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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논집검색

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38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9권 0호 (2009)

세종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보수(補修)의 정황과 실상

김승우 ( Seung U Ki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5-41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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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의 初刊後刷本인 古版本에서는 「序」와 「跋」에 그 수록 장수가 123개장으로 표기되었고, 권10 소재 장들의 章次에 일부 수정이 가해졌으며, 특히 제107장 이하 장들에서는 중복과 누락이 나타나기까지 한다. 고판본과 重刊本을 비교·검토하면 이 같은 혼란들은 초간초쇄본 단계에서부터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는데, 그러한 판단은 악곡과 작품구조상의 정황으로도 뒷받침된다. 때문에 『용비어천가』가 처음에는 123개장으로 제작되었다가 후일 두 개의 장이 첨입되는 형태로 補修되었으리라는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두 장이 첨입된 시점은 초간초쇄본의 판각과정에서이며, 첨입된 장은 제107·124장으로 추정된다. 이 두 장은, 태조·태종의 潛邸時 사적만을 다룬다고 했던 「서」와 「進箋」상의 작품 제작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판본이나 악곡, 작품구조 등의 여러 측면에서도 제107·124장이 빠져야만 설명될 수 있는 사항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두 장이 불교의 폐해에 대한 경계를 담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용비어천가』가 판각·인간되던 전후 시점에 조정에서 斥佛의 문제와 관련된 논란과 갈등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서는 후고에서 곧 논의를 이어간다.

한국 전래동화의 원형(原形)과 변용에 관한 연구 -「콩쥐팥쥐」 이야기를 중심으로-

노제운 ( Je Un Noh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43-83 ( 총 41 pages)
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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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의 설화가 전래동화로 변용되는 과정에서 전달자의 지나친 각색으로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고 축소되어 본연의 가치가 심하게 훼손된 것에 문제점을 느끼고, 그것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한국 설화의 올바른 변용문화 정착에 일조하기 위해 쓰여졌다. 첫 번째 작업으로 「콩쥐팥쥐」를 선택하여, 현전하는 모든 유화(類話)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기본적인 서사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23편의 전래동화와 비교하여 각각의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또한 설화에 내재된 주요 의미 분석을 토대로 전래동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다양한 변용의 요소들이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를 탐색하였다. 이전의 연구와 비교할 때, 설화나 전래동화에서 가장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연구대상으로 하였으며, 주제의식이나 향토성 등의 관념적 이유를 들어 전래동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면(裏面)에 함축된 주요 의미를 통해 변용이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추적하였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대하소설 <완월회맹연>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

정창권 ( Chang Guen Jeo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85-11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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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대하소설 <완월회맹연>을 활용하여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개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해본 것이다. 특히 본고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 가족드라마를 만들고자 하였다. <완월회맹연>은 180권 180책에 달하는 국문 대하소설로, 단일 작품으로는 중세시대 세계에서 가장 긴 소설이었다. 또한 그 같은 분량에 걸맞게 탁월한 상상력이 발휘되어 있는데, 특히 조선후기 대가문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사를 다채롭게 포착해내고 있다. 이에 따라 본고는 <완월회맹연>의 드라마화 작업을 위해 각색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시놉시스를 통해 작품의 얼개까지 그려 보이고 있다. 그와 더불어 <완월회맹연>은 드라마 뿐 아니라, 출판과 다큐멘터리, 영화, 전시 등의 콘텐츠로도 충분히 개발될 수 있음을 개략적인 내용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고전문학을 활용한 문화콘텐츠 개발은 주로 당위적·추상적 차원에서 논의되었는데, 이 논문을 계기로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불완전명사에 대한 계량적 접근

김일환 ( Il Hwan Ki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111-133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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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불완전명사의 개념을 형태론적 관점에서 다시 정의하고 이를 기존의 의존명사와 구별하였다. 기존의 의존명사 개념은 통사적 관점에서 정의된 것으로 선행 성분과의 관련성을 중시한 개념임에 반해, 불완전명사는 형태론적 교체의 관점에서 조사 결합의 제약 여부로 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이 연구에서는 불완전명사의 실제 사용 양상을 검토하기 위해 코퍼스를 활용하였다. 코퍼스에서 검색된 용례들을 토대로 불완전명사에 속하는 새로운 유형들이 제시되었는데, 먼저 격조사와 전혀 결합할 수 없는 명사가 우선적으로 불완전명사에 포함되었다. 또한 한 유형의 격조사와만 결합하는 다양한 명사들의 목록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주격, 속격, 대격, 서술격, 그리고 부사격조사와만 결합한다는 특징을 보였다. 한편 두 개 이상의 격조사와 결합할 수 있는 명사의 경우에도 조사 결합에 있어 빈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경우에는 이들도 불완전명사가 될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하였다. 특히 주격, 대격조사와 주로 결합하는 명사들의 경우에는 후행하는 조사뿐 아니라 서술어와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관용적으로 쓰이는 대상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였다.

『만보전서언해(萬寶全書諺解)』의 서지적 고찰과 그 언어적 특징

함희진 ( Hui Jin Ha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135-16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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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국어학적으로 검토된 바 없는 한글 필사본 자료인 『만보전서언해』를 서지학적·국어학적으로 검토하고 그 필사 연대를 추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萬寶全書`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는 표제가 `萬寶全書`인 책을 가리키는 것이고, 둘째는 명말 청초 시기의 종합 백과사전 형식의 일용유서를 통틀어 지시하는 것이다. 『만보전서언해』는 명·청대의 <萬寶全書>를 저본으로 하고 있으나 일부 내용을 발췌하고 새롭게 구성하여 만들어진 필사 자료이다. 17책으로 되어 있는 『만보전서언해』는 다양한 지식과 풍부한 주석으로 백과사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서지적으로는 필사 연대를 추정할 만한 단서를 얻기 어려우나, 역대왕조에 대한 기록에서 이 책이 일러도 19세기 초기 이후에 필사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에 쓰인 언어를 분석해 본다면 『만보전서언해』는 19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판단된다. 본 논문에서는 자료가 보여주는 표기상의 특징, 형태·어휘상의 특징 등을 살펴보았다. 본고는 된소리를 `ㅅ`계 합용병서로 표기한 경향이 나타나고 `·`와 `ㅏ`가 사실상 구분되지 않고 쓰였던 점, 19세기 후기의 다른 문헌에 처음 문증되는 어휘들이 이 책에서 확인된다는 점을 들어 이 책이 19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관산융마」의 형식과 주제사상

심경호 ( Kyung Ho Si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169-193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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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관산융마(關山戎馬)」는 본래 공령시 즉 과시(科詩)이지만, 서도지방의 영시(詠詩) 또는 율창(律唱)이라고도 하는 시창(詩唱)을 통해 널리 국악 애호자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관산융마」와 그 시창은 조선후기의 과시가 정통 문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미학을 확보해가는 과정에 발생한 것으로서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본고는 「관산융마」의 시어가 나온 출전을 상세히 고찰하여, 「관산융마」가 두보가 57세 때 유랑길에서 지은 오언율시인 「악양루(岳陽樓)」시에 기초하면서, 두보의 「추흥(秋興)」 8수 가운데 제2수와 제4수를 기본적인 정조로 삼았으며, 각 구는 이별의 정한을 담은 구들을 중첩시킴으로써 애상을 고조시키는 방식을 이용했음을 밝혔다. 그런데 바로 그와 같은 애상적 정조의 이면 짜기와 점층적 고조의 방식은 서도창(西道唱)에서 가성과 세성을 엮어가면서 감정을 고조시키는 창법과 교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이별의 정한, 소외의 감정을 증폭시켜 전달할 수 있었다고 본다.

김창흡(金昌翕)의 설(說)에 나타난 주제의식과 글쓰기

안득용 ( Deuk Yong A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195-227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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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현실적 문제를 포괄적이면서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金昌翕(1653~1722)의 說이 지닌 특징적 면모를 살펴보려는 목적에서 서술되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우선 주제적 측면에서는 作爲를 배제하고 自然을 따르며 天理에 순응하려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의 기저에는 老莊的 思維와 『周易』의 論理가 내재해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개인적 수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규에 관한 사안일 때, 그의 설이 지닌 어조가 강개하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사회적 분규가 다수의 문인지식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 그 자체를 와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분규의 원인을 未明에 의한 작위의 발생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일정 정도 강제적 형식을 띤 도덕적 규범을 동원한다. 그것의 근원에 天理가 존재한다. 다음으로 서술적 측면에서의 특징은 우선 구성이 비유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비유적 구성은 설에서 역대로 흔히 사용되던 방법이다. 오히려 轉換의 수사를 통해 설득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개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설이라는 장르 내에서 본다면, 이러한 서술방법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설득의 객관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수사의 저변에는 多元的 思考가 존재하며 이와 같은 사고는 斷面的 固着을 벗어나려는 태도에 기인한다. 다음으로 세밀한 형상화를 들 수 있다. 외부 사물의 세밀한 형상화와 감정의 진솔한 표현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설득력을 높인다. 또한 이러한 서술은 그의 산문이 지닌 문학성을 생성하는 근원이 되며, 문학적 산문 창작의 저변에는 자유로운 사유와 결부된 想像力이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김창흡은 개인적 수양의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의 도덕적 규범 설정에 대해 등한시하지 않았으며, 삶에 대한 사유를 설득력이 높은 문학적 설로써 형상화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교은(郊隱) 정이오(鄭以吾) 문학(文學) 연구(硏究)

유호선 ( Ho Sun Riew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229-265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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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교은 문학의 논의에 앞서 20세기 초에 간행된 『교은집』의 서지적 특징과 그 한계를 검토하고, 전해지는 작품과 추가로 조사된 시문을 중심으로 정이오의 문학을 고찰하였다. 3장의 제주기행에서는 1401년 가을에서 1402년 봄에 걸쳐, 제주목사로 부임한 박덕공과 함께 제주를 방문하면서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문을 여로의 추이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즉 경상남도 웅천 가덕도에서 남해의 해안선을 따라 전라남도 묘도에 이르고 그곳에서 다시 제주로 향하는 여로에서 지어진 시문과, 제주에서 지어진 「제주형승」 등의 글 그리고 귀향의 여로에 지어진 시작품을 통해 공무를 띠고 해로의 선상, 정박 중에 일어난 체험과 다양한 감정들을 재구성해 보았다. 4장 교은(郊隱) 문학의 의미 국면에서는, 훈구관료로서 갖는 성리학적 경세론을 천명한 시문 예컨대 『장일통요』와 『사서절요』의 찬진소에서는 관료문인으로서 임금을 보필하고 국가의 기강확립에 매진하는 모습을, 또 지방의 관리를 전송하는 서(序)나 누정, 관아, 읍성, 객관에 부친 기(記)에서는 수령의 직분에 충실할 것을 당부하는 애민의식을 간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물의 업적을 선양하는 글을 통해 덕치와 세교의 바탕이 되는 인륜의 실천을 강조한 모습, 예컨대 최무선의 궐전(闕典)에 대한 한탄과 열부 최씨녀에 대한 강개한 칭송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글의 특징으로 감정의 절제를 통해 오히려 깊은 공명을 전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끝으로 관제의 신설과 척파에 대한 위정자의 소신을 주장한 글과 불교에 대한 포용적인 태도를 드러낸 시문을 살펴보았다.

글로벌 시장경제와 콘텐츠화되는 아시아-한국 전통문학을 중심으로

윤채근 ( Chae Keun Yoo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267-287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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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후발국가의 문화가 산업재로 이해되어 문화콘텐츠로 변신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아시아 문화가 콘텐츠로 변화하는 것이 결국은 글로벌 경제 속의 상품으로 표준화되는 것이라는 점, 결국 문화의 종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인문학이 무분별하게 산업콘텐츠 시장에 투항하는 행위가 인문학 자체의 존립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고찰하였다. 그러나 콘텐츠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인문학의 만성적인 동맥경화를 해소할 수 있는 능동적 대안은 될 수 없기에 인문학 고유의 문화적 존엄과 주체성을 보존하는 선에서 콘텐츠 시대를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특히 한국전통문학은 스토리텔링 산업과의 창조적인 결합을 통해 전통적인 인문 지식을 대중화하고 교양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예견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무차별적인 디지털만능주의를 인문학적 속도와 결 속에 녹여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역사적 현상으로 승격될 수 있을 것이다.

노계(蘆溪) 「영남가(嶺南歌)」의 찬양(讚揚) 대상(對象) 인물(人物)에 대(對)한 고찰(考察)

이종문 ( Jong Mun Lee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59권 0호, 2009 pp. 289-307 ( 총 19 pages)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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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蘆溪集』에 수록된 蘆溪 朴仁老(1561-1642)의 「嶺南歌」의 주석에는 이 작품이 1635년 慶尙監司에서 물러난 李謹元의 善政을 찬양하기 위하여 지은 작품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경상감사로 부임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 자체조차도 전혀 확인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다고 하여 노계가 실존하지도 않는 인물을 허구적으로 창조하여 이와 같은 작품을 지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이미 오래 전에 「영남가」의 찬양 대상 인물이 이근원이 아니라 李溟(1570-1648)일 것이라는 견해가 학계에 제출된 바 있고, 현재 그러한 견해가 상당한 형세를 이루고 있다. 「영남가」의 찬양 대상으로 기록되어 있는 이근원이 그 실체조차도 확인되지 않는 인물이라면, 「영남가」가 지어진 1635년 경상감사에서 물러난 사람이 누구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 순서다. 따져본 결과 그는 1634년에 경상감사로 부임하여 1635년에 물러난 浩庵 李基祚(1595-1653)였고, 따라서 「영남가」의 찬양 대상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은 일단 이기조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계가 찬양한 대상 인물이 이명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우게 된 데는 물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1630년 경상감사로 있으면서 노계의 褒賞을 조정에 건의, 성사시킴으로써 노계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던 이명은 『노계집』에 여러 번 등장하고 있는 반면에, 노계와 이기조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노계와 이기조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기록이 없다고 하여, 그들이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이라고 섣불리 말을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노계는 漢陰 李德馨(1561-1613)과 각별한 사이였을 뿐만 아니라 李如圭(1581-1635), 李如璜(1590-1633) 등 그의 아들들과도 대를 이어가면서 인연을 맺고 있었고, 이기조는 한음이 직접 만나보고 고른 孫壻이자 한음의 장남 이여규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명보다는 오히려 창작 연대와 행적이 부합하는 인물인 이기조가 이 작품의 찬양 대상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고려대 박물관에 실물이 보관 중인 이기조의 墓誌銘에 `1635년 그가 선정을 베풀고 경상감사에서 물러날 때 어떤 사람이 가요를 지어 찬미했다`는 요지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영남가」가 1635년 선정을 베풀고 물러나는 경상감사를 찬양하기 위하여 지은 시가임을 고려한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요`는 「영남가」이고, 그 어떤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노계일 터이다. 그러므로 「영남가」의 찬양 대상 인물은 이명이 아니라 浩庵 이기조임이 거의 분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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