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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38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8권 0호 (2020)

어문논집 88호 표지

민족어문학회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1-1 ( 총 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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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논집 88호 차례

민족어문학회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1-4 ( 총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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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언해본> -고려대 도서관 육당문고 소장의 「훈민정음」을 중심으로-

정광 ( Kwang Chu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5-48 ( 총 4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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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새로운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세 가지 방법으로 이 문자를 해설하였다. 첫째는 <해례본>이라고 불리는 원본 훈민정음으로 세종의 어제(御製) 서문, 예의(例義), 해례, 그리고 정통(正統) 11년(1445) 9월에 쓴 정인지의 후서(後序)가 있다. 둘째는 『세종실록』(권103) 세종 28년 9월조에 실린 훈민정음으로 <실록본>으로 <해례본>에서 ‘해례(解例)’ 부분만 빠졌다. 셋째는 훈민정음에 대한 세종의 서문(序文)과 예의(例義)만을 언해한 것으로 『월인석보』라는 불경(佛經)의 권두(卷頭)에 첨부되었다. 보통 <언해본>으로 부르는 이해설서는 단행본으로도 전해진다. 첫째와 둘째를 한데 묶어 <한문본>, 셋째를 <언해본>이라 하여 양분하기도 한다. 이 논고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된 단행본의 『훈민정음』의 <언해본>에 대하여 고찰한 것으로 이 판본은 그동안에 <언해본>으로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과 첫 장만이 다르고 나머지는 모두 동일한 동판본(同板本)임을 밝혔다. 이 논문에서는 고려대에 소장된 『훈민정음』이 세종 때에 간행된 훈민정음의 <언해본>이며 『월인석보』의 구권(舊卷)에 첨부된 것을 유신(儒臣)들이 따로 떼어 훈민정음, 즉 한글의 학습에 사용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에 지금까지 <언해본>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 은 세조 때에 수정한 것으로 『월인석보』의 신편(新編)에 첨부되었다. 이것은 고려대학교 소장본의 『훈민정음』과 같은 판본이지만 첫 장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하고 나머지는 같은 책판을 그대로 쇄출(刷出)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고려대학교에 소장된 판본(板本)을 근거로 한 것으로 그동안 학계에서 애매했던 <언해본>의 편찬과 간행을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다.

제주도 조상신본풀이 <양씨아미본풀이>의 유형별 특징과 의미

김혜정 ( Kim Hae-jyu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49-74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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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제주도 조상신본풀이 <양씨아미본풀이>의 두 유형을 비교 고찰하여, 유형별 특징과 의미에 대해 알아보았다. <양씨아미본풀이>는 지금까지 총 8편이 채록 보고되었는데, 이를 서사적 특징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예촌 양씨아미본풀이>는 심방의 운명을 타고난 ‘양씨아미’를 조상신으로 모시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본풀이이다. 이는 좌정 유래담적 성격을 띠며, 그 기능은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주고 그를 조상신으로 모심으로써, 그를 해원 시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이에 비해 <눈미 양씨아미본풀이>는 심방의 운명을 타고난 ‘양씨아미’를 대하는 대조적 사람들을 보여주고, 양씨아미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는 영험담적 성격을 띠며, 그 기능은 양씨아미가 후손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조상신으로의 기능을 공고히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양씨아미본풀이>가 조상신본풀이로 계속해서 기능하기 위해, 서사적 변이를 일으킨 유의미한 지점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신의 능력, 영험함을 재확인시키기 위해, 그를 불신하는 세력에게 응징을 가하고 있다. 즉 뚜렷한 징치대상을 새롭게 만듦으로써, 그를 조상신으로 모시는 것에 대한 반발심을 줄이고, 자손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조상신의 가장 강력한 직능인 후손을 번영시키거나 혹은 대(代)를 끊을 수 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보편적 특성’을 강화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결국 조상신본풀이의 전승 과정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근거 자료가 된다. 즉 조상신에 대한 근원적 물음이 제기될 때, 신화는 시대·환경 변화에 따른 특수한 능력을 추가하기보다, 조상신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 특성을 부각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유교식 제사에서 모시는 ‘조상’의 특성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의 정치사상(政治思想) 일고(一考)

안득용 ( An Deuk-yo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75-114 ( 총 4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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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成俔의 政治思想을 구성하려는 시도이다. 대상으로 성현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남긴 정치와 정치사상에 관련된 글이 갖는 부피와 심도에 있다. 성현의 정치사상을 꼼꼼히 분석하기 위해 人間觀, 統治觀, 君主觀, 官僚觀 등으로 나누어 고찰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첫째,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성현은 인간이 다르게 태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차이를 인정하기도, 차별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인간관이 발현시킨 정치사상은 바로 이 차이를 常數로 인정하고 각자에게 적절한 몫을 주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인간관이 여타 분야의 정치사상에 끼친 영향은 작지 않다. 둘째, ‘통치관’의 경우, 성현도 여느 儒者들처럼 仁治를 최상의 가치로 두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다르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차이를 질서 지우기 위한 禮의 중요성도 인식했고, 인간의 사사로움을 억제하기 위해 公의 윤리적 측면도 적극 활용해서 정의롭게 통치하려는 생각도 지니고 있었다. 셋째, ‘군주관’에 있어, 하늘의 대리자인 군주는 德을 닦고 자신을 검속하여 올바른 통치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 성현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守成期로 보았던 그는 군주가 權道가 아닌 正道에 따라 세상을 경륜하고, 군주만의 專制가 아니라 大臣-三司와 함께 共治하기를 바랐다. 넷째, 君臣共治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관료에게 성현은 權貴에 휘둘리지 말고 諫言으로 군주를 법도에 맞게 이끌되 과격해서는 안 되며, 祖宗의 法制를 존숭하면서 점진적으로 국가를 바꾸어 나가라고 요구했다. 앞서 살펴본 정치사상과 아울러 ‘관료관’의 이와 같은 특색을 종합해서 그의 정치사상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온건주의자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급진·극렬·수구·반동, 그리고 이 모두를 포괄하는 극단과 비교하여 온건주의가 지닌 의미가 여전히 크다는 점, ‘수성기’로 자신의 시대를 진단하고 당대에 적합한 정치의 모범과 표준을 제시하였다는 사실, 관대함과 ‘공’에 무게를 둔 태도 등은 모두 음미할 만하다. 다만 그의 정치사상을 역사적 맥락 안에서 조감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전기의 정치사상은 조금 더 촘촘하게 연구되어야 하고, 그 연구의 결과는 다시 당대의 문학을 이해하는 지평으로 기능해야 한다.

도암(陶菴) 리재(李縡)의 비지문(碑誌文)에 대한 일고찰 -묘지(墓誌)를 중심으로-

이승용 ( Lee Seung-yo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115-140 ( 총 2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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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李縡(1680~1746)의 碑誌文 가운데 墓誌에 대해 개괄적으로 고찰해보고, 그 가운데 李奎象(1727~1799)이 高評한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를 중심으로 歐陽修의 「瀧岡阡表」의 수용 양상 및 李縡가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를 통해 추구했던 碑誌類 장르의 변모 양상과 문학적 성취를 규명하였다. 李縡는 「先考墓誌」와 「先妣墓誌」에서 이전시대부터 전해진 碑誌文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歐陽修의 「瀧岡阡表」에서 구현되었던 簡嚴한 篇法과 傳言의 再演기법을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존 碑誌類 문장의 고정된 형식을 벗어나기 위해 획일적인 서술 전개 방식에 의도적으로 변화를 주었으며, 중간 중간 대화나 일화를 삽입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하여 무미건조한 서술방식으로 일관된 碑誌類 장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투식적이고 획일적인 서술이 주가 되는 碑誌類 장르에 가져온 큰 변화이다. 이로 볼 때, 당시에 李縡의 傳狀類와 碑誌類 문장이 司馬遷과 歐陽修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그가 단순히 많은 작품을 남겨서가 아니라, 작품성과 문학성에 있어서도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碑誌文 가운데 歐陽修의 「瀧岡阡表」를 수용한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하지만, 「先考墓誌」와 「先妣墓誌」는 조선 후기 碑誌文에서 歐陽修의 「瀧岡阡表」의 수용 양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작품이자, 李縡의 墓誌文 가운데서 그의 문학적 성취를 뚜렷이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쌍백당 이세화의 시세계 고찰 -기사년(1689) 이전과 이후의 시세계 대비를 중심으로-

이황진 ( Lee Hwang-ji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141-167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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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사년(1689) 숙종에게 인현왕후를 폐위하는 일이 불가함을 극간한 일로 그 절개와 충정을 인정받은 쌍백당 이세화(1630~1701)의 시세계를 고찰한 글이다. 특히 기사년 이전과 이후의 시세계 대비를 중심으로 하여 그 변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기사년 이전의 시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1663년(34세) 이세화가 평양판관으로 있을 당시 형장을 지나치게 써서 사람이 죽어나간 일로 인해 의주로 유배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의 관로와 현달을 가로막는 멍에가 되었기에 이후 이것이 자신의 능력과 포부를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종과 숙종이 그의 능력을 인정해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등용해 준 것을 감사하게 여겼기에 이는 자신의 맡은바 직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곧 충이라는 인식으로 표출된다.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를 좌우한 것은 기사년 인현왕후 폐위 사건이다. 당시 오두인, 박태보와 함께 상소문 기사진신소 를 올린 후 모두 숙종의 친국을 받고 유배되는데, 그 둘은 유배 가는 도중에 세상을 뜨고 오직 이세화만이 목숨을 부지하였다. 이세화는 유배에서 풀려난 후 파주 선영 아래로 돌아와 ‘백수귀전(白首歸田), 단심연궐(丹心戀闕).’ 여덟 자를 써서 벽에 걸어 놓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이는 곧 자신의 여생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다하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자 기사진신소 에 담긴 진심이었다. 따라서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는 바로 그 둘, 즉 농사를 지으며 즐기는 평온한 삶과 임금에 대한 일편단심 이 두 세계로 집결된다. 이렇듯 기사년 이전 시세계의 한 면모였던 포부를 온전히 펼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기사년 이후의 시세계에서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으며, 기사년 이전에 표출된 충은 자신의 직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라는 직분이 강조되었던데 반해 기사년 이후의 시에서 충은 일편단심과 같이 심적인 요소가 더 강조되어 표출된다는 점에서도 기사년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시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자 변곡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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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박완서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에 나타난 근접성 없는 공동체와 친밀성의 테크놀로지의 서사적 양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공동체의 물리적 조건인 근접성이 사라진 가족 형태가 주로 다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가족 관계를 매개하는 테크놀로지의 역할이 상세히 기술되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가족 사이의 적정한 거리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적절한 방식이 탐구되었다. 이 글은 2장에서 비디오 영상이 죽은 아버지를 보충하는 이미지로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부재하는 가족 구성원을 환상적인 방식으로 복원하고, 완전한 가족의 이미지를 연출하려는 것이, 결국 주체를 압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확인했다. 3장에서는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가족 사이의 적당한 간격이, 개인의 자율성과 가족의 친밀성을 유지하는 핵심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한 이메일이 가족 간 거리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히 유지하는 기술로 활용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박완서는 가족의 지나친 밀접을 경계하면서도, 근접성의 약화가 친밀성의 강화로 이어지는 역설을 서사화했다. 이것은 가족을 잃은 고통을 계속해서 재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반복적으로 포착했던, 박완서 소설의 한 결절점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적 기억의 공간과 장소, 심우장(尋牛莊)

전한성 ( Jeon Hansu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8권 0호, 2020 pp. 195-221 ( 총 2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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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기억과 공간, 장소 개념을 중심으로 ‘심우장(尋牛莊)’을 살펴봄으로써 만해 한용운의 후반기 삶과 사상을 재조명해보고, 이를 온전히 기억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문화적 기억은 집단적 기억으로서 공간과 유물, 즉 장소를 통해 형성되고 전승된다. 한용운은 근대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불교유신과 민족독립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을 거듭한다. 심우장(尋牛莊)에서 보여준 그의 삶과 사상은 좌절 속에 직면한 자의 투쟁적인 자기이해의 담론이었다. 그에게 심우장이란 공간은 전통과 근대의 불안정한 만남으로 표상되는 ‘전시 총동원체제기’라는 일제의 폭압적 상황 속에서 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한 숙고의 공간이었다. 한용운은 불교유신을 바탕으로 민족독립으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그 연결점을 민족의식의 고취 즉 민중계몽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심우장이라는 장소에서 3.1운동에 버금가는 문화실천운동을 꿈꾸며 신문 연재를 통해 장편소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심우장은 한용운에게 있어 승려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 일제의 폭압적 환경 속에서 어떤 응전의 자세로 민족의식을 고취해야 하는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주체성 회복의 장소였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심우장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통해 자기이해를 위한 그의 의연한 자세를 기억하고 공감하며 전승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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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자유발화를 대상으로 성별에 따른 구어 종결 어미 ‘-잖아’의 화용 전략을 분석하고 이에 기여하는 억양의 기능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논의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첫째, 성별에 따라 담화 기능과 정보 구조의 양상이 다르다. 남성은 환기의 의미, 종결 구조 사용, 구정보 제시와 같이 ‘-잖아’의 기본 의미와 기능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여성은 동의 유도 전략, 연결 구조 사용, 신정보 제시와 같이 적극적인 화용 전략을 구사한다. 둘째, 성별에 따라 억양의 사용 양상이 다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운율 요소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연결의 ‘HL’, 설명의 ‘LHL’, 암시의 ‘L:’와 같이 간접적이고 유연한 억양을 사용한다. 남성은 상대적으로 운율 요소를 소극적으로 사용하며 ‘L’와 같은 무표적인 억양과 반응 유도의 ‘H’, 단언의 ‘LHL’와 같은 직접적이고 강한 억양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성별에 따른 화용 전략 의도가 다르다. 여성은 발언권 유지전략과 공손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반해, 남성은 이에 대해 소극적이다. 여성은 주도권 확보의 어려움에 대한 인식이 있고 대립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높은 반면, 남성은 주도권 확보에 대한 어려움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며 대화의 대립적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결과를 통해 여성 집단과 남성 집단에서 공유되는 화용 전략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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