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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1권 0호 (2013)

율곡 이이의 시인식과 시세계의 특징

고명신 ( Myeong Shin Ko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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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세기 사림을 대표하는 율곡 이이의 시인식이 실제 작품 속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지 그의 문학관 및 시세계의 특징적 면모를 통해 살펴본 것이다. 율곡의 문학관은 문이재도론에 기초한 당대 사림들의 보편적인 지향의식인 ‘존심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관을 시선집『정언묘선』을 통해 직접 서술하기도 했다. 그는 시를 인간의 말 가운데 정수라고 하여시의 위상을 매우 높은 자리에 위치시키고 있으며, ‘충담소산’과 ‘우유충후’를 시가 지향해야 할 대표적인 품격으로 들고 있다. 율곡은『시경』의 시에 대해 ``인정에 곡진하고 사물의 이치에 두루 통달하며 우유충후하여 성정의 바름에 귀착된다.``고 하여 시를 효용론적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시로써 수기·치인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유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지만, 주기론적 사고에 입각하여 ``도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글로써 도를 표현한 것’이라는 ``문이형도’의 차별화된 문학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율곡의 이러한 시인식을 그가 남긴 작품 속에서 규명해 보면 크게 세 가지 특징적 면모로 나타난다. 첫째, 범속한 일상 생활세계의 모습들을 적극적으로 시에 등장시켜,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줌으로써 이념적이거나 고답적이지 않은 형상화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당대 사대부 사회에서 세속적이거나 경미한 대상으로 취급되던 일상사를 시적으로 수용하여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유가적 생활태도와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둘째, 전고의 활용이나 관념적 추상적 이미지를 흔히 활용하는 당대 시작 풍토로부터 탈피하여, 외물의 구체적 현상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현장감을 부각시키는 형상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면모는 경험적 진실성을 추구하는 율곡의 가치의식과 맞닿아 충담소산과 같은 담박함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셋째, 당대 사회상황이나 역사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시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이를 완곡하게 돌려 말하거나 관념화시키지 않고 사실에 입각한 직설적 화법을 통해 형상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 현실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 개혁의지와 함께 지배계층의 각성을 촉구하는 경세지향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율곡의 시인식은 근본적으로 현실의 삶에 근간한 것으로서, 그는 시작에 있어서 당대 시단의 보편적인 흐름과는 달리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나 외물의 구체적 현상 및 현장감이 강조된 경험적 진실성을 보다 중시한다. 그리고 당대 경국제민의 사회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비판 개혁의식을 바탕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시화함으로써 시가 갖는 사회적 효용성에 주목하고 있다. 율곡의 시인식과 시세계가 내포하고 있는 이와 같은 양상과 특징들은 근대적 사실주의 경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보다 뿌리깊게는 그가 추구한 주기론적 사고와 맞닿아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조손별서>와 <답사친가>의 고증적 연구

고순희 ( Soon Hee Ko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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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손별서>와 <답사친가>는 텍스트 자체의 읽기가 매우 어려운데다가, 구절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또 어떤 사연인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논문의 목적은 두 가사의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고증하는 데에 있다. 우선 <답사친가>의 작자 ‘유실이’의 사망연대를 고증했다. 기존에 ‘유실이’의 사망연대는 1937년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남편이 쓴 <읍혈록>에 의하면 유실이의 사망연대는 1927년이다. 그리고 3장의 논의를 돕기 위해 두 가사의 서술 단락을 분석했다. 다음으로 두 가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고증했다. 두 가사의 작자는 조모와 손녀 사이로 작품 내에서 사연을 공유한다. 따라서 작품별로보다는 주제별로 고증하는 방법을 택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叔姪”은 ``강실이’와 ``유실이’를, “아자비”는 李衡國(1886~1931)을 말한다. 그리고 “너에祖父”와 “우리왕부”는 李相龍(1858-1932)을, “장중에 일□금동”과 “남쳔보옥 우리정하”는 柳正夏(1912년생)를, “우리왕모”는 金宇洛(1854-1933)을, “우리야야 남미분”은 李濬衡(1875-1942)과 강실이를, “나에남졔”는 李炳華 (1906-1952)를 말한다. 이들 인물과 관련한 각 구절의 사연을 구체적으로 고증했으며, 기타 망명과정과 연도에 관한 사항도 고증했다.

면앙(勉仰) 송순(宋純)의 한시(漢詩) 연구(硏究)

권순열 ( Soon Yoel Kwon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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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은 면앙정 시단의 주인공으로 호남시단을 풍요롭게 한 중심인물 중의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중 가사와 시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한시는 뛰어난 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송순은 어려서부터 측은지심이 강하였다. 그 단적인 예가 9세 때 지은 「곡조문」이다. 송순은 이 짧은 글 속에 절제된 비감을 담았다. 송순의 사물에 대한 측은지심은 애민정신으로 이어졌다. 그의 애민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은 「문인가곡」, 「문개가」 등이다. 「문인가곡」는 한 노파 가정의 몰락을 묘사하고 있다. 탐관오리의 탐욕이 얼마나 심한지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계속되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오히려 죽는 것만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개가」는 연산군 시대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 거지 신세로 전락한 한선비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가 직면한 현실은 너무나 혹독해 하루아침에 집안의 재산은 결딴나고 가족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죽지 못하고 사는 현실은 견딜 수 없는 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송순이 불렀던 노래들은 타락한 사회, 절망의 시대를 기록한 시로 쓴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송순은 50여년 동안이나 관직에 머물며 많은 복을 누렸다. 그런데 만년에 이르러 두 아들을 잃는 상명지통을 겪었다. 특히 진원현감이었던 차자 해용의 죽음은 신거무 전설과 관련이 있다. 이 전설의 내용을 보면 송순에게는 피를 토할 정도의 억울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송순은 용서와 화해를 통해 복수가 복수를 낳는 보복의 고리를 끊었다. 이런 그의 인품은 만고의 사표가 되고도 남는다고 할 수 있다. 송순이 그때 남긴 「곡자문」은 절제된 감정의 유로속에 비개(悲慨)의 미(美)를 극대화시켰다. 송순은 관직 생활 동안 정적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희롱을 통해 상대방을 일깨우고, 풍자를 통해 신랄하게 시대의 부조리를 꼬집었다. 특히 을사사화를 당해 쓴 「상춘가」는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송순은 이 시를 통해 시대의 아픔과 백성들의 원망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 있다. 송순은 ``면앙정’이라는 자신만의 이상적 공간을 조성하고, 그가 추구하고자하는 세계를 삼언시 「면앙정가」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송순의 시학은 「면앙정가」에 집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송순은 이 시에서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고 있다. 송순은 이처럼 자신을 감돌고 있는 상황과 운명을 극복하고 도연명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면앙정가」는 광달(曠達)의 미(美)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안축의 <관동별곡>에 구현된 목민의식

김아연 ( A Yun Kim )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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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경제적 폐단이 격심했던 고려후기 사회에서 안축은 목민관의 자질과 직무 능력을 갖춘 전형적인 신흥사대부로서 유교 덕치의 실현을 통해 백성의 안정된 삶을 지향하였다. 안축이 제작한 경기체가 <관동별곡>은 목민의식의 구현을 주제로 하며, 내용과 구조도 이를 형상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안축의 목민의식을 구명하기 위해 안축의 정치사상과 경세론을 밝히는 작업을 선행하였다. 이에 안축의 정치적 사유가 원대 성리학과 맹자의 항산론 및 왕도정치론에 기반하고 있음을 살폈다. 안축은 고려후기의 현실 문제가 정치적 · 사회적 · 경제적 폐단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왕도 국가의 실현’을 정치 모토로 삼고, 자신의 경세론을 ‘농업을 통한 양민의 경제적 자립의 확보 → 양민의 정착 생활 및 신분 유지 → 유교 교육을 통한 수기치인 및 관학으로서의 성리학의 진흥 → 성리학적 정치론을 표방하는 정치 세력의 양성 → 유교적 국가 질서의 확립’과 같이 단계적으로 설계했음을 살폈다. 안축이 <관동별곡>에서 목민의식을 형상화하고 관동 지방의 승경을 표현하기 위해 당대 신흥사대부가 향유하였던 팔경시 형식을 관습적으로 차용하였음을 살폈다. <관동별곡>의 전체 9장을 작품 전체를 총괄하는 서수(序首) <1장>과 관동 지방의 여덟 절경을 노래한 팔경시(八景詩) 8개의 장(<2장> ~<9장>)으로 크게 구분하여 내용과 구조를 분석하였다. 이중 팔경시 형식을 차용한 <2장> ~ <9장>은 ‘경계(저녁) → 선계(밤) → 지상계(새벽 → 낮)’과 같이 이질적인 성격을 지니는 공간과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이 융합되어 유기적인 구성을 갖추었음을 확인하였다. 작품의 완정된 내용과 구조를 미루어 <관동별곡>의 소재로 등장하는 관동 지방의 자연은 즉흥적으로 예찬하는 일차적인 자연이 아니라, 성리학적 사대부의 시각에서 관조하는 이차적인 자연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그리고 선계에서의 신이한 체험과 지상계서의 새날의 설정을 통해 군주로부터 부여받은 존무사의 권한이 신성하고, 군주를 대신하여 왕화중흥을 이룩하고자 하는 존무사의 임무가 성스러운 것임을 알았다. 이로써 안축의 <관동별곡>이 신흥사대부의 관료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음을 밝혔다.

제봉(霽峯) 한시(漢詩)의 사경시(寫景詩)

김은수 ( Eun Soo Kim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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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霽峯 高敬命의 漢詩 중에서 寫景詩를 연구 검토한 것이다. 사경시는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이 쓴 시를 말한다. 자연경물에 대해서 서술적인 표현보다는 시각적인 書法을 중시한 시의 표현법이라고 할 수 있다. 敍景詩는 한시의 전통적 표현방법의 하나이다. 흔히 王維의 시에서 논의되고 있는 <詩中有畵>.<畵中有詩>가 곧 그것이다. 제봉의 한시에서 ``敍景’보다는 ``寫景’ 을 강조하는 것은 「應製御屛六十二詠」 때문이다. 고경명은 조선 明宗의 62폭 병풍에 題詩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명종 17년(1562)에 임금의 小引이 기록되어 있는 御屛에 한 폭 한 폭의 그림의 내용에 맞추어 시를 지었다. 고경명의 敍景詩를 ``寫景詩’라고 하는 것은 사경시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경시는 단순한 경치를 서술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경시는 景致와 事物을 포함한다. 應製御屛의 시는 서경시가 많다. 그러나 그 중에는 봉황·솔개·오리·보라매 같은 조류나, 대나무.오동나 무.갈대.매화.복숭아.들국화.벼이삭.여뀌꽃.월개화 같은 식물이나 꽃 같은 경물이 독자적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다. 따라서 이를 통칭하는 명칭은 사경시가 합당하다고 본다. 고경명의 「應製御屛六十二詠」은 작품의 배경 속에 나오는 소재와 제재가 알맞게 조화를 이루면서 임금의 위엄이나 덕망과 태평성세 나라와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題畵詩는 御屛이 아닌 일반 서경의 작품을 그림을 보고 제화하듯이 쓴 작품들을 말한다. <蘆雁圖>.<漁舟圖>.<詠田家題畵障>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王維의 작품을 두고 말하는 ``詩中有畵’라고 할 수 있는 계열의 작품들이다. 이러한 작품들은『國朝詩刪』·『性所覆부稿』에서 가작으로 선집할 정도로 御屛의 작품에서 나타난 표현상의 한계를 극복한 문예성이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할수 있다. 樓亭詩는 고경명의 시작활동의 무대였던 담양과 호남지방의 많은 정자에서 창작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應製御屛詩나 題畵詩가 그림을 보고 쓴 시라면 이들은 산수 실경을 보고 쓴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시들은 현장감에서 오는 활달함과 호방함을 느낄 수 있는 시작품들이다. <練光亭晩眺> 같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백시(崔白詩)의 당풍(唐風) 형성(形成) 배경(背景)

김준옥 ( Jun Ok Kim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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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6세기 宋風 위주의 문학적 환경 속에서 孤竹 崔慶昌과 玉峯 白光勳의 시가 唐風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물이다. 한국문학사에서 三唐詩人 중 최경창과 백광훈을 따로 崔白이라 칭한다. 그들이 구가한 시는 송풍 위주의 시대 경향과는 달리 盛唐風이었다. 문학을 심성 수양의 수단으로 보는 道德主義가 본류를 이룬 조선 초기에 崔白이 함께 성당풍의 시를 진작시킨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崔白은 문학에 대한 선천적 才氣가 본능적으로 작용했다. 崔白은 어렸을 때부터 詩的 才氣가 남달랐다. 이들은 性情 陶冶 후 문학을 실천하는 것을 거부한 게 아니라 이를 학습하거나 깨닫지 못한 상태부터 문학을 위한 문학에 천부적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둘째, 師承 및 交遊關係에서 학습하고 터득한 情義가 성당풍의 시를 창작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최백은 스승이었던 李後白, 梁應鼎, 朴淳, 林億齡 등으로부터 儒學과 詩를 함께 배웠고, 이미 당풍을 일깨운 호남의 士林들과 情義로 교유하면서 자연미를 발견하고 비애미를 터득하게 되어 결국 성당풍 경향의 시 작품을 남기게 되었다. 셋째, 崔白은 당파로 이어지는 政治的 矛盾, 載道的 學風에 대한 乖離 속에서 심한 심적 갈등을 겪었는데, 이를 오히려 傍觀者的 태도로 극복하고 그런배경 속에서 마침내 성당풍 경향의 시가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최백은 자신들만의 논거가 될 만한 시론을 따로 전개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선천적 재기, 사승 및 교유 관계에서 이루어진 情義, 정치 현실에 대한 방관적 태도가 종합적이고 은연중에 작용하여 결국 성당풍의 시로 귀결된 것으로 보인다.

智異山圈 寺刹 題詠詩 硏究

김진욱 ( Jin Wook Kim )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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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권 사찰 제영시 연구 목적은 다양한 성격을 지닌 사찰 제영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를 통하여 학계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이러한 작업이 사찰제영시가 우리 한시의 하위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서이다.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의 특성을 논의하기에는 아직 성급한 감이 없지 않아있다. 아직 한국 사찰 제영시에 대한 연구 성과가 미흡한 상황에서 특정 지역의 사찰 제영시가 가지는 특성을 논의한다는 것은 많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이 비록 오류를 가지더라도, 결국 한국 사찰 제영시의 특성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판단에서 시작하였다. 사찰 제영시의 기저가 되는 불교문화의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지리산권 불교문화가 한국 불교문화에서 주요한 위치에 있기에, 지리산권은 불교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지역이면서, 중앙적 성격을 나아가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는 일반적으로 제영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景이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 제영시의 일반적 형식인 연작시와 차운시가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을 밝혔다. 나아가 제영 공간이 인물에 대한 회고의 공간으로 나타난다는 사실과 유희 공간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지리산권 사찰 제영시의 특성은 제영시의 일반적 성격과 무척 상이 하고 사찰 제영시의 특성과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논문의 성격상이라는 이유로 그 이유를 상론하지 못한 한계를 가진다.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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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과 영국의 발라드에 나타난 ``여성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였다. 비교 대상 작품으로는 한국의 <저승차사가 데리러 온 여자(애운애기, 허웅애기)> 노래와 영국의 <죽음의 신과 숙녀(Death and the Lady)>, <농부의 저주받은 아내(The Farmer’s curst wife)>를 선택하였다. 세 노래는모두 ‘죽음의 신이 갑자기 여자를 데리러 온다’는 공통적인 화소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저승차사가 데리러 온 여자> 노래 중 <애운애기> 계열과 영국의<죽음의 신과 숙녀>는 주인물이 아이를 둔 젊은 여자로서, 여자가 죽음의 신(저승차사, 악마)을 돈이나 재물로 회유하고 돌볼 자식이 있다고 호소하는 점에서 동일하다. 또한 한국의 <저승차사가 데리러온 여자> 노래 중 <허웅애기> 계열과 영국의 <농부의 저주받은 아내>는 둘 다 주인물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저승차사가 데리러온 여자> 노래의 주인물이 솜씨 좋고 시집살이를 잘하는 ‘착한 여자’인 반면, 영국의 <죽음의 신과 숙녀>, <농부의 저주받은 아내>는 주인물이 사치스럽거나 성질이 고약한 ‘나쁜 여자’이다. 하지만 ‘착한 여자’인 허웅애기는 저승차사와의 약속을 어김으로써 이승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나쁜 여자’인 농부의 저주받은 아내는 악마와의 대결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승으로 영원히 돌아오게 된다는 역설이 나타난다. 이를 통해 한국의 <저승차사가 데리러 온 여자> 노래와 영국의 <죽음의 신과 숙녀>는 죽음에 대한 저항의식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론적 인식 사이에서, 영국의 <농부의 저주받은 아내>는 죽음의 심판에 대한 긍정의식과 이에 대해 맞서 싸우는 반운명론적 인식 사이에서 끊임없이 길항하는 향유층의 의식을 드러내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소쇄원48영> 재연 요소 분석과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

임준성 ( Jun Sung Lim )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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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전남의 대표적 누정인 소쇄원을 노래한 “<소쇄원48영> 재연 행사”의 재연요소를 분석하고 문화콘텐츠 활용 방안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한 것이다. “<소쇄원48영> 재연 행사”는 16세기 사대부들의 일상적인 생활모습을 엿보기 위해 광주문화재단에서 기획제작한 것이다. 「소쇄원 48영」 중에서 행위요소로써 재연에 적합한 16영을 선별하였으며, 梁山甫, 金允悌, 金麟厚 등 세 사람의 등장인물과 첫 만남의 장면까지 포함하여 17장면을 모두 구성하여 순차적으로 재연하였다. 각 장면에서는 제영의 작품내용을 따라 소쇄원의 경물과 경치를 대화의 중심소재를 삼았으며, 각 장면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구성하였다. “<소쇄원48영> 재연 행사”는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과 전통문화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화관광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전통인문학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으며 “<소쇄원48영> 재연 행사”의 정례화를 위해서는 학제간의 연구와 함께 문화콘텐츠적인 접근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남은 소쇄원 뿐만 아니라 면앙정, 식영정, 환벽당 등 한국 누정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누정의 사람, 조경, 문학, 예술 등등 안팎의 다양한 요소를 문화콘텐츠로 활용한다면 문화관광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지역민의 인식제고와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학제 간의 연구를 계속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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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근대전환기에 광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후석 오준선 (1851-1931)의 전반적인 활동양상에 대한 고찰이다. 근대전환기는 국문학적 관점에서는 고전 한문학과 근대 국문문학이 교체되는 시기로 파악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근대 전환기의 유학자 후석 오준선의 활동을 통하여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교체기에 한문학이 어떻게 존재하였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근대 전환기의 한문학에 대한 연구는 고전문학과 근대문학의 충돌과 공존, 이행의 과정에서 존재했던 한문학 활동을 통하여 우리 문학의 전통의 계승과 변화, 교체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은 후석 오준선을 문학적인 관점에서 처음 고찰하는 관계로 후석 오준선의 전반적인 활동양상을 다루어 후석 오준선에 관한 개괄적인 파악을 먼저 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개괄적인 고찰은 후석 오준선의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기초라는 점에서 후석 오준선의 문학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과제를 남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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