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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9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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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시기에 편집된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자료집인 『시조집』을 발굴하여 소개한것 이다. 이 논문에서는 먼저 전체 작품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특징을 제시하고 작품 발굴의 측면에서 논의하고자 하였다. 자료집에는 89수의 시조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설시조·엇시조·평시조의 순서로 77수가 있고, 나머지 12수는 뒤섞여 있다. 이것은 『시조책』이 77수로 편집되었다가 추후에 12수가 추가된 것이다. 『시조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고시조 형태이고 편집자가 시조창을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시조 작품마다 곳곳에 `三`·`五`·`八` 등의 박자를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집은 전주에서 편집되어 유통된 것으로 보인다. 제작자도 전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생각되며, 제작 시기는 1960년으로 추정된다. 이 자료집은 현재 우석대 김해정 교수가 소장하고 있다. 이들 89수의 시조 작품에서 상당수는 아직 학계에 소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작품으로 판단된다. 사설시조는 39수중에서 12수가 신출 작품이었고 3수는 이본 가치가 있는 변형 작품이었다. 엇시조는 모두 8수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그 중의 2수가 신출 작품이었다. 평시조는 4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새로운 작품은 6수였고 이본 가치가 있는 변형 작품은 2수였다. 사설시조 신출 작품 중에는 일제 침략에 맞섰던 애국지사들의 우국충절을 형상화한 것도 있고, 태극기를 소재로 애국하자는 내용을 담은 것도 있었다. 판소리 <적벽가>의 삼고초려 장면을 형상화한 사설시조도 있고, 신출 작품은 아니었지만 이본 가치가 있는 변형 작품 중에는 판소리 <심청가>의 `범피중류`를 개편하여 만든 것도 있었다. 이외에도 자료집에는 판소리의 노랫말이 시조로 전환되고 있는 작품들이 보이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료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전주 지역의 풍광을 담고 있는 사설시조 2수와 평시조 1수가 있어서 주목하였다. 이들 작품은 다른 자료집에서 찾을 수 없는 전주팔경을 소재로 형상화한 시조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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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덴동어미화전가>를 대상으로 문학치료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 카타르시스, 통찰의 세 요소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과정을 경험하고 관찰해 보았다. <덴동어미화전가> 텍스트 내부로 들어가 놀이의 과정과 향유 및 소통의 양상을 정리·제시해 보았으며, 화자 및 주요 인물 그리고 참여여성들과 독자를 중심으로 그 치료과정 및 양상을 실증적으로 조목조목 짚어보았다. 즉 참여자들의 치유과정을 자기서사 서술에 초점을 맞추어, (1) 덴동어미, (2) 청춘과부, (3) 화자 및 화전놀이 참여여성 그리고 독자의 세 층위로 살펴보았다. 조선후기 여성들이 화전가 창작과 향유, 전승을 통해 받았을 위로와 격려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봄으로써 그 현재성을 확인해 본 것이다. 덴동어미가 과거를 불러와 화전놀이 참여여성들 앞에 공개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운명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청춘과부 또한 화전놀이 과정에서 덴동어미의 삶을 경험·이해하고, 고독과 슬픔에서 벗어나며, 덴동어미의 일생담, 즉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통합을 통해 치유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덴동어미의 일생담은 청춘과부 외에도 화자 및 화전놀이 참여여성들, 독자들 모두에게 치유의 기회를 중재한다.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게 과거에 직면하고 결핍을 이야기함으로써 확장된 공감과 카타르시스, 깊어진 통찰에 의해 참여자 모두를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서러움의 토로와 놀이는 덴동어미와 청춘과부에게 정직함의 훈련이었으며 자기 암시였고,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확장시켜 치유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자발성과 창의성이 나를 치유하게 하고 나아가 남을 치유하는 힘이 있음도 확인된다. 삶의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음을 화전놀이 참여여성들과 독자들에게 인식시켜준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가해한 운명의 고통, 보편적인 불행의 치유경험을 공유하게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화전놀이와 화전가의 심리치료 메커니즘의 작동과정을 보면서 문학치료제로서의 현재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덴동어미화전가>는 치유적 문학 텍스트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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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 김영근(1865~1934)은 근대 격동기를 살다간 호남의 한 우국지사(憂國之士)이며, 문학유자(文學儒者)이다. 경회는 조선시대 사람으로 태어나 대한제국과 일제침략하의 한국인으로 살아가며, 조선성리학과 학문 정신을 올곧게 실천하였다. 김영근은 소년시절부터 `동파(蘇東坡)가 다시 태어났다`는 격찬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다. 근대기 신학문(新學問)에 자리를 내주며 명멸(明滅)되어가던 한문학을 올곧게 지켜낸 마지막 세대로 평가된다. 김영근은 “살아서는 요동의 객(遼東客)이 되고, 죽어서는 요동의 귀신(遼東鬼)이 되는 것이라 말할 정도로 우리의 역사가 서려있는 간도(間島) 요동벌판을 가슴에 품었었다. <원유일록>은 그러한 염원을 실행에 옮기며, 간도행차 긴 여정의 나날을 기록한 일록(日錄)형식의 글이다. 간도 원유(遠遊)는 경회 나이 42~43세 때에 이루어졌다. 경회는 일제강점의 소용돌이와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충격 속에서, 새로운 삶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원유를 감행하였다. <원유일록>은 일록과 한시로, 강진에서 서간도로 북진하며 일행 다섯 사람의 고행과, 급변하고 있는 일제치하 한국의 근대 모습이 핍진(逼眞)하게 서술된 작품이다. 본고는 <원유일록> 소재 234수의 한시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원유일록> 소재 한시를 크게 ①험난한 원유 여정과 고난, ②일제의 만행과 울분 토로, ③위척존양(衛正斥邪, 尊華攘夷)의 의리, ④그리움과 애련의 가족애, ⑤궁핍과 부유의 신세한탄, ⑥변속(變俗)의 세태 탄식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그리고 <원유일록>의 문학사적 의의를, 첫째, 일제 강점기 지조의 한문학. 둘째, 호남문학 전통의 계승. 셋째, 남과 북 언어와 가요에 대한 인식으로 평가하였다. 김영근의 <원유일록>에 표현된 한시 작품의 주된 정서는 통한(痛恨)·비애(悲哀)·분노(憤怒)·저항(抵抗)·좌절(挫折)·고독(孤獨) 등의 정조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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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시조에 대한 연구는 주로 문학적인 측면에서 작가와 내용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때문에 작가가 밝혀지지 않은 무명씨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기존논의에서 『청진(靑珍)』 무명씨에 수록된 작품들은 김천택 당대(18C 전반)의 서울의 시조 연행의 실질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작품들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분류하기 위해 첨가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악곡 분류는 기본적으로 편가(編歌)에 필요한 것이며, 당대의 작가 중에서도 편가로 창작한 예가 있다는 점에서 무명씨의 주제 분류는 단순한 내용분류를 넘어 편가를 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행 가곡창 한바탕(編歌)은 초삭대엽으로 판을 연 후, 이삭대엽에서 차분하고 느리게 시작하여 삼삭대엽에서 정서적으로 고양되었다가, 소가곡으로 넘어가면 흥청거리고 흥겨운 분위기로 전환되며, 편삭대엽에서 빠른 장단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얼편에서 높은 선율로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느린 계면 이삭대엽인 <태평가>로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마무리된다. 현행 가곡 연행에서도 편가는 앞서 언급한 모든 곡조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안민영 『금옥총부』의 <매화사팔절(梅花詞八節)>처럼 우조만으로 편가를 구성하기도 하고, <난초사삼절(蘭草詞三絶)>처럼 서너 곡조만으로도 편가를 구성한다. 현행 가곡창 한바탕 26곡(남창)은 편가 구성에 필요한 모든 곡조를 모아 놓은 것이며, 이 곡들을 모두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고에서 `유락(遊樂)`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작품들을 편가의 흐름 속에서 살펴본 결과 정서의 흐름과 악곡의 구성이 현행 가곡 한바탕의 형식과 유사하였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유락`뿐만 아니라, 사랑을 노래한 `규정(閨情)`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청구영언』의 악곡별 분류 자체가 이미 편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점에서 무명씨의 주제 분류는 편가를 구성하기 위해 분류된 것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편 삼삭대엽에 수록된 작품 중 취락(醉樂)을 노래한 작품은 후대까지 삼삭대엽으로 유지된 반면 취락을 노래하지 않은 작품은 계면 이삭대엽으로 변하였다. 이는 편가에서 노랫말의 악곡은 앞뒤 작품과의 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선택되기 때문에 내용이나 정서적으로 이삭대엽과의 변별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은 악곡의 변화가 일어난 반면, 취락과 같이 분명한 차이를 보는 작품은 삼삭대엽으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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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사문학 또는 가사문학 교육 연구에 있어서 주목을 받는 연구 중에서 전망적 가치를 지닌 주제로 `지역성`과 `젠더`에 착목하여 문학교실에서 이를 교육내용 및 방법으로 어떻게 수용하고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먼저 기왕의 연구에서 지역성을 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지역성`을 가사문학 생성의 기반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실존으로서의 장소와 공간이 가사작품에 반영되어 있는 방식을 지역성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대상화·지방화되어 가는 지역문화에 역사성과 구체성을 부여해주고, 시대나 집단을 중심으로 한 담론에 가려진 주체적 개인과 개별 작품의 삶과 의식을 온전히 복원해 주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젠더에 대한 논의에서 주된 대상은 규방가사 또는 여성가사이다. 연구 방법은 발굴되지 않은 새로운 작가와 자료를 찾아 문학사에 등재시킴으로써 그 존재론적 가치를 확정하는 것이고,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는 여성젠더의 보편적 의식지향과 특수한 개별 체험을 가진 작가의 고유한 세계관적 태도를 살피는 것이 또한 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검토를 토대로 하여 문학교실에서 가사문학을 교육할 때 `지역성`과 `젠더`의 문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할 것인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역성과 관련하여서는 지역성이 가사문학을 형성하는 생명력의 근원임을 확인하기 위해 가사문학의 심상지리에 주목하며, 중앙 중심의 관점을 극북하며, 가사문학의 구체적 존재기반을 탐구하여 그 형성과 전승의 기반을 살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사문학을 교육할 때 `젠더`의 측면에서 고려할 점들을 짚어보면 먼저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텍스트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를 가지며, 가사문학에서 정전(正典)의 목록을 재구성하거나 정전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여성문학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남성성/여성성의 이분법적 시각을 극복하여 여성가사가 도달할 수 있는 내용과 표현의 다양한 증거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처럼 변화되고 분화되어 가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의 접근과 연구가 효율적으로 교육 현장과 만날 때 우리의 문학교육은 좀더 생생한 담론의 대상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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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 강점기에 결성된 나주의 반양시사(潘陽詩社)의 『반양시사』와 광주의 해양음사(海陽吟社)의 『운림당시문집(雲林堂詩文集)』를 다루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서의 시사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식민지적 근대 공간 안에서 문인들의 문학적 대응 방식을 살폈다. 일제의 비밀경찰은 정치단체 및 언론기관 뿐 만 아니라, 시사도 검열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시사는 지역의 유림, 지역의 유지, 뜻있는 지사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친일화를 위한 더 없이 좋은 모임이면서도 감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시사는 자신의 울분을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고,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또한 문인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흐려놓았다. 이에 시사에 참여한 작가들마다 문학적 대응 방식은 달랐다. 첫째, 일제 강점기의 극악무도한 횡포를 비판하는 부류이다. 이들은 민족의 비통한 삶을 간접적으로나 언급하며 끊임없이 일제로부터 독립을 갈망하였다. 둘째, 현실과 타협하며 태평성대를 노래한 부류이다. 이들은 대부분 기득권을 갖거나 유지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셋째, 어지러운 현실을 도외시한 부류이다. 이들은 경물(景物)에 집착한 시를 남겼다.

10행 향가와 〈님의 침묵〉, 〈서시〉의 비교 고찰

신재홍 ( Shin Jae-hong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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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향가의 양식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시의 원천을 향가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향가가 고려 가요와 시조 등 중세 서정시 형성에 기여한 바는 분명한데 그것이 현대시에까지 영향을 준 흔적을 찾고자 하였다. 이에 현대시의 대표작 <님의 침묵>과 <서시>를 분석하여 그 속에 내재한 향가적 특질을 드러내었다. <님의 침묵>은 표면에 두드러지는 사설 조에도 불구하고 10행 구성, 3단의 변증법적 의미 구조, 제9행 앞에 놓인 감탄사 등에서 10행 향가의 양식적 특질을 물려받은 작품이다. 현존 향가 중 <제망매가>의 시상 전개 방식에 비교된다. <서시>는 2행 6음보 기조의 율격, 제9행으로 넘어갈 때 1행의 휴지부, 과거-미래-현재 3단의 의미 구조 등에서 10행 향가와 상통하는 면모를 보여 준다. <찬기파랑가>가 과거-현재-미래의 시상 전개를 보이는 것에 비교된다. 이렇게 현대 서정시를 대표하는 두 작품에서 10행 향가의 특질을 찾아봄으로써 오랜 세월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온 한국적 서정성의 생명력을 새삼 맛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한국서정시 역사의 기저에 줄기차게 흐르는 서정의 맥이 향가에서 현대시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두 편만을 대상으로 한 논의이므로 향가와 현대시의 친연성을 일반화하기에는 성급한 시도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자료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논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는바, 후속 과제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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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매천 황현의 중국 문인 차운시 가운데 특히 육유 차운시에 주목하여 고찰하였다. 매천은 일생동안 많은 시작품을 남겼는데 차운시의 검토를 통하여 그의 시적 수련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시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주로 논지는 아래와 같다. 관련된 시문 분석을 통하여 황현이 현란한 언어적 기교와 수사 없이 시의를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육유의 작시 방식을 추구하고 특히 웅걸한 기상의 육유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황현의 육유시에 대한 차운 현황을 살피면서 크게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칠언율시가 많은 점이다. 그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옛 시인의 뛰어난 율시에 대해 끊임없이 차운하면서, 특히 육유의 칠언율시를 모범으로 삼아 자신의 칠언율시를 수련하는 데에 활용하였다. 둘째는 초학자의 시작 수련에서 많이 운용하는 점이다. 마지막은 육유의 재촉시기의 시를 많이 차운하는 점이 들 수 있다. 이어서 황현의 육유 차운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분석하고 드러나는 주제 양상을 고찰하였다. 각각 향촌 생활의 여유와 한적, 사대부적 이상의 좌절과 자조 그리고 비판적 현실인식과 우국적 정서 토로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향촌 생활을 즐기면서 한가롭고 소박한 향촌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황현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도 균열이 일어날 때가 종종 있는데, 문득 `대부(大夫)`로서의 좌절을 자각할 때이다. 더 나아가 황현은 당시의 혼란한 정치 현실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부패한 왕실과 권력층의 비리를 신랄히 비판하면서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소명을 다하려고 하였다. 황현의 육유 차운시의 주제 양상을 고찰하면서 그의 이런 심경 변화 또한 엿볼 수 있다. 이어서 황현의 육유 차운시 중에 육유의 재촉 시기 작품에 대한 차운에 초점을 두고 차운시와 원운시를 비교하면서 황현의 차운 경향을 살펴보았다. 먼저 육유에게 재촉 시기의 의의를 밝힌 다음에 황현은 이 시기의 육유시와 어떤 점을 공명하여 지은 것인지를 파악하였다. 황현이 학문적 능력과 시적 재능이 있음에도 정치적 기회를 얻지 못했던 육유의 처지에 공감되고 정서적 교감이 형성되어 육유의 많은 재촉 시기 작품을 차운한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황현의 중국 문인 차운시에 대한 연구는 그 작품의 주제나 경향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이와 같이 시인 간의 정서적 유대, 감성적 공감의 측면에서 차운시를 검토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황현의 다양한 중국 문인 차운시를 살핀다면 시공의 경계를 넘나드는 차운시만의 독특한 문학적 특성을 살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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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에서 5번이나 반복되는 “오다(來如)”는 1차적으로는 불상을 조상(造像)하는 공덕을 행하라는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불교에 귀의하라는 의미이다. 2구와 3구의 슬픔은 단순히 “일하면서 사는 신세의 서러움, 원하지 않은 노동에 동원되는 괴로움을 하소연”한 것이 아니다. 슬픔은 “인간은 늘 굶주림·목마름·추위·더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생로병사를 두려워하면서도 또 그 업을 짓고, 애착·이별의 대상에게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그 대상을 끊어내지 못하는” 등, 살면서 생기는 지속적이고 근원적인 감정이다. 4구는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로서 `공덕(功德)`을 닦을 것을 강조한다. 영묘사에 와서 흙을 나르는 일 또한 조상(造像)의 공덕이지만, 지속적으로 공덕을 쌓아 지옥, 아귀, 축생을 되풀이하는 3도(途)의 윤회에서 벗어나 불법(佛法)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극락정토에 이르기를 희망하는 말이다. <풍요>는 더 많은 사람들이 삼보에 귀의하여 공덕을 닦음으로써, 업인(業因)과 과보(果報)의 슬픈 고리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열반을 성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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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秦賦》、《焚書坑儒賦》、《哀六國賦》는 朝鮮中宗시기의 科賦의 명작으로 《韓國文集叢刊》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 賦作 세 편은 모두 “秦政得失”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文體는 賦에 속하지만 내용은 政論을 위주로 하고 있다. 중국에도 이와 같은 주제로 전해져 온 명작들로 賈誼의 《過秦論》、三蘇의 《六國論》、杜牧의 《阿房宮賦》 등이 있는데, 보다 넓은 한문학적 시야에서 이들을 같이 비교하고 고찰해 보는 것이 본고의 연구목적이다. 우선 賦 세 편의 길이는 다르지만, 구조면에서 朝鮮三賦는 모두 전통적인 삼분원칙을 이용하였다. 첫 부분에서 문장의 주지를 밝히고 중간 부분에서 서술과 의논을 병행하며 끝부분에서 개괄하는 것이 이들의 기본구조이다. 이 삼분구조는 중국의 《六國論》과 같으나 《過秦論》과는 전혀 다르다. 《過秦論》은 앞부분에서 역사적 사실을 큰 비중으로 서술하다가 문장의 맨 끝에 결론을 내리는 구조를 취하였다. 정치적 입장을 보면 三蘇와 閔齊仁은 六國滅亡의 원인에 대해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蘇洵은 “弊在賄秦”, 蘇軾은 “養士之重要”, 蘇轍은 “失漢魏屛障”라고 생각하였으나, 閔齊仁은 “六國之暗弱”이라고 생각하였다. 秦國滅亡의 원인에 대해 申用?는 진나라가 “殘仁義于首功”의 배경 하에 “焚書坑儒事件”을 요점으로 의논하였으나, 金絿의 《過秦賦》에서는 西漢賈誼의 《過秦論》의 “仁義不施, 攻守異勢”의 관점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金絿와 申用?의 賦作에서는 “郡縣反對”의 주장을 펼친다. 진나라의 정치적 과실을 진술하는 데에 있어서 金絿는 “廢分封設郡縣, 毁井田開阡陌”라고 하였고 申用?는 “滅侯王而郡縣兮, 銷鋒?爲金人”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郡縣反對의 입장이다. 그러나 시대의 발전적 시각에서 보면 郡縣制는 分封制보다 진보적인 것에 틀림없다. 金絿와 申用?가 중국 역사상 진나라부터 실행한 郡縣制를 반대하는 주장을 한 것은 본문에서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당시 사회적 배경을 보면 中宗전에 燕山君임금이었는데, 燕山君은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中宗反正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中宗에 이르러 신하들은 조정의 撥亂反正과 여러 정치적인 법령의 遵古返舊를 바랐을 것이다. 郡縣制보다 分封制가 古法이므로 郡縣制를 반대하는 것은 사회국면이 옛날의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갔으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내포되었을 수도 있다. 또 金絿의 《過秦賦》와 申用?의 《焚書坑儒賦》는 모두 科場에서 나온 科文이다. 賦試는 科試의 일종으로 주로 才學을 고찰하는 문체이다. 才學을 위주로 드러내는 科文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점이 상대적으로 弱化된다. 따라서 郡縣反對 같은 특이한 주장은 정치 말고 문학적인 차원에서 착안하여 살펴봐야 한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문장의 예술적 특색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政論文에서 의논하는 데 자주 이용하는 對比論證法으로 서로 비교하였다. 《過秦賦》는 진나라를 중심에 두고 주로 王道와 秦政을, 그리고 强秦과 弱秦을 서로 대비하였다. 《焚書坑儒賦》는 强秦과 弱秦을, 그리고 上古, 秦, 漢初의 治化를 서로 대비하였다. 《哀六國賦》는 주로 六國의 강한 실력과 비참한 결말을 대비하였다. 賦 세편은 모두 역사적인 사실을 기초로 하여 여러 사물의 종류와 시간적인 對比를 통해 결론을 드러내고 설득력을 강화시켰다. 賦라는 문체는 極言과 騁辭의 언어적 특징이 있다. 漢大賦는 또한 騁辭大賦라고 불리기도 한다. 小賦에 이르러 騁辭가 약화되었지만 “極聲貌以窮文”의 문체적인 특징은 여전하다. 同義疊句의 사용은 騁辭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過秦賦》 중의 制四海와 幷諸侯는 모두 천하를 통일한다는 뜻이다. 《焚書坑儒賦》 중의 四海와 萬邦은 모두 천하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哀六國賦》 중의 旣難과 無及은 모두 어려운 처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뜻이 비슷한 단어와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함으로 문장의 氣勢를 떠올리고 예술적인 효과를 강화시킬 수 있다. 賦는 또한 鋪張揚?의 수사적인 특징이 있다. 鋪張은 誇飾이나 誇張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過秦賦》 중에 진나라 過失을 헤아릴 때 쓰는 擢發數過가 과장법에 해당된다. 《焚書坑儒賦》 중에서 申用?가 자기를 낮출 때 한 말인 吹?於金閨는 自謙의 誇張에 해당된다. 《哀六國賦》 중에 掉舌萬端, 若雷風之發 또한 과장의 수사법을 쓴 것이다. 誇張은 풍부한 상상력을 이용해 객관적인 사물의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의도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시키는 것을 통해 문장의 감화력을 증가시킨다. 본고에서 연구되는 賦作 세 편은 모두 以賦爲論의 典型으로 볼 수 있다. 政論文을 쓸 때 賦라는 문체를 이용하면 산문의 서술 기법과 구성 방식을 갖추면서도 운문 시가의 운율과 리듬을 따르므로 문장의 기세가 드높고 강한 감화력을 갖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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