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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Japanese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일어일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5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98권 2호 (2016)

짓펜샤 잇쿠작 기뵤시풍 고칸『나루호도넷카라잇쿠가사쿠』의 창의성에 대하여

강지현 ( Kang Ji-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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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기뵤시『에이얏토잇쿠가사쿠』를 전거로 한 고칸『나루호도넷카라잇쿠가사쿠』에 대해 ``창의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결과, 미카에시(見返し)나 권두그림(口繪), 권말에는 고칸으로서의 형식상 특질이 보이는 한편, 개작수법으로서는 전거의 에피소드를 생략·삭제한 뒤에 새로운 것을 증보·부가하는 창작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는 기뵤시의 유리(遊里) 관련 외설적 화제나 표현, 언어유희(灑落·地口)에 의한 웃음이 고칸에서는 옅어지고, 교훈적인 억지논리에 의한 웃음 중심으로 잇쿠 작풍의 변질을 볼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칸에는 새롭게 빚쟁이 퇴치담, 부재중인척 하는 이야기, 제갈공명이나 경신(庚申)님의 새로운 등장, 즉흥촌극(茶番狂言)이라고 하는 신취향이 다음과 같이 조합되는 것이다. 먼저 증보·부가의 예로서는 첫째 구스노키(楠)관련 화제가 8페이지에 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치하야(千早)성 전투에 있어서의 기름, 짚 인형, 담장 매달기 전술 및 우는 남자에 입각하여, 1)섣달그믐날의 전투, 2)전쟁담을 이야기하는 잇쿠, 3)우는 남자 아닌 우는 여자를 고용하는 이야기로 취향이 바뀌는 것이다. 둘째는 제갈공명의 지혜혼이 옮아 거문고를 타는 잇쿠가 묘사된 2페이지 분을 들 수 있다. 셋째는 경신님의 원숭이 지혜 관련이야기가 전개되는 8페이지 분을 들 수 있다. 그 여덟 페이지에는 마누라를 시켜 부재중인 척하지만 머리는 숨기면서 엉덩이를 숨기지 않는 잇쿠의 원숭이 지혜 이야기, 구사조시를 집필하는 데는 원숭이지혜로 충분하다고 하는 지족안분(知足安分)을 경신님으로부터 배우는 이야기, 촌극동인들 앞에서 경신을 제목으로 구연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칸만의 새로운 장면 도출 배경에는 잇쿠의 본 고칸집필 취지, 즉 첫 번째로 지족안분의 훈계를 통한 저작자세 표명, 두 번째로 가족·문하생·촌극동호인의 공개가 있었다고 추론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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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稿は1663年に刊行された淺井了意の『三井寺物語』と、その典據とされている謠曲「三井寺」を比較し、了意の創作方法及び意圖について考察したものである。 まず、謠曲の場合、女性が參籠した場所は京都淸水寺の觀音堂になっている。これは淸見ヶ關が出身地である女性が自分の子を失い、淸水寺まで移動したことを前提にしているものであるが、これについて了意は女性が駿河淸見寺の觀音堂で參籠することに變え、原作での不自然な場所移動を自然なものとして變えている。それに加えて、女性が淸見潟から近江へと移動する部分を名所記風に記述しようとした意圖もあったと思われる。 次に、母子が再會する場面の場合、母が子供の聲を聽いて子供を發見するというように、舞臺芸術でなければ理解しにくいようなところが隨所に見られるが、了意はこの部分について、子供が母を先に發見する內容として變えることにより、讀み物として??のあうような狀況として變えている。 最後に、謠曲の場合、最後の11段で語り手が親孝行を稱えることになっているが、前半では一貫して母が失った子供を探し出す內容になっているため、了意はこのまま小說化すれば主題が分裂すると考え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したがって、『三井寺物語』では親孝行の部分が削除され、母が子供を取り?す物語として一貫されている。 淺井了意の文學については、これまでは中國や朝鮮文學との比較を中心に硏究が行われたが、『葛城物語』や『三井寺物語』のように謠曲との比較を通して、彼の創作手法を考察する作業も必要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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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雙紙の中でも、黃表紙は、當時の流行を描いたり、當時の社會を風刺したりするなど、小說の素材を當時の出來事から取っていく趣向が主流であった。そして、そのような特徵をもって多くの江戶の人人にもてはやされていたのである。このような文學作品の大量生産と大量消費をもって日本の大衆文化が始まったとも言えよう。ところで、黃表紙のなかでは、當時を描く際物だけではなく、昔話のパロディ一も存在した。そして、黃表紙におけるパロディ―という趣向は、黃表紙が終わりを告げるまで絶えなく使われていたものでもあったのである。 本稿は、1777年に刊行されてから現代作家の井上ひさしまでに、その影響を與えた朋誠堂喜三二の黃表紙『親敵討腹鼓』をはじめ、昔話「かちかちやま」を素材した他の黃表紙を探ることにした。黃表紙の前身ともいえる黑本のジャンルの中でも「かちかち山」の再話はあるが、殆どオリジナルスト一リ一の樺を破ることなく、少しずつ江戶時代的變容を見せてきた。『親敵討腹鼓』は、その「かちかち山」の後日談としてオリジナルから脫皮し、兎や狸など元の登場人物を利用しながら、もっと複雜なキャラクタ一を登場させ、しかも芝居や見世物など他のジャンルからのパロディ一も重ね付けた。 そして、もう一つの黃表紙は唐來三和の『冠言葉七目記』である。この作品には、吹き寄せの技法を生かして多くの別別の作品と主人公が現れるが、その流れに「かちかち山」も部分的に受容することになった。斷片的な受容であるが、十年前の『親敵討腹鼓』の主人公、?と鷺を引き續いて登場させ、まるでシリ一ズ物のように記憶が蘇る效果を出すのが特徵である。 このような考察を通して、『親敵討腹鼓』と『冠言葉七目記』は昔話が黃表紙に活かされ、黃表紙という戱作の性格を帶びながら、「かちかち山」の系譜を繼いでいくことが確認できた。それ以外にも、芝全交や櫻川慈悲成、そして十返舍一九が「かちかちやま」を扱った黃表紙もあって、今後の課題にしたい。朋誠堂喜三二から十返舍一九までの黃表紙ということは、30年間流行った黃表紙の變容と足跡を探るという意義がある。また、黃表紙の後のジャンルである合卷と豆本などのかちかち山物と井上ひさしの現代戱作までの波及效果も調べて、日本昔話から影響を受けた大衆文化の一つの流れを?ってみたいと思う。

오미지방의 우의전설에 보이는 스가와라 미치자네와 기쿠이시히메

이시준 ( Lee Si-j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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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요고호 지역에 전해지는 기리하타 가문과 관련된 17세기 이후의 우의 전설에 대해 근대 이후의 자료도 염두에 두고 통시적 으로 고찰한 것이다. 기리하타 집안을 선양할 목적을 가진 기리하타씨의 우의전설은 크게 3가지의 전승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기존의 나라시대의 우의전설을 변형시켜 기리하타씨의 선조는 선녀와 결혼하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두 번째는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신의 아들로 요시자네의 양자가 되었다는 헤이안 시대 이후의 전승을 변형시켜 스가와라가 기리하타씨의 선조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스가와라는 간잔지의 중흥에 깊게 연관된 역사적 사실이 있고, 간잔지의 종교적 영향권에 있는 기리하타씨는 스가와라를 신앙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전승의 결합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세 번 째, 기쿠이시히메라는 소녀가 용(혹은 뱀)이 되어 요고 호수의 주인이 되었다는 전승을 변형시켜 기쿠이시히메가 기리하타씨의 선조의 여식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인데, 이 전설이 위의 전설과 결합되게 된 이유는 그녀가 비를 관장하는 신이라고 신앙되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설화집과 박물학-미와 다마끼의『전설의 조선』을 중심으로-

조은애 ( Cho Eun-ae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8권 2호, 2016 pp. 97-117 ( 총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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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일본어 조선설화집인 『전설의 조선』의 가장 큰 특징은, 분류방법에 있어서 지리박물학의 분류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박물학의 관점에서 설화를 채집하고 분류하는 목적과 방법은, 18세기 일본의 박물학의 유행과 문학장르로서 「채약기採藥記」와「기담奇談」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적인 목적은 계몽과 교화를 위한 자료로서 설화를 수집하는데 있었다. 대표적으로『제주채약기諸州採藥記』의 편자는 박물학자의 입장에서 실제로 설화의 허구를 실증함으로서 계몽적인 자세를 취하였다.『제국이인담諸國里人談』의 경우 직접적인 교훈과 비평을 배제하는 방법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근대에 들어선 일본은 서양의 과학적인 사고의 도입과 함께 계몽의식이 강해지면서 민중의 계몽을 위한 설화채집을 다시 재현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설화조사와 간행사업은 이상의 흐름속에서 재현 되었으며. 특히 『전설의 조선』은 지리 박물학적인 분류 방법을 취함으로서 보다 객관적인 자료라는 특징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러나 박물학의 성격을 이용한 객관성은 틀에 지나지 않으며 내용면에 있어서는 주관적 혹은 왜곡된 각색의 흔적에서 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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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硏究は短歌歌人の孫戶姸の作品の特性を韓國文學學會に最初に紹介し、その歌語的特徵が傳統的な和歌とはどのような關係にあるかを究明することを目的としている。 孫戶姸の作品には人類愛に基づく民間外交官としての認識が背景にあり、マスコミにて取り扱われる面は、もっぱらこの点に集中されている。一方、歌人の創作におけるもう一つの軸となっている自己認識は、韓國の「鄕歌」が日本の和歌に影響したという考え方にある。したがって、短歌を詠みながらも、和歌の全盛期の平安時代や現代に縛られることなく、原初的とも言える万葉時代の語法を繼承している。その證據として擧げられるのは、一人稱代名詞[吾]の使い方である。さらに、主人の呼稱においても[君]と[つま]といった歌語が頻繁に詠み迂まれるが、これも歌語の變遷過程において万葉時代に拘っていることを證明してくれる。 したがって、孫戶姸の歌は極韓國的な情緖が日本語という器に盛られながらも、その器の飾りは古風な万葉的歌語で構成されていると言える。「鄕歌」を繼承するプライドでもって和歌を詠んでい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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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도와즈가타리(とはずがたり)』에 나타나 있는 이와시미즈 하치만구(石淸水八幡宮)의 양상을 그 신위(神威)와 가호의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이와시미즈 하치만구는 이와시미즈하치만구 엔기(石淸水八幡宮綠起(1433년 간기(刊記))에 있어서 국가진호의 신, 천황옹호의 신, 왕성진호의 신으로서의 신위를 나타내고 『이와시미즈모노가타리(石淸水物語)』(1247~1271년경 성립)에 있어서는 무용(武勇)에 관한 신, 연애 성취와 관련된 신 등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엥교본(延慶本)『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1309~1310년 성립)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관련 기사에서는 하치만 대보살이 전쟁의 신, 정이대장군을 담당하는 신, 제일 먼저 봉배하는 신, ``숙망(宿望)``의 성취신, 요리토모(겐지)의 수호신, 권력의 수호신, 겐지의 조상신, 승진에 관한 신으로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도와즈가타리』에서 이와시미즈 하치만은 우선 신위(神威)에 관여하는 신으로 항례(恒例) 참배의 신·신의 대표·자비의 신·중생 해탈의 신으로 그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가호에 관여하는 신으로서는 병 치유·순산 기원의 대상· 맹세의 대상·보시(布施)를 바치는 대상으로 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즉 『도와즈가타리』에 있어서 이와시미즈 하치만은 이와시미즈 하치만구의 엔기나『이와시미즈모노가타리』등과는 달리 신위·가호 양쪽 모두 매우 새로운 양상을 나타내고 있어서 실로 다양한 변모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도와즈가타리』에 있어서 고후카쿠사인노 니조(後深草院二條)의 이와시미즈 하치만구에 대한 신앙이 다른 진기(神祇) 신앙보다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와시미즈 하치만구의 엔기나『이와시미즈 모노가타리』, 엥교본 『헤이케 모노가타리』 안에서의 양상과는 달리 『도와즈가타리』에서 이와시미즈 하치만구는, 서서히 진행되는 겐지의 조상신 신앙으로부터의 탈각과 함께 보다 구체적으로 현세이익을 추구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영화소설의 전개 양상-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한정선 ( Han Jung-sun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8권 2호, 2016 pp. 159-179 ( 총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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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論文は、日本映畵小說に關するものである。映畵の登場以降、文學と映畵は緊密に關わってきた。したがって、文學と映畵との影響關係については少なからず硏究が蓄積されてきた。しかし、映畵小說に關する硏究は皆無に近い。本論文では、映畵小說というジャンルが登場した背景をはじめ、映畵小說がどのように認識されてきたのか、そしてどのように定着してきたのかに注目した。映畵小說の全貌を明らかにするために、まず、映畵小說を發掘し、次に、映畵小說が揭載された新聞、雜誌と大衆讀者との關わりを明らかにした。日本映畵小說に關する實證硏究は、文學と映畵の比較硏究領域に新たな視点を提示し、韓國の映畵小說との比較硏究も可能にしてくれる。また、メディア·ミックスの源流を1910年代まで遡って再考することによって、今日のメディア·ミックス硏究領域に一つの可能性を提示することになるだろう。

이즈미 교카(泉鏡花)의「의혈협혈(義血俠血)」론-메이지시대의 신분 양상과 관련하여

김경화 ( Kim Kyung-hwa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8권 2호, 2016 pp. 181-199 ( 총 1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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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年(明治4年)、日本は、< 四民平等 >を布告する。 < 四民平等 >とは、士農工商身分の撤廢を目指してとられた一連の政策を意味する。 では、日本は、< 四民平等 >の布告以降、身分と關連してどのような樣子を示しているのだろうか。本論はそのような目論みを、泉鏡花「義血俠血」(明治27年=1894)と關わらせて探ってみた。 まず、「義血俠血」のヒ一ロ一である欣哉からは次のことが窺えた。 欣哉の場合、たとえ馭者ではあるが、自分が士族ということにプライドを有している人物であった。それを通じ、明治以降の近代社會のなかにも、士族出身という身分意識が根强く殘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その一方、欣哉は馭者から檢事へ、< 立身出世 >を成し遂げる人物として描かれており、そのような欣哉から、明治時代には< 學問による立身出世價値 >が强く動き掛けた時代であるということも窺えた。それは明治以前とはまた違う、新しい形としてのヒエラルキ一(hierarchy)であった。 次に、「義血俠血」のヒロインである白絲からは次のことが窺えた。 白絲は乞食芸人の賤民で、賤民は、< 四民平等 >の布告以降にも相變わらず差別されつつあった。居住地も一般人とは區分されて川沿いなどで生活するなど、明治以前と比べほぼ差がなかった。 結論的に言うならば、< 四民平等 >の布告以降の明治時代にも、身分による差別、もしくは身分意識は根强く殘っていることが分かった。 そういう点からすれば、「義血俠血」は、明治時代の身分のあり方を極めてリアルに描いている作品だと言い得るだろう。

이부세 마스지(井伏?二) 론-「잉어(鯉)」의 자전적 사실에 드러난 청춘의 초상-

신현태 ( Shin Hyun-tae )
한국일어일문학회|일어일문학연구  98권 2호, 2016 pp. 201-217 ( 총 1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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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伏?二の習作時代の不幸な狀況には次のような事實が存在していることがわかった。長兄の身代わりに文學をするという壓迫、男色敎授との衝突、なによりもかけがえのない永遠の友靑木南八の夭折が靑年井伏の習作時代の不幸を證明している。井伏は「鯉」のなかで長兄との葛藤や男色敎授との衝突を觸れていなかったが、夭折した友人の死やその死が齎した悲しみに就いては直接表現していて友人の死が齎した衝擊がいかなるものだったかを思い知らされる。 しかし、そこにはそれが純粹な友情であったか、あるいは友人の死に對する執着であったかという、曖昧で複雜な問題が潛んでいて、井伏の不幸な狀況を顯在化させるのは他ならぬ井伏の性格悲劇ともいうべきエゴイズムであることがわかった。 いっぽう、「鯉」はもうひとつ他の解釋も可能な作品でもある。要するに「鯉」は井伏の不幸な狀況を付き纏っていた習作時代との決別を告げる作品とでも讀めるのである。その具體的な例として作品の末尾のところで、「私」の所有の鯉がプ一ルで逞しく成長して行く場面は、親友靑木の死に對する執着として讀めてきたわけだが、井伏本人の文學志望の靑年でそのまま止まらず、より高い所を向けて飛翔したいという井伏の願望の現われとしても解釋できるのではないか。現實は失業生活であってもその心の奧には習作時代の挫折と靑木の夭折を乘越えて文壇の中心へ成長したいという井伏の强い意志が「鯉」に投影されているのであろ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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