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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4권 0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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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중기의 학자인 백광홍(白光弘: 1522 1556)의 「동지부(冬至賦)」에 나타난 구성과 의미, 자아의 지향의식을 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冬至賦」는 1552년 임금의 명에 의하여 지었다. 이 「동지부」의 형식적 특징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이 부는 과부(科賦)의 형태로 『주역』의 이론에 따라 48연으로 구성하였다. 둘째 한 연의 글자 수는 12자가 기본이다. 이는 12소식(消息)과 관련 있다. 또 허사(虛辭)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는 고부(古賦)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셋째 이 부에는 일정한 운(韻)이 없고 한 구(句)의 평측(平仄)도 일정하지 않다. 넷째 이 부(賦)는 크게는 3단 구성이지만, 세분(細分)하면 7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동지부」의 도입부는 십이소식(十二消息)과 우주(宇宙)의 운행(運行)을 묘사하였다. 이 도입부는 십이소식(十二消息)에 맞추어 12연으로 구성하였다. 1년 12달의 생성 변화의 이치가 이 단락에 들어 있다. 전개부는 다시 다섯 단락으로 이루어졌다. 그 구성은 각 단락이 6연으로 육합(六合)의 원리를 담고 있다. 첫째 단락은 육합(六合)의 운행과 영측(盈厠)의 이치, 둘째 단락은 소식(消息)을 통한 동지의 의미, 셋째 단락은 천심(天心)과 인심(人心)의 합일(合一), 넷째 단락은 자연의 동지(冬至)와 마음의 동지, 다섯째 단락은 훈리자(訓理者)로서의 하늘과 천인합일(天人合一)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사람이 허령(虛靈) 지각(知覺)을 통하여 양심(良心)을 가지는 것이 동지의 의의라고 이 부(賦)에서 강조하고 있다. 결말부의 구성이 6연으로 되어 있다. 앞의 서두부(序頭部)에서 동지에 해당하는 지뢰(地雷) 복괘(復卦)에 대하여 우주의 운행을 묘사하였다면, 이 결말부에는 동지를 맞아 임금에 대한 자아의 당부, 자아의 각오, 임금에 대한 송축을 묘사하고 있다. 자아가 임금에 대한 당부는 임금이 양심(良心)을 가지고 인의정치를 펼쳐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행하는 것이었다.

順天 住巖面 樓亭攷

김현진 ( Kim Hyun-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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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順天읍성 외곽에 해당하는 住巖지역의 특색과 그곳 누정의 역할과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住巖 지역은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 家門 중심으로 번성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인문지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주암지역에는 순천지역 私設 누정으로는 최초에 해당하는 相好亭을 비롯해 모두 10개의 누정이 건립되었다. 순천읍성 외곽지역으로는 그 수가 가장 많다. 이들 누정의 주인을 개괄해보면 60%가 옥천조씨 가문에 속하고, 또 향약재처럼 趙氏鄭氏李氏許氏 등의 공동인 경우도 있다. 이는 모두 가문 중심의 발전이라는 주암지역의 특색을 반증한다. 그래서 주암지역 누정에는 가문의 명성 계승과 우애 도모를 염원하는 睦族崇祖 의식처, 鄕約을 통한 향리의 善俗을 추구하는 共同善 지향처, 선현처럼 산수지락과 물아일체 및 군자 추구 등의 흥취를 담은 儒賢의 志趣 추향처, 주암의 아름다운 산수로 말미암은 仙界 인식처 등의 역할과 의미를 드러난다. 특히 선계 인식처는 小江南과 仙鄕으로 대표되는 순천지역의 정체성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孤竹 崔慶昌 漢詩 風格 硏究

김진욱 ( Kim Jin-w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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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학들의 연구 성과물인 고죽 시의 풍격이 ‘淸新俊逸’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淸新俊逸’만으로는 고죽의 시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본 논의의 출발선이다. 고죽 시의 풍격은 ‘淸新俊逸’과 더불어 ‘沖澹蕭散’을 함께 논의해야만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고죽 시의 특성을 먼저 논의하였다. 고죽의 시세계는 새로운 意境의 지향과 시형에 있어서 典型의 고수가 나타나는 것이 중요한 특성이다. 고죽의 시는 형식적으로 철저히 전형을 고수하면서, 의경은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양극단이 고죽의 시세계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기록이 소략한 고죽이기에 그의 전기적 삶에 대한 평들과 239수의 문학 작품, 11편의 글을 분석하여 그 원인을 추론해 보았다. 이러한 특성을 기초로 孤竹의 시세계를 고찰하여 민가나 민요의 영향을 받은 악부시 계열의 작품에서 淸新俊逸의 풍격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러한 작품군들은 근체시의 엄격한 형식을 준수하면서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한 독특한 표현 방법, 기발한 발상과 전형의 조화를 통해 새로운 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죽 시세계의 다른 한축인 산수시 계열의 작품과 승려와 사찰이 시적 제재가 되어 창작된 작품들은 창작 기법이나 시적 정서, 意境 등이 악부시 계열의 작품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작품군들은 淸新俊逸의 풍격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그래서 沖澹蕭散이라는 풍격을 가지고 논의하였다. 산수시 계열의 작품과 승려와 사찰 관련 작품들은 시상 전개에 있어 의도적 구성을 배제하여 자연스러운 흐름을 갖고, 수식이나 조탁을 최소화 하였다. 또한 작품 세계가 담박하고 진솔하여 현세욕이나, 회한, 원망 따위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고, 탈속의 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작품군에는 소리가 없고 분노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심지어는 희망에 찬 노래나 열정도 없고, 작품을 통하여 독자나 세계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도 없다. 고죽은 어떠한 의도도 없이 묵묵히 시인의 눈에 보이는 정경을 그대로 시화하여 沖澹蕭散의 풍격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논의에 기초하여 고죽 최경창 시의 풍격은 淸新俊逸과 沖澹蕭散이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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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후기 사대부 부인인 김삼의당의 애정시 표현양상과 문학사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김삼의당 부부의 애정적 삶의 바탕에는 막힘없는 소통이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의 소통의 기반에는 과거시험을 통한 ‘가문세우기’의 남편의 역할과 ‘남편 내조’와 ‘가정 꾸리기’라는 아내의 역할에 대한 서로의 인정과 공감이 있었다. 다음으로는 지적 대화를 통한 수용과 존중이 있었다. 그들은 상대가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주는 믿음의 대화가 있었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여길 때는 전고를 활용하여 치열하게 논증하는 토론의 장이 있었다. 또한 별리 상태에서는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격려하고 수용하는 존중의 소통이 있었고 때로는 집앞의 작은 자연을 보면서 감성을 교류하고 확장하는 공감의 소통이 있었다. 삼의당 한시의 애정표현 방식은 규범과 정감의 애정화답이다. 삼의당은 유교적 규범 안에 사유하려고 노력하였고 규범적 시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규범적인 삶 뒤에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자신의 아픔과 그리움을 숨김없이 표출한 정감의 시가 있다. 이러한 삼의당의 과감한 애정표현은 사대부 부인이라는 신분을 고려할 때 솔직한 여성의식을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부인에 대한 애정표현을 남편도 드러냈는데 주로 수창시와 편지를 통하여 교감을 하였다. 이와 같이 삼의당의 애정시에 드러난 여성의 위치와 자존감, 애정표현의 과감성은 사대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일이며 남편의 부인에 대한 애정시 또한 조선후기의 사대부와는 차별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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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瀟灑園事實』에 실려 있는 「諸賢題詠唱酬」부분을 살피면서, 특히 인재 양진태의 漢詩를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인재 양진태는 『소쇄원사실』 편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인물로 많은 시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문집이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서, 그의 문학에 대하여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瀟灑園事實』에 그의 시가 47수 실려 있어서, 그의 문학세계의 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자료로 남아 있다. 그의 시는 하서 김인후의 「소쇄원즉사」 시를 차운한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점도 소쇄원의 대표적인 원운시가 바로 「소쇄원즉사」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또 「소쇄공유적십도」, 「고암공유적십도라」는 시를 남겨서, 遺蹟圖 그림 병풍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그 완성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소쇄 고암 두 사람의 열 가지 행적을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지어 유적도로 남기려고 했었다는 사실은 우리 문화전통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또한 「소쇄원48영」을 보완하는 4영을 더 짓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쇄원6절」이라는 시를 남겨서, 인재 양진태, 방암 양경지의 「소쇄원30영」이 처음에는 6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재의 「소쇄원30영」의 일부나마 알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인재는 족보 발간을 비롯하여, 문중의 현창 사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시에서도 소쇄원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을 남긴다는 면에서 시 작품 창작에 힘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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