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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8권 0호 (2011)

하서 김인후 연구

권순열 ( Soon Yoel Kwon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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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인후는 흔히 道學, 節義, 문학의 三絶을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그의 생애는 지적 영웅들의 삶과 그 궤적를 같이 한다. 하서는 출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종을 만나게 되었다. 하서는 인종의 스승으로서 처음 만나면서부터 매우 의기가 투합했다. 그래서 인종은 ``묵죽도``와 『주자대전』을 하서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서에게 있어서 인종과의 만남은 빛과 그림자처럼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하서에게 있어서 인종은 성군의 자질을 가진 자기 존립의 근거였다. 그러므로 인종의 죽음은 하서에게 있어서 삶의 구심점의 상실이었다. 하서는 인종의 제삿날이 되면 난산 속에 들어가 밤새도록 통곡하고 돌아왔다. 당시 하서의 심중을 잘 드러낸 것이 ``유소사``이다. 이 시에서 하서는 극복하기 힘든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였다. 하서는 인종이 죽고 난 후 불사이군의 자세를 견지했다. 그러한 뜻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옥과 현감 이후의 관직은 쓰지 말라는 당부이다. 하서는 불사이군의 정신을 시를 통해서도 드러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전횡의사``이다. 전횡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도 한때는 다른 제후들과 더불어 천하를 두고 경쟁을 했다. 그런데 나라는 망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 시는 절개를 굽혀야 하는 상황에서 장렬하게 자결한 전횡과 오백 용사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서는 이 시를 통해 절의를 굽혀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하서의 학문은 『소학』과 『대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서는 주자를 공자의 학문을 제대로 전승한 진유라고 추앙하였다. 그래서 주자의 학문하는 자세를 그대로 따르면서 공자를 정신적 스승으로 섬겼다. 그리고 하서는 도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天命圖」를 저술하였고, 천문·지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다. 하서는 학문에 전념하면서 질곡의 세월을 시주로 달랬다. 그러므로 하서의 삶은 어떻게 보면 도연명과 비슷한 점이 많다. 하서는 도연명과 신교를 맺고 그의 삶을 연모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연명은 전원에 은둔하여 자연과 일치하려는 삶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하서는 전원에 은둔해 있었지만 새로운 미래에 대한 이상을 접어본 적이 없었다. 하서는 세상과 떠나 살면서도 세상에 대한 끈을 놓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서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포용을 통해서 위대한 유학자로 대성한 것이다.

조선시대 불가(佛家) 산거시(山居詩)의 유형적 양상

김석태 ( Seok Tae Kim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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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居詩는 고려시대로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창작되어 하나의 전통을 이룬 불교문학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고려의 무의자혜심, 원감충지를 비롯하여, 조선의 청허휴정, 부휴선수, 그리고 조선말의 금명보정 등 산거시는 전 시대에 걸쳐 창작되어 대부분의 불가문학 작가들이 산거시를 남겼다. 이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불가 산거시의 작자와 작품들의 양상을 전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중 대표적인 인물로 허응당보우, 설암추붕, 아암혜장의 산거시를 고찰하였다. 이들의 작품으로 조선시대 산거시를 포괄하여 말하기는 어렵지만, 비교적 많은 작품을 남긴 인물들의 시를 고찰함으로써 불교산거시의 전형성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고려와 조선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불교 승려들의 산거시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말 할 수 있다. 그들은 산중의 생활을 세속과 대비하여 매우 가치 있고 바람직한 삶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청한한 삶을 기쁘게 노래하였다. 또한 산 생활에서 접하는 모든 존재들과의 교감 속에서 지혜를 얻고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에 이르는 깨달음을 추구하였다. 문학은 작자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산승들의 산거시는 자연과 인간이 가장 가깝게 만나고, 깊이 있게 교감하면서 이루어낸 자연시이자 불교철학시라고 말할 수 있다.

제봉(霽峰) 고경명시(高敬命詩) 연구(硏究)

김은수 ( Eun Soo Kim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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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6세기 조선 시인인 霽峰高敬命시의 성당시의 면모를 조명한 것이다. 당시 조선 시단은 宋詩에서 唐詩로 넘어가던 시기요, 세칭 삼당시인 최경창·백광훈·이달이 활발한 작품활동을 전개한 시대이다. 제봉은 이달과도 문학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지만, 그는 그보다는 박상·박순·임역령에게서 당시를 수련하고, 明나라에 사신으로 가 머물면서 前後七子나 李攀龍·王世貞등이 주도한 당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고경명은 작품의 품격이나 분량이나 봐서 16세기를 대표할 만한 시인일 뿐만 아니라, 삼당시인 못지 않게 당시의 조선에서 복고풍의 성당시를 주도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제봉은 방대한 분량의 시작품이 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또한 많은 작품이 당풍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盛唐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 性情에 바탕을 둔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제봉의 성당시풍 성향의 작품을 山水詩·田園詩·浪漫詩·禪趣詩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山水詩는 자연의 순수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작자의 의지나 사상이 전혀 개입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서경시이다. 마치 하나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이며, 때문에 詩中有畵·畵中有詩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田園詩는 순박한 전원생활을 그린 시작품이다. 산수시가 자연의 풍광을 묘사했다고 한다면, 전원시는 전원의 소박한 생활이 묘사했다는 점에서 산수시와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것은 농부들의 소박한 생활과 순박한 심성이 드러난다. 이것도 서경적인 그림이 묘사되지만 先景後情의 그림이거나 情景融合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浪漫詩는 脫俗·豪放한 시를 말한다. 일상의 영화에 대한 욕망이나 세속의 가치에 대한 집착이 없다. 이러한 계통의 시작품들은 여유롭고 한가한 나그네의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다. 富貴榮華·壽夭長短에 연연해하지 않는 李白의 逆旅, 大風을 타고 9만리를 날아간다는 莊子의 逍遙遊의 내용을 담은 시작품들이다. 禪趣詩는 佛敎的·禪趣적인 작품들이나 승려들과 수창한 시작품들을 말한다. 이러한 계열의 작품들은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불교경전의 깊은 이해 속에서, 유교와 불교의 경계를 벗어나 유불회통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동시에, 東晉의 慧遠禪師와 陶潛의 友誼와 수행을 흠모하고 있다. 높은 수행의 승려는 훌륭한 유교자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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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상향의 모델이 필요하다. 조선조지식인들이 추구하였던 이상향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나아갈 미래사회의 모습을 구축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경험세계의 재구축을 통한 이상향의 설정, 그리고 그러한 이상향으로의 탈출을 돕는 매개체를 통하여 조선조 지식인들은 자신만의 이상향을 건설하였다. 송강은 이러한 조선조 유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자, 지식인이었다. 그의 문학에 투영된 이상향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조선조 유학자들이 추구하였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의 한 단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면을 통하여 조선조 지식인이 추구하였던 이상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송강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이상향으로의 탈출 매개체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하여 성주본 송강집 한시 573수를 분석하여, 본 논의와 관련하여 가장 많이 사용되어진 제재인 酒·夢·鶴이 그의 작품에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지를 분석하였다. 송강이 술을 통하여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고자 하는 의도가 투영되어 창작된 작품들이, 현실 세계의 苦가 사라진 세계로의 일탈을 추구한다는 것을 밝혀보았다. 또한 꿈을 통하여 자신이 과거 경험하였던 가장 이상적인 세계로의 회귀를 동경하였고,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학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신선의 대응물이라는 것을 밝히었다. 그리고 그가 현실을 탈출하여 향하였던 공간, 즉 송강의 이상향은 항상 현실 공간인 성산의 재구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아울러 송강의 이상향에 등장하는 많은 도교적 색채의 어휘들은 도교에 대한 깊은 沈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에 대한 선험적 상징의 대응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보았다. 송강이 추구하는 이상향은 신선세계에 대한 추상적 관념이, 과거 성산에서 경험하였던 인식의 재구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히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의 회인시(懷人詩)에 드러난 현실 인식

박종훈 ( Chong Hoon Park )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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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泉黃玹(1855~1910)은 1900년 자신과 교유하고 있는 20人을 대상으로 20首의 歲暮懷人諸作이란 작품을 남겼다. 조선후기 지속적으로 창작된 연작 회인시는 七言絶句나 五言六句가 대부분이었는데, 매천은 五言古詩라는 다소 파격적인 詩體를 적극 활용했다. 짧게는 14구에서 길게는 42구에 이른다. 고시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활용한 것은 대상인물의 삶을 상세하게 담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다. 또한 이전 회인시는 대상인물과 자신의 교유정황 혹은 그들과의 교유에 대한 설렘과 바람이 주된 내용이었다. 반면 매천은 이에서 벗어나 당대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대상인물의 특징적인 일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매천의 회인시에는 당대 혼란한 사회상이 담겨 있다. 매천이 소개한 인물들은 대부분 당대 현실 속에서 인정받지 못한 불우지사의 일면이 강하다. 매천은 회인시를 통해 그러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의 다양한 현실 대응양상을 소개했다. 은거 생활하는 인물을 적극 詩化했는데, 그들의 은거가 현실 사회의 구조속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드러내 보이면서 현실을 개탄했고 더불어 자신의 은거 열망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조선에 대한 반발로 중국 망명을 꿈꾸었던 김택영, 민비시해와 단발령에 격분하여 의병활동에 적극적이었던 홍건, 유학의 전통을 고수하며 외세의 맞서려 했던 박문호, 현실을 냉철히 비판하고 개혁을 과감하게 주장했던 이기 등을 소개했다. 이들의 행동은 모두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대 사회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매천은 시단을 통해 당대 많은 문인들과 수창했다. 그 과정에서 상이한 문학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그러한 정황을 회인시에 담았다. 이정직과 왕사찬 관련 작품에서 그들의 문학론을 소개했고 그들과의 문학 논쟁을 언급한 것 역시 매천의 회인시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백운풍류(白雲風流)와 삼걸적(三傑的) 사유(思惟)

백숙아 ( Suk Ah Baek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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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성리학의 꽃을 피우는데 당연 화두로 꼽히며 이 땅에 도학을 뿌리내리게 한 金宏弼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金麟厚와 柳希春등 당대 유명한 학자들을 지도했던 崔山斗와 湖南三傑, 그리고 유일한 스승인 호남도학의 조종인 김굉필을 이해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조선 성리학은 주자학을 근원으로 사물인식에 있어 산수자연을 음영하여 심성수양의 기틀로 삼는 문학이다. 우주섭리와 인간심성을 연결 짓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그 미의식을 체계화하여 ``성리미학``이라 규정한다. 조선 사림파의 조종으로서 음영성정에 뜻을 둔 성리미학의 올곧은 학문을 전파한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은 조광조와 최산두 같은 제자들에게 계승되어 도의 구현에 앞장서게 했다. 16세기 호남의 풍류문학을 논함에 있어 원림중심이나 계회형식 등 어떤 방법으로 연구하든 누가 뭐래도 역사적 사실과 종교·철학적 영향관계를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논증에 의해 이미 주지한 바이다. 이 논문 역시 16세기의 호남문학의 역사적 사실과 그 시기 사림들이 지향했던 도학적 사상을 토대로 백운풍류를 논하려 한다. 한편 백운풍류라는 새로운 명명을 조명하게 된 계기는, 조선전기 호남(전남·북과 광주를 아우르는 말)의 풍류문학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담양권의 계산풍류와 전북권의 태산풍류, 그리고 전남 동부권의 백운풍류로 분류함이 사림문학의 발전과정을 보다 더 면밀하게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분류라 생각해서이다. 먼저 조선성리학의 조종인 김굉필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하며 제자를 길러낸 신재 최산두가 살았던 백운산을 기점으로 하여 백운풍류를 논하게 됨은 사림들이 학문을 뿌리내리게 한 주변의 명산이 한 시대의 문학명명에 쓰임은 바람직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강호시가를 풍류문학 속에 포함시킬 때, 강호시가에서 말하는 자연과 인공이 결합하여 경치 좋은 공간에 경영되어 하나의 세계를 이룬 것이 바로 문학적 가치가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호남의 마지막 정맥인 백운산 자락에서 태어나 학문의 道를 닦은 최산두를 화두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시적·정신적·학문적 교유관계 등을 통해 백운풍류라는 새로운 문학명명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용성지』의 여류 누정시 연구

유육례 ( Yuk Rye Yu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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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龍城)은 남원의 옛 이름이다. 남원의 옛 읍지인 『용성지』(龍城誌)에는 광한루의 중수기와 함께 여류 누정시가 전해오고 있다. 누정은 당대의 교양을 갖춘 선비들이 작시(作詩)를 한 사람을 누정시인이라 칭하고 그 사람들이 남겨 놓은 시가 누정시(樓亭詩)이다. 누정이 건립되면 누정 창건의 유례와 누정기문이 지어지며 누정에 대한 제영이 이루어진다. 누정시가 현재 남아있는 것은 이름 있는 누정의 경우 현판에 보존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누정이 쇠락하고 증축하는 과정에서 소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용성지』에 여류 누정시가 있는데, 누정시라 하면 대부분 사대부 문학의 전유물이다시피 한데, 『용성지』에 옛날기생이 지었다는 누정시가 전해오고 있다. 또한 광한루 현판에는 기생 봉선과 연옥의 누정시가 당시의 사대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옛날기생의 누정시에서는 떠난 임의 소식이 없음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어 누정미를 의인해서 진솔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기생 연옥의 누정시에서는 춘향가의 주인공인 이몽룡이 등장하면서 자신은 이몽룡 같은 낭군을 만나 절개를 지키고 싶지만 현실이 그러지 못한 여인의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광한루와 오작교를 배경으로 한 누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생 봉선의 누정시에서는 떠나는 임을 미워하는 대상이 아니라 한 차원 넘어서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누정미가 조화를 이루며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비련의 시임을 보여주고 있다.

광주(光州) 풍영정(風詠亭) 차운시(次韻詩) 고찰

황민선 ( Min Sun Hwang )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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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詠亭은 16세기 漆溪金彦据(1503~1584)가 지은 정자로 광주, 나주, 장성을 잇는 길목에 있는 위치상의 특징과 김언거의 교유 인물들이 갖는 명성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서 오랫동안 기능하였다.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왕래는 누정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많은 차운시를 낳게 했고 이런 차운시는 이 시기에 지어진 여타의 누정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분량으로 풍영정을 대표하는 특징이자 또 하나의 경관이 되었다. 누정은 그 공간상의 특수성으로 인해 수많은 문학작품을 남기고, 문학작품은 시판의 형태로 누정에 걸려 또 다른 절경을 낳는다. 이런 누정 작품들은 누정에 대한 또 다른 문학적 공간이 되어 누정을 직접 향유하지 않아도 문학적 경치로서 또 다른 누정문학을 양산케 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즉 누정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실경이자 문학적 경치가 되는 누정문학은 누정공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학작품 특히 누정시에 나타난 누정 공간 특성을 본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누정연작제영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를 해왔다. 누정연작제영은 누정 공간을 구성함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혹은 뛰어난 경관을 설정한다는 그 특성상 설정된 공간은 각각의 누정들을 특징지을 수 있는 대표공간이 되는 한편, 누정을 향유하는 향유자들의 누정 공간의식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이 지향하는 산수미학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정시에 있어서 누정연작제영 보다 압도적인 수를 차지하는 누정제영을 보지 않고는 집경에 치중하는 누정연작제영만을 가지고 누정공간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풍영정은 180편이 넘는 동시기 다른 누정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차운시를 보유하고 있다. 풍영정 공간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위해서는 풍영정의 차운시에 대한 접근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런 차운시를 중심으로 풍영정의 공간 특징을 歸田, 시름, 회상과 같은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분석하였다.

금창강(金滄江)과 황매천(黃梅泉)그 정운(停雲)의 시(詩)

황수정 ( Su Jeong Hwang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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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滄江金澤榮(1850~1927)과 梅泉黃玹(1855~1910)의 시적 교류에 대한 분석이다. 김창강과 황매천, 두 사람 간 停雲의 시를 고찰한 것이다. 停雲은 멀리 있는 친한 벗을 생각할 때 쓰는 말이다. 격변의 시기에 한문학의 전통을 유지하며 그 빛을 발하게 했던 두 인물의 시적 교류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인해 일찍이 촉망받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원했던 바를 마음껏 펼치면서 살았다고는 볼 수 없다. 단지 시대적인 고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부단히 찾으면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교감을 시적 교류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또한 두 사람만의 특별한 정감과 애환을 읽을 수 있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를 넘어서 당대 지식인의 정신적 기저와 위기의식, 그리고 그에 따른 대응양상의 저변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연구를 통해 창강과 매천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재조명 할 수 있었다. 첫째, 두 사람의 문학적 소통은 격려와 신뢰가 기반이 되었다. 창강과 매천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이들은 젊은 날 입신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겪은 인물이다. 따라서 이들이 보여준 정신적 기저에는 난세를 극복하고 적응해야 할 응전력이 요구되었다. 지식인으로서의 당대 삶에 대한 문제의식과 문학적 어울림은 시대를 함께 공감하며 문학적 기량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만남은 문학에 대한 격려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로써 창강과 매천의 문학적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萬里밖 정운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표출하였다. 창강은 격변기 속에서 중국으로 망명의 길을 택하였다. 그러나 매천은 집안 사정으로 함께 가지 못하였다. 매천은 벗에 대한 그리움 속에 한없는 동경을 그려냈다. 문학적 이상을 펼치기 위한 창강의 결단을 높이 산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안녕과 변화에 대한 추구를 넘어선 시대 적응능력에 대한 찬탄이기도 했다. 그 밑바탕에는 창강의 문학적 능력과 활동에 대한 기대와 격려를 담고 있다. 창강은 마음속에 가득한 그리움의 공간을 벗에게 보내는 시에 담아냈다. 그래서 이국에서의 고뇌와 그리움을 벗인 매천을 통해 위로받고자 한 것이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눈 시에는 시국의 혼란을 바탕으로 한 고뇌와 그리움을 실었다고 볼수 있다. 셋째, 벗에 대한 추억과 추모의 정서가 표출되었다. 창강과 매천에게 있어 벗에 대한 추억은 지난 과거에 대한 회상과 함께 미래 전망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이들의 관계 형성에 있어 진정한 의미를 반추할 수 있었다. 지식인으로서 한 시대를 살면서 극복해야 했던 과제와 감당해야 했던 고난이 표출되었다. 이로써 각기 다른 두 사람의 시대적 대응양상의 저변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매천이 추억한 창강의 모습은 벗의 능력에 대한 강한 믿음이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벗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기대로 이어졌다. 창강은 매천의 애석한 죽음에 대한 통절한 슬픔과 지음을 잃은 고통을 표출하였다. 이는 고국에 대한 애끓는 절망의 토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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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향촌사족의 거향윤리 변화 요인을 사회경제적 처지와 신분위상의 변화로 파악하는 기존 논의를 바탕으로 향촌사족 詩歌에 나타난 自意識과 그것의 윤리적·사회적 감정으로서의 역할을 추론해 보고자 한다. 호남의 장흥지역 위씨 문중에서 세전되어 온 『魏門歌帖』 향유의 사회적 관계와 배경 등을 살펴보면 수치심과 같은 윤리적 감정의 표출과 공감의 확산이 거향윤리의 변화에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족으로서 신분적 자의식의 표출과 공감은 당대 향촌 사회의 문인들에게 폭넓게 공유되는 감정이었다. 가계를 운영해가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이에 따른 좌절,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 또한 지속적으로 표출되고 공감되는 윤리적 성격의 감정이었다. 신분직임에 대한 회의와 좌절감, 가장으로서 죄책감 등의 윤리적 감정은 『위문가첩』의 제작과 전승, 수용의 전 과정에서 향촌사족 문인들 일반에 지배적 감정으로 내면화되었을 것이다. 한편 윤리적 감정에 대한 방어기제로 새로운 생활규범과 윤리의식을 담은 사회적 실천행위가 추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강회라는 문중조직을 만들고 규약에 담은 생각은 『위문가첩』의 시와 노래가 지원함으로써 조선후기 향촌사족들의 자연과 사회에 대한 그들만의 독자적인 집합 감정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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