い換れば, 舊注の時代においても古注の影響力が至大だったということを物語ってくれ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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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大寺 初代別當 良弁僧正は謠曲「良弁杉」で象徵されるように說話化された部分が多く, 良弁の說話が傳承されてくる過程にかかわった說話の亨受層の興味と關心の豊かさを物語っている. 良弁の誕生說話は「驚の捨て子譚」として語られているが, 中でも, 東國の相模國から攫われてきたという相模國「驚の捨て子譚」を手がかりとしてその說話の形成にかかわった「語り手」の問題へ接近してみた. 良弁が驚に攫われたきたという誕生說話が生まれた原因はその出身の不明さにあると思う. 多くの文獻が「百濟氏」を支持しているが, 自寺の由來を保存, 傳承する『東大寺要錄』は「相模國, 漆部氏」說を取っている. 本稿では, まず考察の段取りとして良弁と漆部氏との關連性について調べて見た結果, 「상모숙녜」漆部伊波が東大寺と關係に注目した. が, 漆部伊波本人は勿論, その子孫も相模國に住居したことはない. むしろ, 河內に住居した史實が確認された. さて, 相模國には古記錄によると早い時期から百濟の遺民の移住に關する史實が見られる. 特に, 東大寺建立にかかわった相模國國司「鬼室蟲麻呂」という人物の存在が確認できたが, 鬼室という名字は百濟が滅ぶ時, 王子豊と共に日本へ亡命した福信の名字である. この「鬼室蟲麻呂」はその子孫に違いない. ほかにも, 相模國に住居する百濟の遺民たちの存在を確認できた. さらに, 日本最初の金を掘り出した陸奧の守百濟敬福の存在を通して陸奧國から相模國そして近江國へ至るまで, 廣い範圍にわたっての百濟系の渡來人の文化的ネットワ-クを想定した. 良弁の誕生說話「驚の捨て子譚」はこのようなネットワ-クによって形成され, 傳承されたのである. この說話には日本の佛敎文化に寄與しながらも日本化を余儀なくされるしかなかった百濟系の渡來人たちの情緖が反映されてい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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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昔物語集』(以下「今昔』로略稱)의二五·兵譚은 平安武士의 棟梁·源平二氏를 주축으로 하는 武者의 合戰譚이다. 本稿의 考察은 以下의 3가지 사항, 첫 번째로 通說로 되어 있는「世俗部」라는 呼稱은 近世以來의 享受史의 次元에서의 呼稱에 불과하며, 各卷의 副題를 下位觀念으로 하고, 그 全體를 包括하는 上位觀念으로써의「王法部」를想定해야만 한다는 小峯說, 두 번째로 卷二一부터 卷二五까지의 構成理念이「公=王權中心主義」라고 한 諸先學의 意見, 세 번째로 卷二二·藤原列傳, 二五·兵譚의 양권은 歷史敍述이며, 卷二一의 皇室史를 頂點으로 한 藤原氏, 兵이 그것을 떠받치고 있다는 森說등이 타당 하다고 판단한 위에서 展開되었다. 從來의 硏究와 相違한 필자의 견해를 간단하게 열거하면 이하와 같다. 우선 歷史敍述인데, 年代順·世代順 각각의 觀點에서 配列을 確認한 結果 年代보다는 世代쪽이 配列에 중점이 실려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계속해서 構成문제 특히 卷二三과 관련해서 卷二五의 자리 매김에 관해서인데, 原初構想에 있어서「皇室史」를 정점으로 하여 兵이 다른 諸道의 冒頭에 위치하여 최종적으로「藤氏史」와 나란히 配置된 이유에 대해서, 兵이「天下の堅め(『中外抄』)」라고 하는 認識이 있었음과 동시에「兵」에게는 權門的側面이 있었기 때문이리라고 추측했다. 卷二五·兵譚の의 경우 여러 兵이 잡다하게 배열된 것이 아니라 桓武平氏·淸和源氏의 두 계보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하며, 특히 院政期, 淸和源氏에게는 武士의 棟梁으로써의 權門的性格이 明確하게 확인되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하 몇 가지 근거를 들어「公」中心主義와의 관련성을 구체적으로 논증하였다. 첫 번째로 卷二五에는「公」과 관련된 修飾이 卷전체에 걸쳐서 덧붙여져 있고, 출전인 『將門記』『陸奧話記』와 비교하면「今昔」는 「公」이란 표현을 축으로 하여 抄出하는 경향이 보인다. 두 번째로『今昔』에 있어서의「兵ノ家」란「公」에 의해 認定되고 그것을 섬긴 兵의 家系였던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다름아닌 桓武平氏와 淸和源氏의 두 혈통을 말한다. 雨家만이「兵ノ家」로써 卷二五에 수록된 이유는『今昔』가「公」을 섬기는 「兵」로써의 源平兩家에 대한 당시의 인식에 입각해서 의도적으로 兩家관련설화를 배열한 결과라고 인정된다. 세 번째로 卷二五는 源平兩家중 朝廷(公)에 공헌이 많았던 淸和源氏가 중시된 배열로 되어있다. 네 번째로 卷二五에는 合戰譚이 많은데, 『將門記』『陸奧話記』및同文的同話와의 비교를 통해서『今昔』의「兵」에 대한 태도를 보면「公」에 대한 叛亂(謀反) 者와 그것을 平定하는 鎭定者라고 하는 대립구조가 명확하게 강조되어지고 있으며 反亂者·鎭定者의 兩者모두들「公」에 수렴하려한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卷二五·兵譚은, 新興勢力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兵」은「公」를 섬기는 존재임과 동시에 그들은「公」에 반할 수 있다는 위험한 존재라고 하는 자각에 의해서 각각 지탱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卷二五의 兵譚의 의도가「公」와의 관련속에서 兵을 조직적으로 수렴하려는 데에 있다는 사실은 이로써 명확하다. 『今昔』의 이른바 世俗部라는 호칭대신 小峯가 제창한 <王法> 部라는 命名을 적용해야만 작품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판단의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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