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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가문화연구(구 한국고시가문화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Classic Poetry and Cul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466-1759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8권 0호 (2021)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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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여말 선초 귀화인들의 시조 창작 양상을 살펴보았다. 여말 선초는 시조의 형성기로서 역사 전환기의 주체였던 신흥사대부들이 그 담당층이었다. 이 같은 국면에서 귀화인들 역시 시조를 창작하여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및 지향을 시조를 통해 드러내었다. 우리말에 서툴 수밖에 없던 귀화인들이 우리 고유의 노래 형식인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심양 출신으로 공민왕을 호종하며 귀화한 변안열은 역성혁명의 기로에서 <불굴가>를 지어 무장으로서의 굳건한 충절을 드러내었다. 위구르 출신으로 홍건적의 난을 피해 고려로 귀화한 설장수는 대명외교를 전담하는 사신으로 활약하며 정치적 부침 속에서 <신언가>를 지어 언행 처신에 조심할 것을 경계하였다. 여진 출신으로 이성계와 의형제를 맺고 왕족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지란은 조선 건국 후 왕자의 난이 지속되는 국면에서 왕위의 향방과 조선의 운명에 대한 염려 섞인 걱정을 <축록가>를 통해 드러내었다. 이처럼 여말 선초에 귀화인을 포함하여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의 인물들이 한시와 더불어 시조를 창작하였다는 점은 여말 선초 사대부들의 문학장 안에서 시조가 중요한 문학적 행위의 일환으로 인식되었으며 작가로서 일종의 긍지를 가질 만한 성격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시조 창작의 개방성은 이미 형성기부터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고공가> 연작과 조선중기 노비농장의 우의적 형상

김용철 ( Kim Yong-cheol )
1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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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600년 전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고공가>와 <고공답주인가>(이하 <고공가> 연작)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 속의 노비농장에 표현되어 있는 우의적 형상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방향은 1600년 전후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라는 가사 작품에서 노비농장과 당쟁을 형상화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미이다. 이를 통해 임진왜란 바로 직후에 지어진 <고공가> 연작이 조선후기라는 새로운 문학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의의의 한 부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연구에서는 <고공가> 연작 속에 등장하는 주인과 고공들이 서로 작품에서 형상화한 내용을 주고받는 자리를 1600년 전후 당시 양반들이 노비를 부려 농사를 짓던 노비농장으로 보고 작품에 나타나는 고공을 노비로 보고 이를 여러가지 증거로 증명하려 노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1600년 당시 전쟁을 겪으면서 흐트러지고 여러모로 위기에 봉착한 노비농장을 제자리로 복구하는 것이 왕인 선조나 정승 이원익 같은 사람들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이것을 나타낸 것이 바로 <고공가> 연작의 작품 내용임을 살펴보았다. 아울러 노비 내지 노비농장을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고공가> 연작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내지 문명사적 의의가 상당히 무겁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 작품 속 노비농장이 가리키는 작품 밖 현실세계인 당쟁의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고공가> 연작이 단순하게 당쟁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당쟁을 없애려 노력한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이것이 가지고 있는 문학사적 문명사적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최경창(崔慶昌)의 시세계와 특성

선지영 ( Sun Ji-young )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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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1539∼1583)이 생활했던 시기는 사대사화로 인한 붕당정치와 훈구파를 중심으로 화려한 시적 기교와 난삽한 수식으로 관료적 문학관이 배태되었고 신진 사림파를 중심으로는 기교를 반대하고 청징한 처사적(處士的) 문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였으나, 이들은 도학적 자유로운 성정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시기다. 본 논문에서는 최경창의 작품세계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인생관 및 가치관을 알아보고자 하며, 이를 통해 작품에 나타난 작가의 풍격(風格)을 구하고자 한다. 풍격이란 작가의 인품이나 사상 등이 작품 속에 복합적으로 구체화 된 양상이기 때문에 최경창의 문학적 위상도 규명될 수 있다고 본다. 작품세계는 주제에 따라 연모에 정한, 선경의 동경,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분류해 살펴보았다. 먼저 최경창의 작품 속에는 연정(戀情)을 대상으로 한 시가 상당히 있는데 이와같은 작품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아마 풍부하고 섬세한 여성의 감정에 자신의 낭만적 감정을 표출하는데 부합되어 자연스럽게 시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선계(仙界)를 동경하게 된 것은 당시 문단의 하나인 유선시(遊仙詩)를 모작(模作)하게 된 소단(騷壇)의 흐름과 관계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며, 현실의 좌절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초월적 선계를 동경하고 찬미하였다고 본다. 최경창(崔慶昌)시의 풍격(風格)은 청신(淸新)한 풍격에 있다. 청(淸)은 대체로 맑고 깨끗할 뿐만 아니라 산뜻하며 순수한 자연의 산천경개, 나아가 일상세계를 초월한 선경(仙境)이나 선취(仙趣)를 느낄 수 있는 맑고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것과 관련된 시의 풍격(風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 쓰인 시어(詩語)는 일반적으로 2자의 용어법, 이미지 어휘의 사용, 악부시(樂府詩)계열 작품의 일상어 활용으로 사용한 것이 특징이라고 본다.

만횡청류의 분화와 분화의 의의

배대웅 ( Bae Dae-ung )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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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청구영언』(김천택본)에 수록된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 양상을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의에 대해 살펴보았다. 『청김』의 ‘만횡청류’ 작품들은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본고에서는 ‘만횡청류’의 분화라고 칭하였으며, ‘만횡청류’ 작품들의 분화의 모습을 ① 가집 내 같은 악곡에 수록되지만 두 곡씩 수록되는 경우 ② 가집 내에 같은 작품이 수록되지만 다른 악곡으로 수록되는 경우 ③ 같은 악곡으로 전해지기는 하나 다른 군집으로 나눠질 정도로 내용이 분화한 경우로 나누어 보았다. 그 결과 ‘만횡청류’의 분화는 우선 ①, ② 분화 양상의 경우, 19세기까지 전해지던 ‘만횡청류’가 창자의 성별이 다르고, 불리는 악곡명이 다르다 할지라도 연행 현장 속에서 일부 만횡청류 작품들에 대한 애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먼저 인용한 작품처럼 최초 전해지던 ‘만횡청류’ 작품을 연행연장의 애호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여 연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분화 양상도 앞의 두 분화 양상과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긴 하나 결국 이 경우에도 앞서 언급했던 향유자들의 애호나 취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분화 양상은 ‘만횡청류’의 내용 분화와 악곡 분화가 이뤄진 후 19세기에 이르러 그것들이 통일된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20세기 즈음에 이르러 연행 현장 속에서 불리는 노래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기존에 통일성을 보였던 노래들도, 악곡이 됐든 장르가 됐듯, 그것들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연행 현장의 변화도 충분히 그것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나 향유층의 애호·취향의 변화 역시도 예상해볼 수 있었다.

소고당 고단 <88올림픽찬가(讚歌)>의 내용과 작가의식

김아연 ( Kim A-yun )
7,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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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당(紹古堂) 고단(高端, 1922~2009)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eoul 1988, 이하 88올림픽)를 소재로 하여, 1988년 가을에 172행 분량의 가사 <88올림픽찬가(讚歌)>를 지었다. 이에 <88올림픽찬가>는 시기상 현대가사, 작가상 여성가사, 내용상 행사가사, 분량상 장편가사에 해당한다. <88올림픽찬가>의 내용은 88올림픽의 기본 이념, 참가 규모, 서울 유치, 준비 과정, 개회식, 경기 결과, 에피소드, 이슈, 폐회식, 성과 및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비에 대한 의지로 파악된다. <88올림픽찬가>의 작가의식은 사실 지향적 기록의식, 국제화 의식 및 세계시민 의식, 민족의식 및 남북통일에의 염원, 국가주의 세계관 등 네 가지로 대별된다.

백수 양응수의 삶에 대한 가치 의식 - 그의 한시를 중심으로

이상봉 ( Lee Sang-bong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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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는 양응수의 독서법이나 그가 스승의 상을 당해 심상 1년을 실천했던 사실, 그리고 그가 화담학에 대해 가졌던 인식 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독서법이나 그가 남긴 <축장일기> 속 내용, 그리고 화담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모두 그가 가졌던 삶과 학문에 대한 인식이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가능하게 했던 그의 사상적 기반을 그가 남긴 한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양응수는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할 만큼 학자적 성품을 갖추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성향은 많지 않은 그의 한시작품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가 남긴 한시작품의 주요 주제 중에는 경전의 내용에 충실할 것을 노래한 것이 많았는데, 특히 말로만 인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소학』 등의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몸소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공평하다.’는 『서경』과 『예기』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마음가짐을 그의 한시에서 표현하기도 했고, 이런 마음가짐은 ‘하늘과 사람은 원래 하나’라는 『주역』·『예기』·『심경』 등의 내용으로 발전되어 그의 한시에서 노래되기도 했다. 양응수는 경전에서 말하는 ‘천무사(天無私)’·‘천인일야(天人一也)’의 가르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인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그의 한시 속에서도 인심과 도심이 둘이 아닌 것을 실현하기 위해 인욕을 제거해야 된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한다고 해서 성현의 경지를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리학에 몰두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를 수양하고 절제해왔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실천해야할 것들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만년의 그는 자신의 인욕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늘이 준 초심만은 잃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는 내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잡가(단국대본)』2의 성격과 가집의 유형 분류

이상원 ( Lee Sang-won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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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에는 기존에 널리 알려진 가사집인 『잡가』 외에 동명의 책이 하나 더 소장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를 기존의 『잡가』(『잡가』1)와 구별하기 위해 『잡가』2로 명명하고 이 책의 특성을 자세히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가집의 유형 분류와 관련된 시각 교정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잡가』2는 시조창 사설 186수, 가사 4편, 잡가 2편을 수록한 가집이다. 이 책에서 포착되는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실제 연행 현장에서 불린 사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남훈태평가』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남훈태평가』 계열 가집과 기타 가집을 아우르는 특성을 보인다. 이에 따라 단독출현 작품이 꽤 많은 편이다. 셋째 이 책의 편찬 연대는 1900년을 전후로 한 시기로 추정된다. 넷째 <춘면곡> 이하에서는 가사와 잡가가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수록하였다. 『잡가』2는 시조, 가사, 잡가가 어우러진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기존에는 시조창 가집으로 규정하였다. 『남훈태평가』를 대표적인 시조창 가집이라 부르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 후기 가집을 가곡창 가집과 시조창 가집으로 양분하여 이해하는 관행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분법은 시조와 가사의 역동적 변모상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조와 가사는 정가(正歌)와 속가(俗歌)를 넘나들면서 역동적으로 변모해갔기 때문에 이런 변모상을 엿볼 수 있는 가집 이해의 구도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시조와 가사가 가곡과 잡가 중 어떤 것과 결합하는지 그 결합의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시조와 가사가 가곡과 결합된 경우 정가 가집일 가능성이 크지만, 시조와 가사가 잡가와 결합된 경우는 속가 가집일 가능성이 크다. 『잡가』2의 제목이 ‘잡가’로 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중요하다. 여기 ‘잡가’는 ‘속가’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잡가』2는 시조창 가집이 아니라 속가 가집의 일종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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