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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3권 0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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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적가(遇賊歌>는 결자(缺字)가 있고, 작가와 배경에 대한 정보도 빈약하여 매우 난해한 향가 중 하나이다. 본고는 <우적가>의 앞뒤 문맥을 쪽밀히 살펴 빠진 글자를 가늠하고, 불교 이론에 따라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해독을 시도했다. 그 결과, “멀리 새들 깃드는 숲을 지나쳐,”(遠鳥逸林乙 過出知遣)”, “차생(次生)에 윤회를 거듭 할 것이라.”(次弗生史 內於都 還於尸朗也)와 같이 결자를 보충하여 읽었다. 마지막 구절은, “선업을 쌓으쪽, 정토 왕생할 것이라” 하여 도적들에게 정행(正行)을 가르친 구절인데, 이를 한(恨 ; 마음에 맺혀 풀리지 않음)이라 했으니 결국 “선업을 쌓지 않으쪽, 정토 왕생하지 못할 것이라”와 같은 말이 된다. 좀 더 풀어 의역하쪽, “나는 맘을 굳게 먹고, 새들 깃드는 숲을 멀리 지나쳐, 수행 도량을 찾아 나선다. 계율을 어긴 그대들은 고통스런 윤회를 계속할 것이라. 창칼로 만드는 숱한 악업에 좋은 말을 하긴 어렵다. 아아!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쪽, ‘(그대들도) 선업을 쌓으쪽 편안한 정토에 이를 수 있음’이라. (그럼에도 너희들은 이와 같이 악업을 짓고 있으니 안타깝구나)”가 된다. <우적가> 1 4구는 90세라는 고령에도 번뇌에 얽매인 속세의 생활을 버리고 수행의 길을 떠나는 자신을 들어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5 8구는 계율을 어기고 무기로써 살생과 위협을 일삼는 악업이 육도윤회(六道輪廻)의 인과(因果)를 만들 테니, 도적들은 다음 삶에서도 지속적으로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을 것이라 일깨웠다. 9 10구는 “그대들이 악업을 지었더라도, 이는 모두 무시(無始)의 탐진치(貪瞋痴)에 의한 것이니, 지금부터 회개(悔改) 적선(積善) 하쪽 앞으로 죄가 곧 소멸되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하여 새삶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즉, 영재는 강한 책임감과 따뜻한 인간미를 발휘하여, 도적들에게 불성을 깨우치고, 불교교리를 전달함으로써, 그들이 악업을 멈추고 선업을 닦는 새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참회의 길을 열어주려 했던 것이다.

약창(葯窓) 박엽(朴燁)의 시세계

이승수 ( Lee Seung-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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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엽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단으로 엇갈렸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권력은 그를 ‘폭정을 일삼은 탐욕스러운 관리’으로 혹평했지만, 재야에서는 ‘국난을 타개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도 억울하게 죽은 인재’로 추켜세웠다. 심지어 그는 만리장성으로 비유되기까지 했다. 전자는 반정 정당화 과정에서 과도하게 폄하된 결과이고, 후자는 이에 대한 의문 불만 부정 속에서 배태되어 다소 부풀려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박엽의 정치적 행보와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밀어두고, 그가 남긴 시를 중심으로 인간 박엽의 일상과 내면을 엿보았다. 그 결과 서북 변계의 외직을 옮겨 다니느라 피로한 모습이 포착되었고, 그 가운데 사람들과 이별하는 내면의 잔잔한 파동도 감지되었다. 전란이 훑고 지난 도시를 바라보며 허탈감에 잠기는 모습도 나타났다. 죽음의 기운을 느끼며 체념하는 듯한 무의식의 작용도 시어 안에 감추어져 있었으며, 죽음을 상상(또는 맞이하면서) 풀죽지 않는 의기의 격동이 작품 밖으로 흘러넘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정치적 평가로만 덮어씌울 수 없는, 숨을 쉬며 54년을 살았던 인간 박엽의 여러 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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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황현의 작시관을 바탕으로 『집련(集聯)』에 수록된 사가(四家) 연구(聯句)의 양상을 고찰하였다. 『집련』에서 많은 중국시인과 한국 시인의 연구를 수록하였다. 여기 주목할 만 한 점은 황현이 『집련』의 서문에서 시를 배울 만한 모범으로 한국 시인 가운데 특별히 사가를 거론하는 것이다. 이에 본고는 황현이 사가 연구를 통해 학생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를 밝히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황현은 법고창신적 작시관을 가지고 있으며, 신운시의 중요한 특성 중에 하나인 시중유화의 운치를 추구하고, 생활주변에서 창작 소재를 찾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시창작 방식을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황현의 작시관이 『집련』에 수록된 사가 연구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고찰하였다. 황현은 사가의 『한객건연집』에 있는 시작품을 주목하였고 여기에 내재된 신기를 중요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색채의 대비와 조화를 통한 시중유화의 미를 표출하는 연구를 선별하고 보다 새로운 의경을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황현 또한 조탁 없이 농촌 실경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연구에도 주목하였다. 이처럼 『집련』에서 수록된 사가 연구의 양상에 황현의 작시관이 투영되고 있다. 황현은 학문하는 태도로 있는 그대로 본받기보다는 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자 하였다. 때문에 황현이 후학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은 사가 연구의 공부를 통해 비판적 수용의 학시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있다. 『집련』은 교육서로써 연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시 창작 방법까지 학생들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이는 황현의 교육자로서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연구(硏究)는 황현의 시 교육 연구에 또 하나의 접근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일제강점기 <옥중가> 연구

高淳姬 ( Ko Soon-hee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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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가>는 4음보를 1구로 계산하여 440구나 되는 장편가사로 한국가사문학관에 소장되어 있다. 창작시기는 1924년이며, 창작지는 대구 감옥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옥중가>의 작가를 추정하고, 작품세계를 살핀 후, 가사문학사적인 의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옥중가>의 작가는 안동의 명문대가 출신으로 의병활동에 이어 독립운동활동을 한 40세 전후의 독립운동 가로 추정된다. <옥중가>에서 서술한 사건은 1922년에 대구에서 발생한 조선독립운동후원 의용단사건으로 보이며, 작가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진 총 42명 가운데 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된다. <옥중가>의 작품세계는 작가의 감옥 생활과 그에 따른 서정이 중심을 이룬다. <옥중가>는 시간적 순서를 밟아가는 체계적인 서술구조를 지닌다. 작가는 자신의 출생과 성장, 개화기의 도래, 의병 활동, 을사조약과 경술국치, 독립운동가로서의 생활, 체포, 투옥, 감옥의 이모저모, 첫겨울부터 다다음해 봄까지의 감옥 생활과 서정 등을 시간적 순서대로 서술해나갔다. <옥중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가사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첫째, 거의 4자 4음보 연속의 형식 안에서도 중국 고사와 한시를 인용한 고어체 문체, 은유적 표현, 집약적이고 생동감 있는 우리말 표현 문체 등 다양한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탁월한 표현 능력을 보여준다. 둘째, 일제강점기 한 독립운동가의 저항활동과 일제의 탄압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다큐멘터리로 기능한다. 셋째, 독립운동가의 가사 작품 중 하나이면서 신태식의 <창의가>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감옥 생활과 투옥 당시의 서정을 담고 있다. 넷째, 일제가 강점한 후인 1910년대에 이어 1920년대에도 역사 사회에 대응해 작품을 창작하는 가사문학사의 큰 흐름을 연속할 수 있게 한다.

사설시조의 산문성과 구조적 분방성

박영주 ( Park You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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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사설시조 논의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산문성’의 정체를 산문시와 대비를 통해 규명하고, 사설시조의 진술방식 및 구조적 특성과 결부된 사설시조의 본질과 속성을 살핀 다음, 이러한 특성을 계승한 현대사설시조가 추구해 나가야 할 지향점을 논의한 글이다. 사설시조의 ‘산문성’은 사설의 속성인 ‘엮음’으로 인해 지속적이며 확장적인 묘사 진술이 이루어지는 표현기법 상의 특성으로 파악해야 온당하다. 또 이러한 표현기법 상의 특성은 작품의 시상 전개와 결부된 작시 구성원리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사설시조를 산문시의 일종으로 간주하거나 산문시의 성격을 지닌 장르로 이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사설시조는 3장 형식을 통한 세 개의 의미단락 및 종장 첫 음보와 둘째 음보를 구성하는 율격적 질서에 있어 평시조의 양식적 특성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한 개 이상의 장에서 4음보를 넘어서지만 현저하게 벗어나지는 않거나 4음보를 현저히 벗어나는 2음보격 ‘엮음’의 확장적 진술을 통해, 화자의 발화를 강화하기도 하고, 시화 대상의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구체적 형상을 창출하는 ‘구조적 분방성’을 지녔다는 데 장르의 본질과 속성이 내재해 있다. 이러한 사설시조의 구조적 분방성은 ‘규범 내의 일탈’이라는 데 그 특징과 의의가 있다. 현대사설시조는 시조의 양식성에 사설시조의 구조적 특성 및 오늘의 시대정신과 감성을 반영한 구조적 지향을 구체화시킬 때 특유의 개성과 미학을 구현할 수 있다. 현대사설시조의 다양한 양식 실험은 사설시조의 속성을 대변하는 ‘규범 내의 분방성’을 전제로 할 때 바람직한 양상을 띨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유시를 위시하여 산문시나 일반적인 서정시와 차별성을 지니지 못한 정체불명의 모호한 양식 실험에 그치고 말 위험을 내포할 것이다.

시조에 나타난 전고 분류 시론

장단 ( Zhang D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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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시조에 나타난 전고를 가장 합리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본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분류를 철저히 검토한 후 그 의의와 문제점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의의는 적극 계승하고 문제점은 철저히 극복하는 방향에서 새로운 전고 분류 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새로 제시된 분류의 이론적인 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차적으로 전고를 고사와 전례로 대분류하였다. 2차적으로 고사와 전례를 각각 다시 세분화하여 고사를 신화시대 고사와 역사시대 고사로, 전례를 경전 및 역사서, 시문 및 소설로 중분류하였다. 끝으로 신화시대 고사와 역사시대 고사를 각각 다시 인물과 공간으로 소분류하였다. 한편 이렇게 확립된 분류 안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김천택 편 『청구영언』을 대상 텍스트로 선정하여 분류 안을 적용해 보았다. 그 결과 고사와 전례 중에는 고사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신화시대 고사와 역사시대 고사 중에는 역사시대 고사가 많고, 인물과 공간 중에는 인물이 훨씬 우세하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시조에 나타난 전고 분류의 이론적 모색과 실제 적용 과정을 통해 새 분류 안의 효용성을 충분히 확인하였기 때문에 이를 좀 더 넓은 범위로 확대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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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임교진의 『조행일록』과 『하정초고』를 중심으로, 19세기 금강 유역에서 이루어졌던 조운의 풍경을 도출하고 조운의 체험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검토하였다. 이들 자료에 주목한 일차적인 이유는 조운의 체험이 여느 사대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희소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경세에 대한 포부, 정치적 질곡과 회한, 은거에 대한 동경 등은 사대부들의 생애에서 일상적으로 불거지는 사항들이어서 그들의 한시나 산문에 흔히 다루어져 왔지만, 조행은 특수한 국면에서만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이기에 이를 형상화한 작품이나 기록은 중요한 가치를 띤다. 고려말부터 전라도 함열현에는 호남 북부 지역의 조세가 집하되는 주요 조창이 위치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열현감의 위상은 조선전기까지는 과히 높지 않았으며 함열은 벽지여서 현감직 또한 한직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들어 조운의 책임을 조창이 위치한 지역의 수령이 지도록 하는 방침이 시행되자 함열현감직은 돌연 조세영운관의 직을 겸하는 중책이 되었다. 이에 따라 임교진과 같은 사대부문인이 조운을 직접 관할하게 되면서 그 내역을 일록에 세세히 기록할 뿐만 아니라 조행의 도정에서 떠 올린 생각을 한시로도 지어 문집에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조행일록』에는 항해의 여정과 당일에 처리했던 업무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기록한 반면, 『하정초고』에 소재한 한시에는 그 같은 공적 기록에는 온전히 표출할 수 없는 개인적인 견문과 감회를 보다 자유롭게 드러내었다. 두 문건은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당시 조행의 모습을 한층 입체적으로 되살려 볼 수 있다. 일록을 통해서는 조운이 이루어지는 절차와 금강의 뱃길 및 서해 연안 도서들의 사정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시를 통해서는 회갑이 다 된 나이에 영운관의 직임을 맡게 된 부담감,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는 따뜻한 부정, 순박한 섬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서해의 장관을 처음 접한 흥분 등 다채로운 안목과 정서를 간취할 수 있다. 본고의 논의는 우선 19세기 익산 군산 지역의 생활과 문화적 도상을 드러내기 위한 지역학적 연구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아울러 우리 문학에서는 그 사례가 흔치 않은 항해 체험을 다룬 자료들을 검토함으로써 조선후기 문학 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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