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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6권 0호 (2020)

<산중신곡> 연작의 구조와 지연 형상의 의미

김용찬 ( Kim Yong-c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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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에서 자연이라는 소재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강호시조’를 조선 전기 시조사의 대표적인 범주 가운데 하나로 논하고 있다. 자연을 노래한 시조 작품들에 표출된 형상화의 면모는 향유층들의 세계관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연을 소재로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개별 작품들에 형상화된 양상은 서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각각의 작가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추이에 따라 형상화된 면모는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강호시조는 대체로 ‘청정한 강호자연과 혼탁한 정치 현실’이라는 대립 구도가 전제되어 있으며, 작자의 정치적 경험이 자연스럽게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자연과 대비되는 공간인 현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따라, 그 의미에 있어 개별 작가들의 차별성이 드러나게 된다. 시조사에서 강호시조의 정점에 있다고 평가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윤선도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과 현실과의 관계는 그 가운데 어느 한쪽도 버리거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로 표출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강호에서의 미적 감흥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윤선도의 시조 작품들은 모두 75수가 전하고 있는데, 작품마다 그에 걸맞은 제목을 붙였다. <산중신곡>은 <어부사시사>와 함께 윤선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산중신곡> 연작’을 대상으로 작품의 창작 배경과 함께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이들 작품에 드러난 자연 형상의 양상을 통해 작품 세계와 그 의미를 고찰하였다. <산중신곡>의 작품 수는 『고산유고』의 체제를 존중하여 모두 18수로 구성된 ‘연작시조’로 파악하였다. 또한 <산중신곡>을 보완하는 의미에서 창작된 <산중속신곡> 2수를 포함하여 ‘<산중신곡> 연작’이라 칭하고, 본고의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윤선도의 시조 작품에는 관념화된 자연이 아닌 실제의 자연이 형상화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산중신곡> 연작’에서도 작품마다 그에 걸맞은 제목을 붙이고 있다. 기존에는 ‘<산중신곡> 연작’에 포함된 작품들 가운데 주로 <만흥>과 <오우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조무요>를 비롯한 나머지 작품들도 아울러 분석함으로써, ‘<산중신곡> 연작’의 전체적인 구조와 함께 자연 형상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따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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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국어국문학·국어교육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학교 수업에서의 유희춘 문학 작품 활용 방안을 살펴보았다. 먼저 2장에서는 유희춘 문학 작품의 교육자료로서의 의미를 4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필사본 『미암일기』와 문집 『미암집』이 함께 전하고 있다는 점, 둘째, 일기에 아내 송덕봉의 일상과 문학 작품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 셋째, 문집에 유배시기 문학 작품이 다수 실려 있다는 점, 넷째, 유희춘 문학 작품이 현대에 번역 및 재가공 되어 손쉽게 활용 가능한 자료가 많다는 점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3장에서는 유희춘 문학 작품의 교육적 활용 방안을 전남대학교 사례를 바탕으로 모색해 보았다. 첫째, 한문 교육에서의 일기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비교적 쉬운 일기의 특성상 『미암일기』를 활용하여 한문을 가르친다면, 학생들에게도 덜 두렵게 다가갈 수가 있다. 또 한문 수업을 통해 한자를 익힐 뿐만 아니라 유희춘·송덕봉과 같은 작가, 『미암일기』라는 일기문학, 일기와 문집의 관계 등 고전문학 관련 지식을 간략하게나마 배우게 된다면, 추후 고전문학 관련 전공 수업을 듣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당대 삶과 연계한 한시 교육에서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유희춘의 유배시를 교육하면서 유배 중간에 이배되는 상황, 유배지에서의 삶 등을 함께 연계하여 가르칠 수 있다. 또 유희춘 문학 작품을 통해 부부의 시를 함께 볼 수 있어, 이를 활용하여 조선시대 부부가 서로에게 시를 지어주고 화답시를 짓는 면모를 교육할 수가 있다. 셋째, 문집 편찬 관련 배경지식 교육에서의 활용 방안을 제시하였다. 필사본 『미암일기』의 내용이 발췌·요약되어 문집 『미암집』 안에 수록되는 과정, 아내 송덕봉의 시문이 『미암일기』 속에 전해져 현대에 문집이 편찬·간행될 수 있었던 것 등을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다. 또 외조부인 최부, 아내인 송덕봉의 문집 편찬에 크게 기여한 유희춘의 일화를 보며, 고전문학 주요 작가도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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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전하는 지암 윤이후(支菴 尹爾厚, 1636-1699)의 일기 『지암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 안에 수록된 가사 작품 <일민가>를 상고(詳考)한 것이다. <일민가>에 대한 연구는 17세기 강호가사라는 거시적 관점을 바탕으로 <일민가>를 살펴본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작가 윤이후의 일생이 드러난 『지암일기』를 바탕으로 살펴보기도 하였으나 <일민가> 일부분에만 주목하여 보았을 뿐, 전체적인 내용과 『지암일기』의 관계에 대한 해명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하여 본고는 『지암일기』의 내용과 <일민가>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일민가>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는지 상고하고자 하였다. 우선 <일민가>는 윤이후의 외숙 이락의 <환산별곡>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다. <환산별곡>은 도잠의 <귀거래사>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자신의 강호에서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낸 작품이었다. 물론 <환산별곡> 전문이 현전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으나, <일민가>는 <환산별곡>의 형식이나 주제적 특징이 그대로 전달되고 그것이 확대,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일민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으며 전반부에서는 옥천에서의 삶을, 후반부에서는 죽도에서의 삶을, 결말부에서는 임금에 대한 축수를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부분들마다 화자의 감정에 편차가 보이는데, 이것은 윤이후 말년의 삶이 <일민가>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윤이후는 말년에 나름의 정치적 고난을 겪었고 그것으로 인해 마음 속에는 자신이 겪은 고초에 대한 억울함이 남았으며, 비록 향촌 사족으로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 만족감은 충분히 느끼고는 있지만 결국은 멀리서나마 임금에 대한 축수(祝壽)를 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의 어조로 묶어내기는 어려우나 『지암일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윤이후가 왜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보이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일민가>는 강호가사의 일면도 보여주면서 동시에 말년의 자신의 삶을 그대로 녹이며 보여주고 있는 자술성이 강한, 자술적 서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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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명섭은 근현대 문인이요 유학자로서 일평생 서당을 통하여 초학자를 가르치고 깨우쳐 이끌어주었다. 그는 유고 『경와사고』와 순산일기를 남겼는데, 한시는 초학자에게 지어준 칠언절구가 다수를 차지하였다. 시의 내용은 자신의 경학정신에 입각한 성학에의 열망, ‘경’의 공부, 권학으로 초학자가 학문에 임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그는 국권이 상실되고, 도학이 멸절되어가고, 좌우익 이념이 대립한 근현대를 살았다. 그는 단발령을 피하여 평생 보발 하였고 의관정제 하는 선비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엄명섭은 근현대 유학자의 외길을 오롯이 걸으며 경학이 단절되어가는 현실을 두 눈으로 보며 자신의 경학세계가 사라져가는 안타까움을 호학하며 초학자를 가르침으로 삭여 한시로 대변하였다.

송순(宋純)이 경험한 특별한 의례, 회방연(回榜宴)

박종오 ( Park Jon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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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방연(回榜宴)은 과거(科擧)에 합격한지 60년이 되는 해에 시행했던 조선시대의 기념식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과거는 신분 유지나 출세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렇지만 과거 합격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었고, 회방 또한 장수한 관원만이 맞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조선시대 회방과 관련된 기록은 면앙정 송순에 관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이다. 1579년 회방을 맞이한 송순을 위해 가족들이 면앙정에서 회방연을 베풀어 준다. 이 회방연에는 당신 전라도의 전·현직 관료들이 대거 축하객으로 참석하는데, 제자와 지인들이 손수 가마를 메고 송순을 옮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가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이는 후대에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회방연은 정조(正祖) 연간에 점차 제도화 되었는데, 회방을 맞은 사람에게 특별히 한 품계를 올려주는 것이 정식적으로 행해졌다. 또한 회방을 맞이한 이들을 입궐하게 하여 어사화를 내려주고, 회방 홍패(또는 백패)를 발급해 주었으며, 회방연의 비용을 마련해 전달해 주었다. 이처럼 회방연은 조선 전기에는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행사로 기념되었다가 후기로 가면 국가적인 행사로 제도화되었다.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결합하여 만든 간지(干支)는 60년이 되면 새로이 다시 시작된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지닌 회갑(回甲)이나 회혼(回婚) 등은 60년 만에 맞는 특별한 기념일이다. ‘회갑’이나 ‘회혼’은 일반 사람들도 장수(長壽)하면 경험할 수 있는 의례이다. 반면 ‘회방’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료생활을 경험한 소수의 장수 관원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송순이 경험한 회방연은 소수의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의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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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회와의 유배문학에 대한 체재를 규명하고, 유배시조에 대한 고찰을 목적으로 한다. 회와는 1722년 6월 20일 甲山 유배형을 선고받았으며, 갑산 유배를 소재로 하여 『북천일기』와 『갑극만영』을 편찬한 바 있다. 『북천일기』는 유배지로의 이동을 기록한 한문일기이며, 『갑극만영』은 유배지에서의 현실을 한시와 시조로 기술한 시문집이다. 본고가 회와 유배문학의 체재를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회와 유배문학의 기본 자료로 이용되는 『회와 윤양래연구』에서 체재와 번역의 오류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먼저, 『북천일기』의 경우 선행연구에서 4월, 6월, 7월에 걸쳐 기록된 27일 동안의 일기라고 하였지만, 날짜의 오류를 정정하면 4월, 5월, 6월, 7월에 걸쳐 기록된 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갑극만영』의 경우는 한시 작품이 321편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255편밖에 되지 않으며, 작품에 대한 오류와 번역의 오류 등도 발견할 수 있었다. 본고는 회와의 유배문학 중 유배시조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회와 유배문학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회와는 19수의 시조를 창작하였으며, 이질적 공간에 대한 거부와 동경, 호의적 상대에 대한 그리움, 책임 전가를 통한 자기 위로 등의 주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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