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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3권 0호 (2014)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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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행연구의 문제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 논의와는 다른 측면에서 <보현십원가> 漢譯의 양상과 그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보현십원송>은 기본적으로 <보현십원가>의 구성과 내용을 따르면서도, 구체적인 내용 및 표현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부처만을 노래하고 있는 향가와 달리 ``보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覺帝·醫王`` ``聖·賢`` 등과 같이 부처와 보살을 위계적인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丹衷``·``至心`` 등의 시어를 통해 고해에서 벗어날 것을 지향하고 있는 동시에, 고해를 벗어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분별 초월의 역설적 표현 및 ``부처의 일``과 관련된 노랫말들을 모두 삭제한 뒤, "한결같은 마음으로 쉼없이 외운다면/ 보현보살의 자비심을 따라 배울 수 있으리"라는 시행으로 작품 전체를 끝맺고 있다. 그 결과, <보현십원송>은 내용 및 표현뿐만 아니라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현십원가>와 차이를 보인다. <보현십원가>가 청자들이 모두 부처가 될 수 있고 되어야 함을 노래하고 있다면, <보현십원송>은 독자들이 보살의 길을 지향해야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보현십원송>은 <보현십원가>와 다른 별개의 작품인 것이다.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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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태묘악장의 개편은 예종, 의종 그리고 공민왕 대에 각각 있었다. 예종은 ``제후`` 국의 예에 따라 악장을 정비하면서 9실 9장을 둠으로써 ``고려``적(高麗的) 예제를 수립하고, 묘실의 대상을 현재 군왕을 중심으로 선정함으로써 악장의 현재성을 추구하였다. 의종은 두 곳의 태묘실을 교체하였으며 제례 절차를 세분화하고 절차마다 악곡을 두어 의례의 품격을 높였다. 공민왕 대에는 태묘악장을 두 차례 개찬하였다. 1차 개찬에서 묘실은 9실을 유지하면서 태조, 혜종, 현종을 제외한 나머지 6실을 공민왕의 직계 6대조로 교체하였고 악장은 묘실마다 단장(單章)만 두었다. 중시조의 조종을 원종(元宗)으로 삼은 것은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범원(凡元) 세력을 제어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공민왕의 1차 개찬은 총체적 위기와 권력 집단 간 내분까지 겹쳐 통치의 온전성까지 보장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차 개찬은 대외적으로는 원·명을, 대내적으로는 권신(權臣) 세력들을 의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원의 악장을 염두에 두어 초헌의 묘실은 7실로 조정하였고 제례 절차마다 악장을 두었다. 원이 태묘제의 본식(本式)에서 벗어나자 공민왕은 오히려 이전의 9실의 변식(變式)에서 7실의 본식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를 통해 ``부-자`` 계승을 강조하여 칠묘제 제주(祭主)의 군주임을 보여 왕권 강화와 위상 제고 동시에 꾀했던 것이다. 따라서 공민왕 대의 2차 개찬 악장은 1차 개찬에서 자책과 자성을 넘어 대외적으로는 고려의 위상을 제고하고 대내적으로는 군왕으로서의 자긍심과 친정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진도의 벽파정과 그 제영

김신중 ( Shin Chung Kim )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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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벽파정은 많은 제영이 남아있는 매우 유서 깊은 누정이다. 그런 벽파정의 문화사적 의미와 벽파정제영의 존재 양상을 살핀 것이 이 글이다. 논의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벽파정의 모습을 개관하며 연구의 목적을 밝혔다. 이어 아직도 분명하지 않은 벽파정의 창건과 퇴락 시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폈다. 즉 고려 중기 또는 그 이전에 건립되어, 1924년 이전의 일제강점기에 없어졌음을 확인하였다. 또 무엇보다도 해상 교통의 요지에 세워진 공루로서, 벽파정의 건립 위치가 갖는 특수성에 주목하였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벽파정에는 왕명을 띤 관료나 불우한 유배객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로 인해 벽파정은 이별의 누정이라는 매우 독특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다음 문헌전승 내용을 통해 벽파정제영의 존재 양상을 살폈다. 그 결과 공공문헌과 개인문집을 통해 30여 명의 작자가 작품을 남기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신분별로는 벽파정의 승경을 찬탄한 관료들의 제영과, 불우한 처지를 한탄한 유배객의 제영이 주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작자로는 고조기, 채보문, 조희직, 홍적, 김정, 노수신이 지목되며, 특히 차운이 많은 홍적의 작품이 부각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별의 누정으로서 벽파정의 성격이 그 제영에 어떻게 표출되어 있는지 살피는 것이 남은 과제임을 지적하였다.

경제가사의 형성과 문학적 특질

김아연 ( A Yun Kim )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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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일체의 행위를 경제(經濟)라고 한다. 경제가 인간의 행위라는 점에서 경제는 언어 행위의 화제로 인식될 수 있다. 이를 전제로 본고는 경제를 소재로 다루는 일련의 가사 작품을 경제가사(經濟歌辭)로 규정하고, 가사문학의 새로운 하위 유형으로 경제가사를 제시하였다. 본고는 경제가사를 가사문학의 하위 유형으로 정립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경제가사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고찰하고, 문학적 특질을 분석하였다. 먼저, 본고는 가사를 역사적 장르로 간주하고, 가사문학의 전통 안에서 경제가사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았다. 경제가사는 17세기에 ``빈곤``이라는 소재에서 출발하였음을 규명하였고, 이 과정에서 17세기 경제가사의 작자가 ``빈곤``도 자기의 운명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18, 19세기 경제가사는 교훈가사의 교훈성을 수렴하여 다층적 독자에게 올바른 경제 행위의 지침을 알려주는 사회적 효용성을 발휘하였음을 살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경제 가사는 근대적 인쇄 매체인 신문에 게재되어 신문의 논설 형식과 가사의 율문 형식이 결합한 시평가사의 형태로 존재하였고, 자강 운동 단체가 주장한 경제 분야의 자강과 개혁론을 담아냈으며, 백성을 늑탈하는 반민(反民) 세력을 비판하였음을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경제가사의 문학적 특질은 두 가지로 대별하여 살펴보았다. 첫째, 경제가사는 화자의 체험, 경제적 현상, 경제적 사건 및 행동 지침 등을 상술하여 기록하고 있음을 고찰하였다. 이때 경제가사는 메시지의 내용을 찬찬하게 알려주기 위해 구체적인 기술을 지향하고 열거법, 연쇄법과 같은 표현 기법을 활용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규명하였다. 그리하여 경제가사의 기록성은 서술을 확장시키고 화자의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살폈다. 둘째, 경제가사의 작자는 가치 있는 교훈을 전달하려는 의식이 강함을 분석하였다. 경제가사의 작자는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담화 방식, 등장 인물, 등장인물의 어조, 액자 구조 등을 전략적으로 설정하였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작자가 전략적 서술방식을 통해 경제 담론을 형성하고, 독자로 하여금 올바른 경제 행위를 생활상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음을 파악 하였다.

송강문학 연구의 흐름과 방향

박영주 ( Young Ju Park )
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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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송강 정철(1536∼1593)의 문학세계와 작가론에 결부된 성과를 연구사적 관점에서 검토하면서, 그동안의 연구 현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연구 전망 및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송강 관련 자료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다음, 단행본·학위논문·일반논문의 출간유형별 양상과 특징을 개관하고, 송강문학 연구 성과를 시기별·장르별·주제별 세 국면에서 그 두드러진 연구 동향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럼으로써 기존 연구 흐름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향후 연구 전망 및 방향 설정의 디딤돌로 삼았다. 송강의 문학세계와 작가론에 결부된 그동안의 연구는 출간유형 면에서 전작의 단행본과 박사논문이 많지 않은 반면, 석사논문과 일반논문은 압도적으로 많은 편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기별 연구 동향과 특징 면에서는, 근대적 학문 방법론에 입각한 1930년대 중반으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80여년의 기간을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을 때, 연구의 토대를 마련한 초기 이후 논의 대상이 확대되고 방법론적 다양성이 모색되면서 연구 성과들이 지속적으로 축적되었다. 그런 가운데 기존 논의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국면으로의 도약을 통해, 송강이 일구어 낸 문학세계와 작가로서의 개성을 오늘의 시대 문화적 환경 속에서 수용·향유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장르별 연구 동향과 특징 면에서는, 송강의 한시·시조(사설시조)·가사 가운데 가사 작품 연구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모든 장르를 대상으로 한 종합적 고찰이 그 다음을 차지하며, 특히 박사논문의 경우는 한시가 상대적으로 많은 편수를 차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주제별 연구 동향과 특징 면에서는, ㉠서지·전기·배경, ㉡언어·표현·제재·구조, ㉢사상·자연관·주제·미학, ㉣비교 연구, ㉤교육적 적용, ㉥작가론 및 종합적 고찰로 대별하여 살펴보았을 때, 송강문학의 미학과 작품론적 실상을 보다 수월하게 수용할 수 있는 학술적 기반을 다져나가는 데 연구의 관건이 놓여 있으며, 오늘의 연구는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현재 진행중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구사적 동향과 특징들을 염두에 둘 때, 앞으로의 연구는 연구 대상과 관련된 장르적 편향성 및 방법론적 편향성의 극복, 송강 문학세계 전반을 관류하는 특성의 구명, 송강문학의 특질을 규명하는 논의의 심화와 지속, 송강시가의 누대에 걸친 수용 및 선호와 결부된 연행론적 특성 해명, 송강의 문학세계를 보다 수월하게 수용·향유할 수 있는 대중적 인식 기반의 조성, 송강문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환기하는 가치의 실상 탐구, 송강문학의 산실과 연계시킨 송강 문학세계의 문화콘텐츠화 등에 그 전망적 시각과 바람직한 방향이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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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중에는 충신연주지사라 불리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충신연주지사의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본고는 『조선왕조실록』에 충신연주지사라 언급된 <정과정곡>을 중심으로 충신연주지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살펴본 결과 충신연주지사라 불리려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만 함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충신연주지사의 작가는 충신으로 불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다른 인물이나 세력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왕으로부터 멀어진 상황 속에서 작품이 지어져야 한다. 셋째 왕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전제된 내용이어야 한다. 아울러 둘째 조건으로 인해 충신연주지사를 유배 중에 지어진 작품으로만 볼 필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셋째 조건으로 인해 충신연주지사에서 왕을 원망하는 내용은 문학적 관습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충신연주지사를 이렇게 이해할 때, 신라 때 지어진 <물계자가>, <실혜가>, <원가>와 조선시대 윤선도의 <견회요>도 충신연주지사로 볼 수 있음을 보았다. 본고를 통해 충신연주지사의 개념과 충신연주지사로서 고전시가가 어떤 성격을 갖는 작품인지 좀 더 구체화되었으리라 본다. 또한 이 논의를 통해 충신연주지사라는 표현을 몇몇 작품, 특정 장르에만 사용할 필요가 없음도 드러났다고 본다.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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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한국 서사민요와 영미 발라드 중 말대답이 서사 전개의 주요 요소로 이루어져 있는 노래를 대상으로 대결의 양상과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서사민요와 영미 발라드 모두 말대답을 통해 현실적 지위를 역전시킨다. 영미 발라드에서는 사회적 지위의 역전이, 한국 서사민요에서는 가족적 위계의 역전이 나타난다. 특히 영미 발라드 , 에서 초현실적, 정치적, 종교적 권력자보다는 현실적이고 미천한 자의 승리를, 한국 서사민요 <며느리 말대꾸 노래>, <꿩타령>에서 시집식구보다 며느리, 남편보다 아내의 승리를 그려낸 것에서 두 지역의 향유층 모두 기존의 사회적, 가족적 권위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둘째, 한국 서사민요와 영미 발라드 모두 말대답을 통해 고정적 성 관념을 파괴한다. 한국 서사민요에서는 처녀와 외간 남자 사이에서, 영미 발라드에서는 아내와 남편 사이에서 말대답이 이루어지며, 말대답의 주체가 남자가 아닌 처녀, 남편이 아닌 아내로 나타난다. 특히 한국 서사민요 <찢어진 쾌자노래>와 영미 발라드 에서는 부적절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당당한 처녀와 아내의 재치 있는 말대답을 통해 고정적 성관념을 파괴함으로써 성적 일탈의 재미와 풍자를 함께 누렸다. 이들 노래는 기존 사회의 통념과 권위를 뒤집는 전복과 저항의 메시지로서, 두 사회의 민중들은 사회 속에서 유·무형으로 가해지는 억압을 말대답으로 된 노래로 부름으로써 그로부터의 일탈과 자유를 꿈꾸었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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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병와가곡집』의 악곡 편제를 통해 이 가집의 가곡사적 위상을 살펴본 것이다. 이를 위해 『병와가곡집』에 수록된 악곡 중 특히 삭대엽과 낙희조에 주목하였다. 삭대엽은 수록 작품 수가 매우 적다는 점, 후대 가집에 율당삭대엽으로 수록된 것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점, 그리고 나머지 작품들의 경우도 우조와 계면조를 넘나들며 불린 곡들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율당삭대엽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낙희조는 그 위치가 18세기 가집들과 다르고 오히려 우조와 계면조의 분화를 반영한 19세기 가집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우조와 계면조의 분화로 파생되기 시작한 우락, 계락, 얼락, 편락 등 ``낙`` 계열의 악곡들을 두루 포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삭대엽의 성격과 낙희조의 위치 등 『병와가곡집』의 악곡 편제를 고려할 때 『병와가곡집』은 단순히 작품 수에 있어서만 최고의 가집이 아니고 명실상부 18세기 가집에서 19세기 가집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에 위치한 조선시대 최고의 가집임을 알 수 있다.

사설시조에 발현된 희극성의 육체적 표상들

이형대 ( Hyung Dae Lee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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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사설시조의 희극성과 관련하여 인간의 육체성에 초점을 두고 진전된 해명을 얻고자 시도하였다. 최근 사설시조의 희극성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지의 탐사 영역은 여전히 남아 있는데, 그것은 희극성의 구현 자체가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희극성의 구현은 역사문화적 상황이나 문학 장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다각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다각적 접근의 하나로 필자는 희극적 대상,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육체적 표상에 주목하여 이 육체와 정신과의 상관성, 육체와 사물과의 연관성, 변신과 변장의 모티프로 나누어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첫번째 경우는 주로 풍자적 조소가, 두 번째 경우는 해학적 익살이, 세 번째 경우는 복합적 희극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웃음은 그 종류도 많고, 독자의 해석 역량이나 주관적 심리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사설시조의 희극성 해명은 희극성의 거시적 구조나 유형을 체계화 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 반응 등의 미시적 국면까지 다양하게 탐구될 필요가 있다.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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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세기 성리학자 牛溪 成渾(1535~1598)의 시세계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그는 75편 82수의 한시를 남겼는데, 이는 다른 문인들에게 비해서는 비교적 적은 수치에 해당된다. 그러나 기존의 선행연구에서는 성혼의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물론 성혼이 일평생을 걸쳐 추구한 것은 성리학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학 또한 성리학과 마찬가지로 성혼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라 생각한다. 따라서 본고는 성혼의 한시 작품에서 遊山 취향을 보여주는 것과 부친 成守琛부터 인연을 맺은 스님들과의 교유를 중심으로 해서 그의 시세계를 조명해보고자 했다. 성혼은 병약한 몸으로 인해 다른 사대부들과 달리 遊山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다. 더구나 멀리 떨어진 곳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대신 그의 거주지인 坡山과 가까운 天磨山과 紺嶽山 등에 올라 자연의 완상하고 즐기는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대하는 성혼의 마음은 일체의 갈등과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가 道學을 통한 인간 완성에 뜻을 두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遊山의 연장선에서 성혼은 스님과의 교유를 통해 사찰공간에 대해 개의치 않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중 스님과의 교유는 성혼이 아닌 부친 成守琛이 생전에 교유했던 스님들과 대를 이어 교유하고 있는 모습을 특성이다. 성수침이 남긴 詩를 次韻하여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었으며, 특히 遺墨의 경우는 뜻하지 않는 만남으로 인해 생전의 부친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혼의 인생 후반부에 이르면 壬辰朝日戰爭이 발발하여 온산하대지가 倭賊에 의해 유린당하는 현실 속에서 지식인의 나약함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憂國과 愛民의 복잡한 심사를 달래주기 위해 선택한 곳은 寺刹 공간이었다. <次神光寺詩軸韻>라는 작품은 그가 이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성혼에게 사찰 공간은 儒佛의 分別이 아니다. 儒佛이 향하는 목적지를 위해 서로가 방법을 달리 할 뿐이지 결국은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는 會通의 자세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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