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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638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9권 0호 (2020)

어문논집 89호 표지

민족어문학회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1-1 ( 총 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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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논집 89호 목차

민족어문학회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2-5 ( 총 4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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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月精寺)에 대한 인식의 역사적 변천과 그 의미

신성환 ( Shin Seonghwan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5-36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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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오대산을 대표하는 사찰인 월정사에 대한 인식의 역사적 변천을 살펴보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고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창건에서부터 조선후기까지 월정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월정사 홈페이지에는 신라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에 의해서 창건되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창건과 관련된 여러 기록들을 검토한 결과, 자장이 처음 터를 방문한 것은 맞지만 하나의 사찰을 형성하게 된 것은 신효-신의-유연 등의 인물들을 거치면서였다. 자장이 창건주로 자리하게 된 것은 고려후기에 이일 스님이 월정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고 寺格이 상승했던 것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어서 조선조 월정사에 대한 인식을, 현재는 월정사의 末寺인 상원사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조선전기 상원사는 국가가 주도하는 水陸齋를 지내는 곳이었고, 세조의 願刹로 지정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지원을 받는 사찰이었다. 불교 혁파의 과정에서 교종의 중심 사찰로 지정된 것도 월정사가 아닌 상원사였다. 이후 월정사가 상원사를 압도할 정도로 규모를 확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대산을 방문했던 대다수의 문인들은 오대산 불교의 중심을 상원사나 중대 적멸보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월정사의 역사에 대한 기억의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월정사가 강원도의 首寺刹로 지정되면서부터 지금과 같이 강원도를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매김했다고 할 수 있다.

엄마 까투리 콘텐츠에 나타난 안동-로컬리티의 구현 방식

신호림 ( Shin Hori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37-65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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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권정생의 그림책 <엄마 까투리>(2008), 애니메이션 영화 <엄마 까투리>(2011),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엄마 까투리>(2016)를 ‘엄마 까투리 콘텐츠’라는 용어로 포괄하여 시계열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안동-로컬리티가 구현되는 양상을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림책 <엄마 까투리>는 권정생의 직ㆍ간접적인 체험을 서사화 시킨 결과물로서, 작품에서는 ‘안동적인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을 권정생의 고향으로, <엄마 까투리>를 안동의 이야기로 간주하고자 하는 외부 시선이 개입되면서 안동-로컬리티를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의 근원이 만들어졌다. 이후, 그림책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창작되면서 그런 욕망은 가시화되며, 안동-로컬리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발견된다. 그러나 안동-로컬리티를 구현하고자 하는 주체의 외재성으로 인해, 로컬리티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역설도 함께 드러난다. 애니메이션 영화의 성공 이후, EBS 애니메이션 시리즈 <엄마 까투리>가 제작되면서 안동과 경상북도 사이에서 로컬리티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콘텐츠 자체의 영향력은 강해졌지만 엄마 까투리 콘텐츠를 둘러싼 로컬리티는 유동적이고 갈등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런 양상은 로컬리티가 구현되는 원리를 보여주게 된다. 하나는, 로컬리티가 해당 지역의 자연과 전통을 담아냄으로써 가시화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로컬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서사 내로 견인했던 자연과 전통이라는 요소가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가운데, 현대 매체와 대중문화가 로컬리티를 구성하는 하나의 중심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양상은 로컬리티가 가지고 있는 개방성이라는 속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로컬리티는 항상 임시적이고, 언제나 만들어지는 과정에 놓여 있으며, 갈등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신지제(申之悌)의 수창시(酬唱詩)를 통해 본 영남 학맥 소통의 일단면(一斷面)

김기엽 ( Giyeop Kim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67-95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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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문인의 소통은 대개 해당 학맥을 구성하는 문인 집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문학 활동은 작자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 다각도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酬唱 방식도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이에 『梧峯集』의 酬唱詩에 나타난 다양한 관계망에 주목하고, 영남 학맥을 洛上의 退溪學ㆍ洛下의 南冥學ㆍ洛中의 寒旅學등으로 세분화하여 申之悌의 교유와 학맥, 酬唱 방식 등을 살폈다. 年譜에 밝혀진 李滉 제자들과의 일화를 비롯하여 金富倫의 詩軸에 步韻한 작품, 琴蘭秀와 청량산을 유람하며 金堈과 分韻의 방식으로 수창한 일들을 통해 신지제가 退溪學脈의 일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문학 활동은 학맥에 구애되지 않았다. 鄭逑의 문인 李潤雨와 呼韻으로 수창하고, 張顯光을 종유한 李民宬ㆍ李民寏형제와 詩會를 가졌으며, 처가인 咸安 지역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사촌 처남인 趙任道와 用韻의 방식으로 수창하는 등 洛中의 문인들과도 활발히 교유하였다. 또한 曺植을 존숭하는 시를 남겼던 申之悌는 南冥學脈의 郭再祐ㆍ呂大老ㆍ朴瑞龜와 수창하였는데, 昌原에서 府使로 재직하던 시기에는 朴瑞龜와 가장 많은 시를 수창하였다. 의성 출신의 신지제는 함안의 趙氏 문중 사람을 부인으로 맞이했으며, 전란 후 고향에 돌아오기 전까지 창원에서 짧지 않은 고을살이를 하였다. 洛中ㆍ洛下의 문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 주변 상황들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학맥을 뛰어넘는 교유와 문학 활동을 가능하게 하였다.

전북 임실의 만취정(晩翠亭)과 제영시 연구

서정화 ( Suh Jung-hwa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97-128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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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晩翠亭의 건립자인 金偉의 생애와 만취정의 건립 과정, 김위와 題詠詩 창작자들과의 관계, 제영시의 특징에 대해 고구하였다. 전북 임실에 소재한 만취정에는 김위의 시 외에 李珥, 奇大升, 高敬命, 林芑, 宋純, 林悌, 權應仁 등의 시가 걸려 있는데, 이들은 16세기 중후반의 학술사와 문단을 주름 잡던 문인들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개별 작가의 문집과 김위의 문집인 『晩翠先生文集』 부록에 수록된 만취정 제영시를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났다. 첫째, 만취정 제영시를 창작한 이들이 김위와 동시대에 활동한 시인이라는 점과 지역적으로 호남을 주축으로 하면서 당대의 내로라하는 시인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만취정은 문학의 교류장만이 아니라 지역 시인들의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문화의 교류장이었다. 둘째, 「만취정」은 七言律詩로, 김위는 2수를 창작했고, 이 시에 차운한 시는 12제 15수이다. 김위는 뜬구름 같은 영욕을 버리고 조그마한 田畓에 安分知足하는 삶을 추구하였다. 이에 차운한 시들은 김위의 절조를 칭송하면서도 푸른 하늘과 맑은 연못에 착안하여 만취정을 鳶飛魚躍의 天理가 구현되고 있는 공간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또한 만취정 옆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소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故事를 활용하여 김위의 절조를 칭송하는 동시에 시속에 영합하는 세상사람들을 질타하였다. 셋째, 「晩翠亭10詠」은 만취정 주변의 10가지 풍경을 읊은 시로, 김위의 시에 대해 화답시 형식으로 7명의 시인이 창작하였다. 「平沙曉月」에서는 갈대꽃을 눈발에 비유하거나 달빛과 눈빛이 다투어 눈부신 새벽을 연출한다고 하는 등 감각적이고 참신한 표현이 돋보였다. 「澗邊蒼松」에서는 소나무의 대표적 이미지인 절조이외에 솔잎과 솔가지가 연출하는 음악 소리, 단단한 목질을 가진 재목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新店秋砧」과 「鐥淵村燈」은 백성들의 일상을 다룬 시인데, 김위는 정겹고 훈훈한 모습을 노래하고, 林悌와 權應仁은 밤늦도록 세금에 시달리는 고단한 모습을 노래하여 엇갈린 시선이 보였다. 넷째, 산견되어 있는 만취정 제영시를 한 데 모아 분석하는 과정에서 宋純, 林悌, 黃廷吉, 林芑, 鄭淹의 시를 새로 발굴하였다. 奇大升의 「題詠」, 李達의 「次長律韻」처럼 작품의 대상이 모호했던 시가 만취정을 대상으로 읊은 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사히신문』 외지판에 나타난 금강산 인식 -「조선잡관」과 《대금강산보》를 중심으로 -

이부용 ( Lee Bu-yong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129-163 ( 총 35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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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제강점기 금강산 인식에 대해 조사하고자 1930년대 후반 『아사히신문』 외지판을 분석하였다. 첫째로 세키구치 다이의 「조선잡관」 제2회 금강산기사를 고찰했다. 여기서는 금강산을 파악할 때 일본 내지의 산들과 비교하여 그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산들을 서열화하고 분류하는 인식은 시가 시게타카의 『일본풍경론』(1894)에서 시작된 것인데 금강산은 일본 산들의 풍광에 못 미친다고 평가되면서도 관광개발의 효용은 큰 것으로 인식되었다. 1930년대 후반에는 1940년에 개최 예정이었던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금강산 국립공원화 계획이 논의되었으나 전쟁의 심화로 올림픽은 취소되고 국립공원화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둘째로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영화 《대금강산보》에 관련된 일련의 기사를 분석했다. 이 영화는 무용가 최승희가 주연을 맡았는데 『아사히신문』 외지판에는 로케이션부터 개봉까지의 과정이 일자별로 상세히 소개되었다. 이러한 기사들은 신문의 독자들에게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금강산에 대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계기를 제공했다. 조선총독부는 이 영화를 통해 내선일체와 관광 활성화를 꾀했다. 영화에서 금강산은 이국적인 조선풍 춤과 노래로 채색되었다. 즉 금강산은 아름다운 이국의 땅으로 미화되었으며 거기에는 식민지 조선의 표상이 덧씌워졌다. 두 사례에 대한 고찰을 통해 『아사히신문』 외지판에는 금강산을 일본 산들의 연속선상에서 파악하는 인식과 일본의 관광자원으로서 이용하려고 하는 인식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1930년대 후반 『아사히신문』 외지판 기사는 금강산의 풍경 및 자원의 실제적 이용과 그것을 촉진시키기 위한 추상적 이미지 형성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집요하게 준비해 온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성규 영화에 나타난 강릉의 재현 방식과 지역 표상의 새로운 가능성

이주라 ( Jura Lee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165-195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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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성규 영화에 나타난 강릉의 재현 방식을 통해 한국 대중매체에 나타난 지역 표상의 한계점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재현 방식의 가능성을 찾아보고자 했다. 강릉이라는 도시는 아름다운 자연을 기반으로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강릉의 지역성 자체를 재현하기보다는 강릉을 보편적 자연의 상징으로만 소비한다. 또는 전형적인 관광지가 가지는 공간적 특성에만 주목한다. 이와 달리 조성규의 영화는 강릉이라는 지역 자체의 정체성을 탐구하였다. 처음에는 강릉이라는 공간이 여행지로서 가진 매력에 관심을 가지지만, 10년의 기간에 걸쳐, 조성규의 작품은 지역의 생활과 일상에 대한 관심으로 깊어져 갔다. < 맛있는 인생(Second Half) >과 < 두 개의 연애(Two Rooms, Two Nights) >에서 강릉은 단순한 여행지였다. 하지만 < 내가 고백을 하면(The Winter Of The Year Was Warm) >과 < 게스트하우스(Guesthouse) >에서는 강릉이라는 도시에 내재하는 일상과 일탈의 욕구를 동시에 재현하였다. < 각자의 미식(Beautiful Food) >과 < 재혼의 기술(Remarriage Skill) >에서는 강릉이라는 도시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지역의 일상이 관광지라는 표상과 어떻게 대립하는지 형상화 하였다. 관광이 중심이 된 지역 도시의 정체성은 언제나 관광과 생활의 대립과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조성규의 영화는 이러한 대립과 충돌의 지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지역을 둘러싼 현실 담론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전남 진도 지역의 음장과 운율 구조

하영우 ( Young-woo Ha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197-221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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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전남 방언의 음장 실현 양상과 운율 구조 간의 관계를 방언의 변화관점에서 논의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전남 진도 지역의 토박이 화자를 대상으로 음장과 운율 구조에 관한 음성 실험을 실시했다. ‘장음 > 단음’의 길이 구조를 바탕으로 볼 때 전남 진도 지역의 음장 실현률은 타 방언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다만 세대와 성별에 따라 음장 실현률이 ‘노년층 남성 > 노년층 여성 > 청소년층 남성 = 청소년층 여성’의 경향을 보였다. 이와 달리 장음의 운율구조를 기반으로 한 음장 실현 양상은 세대에 따른 차이가 극명히 나타났다. 장단음 정보를 운율 구조에도 명확하게 반영하는 세대는 노년층에 한정되었으며, 청소년층은 장음 정보를 운율 구조에 반영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즉, 운율 구조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전남 진도 지역의 청소년층은 음장이 소멸 과정에 들어선 것으로 생각된다. 전남 진도 지역의 음장 실현이 길이 측면과 운율 구조적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 데 대해 본고에서는 후자가 이 지역의 장단음 양상을 보다 잘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장단음의 길이 차이는 경향성을 보여 주는 데 그치지만 장음의 운율 구조 반영은 규칙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전남 진도 지역의 음장 실현 양상은 세대를 주요 변수로, 성별을 부차 변수로 하여 차이를 보인다. 노년층은 높은 음장 실현률을 보이나 성별에 따라 ‘남성 > 여성’의 부분적 차이가 있으며, 청소년층은 성별과 관계없이 음장이 소멸 단계에 놓여 있다.

청주 집경시의 지역적 특성

박연호 ( Park Youn Ho )
민족어문학회|어문논집  89권 0호, 2020 pp. 223-264 ( 총 42 pages)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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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청주 지역을 대상으로 한 지역학 연구의 일환으로 청주를 배경으로 창작된 집경시를 통해 청지의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청주를 배경으로 창작된 집경시는 모두 14종이며 대부분의 작품이 17C-18C초에 창작되었다. 이에 14종의 청주 집경시와 한국학종합DB에 수록된 자료 중 17세기~18세기 초반까지 창작된 전국의 집경시를 비교하여 청주 집경시의 지역적 특성을 살펴보았다. 집경시는 특정한 지역을 일련의 한시를 엮어 노래한 작품이다. 본고에서는 청주 집경시의 특징을 첫째, 陶淵明 code, 둘째, ‘釣魚’ code, 셋째, 현실 비판의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은거를 표방한 집경시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 소재가 ‘도연명’과 ‘조어’이다. 일반적으로 집경시에서 도연명적 삶은 탈속한 전원 생활의 즐거움이나 소박한 흥취, 풍류 등이 부각되며, ‘釣魚’는 세속과 격절된 강호에서의 忘機와 閑興을 표상하는 코드로 사용되었다. 대부분의 은거를 표방한 집경시의 초점이 현실에 대한 관심이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보다는 安貧樂道나 전원생활의 즐거움에 맞춰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과 경기, 충청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와는 성격이 다른 시들이 발견돼 주목된다. 이 지역 집경시 중에는 도연명 code 중 출처의리, 조어 code 중 강태공의 出仕와 治世,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있다. 청주 집경시에는 위 세 가지 특징이 모두 나타난다. 그런데 청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런 작품들이 모두 서울, 경기 지역의 집경시나 중앙에서 관료생활을 하다가 정치적 환란으로 뜻을 접은 작가들에 의해서 창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청주 집경시는 영호남의 집경시와 비교하여 서울, 경기 지역의 특성을 상대적으로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주 집경시의 이와 같은 특징은 당시 청주가 중앙과 지방의 경계라는 지리적 특성과 조선후기 정치권력의 근거지였다는 정치적 특징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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