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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어문학회 > 어문논집 > 82권 0호

어문논집검색

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38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2권 0호 (2018)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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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안빙몽유록」 및 「서재야회록」 에 나타난 은거 공간과 환상계의 함의를 작품 내재적인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이에 기성 사회의 ‘지배-배제’ 질서로 인해 상처받은 주체가 자신의 열패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적(私的)인 공간을 조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적 공간으로의 칩거는 안빙과 선비에게 손쉬운 치유 방식이었다. 사적 공간에서는 기성 사회로부터의 영향력이 완전히 차단된다. 그렇기에 안빙과 선비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한 작은 세계를 만들어내어 그곳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안빙과 선비의 문제는 해결된 듯 보였다. 그러나 환상계가 사적 공간에 중첩되어 나타나면서, 사적 공간은 더 이상 사적(私的)인 공간이 아니게 된다. 주체가 지배력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공간에는 이미-항상 타자가 들어서 있었다. 현실의 사적 공간에서 그저 주체에 의해 배치되고 통제되었던 ‘대상’들이, 환상계에서 인격을 가진 ‘정령’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주체의 은거 행위 역시, 주체를 배제시켰던 바로 그 기성 사회의 행태와 별 다를 바가 없음을 폭로한다. 이에 사적 공간으로의 칩거와 ‘주체 중심’이라는 관점에 담긴 비윤리성이 노정(露星)된다. 그렇다면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것인데, 환상계에서의 관계 맺음이 그 실마리가 된다. 환상계에서는 주체와 타자 간에 구별이 흐릿하다. 때문에 ‘주체-타자’ 이분법 이전의, 근원적인 관계 맺음이 가능해진다. 기실,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요소들과 함께 매 순간을 자아낸다. 이미 서로가 서로에 연루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근원적인 관계는 주체-타자가 아니라 공동체다. 선비는 이러한 인식을 현실로 돌아온 이후에도 유지했기에, 환상계와 현실계 간 감응이 일어난다. 반면에 안빙은 이에 대한 인식을 거부하고 방으로 칩거해 사적 공간을 강화한다.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의 사회적(社會的) 위상(位相)에 대한 재검토(再檢討)

이종문 ( Lee Jong Moo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33-70 ( 총 38 pages)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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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노계 박인로의 사회적 위상과 개인적 상황에 대해 ‘沒落 鄕班’으로 표현해왔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 그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제출한 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계는 영천 지역의 대표적인 士族인의 密陽 朴氏 家門의 일원으로서 중소지주층의 ‘유력한 在地士族’이었으며, 그러한 사회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당당하게 행세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노계가 영천지역에서 행세하던 유력한 재지사족이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노계의 작품들 가운데는 다른 사람의 ‘명령’으로 지은 작품이 유난히도 많은데, 그 가운데는 나이가 20-30세 어린 李德聲의 아들들의 ‘명령’을 받고 지은 「相思曲」과 「勤酒歌」도 포함되어 있다. 노계가 만약 당당하고 유력한 사족이었다면, 이덕형의 아들들이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노계에게 이러한 가사를 지으라고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 노계는 鄭逑와 張顯光의 문인임이 분명하고, 曺好益에게 배웠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정구, 장현광, 조호익의 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인 及門錄에 한결같이 노계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노계의 이름이 나올 법한 곳에 모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어떤 이유로 士族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셋째, 이 지은 鄭귀陽를 「蘆溪朴公遺事」보면 그가 경작지와 보배로운 채찍을 남에게 빼앗겼다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일화들을 보면 노계는 당당하고 유력한 재지 사족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였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넷째, 각종 밀양박씨 족보에 의하면 노계의 큰아버지 朴?이 아들이 없어서 7촌 조카 朴士愼을 양자로 맞았는데, 친조카인 노계 3형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핏줄이 먼 친척을 양자로 맞은 이유가 궁금하다. 아울러 20세기 이전에 간행된 古本의 密陽朴氏 族譜들에 노계의 이름이 거듭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보면, 노계 집안의 사회적 위상이 유력한 사족은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현재 道溪書院 건너편 야산에 있는 노계의 아버지와 노계 및 노계 형제들의 묘소가 한 지역에서 행세했던 유력한 士族의 묘소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박하고 조촐하다. 노계 집안의 묘소가 이처럼 소박하고 조촐한 것은 그당시 노계 집안의 사회적 위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노계가 당당하게 행세했던 유력한 在地 士族이었다는 견해는 再考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그는 어떤 근원적인 결함으로 인하여 사회로부터 소외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필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면,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논문들 가운데서도 재검토되어야할 사항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생각하며, 앞으로 노계의 생애와 문학을 연구하는 데도 이 글이 적지 않게 참고가 되리라 기대된다.

<관동별곡>에 대한 정치적 독법

하윤섭 ( Ha Yun-sub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71-103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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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별곡>에 대한 주류적 해석들은 해당 작품을 공간적으로 한 후 산에서 바다로 이동함에 따라 작자의 (무)의식 또한 대립적인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음에 주목해 왔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정치적 독법’의 틀 안에서 바라볼 경우 <관동별곡>은 이질적인 부분들이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동질적인 부분들이 인과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임을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작품의 전반부에서는 시적 화자가 자신을 ‘謫臣’으로 인식하고 있는 저간의 흔적들을 발굴하고, 이것이 후반부의 ‘謫仙’과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이로써 전반부와 후반부는 (인간과 신선이라는 점에서) 존재는 다르되 (유배를 오게 되었다는 점에서) 처지는 동일한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에 더해, 약간의 한역본과 다수의 가집들에 전하는 ‘결말 B’의 존재를 들어 ‘적선’ 이라는 환상의 축조는 정치적 소외에서 기인한 열패감과 ‘서울로의 복귀’를 희망하는 시적 화자의 (무)의식이 소환해 낸 결과로 파악하였다.

자기표현의 글쓰기 전통과 교육적 창신

황혜진 ( Hwang Hye-ji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105-13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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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통적 글쓰기를 통해 배울 점은 글쓰기 양식 자체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내용 마련을 위한 자기 탐구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전문학의 다양한 하위 갈래는 고유한 자기 탐구 방식을 갖고 있는데, 이 연구에서는 탁전, 자찬묘지명, 화상자찬의 자기 탐구와 자기표현을 유용한 것으로 보았다. 각 사례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이덕무의 <간서치전>, 남종현의 <자묘지>, 이제현과 강세황의 화상자찬 등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기의 객체화’, ‘죽음을 대면하는 상상’, ‘자기 초상에 대한 소회와 평가’ 등, 자기표현에 선행하거나 함께 이루어질 수 있는 자기 탐구의 방식을 현대적인 자기표현의 활법(活法)으로 제안하였다. 그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자기를 객체화하기 위해 이름이나 별명을 붙여 객관적인 대상처럼 묘사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 모습을 특성화할 수 있는 한편, 현재의 자기를 관조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죽음을 대면하는 상상을 통해, 필멸적 존재로서 자기의 삶에 대한 엄정한 평가적 시선을 도입해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미래에까지 이어질 삶에 있어 중요한 자기기획을 발견하거나 구성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자기 초상에 대한 소회와 평가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개인의 역사성을 깨닫는 경험을 제공한다. 아울러 그림이나 사진 등 재현된 이미지를 동반한 자기표현은 관념 속 자기상과 재현된 이미지의 거리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노년여성의 귀환과 탈가부장제의 징후들

김경연 ( Kim Kyung-yeo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133-177 ( 총 45 pages)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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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년을 인간의 표준으로 결정하고 미개인, 광인, 여성과 더불어 노인을 비인간으로 축출한 근대 휴머니즘의 폭력적 메커니즘에 주목하면서, 젠더적 관점에서 노년을 재독하고자 했다. 젠더·인종·계층/계급에 따라 노년을 살아가는 경험은 다르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노년 연구란 부분적이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노년을 젠더의 관점에서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살아온/가는 노년여성들의 삶이 남성노년들과 같을 수 없으며, 중산층 여성노인과 가난한 박카스 할머니의 현실이, 혹은 칠십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증언한 김학순이나 밀양 송전탑 투쟁의 최전선에 서는 여든 일곱 김말해의 노년이 침묵하는 노년여성들의 삶과 같을 수는 없다. 이 같은 복수의 노년여성들의 실존을 상기하면서 본고는 노년의 여성들을 재현하는 여성서사에 주목했다. 남성중심적인 문학의 주변부에서 거대/주류 서사가 누락하거나 은폐한 여성/타자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천착한/하고자한 것이 여성문학이라면, 노년여성의 억압, 침묵, 분투를 가시화한 여성서사를 통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이반하는 노년여성의 재현 가능성을 탐사해 보는 일은 유의미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노년여성들의 삶을 기록/재현한 서사물의 계보들, 특히 청년의 시대였던 근대의 여성문학 속에서 여성노인들이 재현되는 양상에 주목하였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대결하면서. 새로운 집의 발명을 열망했던 근대 청년여자들의 서사는 근대가 배제하거나 누락한 노년여성의 삶을 가시화하는 한편, 전근대 가부장들이 상상한 ‘헌신적인 어머니’와 근대 청년들이 매도한 ‘혐오스러운 노파’와는 변별되는 이질적인 어머니/할머니들을 조형했다. 그러나 이 차별화된 재현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통한 근대적 가치의 전파가 신여성 작가들의 욕망이자 사명인 이상 노년여성들의 삶을 부조한 경우는 드물었으며, 더구나 어머니/할머니라는 젠더 역할을 국한되지 않는 개별적 욕구를 지닌 인간으로서 노년여성의 삶을 천착한 경우는 거의 부재했다. 그렇다면 근대의 황혼이 도래하고 전지구적 노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여성작가들은 다시 노년과 젠더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고 있을까. 이 글은 근대 청년여자의 서사에 이어 신경숙, 김숨, 권여선 등 87년 이후 집의 혁명을 추동하고 자본주의 가부장제의전복을 열망했던 이른바386세대 계보의 여성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노년여성의 삶이 재현되는 양상을 살폈다. 그들이 다시 쓰는 늙은 여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부장제가 발명한 숭고한 어머니/할머니는 더 이상 매끄럽게 관철되지 않는다. 어머니/할머니가 아닌 단지 ‘이모’로 늙어가는 「이모」 (권여선)의 ‘윤경호’는 물론이고, 어머니/할머니라는 젠더호명에 복종하며 살아왔던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의 ‘박소녀『’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김숨)의 ‘정순자’ 역시 더 이상 “길들여진 좌절의 협조자”로 남지 않는다. 실종을 빌어 가부장의 집으로부터 탈주하고(박소녀), 자기를 멸함으로써 모성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며(정순자), 가족/세상과 절연하고 고유한 ‘나’로 말년을 살아가는(윤경호) 그들은 세상과 화해하기보다 불화하며 가부장제가 가공한 사랑과 행복의 집에 은폐되었던 폭력과 슬픔을 적발하는 불길하고 불온한 모성/여성이 된다. 집/친밀성의 오랜 수호자였던 이들 늙어가는 여자들을 통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친밀성의 판타지는 내파되는 것이다.

신채호의 문학에 적용된 이중 언어의식 연구

김희주 ( Kim Hee-joo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179-201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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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환기 유학자였던 신채호(1880-1936)의 문학에 적용된 언어의식은 민족을 호명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신채호는 근대 초기 국민통합의 일환으로 언문일치운동에 동참하였다. 이는 근대초기 신문매체에서 보이는 그의 지배적 문제체계가 국한문체라는 점에서 의식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짧은 기간이지만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의 주필활동기간동안 보였던 역사서술 및 논설등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의 주요 문자체계는 국한문이었다. 1908년 《가뎡잡지》 에서 보이는 소설과 논설에 이르기까지 몇 개의 글들에서 의도적 한글쓰기가 시도되기는 하였으나 그의 전 생애에서 지속적인 한글쓰기의 시도는 문학내에서 이루어졌다. 한글과 한자의 적용은 시와 소설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1936년 그가 타계하기 전까지 그의 문학 활동내에 포착한 언문일치적 글쓰기는 소설에서 지속적으로 적용되었다. 이는 한글이 당대 시대가 요청하는 민족통합에 적합한 문자체계라는 언어의식을 문학에 적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신채호의 이러한 언어의식은 그의 소설에서 국민을 계도의 대상에서 국가의 주체로서 인식하는데 기여한다. 이는 그의 소설의 전개과정에서 검토되고 있다. 신소설이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점차 독자의 흥미에 맞춰 나아간 반면 신채호의 소설쓰기는 일종의 독립혁명을 주도할 민중 규합의 행위로서 지속되었다. 소설쓰기의 목적이 이와 같음에 따라 한문보다 한글을 민족 통합의 수단으로서 인식한 것은 의도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중국 내 한국어 쓰기 교재 분석 - 논증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맹강 ( Meng Ga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2권 0호, 2018 pp. 203-236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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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국 내 한국어 쓰기 교재에서 논증적 글쓰기 부분의 전체적 구성, 교육 내용, 학습 활동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향후 교재 개발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분석의 결과, 교재 C는 학습 목표, 교육 내용, 학습 활동을 모두 포함하여 3 가지 교재 중에서 가장 잘 구성되어 있었다. 교육 내용의 경우, 예상 반론에 대한 반박에 관한 구체적 기술이 부재하였다. 조직의 경우, 응집성, 응결성, 일관성은 강조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논증적 글의 주장과 근거의 차이에 대한 기술이 없었다. 학습 활동의 경우, 대부분 통제 작문이 중국의 교육 과정에 맞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유도 작문의 양이 너무 적고 자유 작문 과제도 너무 적고 쓰기 분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향후 중국인 한국어 학습자를 위한 쓰기 교재를 개발할 때 예상 반론에 대한 반박, 텍스트의 응집성, 응결성, 일관성, 그리고 중국과 한국 논증적 글의 주장과 근거의 차이에 대한 자세한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학습 활동의 경우, 중국인 한국어 학습자의 쓰기 능력 향상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통제 작문 활동을 포함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유도 작문 활동을 늘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유 작문의 경우, 작문의 분량의 향상과 과제 유형의 다양화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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