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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일문학연구검색

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0권 0호 (2002)

어학 , 교육 편 : 대반가지의 저작가고

박일호(Il Ho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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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카모치(大伴家持)의 작품 중에는 「儲作」이라고 하는 용어를 제목(題詞)사용한, 이른바 「儲作歌」가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依興歌」「子作歌」「追歌」등과 더불어 야카모치와 관련된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노래이다. 본 논문인 이러한 「儲作歌」의 제작 동기와 관련한 실용·비실용의 문제에 대하여 고찰하고, 또 미래의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여 노래한다고 하는, 이른바 노래를 통한 시간 조작 혹은 시간 의식에 주목하여, 「儲作歌」의 특질을 야카모치의 문학의식과 방법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儲作歌」는 일반적으로「차후의 실현(피력)」을 목적으로 제작된 노래」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노래의 제작 배경, 제작 계기, 전후 작품과의 관계, 非儲作歌와의 비교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儲作歌」의 「儲」는 「미리 준비하다」라는 실용적 의미로 파악하기보다는 「상상 속에서, 공상하여, 가상하여」와 같은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즉 「儲作歌」는 「실제의 피력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가상하여) 노래를 읊은 것」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儲作歌」는 이상과 동경의 세계를 과거에서 구해 미래의 시간과 공간으로 잇고, 다시 그것을 현재화함으로써 강렬한 현실적 열망을 역석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야카모치의 독자적인 詩樣式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儲作歌」는 고독과 향수와 번민 속의 현실을 초월하는 수단으로서 야카모치라고 하는 섬세한 시인의 감성이 낳은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유희의 시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우한 정치가이며 오오토모 가문의 嫡子인 야카모치로서는, 「儲作歌」의 창작을 통해, 비로소 시세계 속에서 현재의 시간을 떠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잠입하여 그러한 환상 속에서 몽유함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撫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어학 , 교육 편 : 대반판상랑녀의 전장작가고 - 권4 723 번 가를 중심으로 -

제등마자(Asako Sa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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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伴坂上郞女는 万葉제3기부터 4기에 걸쳐서 활약한 여서歌人이며, 그녀의 아버지는 大伴安 麻呂, 어머니는 石川內命婦였다. 大伴宿奈??와의 사이에 板上大孃를 낳은 것 등이 題詞와 注釋書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나며, 이 딸에게 跡見庄에서 보낸 長歌(제4권 723)와 短歌(724), 竹田庄부터의 단가(제4권 760, 761), 그리고 딸이 사위인 大伴家持와 함께 부임지인 越後로 떠날 때 보낸 長歌(제19권 4220)와 短歌(4221)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어머니가 딸에게…"라는 식의 노래는 万葉集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며, 특히 제4권의 723번가는 相聞의 長歌라는 점에서도 주목 할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래가 읊어진 배경으로는 우선 大伴板上郞女가 「家刀自」라는 위치에 있었던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고대에서는 家長과 家室(イヘトジ)라는 두가지 축에 의한 집안경영에 불가결한 조건이었으며, 여성은 집안의 제사는 물론, 농업경영에 있어서의 각종행사를 담당하였다. 이로 인해, 그러한 여성들은 잠시 가족과 도읍을 떠나 고향의 농토에서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율령제도의 정착과 관료의 제도화는 사람들에게 자아에 대한 각성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대상화` 시켰다. 이러한 면에서 大伴坂上郞女도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아"를 의식화, 객관화하였으며, 그러한 결과의 표현수단으로서 여성가인이 이제껏 사용한 적이 없던 長歌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家刀自가 親戚들을 상대로 노래를 읊는 경우에는 그 씨족만이 공유할 수 있는 화제가 선택될 수 밖에 없다. 4권 732번가의 題詞중의「留宅」에서는 딸인 板上大孃와 사위인 大伴家持와의 혼인을 명시하여, 노래 중에서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大伴가문의 "家刀自"가 된 딸을 굳이 "나의 아이인 刀自(吾兒乃刀自)"라는 식으로 "나의 아이"와 "刀自"를 동격화시키는 등의 万葉集내에서 찾아볼수 없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大伴坂上郞女는 이 노래를 읊음으로써 스스로의 "자아"를 "어머니"의 입장에서 한 사나이의 아내가 된 딸을 통해 나타내려 한 것이며, 그 창작의식은 후대의 여류문학으로 이어지는 점을 비춰볼 때에 앞으로 이러한 시점에서의 작품의 재 고찰이 기대된다.

어학 , 교육 편 : 광원씨의 수마류난와 왕권

김종덕(Jong Duc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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桐壺帝의 아들로 태어난 光源氏가 도읍을 떠나 須磨流離를 통해 격는 고난은 왕권획득의 기초를 다지고 貴種流離譚이라고 하는 하나의 話型을 이루며 모노가타리(物語)의 主題를 형성하고 있다. 折口信夫가 光源氏의 須磨流離에는 貴種流離譚이 갖고 있는 모든 요소가 다 나타나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갖가지로 변형된 話型이 내재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光源氏의 須磨流離가 王權獲得이란 주제로 변형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특히 光源氏의 須磨流離에 따른 석별의 정을 증답한 和歌와 달빛(月の光)으로 상징되는 표현 분석을 통해 사라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왕권획득으로 이어지는가를 규명해 보았다. 光源氏의 須磨流離는 藤壺와의 密通에 의해 태어난 東宮의 卽位를 위한 속죄이며 재생을 위한 것이었다. 須磨 해변에서 만난 폭풍우는 光源氏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 것과는 달리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光源氏의 원죄를 경계한 것으로, 光源氏가 須磨에서 明石로 옮기기 위한 국면 전환의 의의가 있다. 한편須磨에는 유난히 밝은 달빛이 빛나고 있다는 표현이 많은데, 이 무렵 궁중의 朱雀帝는 光源氏의 빛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며, 東壺院의 유언에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즉 빛은 光源氏가 須磨, 明石를 거쳐 귀겸함으로써 되살아나는 왕권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光源氏의 須磨流離가 桐壺卷의 觀想과 若紫卷의 꿈의 해몽에서 나오는 「액」이 실현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곧 光源氏의 왕권이 실현되기 위한 속죄의 의미를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物語의 논리는 光源氏의 왕권이 갖가지 예언과 빛(光)의 표현, 사랑의 인간관계가 표리일체가 되어 실현되는 것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학 , 교육 편 : 『 법화험기 』 에 있어서 지경자상

김경희(Kyung He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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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華驗記』는 1040∼1044(長久年間)년 경, 比叡山延??寺의 요카와(橫川) 승려 친겐(鎭源)이 일본인을 소재로 편찬한 법화경 영험담이다. 본 연구는 『法華驗記』의 편찬의식을 고찰하기 위한 기초연구의 하나로 『法華驗記』에 나타난 持經者像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法華驗記』에 대한 선행연구를 살펴보면, 『法華驗記』는 니체렌(日蓮)과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지쿄샤(持經者)와의 관련 연구를 위한 연구사료(史料)중의 하나로 강조한 나머지 『法華驗記』의 독자적인 세계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法華驗記』에 나타난 지쿄샤(持經者)의 성격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쿄샤(持經者) 설화로서의 『法華驗記』의 존재는 단순히 헤이안 시대(平安時代)의 法華經 지쿄샤(持經者)의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法華驗記』에 나타난 많은 지쿄샤(持經者)들의 공통적인 자세를 고찰함으로써 역사적 자료로서가 아닌 『法華驗記』그 자체의 특징과 친겐(鎭源)의 편찬의도를 살펴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法華驗記』에 나타난 승려에 관한 기술을 자세히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지쿄샤(持經者)로 불리는 승려들의 활약상에 대한 내용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比叡山延??寺의 역사를 살펴볼 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료겐(良源)에 관한 설화가 기재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그의 제자인 소가(增賀)와 겐신(源信)의 이야기가 강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멀리한 탈세속적인 인물들을 칭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멀리한 많은 인물들에 대해 『法華驗記』에서 산림수행자(山林修行者)또는 세속적인 삶과 단절한 은둔자로 기술하고 있다. 『法華驗記』에 있어서 이와 같은 탈세속성의 원형을 『法華驗記』上卷題3話의 사이쵸(最澄)의 모슴을 『法華驗記』의 지쿄샤(持經者)들이 추구하는 수행 정신의 기본 맥락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정리해 보면 『法華驗記』에 수록된 지쿄샤(持經者)는 산림수행자(山林修行者)뿐만 아니라 세속을 다니면서 중생을 교화시키는 교화승, 또 比叡山三塔의 승려와 종파를 초월한 사찰의 승려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이러한 인물 속에는 겐신(源信)·소가(增賀)·요쇼(陽生)등고 같은, 탈세속적인 삶을 관철한 지쿄샤(持經者)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法華驗記』는 比叡山의 法華主義에 입각한 탈세속적인 사이쵸(最澄)의 전통을 표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학 , 교육 편 : 교고쿠파 가인 , 후시미인의 와카 연구

박혜성(Hye Song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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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일본의 와카 가인의 집안은 爲家(다메이에)가 죽고 난 후, 그 아들들 사이에서 3파로 나뉘게 된다. 적자인 爲氏(다메우지)가 중심이 된 二條(니조)派, 서자인 爲敎(다메노리)의 京極(교고쿠)派, 후처의 아들인 爲相(다메스케)의 冷泉(레이제이)派이다. 본 논문은 그 중에서 일본 중세의 남북조 동란기에, 京極爲兼(교고쿠 다메카네)와 함께 京極(교고쿠)派를 이끌어간 전기의 대표적 가인 伏見院(후시미인)을 대상으로 그 歌論과 和歌(와카)를 고찰하는데 목적을 둔다. 우선, 가론을 통하여 그의 와카에 대한 생각을 검토하고, 실제작품에서는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교고쿠파가인으로서의 그의 와카적 특징을 추출하고자 한다. 교고쿠파란 京極爲兼의 지도아래 正應(1288∼1292)년경부터 貞和(1345∼1249)년경에 걸쳐서 활약한 가인 그룹을 총칭해서 말한다. 교고쿠파는 持明院(지묘인)統 궁정을 중심으로 약 70년간, 통산 100명 정도의 고정된 가인 그룹에서 행해졌다. 弘安년간(1278∼1287)에 爲兼가 동궁인 伏見院(후지미인)과 그의 근신들에게 새로운 작가 이념을 불어넣은 것이 단서가 되어 후시미인옹립 후에는 여기에 중궁 永福門院(에이후쿠몬인)과 후궁 女房들이 참가하여 그룹의 시행착오를 거쳐 乾元2년(1303)의 仙洞五十番歌合(우다아와세)에서 순객관적인 서경가를 특색으로 하는 신 가풍을 확립했다. 전기는 제92대 천황인 후시미인, 다메카네를 중심으로 한 가인들이 있었고, 제14대 칙찬집인 玉葉和歌集(교쿠요와카슈)를 펴냈다. 후시미인이 죽은 후 후기에는, 중궁인 에이후쿠몬인과 아들인 花園院(하나조노인)을 중심으로 女房들 등 유력한 가인들이 활약을 하여 제 17대 칙찬집인 風雅和歌集(후가 와카슈)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 교쿠요슈와 후가슈는 형식에 얽매어 평이해진 니조파 계통의 칙찬집과 달리 참신한 작풍을 만들어내 21대 친찬집 중에서 주목할 만한 칙찬집으로 후세에 평가되고 있다. 후시미인은 다메카네에게 와카를 사사해 그의 가론을 많이 이어받았으나, 또한 독자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하였다. 다메카네와는 달리 교고쿠파적인 와카들가운데에서도 전통적인 와카적 색채를 많이 살리려고 한 가인이다. 또한 「源氏物語(겐지모노카타리)」와 같은 고전 산문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와카에는 이 「겐지」에 영향을 받은 와카도 눈에 띈다. 또한 와카에 있어서는 「万葉集」「三代集」도 중요시하여, 단순한 신풍만이 아닌 고전에 대한 식견도 많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점이 다른 교고코파 가인과 차별이 되는 그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학 , 교육 편 : 파초 배해의 웃음의 본질

유옥희(Ok Hee You)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40권 0호, 2002 pp. 93-115 ( 총 2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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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 , 교육 편 : 통구일엽와 김일엽의 여성성 대조

노미림(Mi Rim Noh)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40권 0호, 2002 pp. 141-165 ( 총 2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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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 , 교육 편 : 명치 40 년대 소설의 노동자의 묘사법에 관하여

신지숙(Ji Suk Shin)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40권 0호, 2002 pp. 167-184 ( 총 1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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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40년대에 발표된 소설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조형에 관하여 고찰했다. 그이전 명치 20년대의 소설에도 인력거꾼 등 노동자가 그려져 있지만 그것은 새로운 세태풍속을 나타내는 요소, 혹은 전략이나 빈곤의 상징을 기능을 하는 것으로 노돌자상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동운동이 시작되는 30년대에는 기노시타 나오에(木下尙江)가 「불기둥(火の柱)」을 발표한다. 기독교사회주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사회모순을 지적하는 가운데 노동자의 궁핍한 상황에 동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도 노동자를 묘사했다고 하기보다 노동운동을 작품의 제재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노동자가 소설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은 명치 40년대가 되어서이다. 이 시기가 되면 노동자는 하나의 사회, 계층, 계급으로서 파악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노동자상은 고정된 이미지를 나타내게 되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하나는 노동자는 생확, 성질까지 공통된 집단이라는 발상 하에 노동자를 도덕과는 인연이 먼, 타락한 혹은 타락하기 쉬운 사람들로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이러한 작품이 많이 보이는 것은 명치40년대에 자연주의가 대유행한 것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의 암부를 있는 그래도 그리려고 한 작가들에게 도덕의식이 박약하며 본능대로 산다고 보여진 노동자는 절호의 소재가 된 것일 것이다. 이미지는 이미지를 재생산하여, 노동자를 보는 시선과 노동자상을 스트레오타입화 하게 된 것이다. 한편 소외, 착취하는 지배계급에 대해 반발하는 노동자상도 나타나게 된다. 작품에 따라서 반발이 행동화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차이는 있지만 관찰되는 존재였던 노동자를 주체로 그들의 감정-주로 비애와 지배자에 대한 분노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前者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의 원인은 거의가 지배자들의 착취와 냉혹한 처우에 있는데, 아리시마 타케오(有島武郞)「땅땅벌레(かんかん蟲)」의 주인공 야코부는 비도덕적인 인간이라고 하는 바로 동시대의 스트레오타입화된 노동자상에 대하여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지배자들이야말로 연극을 잘하는 위선자이며 자신은 연극을 잘 못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것은 기노시타 모쿠타로(木下??太郞)「6월의(六月の夜)」의 「저녀석들은 속이지 않으니까」라는 언설과 가미즈카사 쇼켄(上司小劍)「善人나라(善人國)」의 이치로 (一郞)의 위선적인 말과 호응한다. 그러나 이들 소설에 있어서도 획일성을 지적할 수 있다. 노동자 개개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계급을 초월한 보편적인 理想을 제시하는 요시이 이사무(吉井勇)「방(夜)」에 있어서도 노동자는 悲哀, 慣怒의 집단으로 묘출되어 있다. 「땅땅벌레(かんかん蟲)」처럼 노동자에게 각각의 개성이 부여되어 있는 것은 특수한 예이다. 또 묘사대상에 관하여 말하면 행동이나 말의 묘사가 많고 내면묘사는 에마 나카시(江馬 修)「게으름쟁이(なまけもの)」나 아라하타 칸손(荒畑寒村)「艦底」에 일부 보일 뿐이다. 노동자의 내면에 깊숙이 들어가 억압된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노동자를 그리게 되는 것은 미야지마 스케오(宮嶋資夫)의 「坑夫」(大正5年)를 기다려야 한다.

어학 , 교육 편 : 마사오카 시키의 시기별 " 사생 (寫生) " 단가 고

이학도(Hak Doe Lee)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40권 0호, 2002 pp. 185-206 ( 총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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