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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검색

CHINES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중어중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294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07권 0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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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의 요지는 三綱領과 八條目이며, 그 정수는 ‘絜矩’로 집약된다. 즉, ‘絜矩’는 治國平天下의 요체로서 三綱領의 ‘明德’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에 漢代 ‘明德’의 인식의 차이에 따라 鄭玄과 朱熹의 ‘絜矩’와 ‘慎獨’의 ‘獨’의 해석이 달리 나타난다. 鄭玄은 ‘絜矩’의 ‘絜’은 ‘結’로, ‘矩’는 ‘法’으로 해석하였다. 즉, 정현은 ‘絜矩(결구)’란 위정자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범으로,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성취된 明德으로 인식하여 賞善罰惡의 준칙과 공명 무사의 대의를 밝히는 明德을 지닌 위정자만이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治國平天下)는 의미에서 ‘絜矩’를 주석하였다. 반면, 朱熹는 ‘絜矩(혈구)’를 “因其所同, 推而度物”이라 주석하였다. ‘因其所同’이란 즉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된 마음 즉 본체의 의미와 絜矩를 통해 治國平天下에 이르게 되는 功效處의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즉, 朱熹의 絜矩는 ‘본체와 작용’의 의미 모두 내포되어 있다. 이는 송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더욱 그 의미가 확장되어 추상적이며 내재화되어가는 경향을 띠며, 추후 유학사에서 큰 영향을 남기고 있다.

송양공(宋襄公)을 위한 변명(辨明) ―신(信)과 춘추시기(春秋時期) 패주(覇主)의 자격

김광일 ( Kim Kwang Il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23-50 ( 총 28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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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春秋》와 三傳을 통해 宋襄公의 모순적ㆍ문제적 행적을 齊桓公 사망 전후의 국제정세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탐색하는 데에 있다. 특히 패주 시스템을 구동하는 데에 “信”이 어떠한 위상과 의미를 갖는지 정밀하게 고찰하여, 춘추 시기의 시대적 지향과 문화적 공동체의 형성을 새롭게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제환공은 패주 시스템을 개발하여 구축한 창업자이긴 하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구동하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주나라 문화권 외부와 접촉과 갈등이 심화하면서 제환공의 패주 시스템은 확장과 보수의 과정에 있었다. 제환공 사망 전후 약 20년의 혼란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송양공은 이 시기에 등장하여 晉獻公ㆍ秦穆公ㆍ晉惠公ㆍ晉文公ㆍ楚成王ㆍ鄭文公 등 여러 주체와 직간접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패주 시스템의 작동 방식과 한계를 모색한 인물이었다. 《춘추》와 三傳에서 그린 송양공의 행적과 평가는 당시의 혼란만큼이나 모순적이고 입체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송양공이라는 인물 자체가 패주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상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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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4-16세기 오산선승의 지식은 사찰 안에서만 공유되는 지식이 아니었다. 일본의 권력 층과 공유하는 지식이 되었고 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당시 일본의 권력층이 중국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본고에서 필자는 오산선승들이 중국의 그림, 중국 관련 그림 주제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중국에 대해 어떠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그들이 중국과 관련된 그림을 어떻게 공유하였는지를 살피고 그 과정에 그들의 패트론과 어떻게 조우하였는지를 고찰하였다. 둘째, 그들이 그림에 시를 쓴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그들은 중국과 관련된 인물과 이야기, 산수 및 전원에 대한 그림을 보고 시를 쓰면서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특히 중국 관련 그림은 막부 권력자의 요구에 의해 그려지고 소장되었으며, 그 그림에 찬시까지 더하여 장군의 저택을 장식하는 요소로 사용되었음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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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의 《五倫全備記》 판본 연구에서 계명본 《五倫全備記》의 의미는 자못 크다. 불완전한 판본이었던 규장각본에 비해 완전하면서도 더 이른 16세기 초의 완전한 남희 판본으로 중요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 중국희곡사 연구상의 가치를 지닌다. 최근 丘濬의 序(1450)와 수정보완자 靑錢父의 발문(1510)이 있는 계명본이 바로 《五倫全備諺解》가 언급한 바의 古本이며, 1510년에서 1531년 사이에 조선에 수용된 가장 이른 판본 계통임을 밝혔다. 1541년경 사역원에서 《直解小學》을 폐하고 《五倫全備記》를 채택하여, 명종(1546-1567) 시기에는 이미 교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아직 언제 사역원에서 《直解小學》을 《五倫全備記》로 대체하였는지, 또 언제부터 《五倫全備記》가 고본에서 금본으로 바뀌었는지 확실한 기록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본문에서는 이 계명본의 독자이자 소장자로서 정경세(1563-1633)에 주목하였다. 그가 이 판본에 남긴 흔적을 통해, 16세기 초에 조선으로 유입된 《五倫全備記》 古本의 저본이 16세기 중반에는 司譯院에서 채택되고 古本으로 편집 간행된 이래, 鄭經世가 1609년경 冬至正使로 가게 되면서 이 판본을 접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古本은 누차의 판각으로 인해 당시에는 이미 간행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으므로, 그 후 1570년 赤玉峰道人의 序가 있는 규본 저본이 확보되자 새로 판각하여 고본을 대체하게 되었으니, 이 규본이 今本으로서 언해의 저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계명본은 특히 鄭經世의 手澤本으로, 조선 최고 禮學者의 손에서 열독되고 교감이 이루어진 판본이라는 점에서도 큰 가치를 갖는다. 작가 구준과 志同道合의 정경세가 《五倫全備記》에 관심을 쏟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정경세야말로 구준의 창작 의도를 가장 잘 읽어낸 《五倫全備記》 독자로서, 조선의 《五倫全備記》 수용사에 귀한 흔적을 남겼다.

지방지(地方志)를 통해 본 청대(淸代) 중남(中南)지구의 세시행사(歲時行事)와 연희(演戱)

안상복 ( An Sang Bok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105-126 ( 총 2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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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에서는 《中國地方志民俗資料彙編ㆍ中南卷》를 통해서 淸代 中南지구에서 전개된 歲時行事와 演戲의 양상을 고찰한 다음 그것이 演戲史的으로 가질 수 있는 의미를 따져보고자 했다. 그 결과 歲時行事의 확산은 크게 두 가지 경로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하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확산되는 경로였고 다른 하나는 개별 도시의 경제적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확산되는 경로였다. 필자는 이 두 가지 경로를 통한 확산이 演戲史的으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상위 계층에서 하위 계층으로 公演文化의 저변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질적 演戲 양식의 반복적 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부연 설명하면, 淸代 中南지구에서 戲曲은 도시의 연례적인 歲時行事를 통해서 공연의 주류 양식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고, 그것을 배경으로 공연을 담당한 사람들은 현지 관객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聲腔劇種을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었다. 남중국 전체를 놓고 보면, 淸代 歲時行事에 수반된 演戲의 전개 양상은 지구별로 크게 변별되지 않기에 ‘大同’이라고 할 수 있고 단위 도시의 생태조건에 따라 작은 차이를 보이기에 ‘小異’라고 할 수 있다.

전승된 야만, 실존의 공간 ―17세기 여행기 《비해기유(裨海紀遊)》 속의 대만(臺灣)

최수경 ( Choi Soo-kyung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127-158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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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는 17세기 대만을 재현한 중국 문인들의 여행기를 통해 당시 타자의 시선이 구성한 ‘대만다움’의 담론이 구성되는 과정, 그리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대만은 1684년 청 제국에 합병된 ‘새로운 변경’이었지만 텍스트에 재현된 대만의 경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선례와 참조체계를 지닌 유형화된 공간이기도 했다. 명대 이전 문헌에서는 대만을 상상과 현실이 착종된 모호한 공간으로 묘사하였다. 17세기부터 대만을 실제로 방문한 중국 문인들의 여행기가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고대의 문헌에 기록된 해외 국가들을 묘사하는 패턴에 따라 대만의 사물을 인식하고 표현하였다. 물론 유사한 수사가 만들어내는 의미는 각기 달랐다. 《東番記》는 대만을 고대의 이상향으로 의미화한 반면 《臺灣紀略》은 야만적이고 추악한 오랑캐의 땅으로 그렸다. 17세기 말 대만에 가서 8개월간 체류했던 郁永河는 《裨海紀遊》에서 두 가지 층위의 서사를 운용하였다. 異域 서사에서 그는 대만의 낯선 경관들을 ‘감시’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정의내리고 분류하였다. 그는 여기서 획득한 대만의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며 계몽론으로 귀결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차원의 서사인 고난 서사에서 대만은 예측 불가능한 괴로움과 고통의 땅으로 묘사되었다. 선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17세기의 대만 재현은 여전히 ‘언어 우위적’ 특성을 보이고 있지만 욱영하의 고난 서사는 일시적이나마 감시의 시선과 계몽 담론에서 벗어나 대만의 공간과 사람을 보다 실존적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질문의 시대: 5 ㆍ4 문화운동과 사회개조론의 재독

천진 ( Cheon Jin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159-190 ( 총 32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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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과 5·4운동과 같은 민(民)의 직접행동은 제국주의의 팽창적 소유충동이 세계의 지배적인 힘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이러한 세계와 불화하며 질문을 했던 사건이라 할 수 있다. 1919년 민의 집합의지가 외침과 행동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 글은 중국의 1910년대의 문화운동과 5·4 전후의 사회개조론을 두텁게 읽어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1919년 전후 세계의 지배적 힘을 질문하고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고 자기결정하려는 동아시아의 문화 공간에서의 마음의 운동(心力)의 맥락을 풍부하게 포착한다. 자기 결정권은 민족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보호권력 아래 어린아이와 같은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를 긍정하고 책임지는 독립된 개체가 되고, 나아가 호조, 우애, 수평적 연대 등을 지향하며 공통의 삶을 구성하려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불완전한 신해혁명을 성찰하는 가운데 ‘공화’ ‘국가’의 실질을 질문하며 성찰하고 확충하려는 이러한 마음의 운동은 윤리적인 것을 휘발시킨 채, 예(禮)라는 명목으로 권력을 증식시키는 예교(禮敎) 정치와 불화하며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을 질문하고 새롭게 모색한다. 윤리혁명은 기존 등급질서의 인식과 도덕감정을 성찰하고, 타인과 연결하는 감응 능력을 토대로 수평적 연대의 상상력을 모색한다. 또한 1차세계 대전을 계기로 세계 공화, 세계 시민, 인류가 구성할 공통의 삶이 무엇인지를 주어진 공리에 의존하지 않고 모색하며 정신과 물질을 매개하는 공동의 삶을 노동의 경험의 세계를 실험한다. 이러한 마음의 운동들은 근본적인 개조를 지향한다. 5·4 전후 문화운동의 개조의 열망과 상상을 두텁게 읽음으로써, 이 시대가 질문과 논쟁의 터가 되는 사상의 지대로서의 가능성이 없는지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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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1936년 10월에 발표한 〈루쉰 추도문〉을 중심으로 그 이전에는 저널리스트의 신분으로 주로 시사평론을 발표했고, 그 후로는 문학가의 신분으로 시와 수필 및 문예비평과 문학번역의 글을 발표했다. 〈루쉰 추도문〉은 ‘이육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이육사의 글쓰기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지대에 놓여 있었던 만큼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 〈루쉰 추도문〉은 저널리즘적 글쓰기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던 만큼 이육사가 그것을 집필할 때 일역본(日譯本) 《루쉰선집(魯迅選集)》에 수록된 〈루쉰전(魯迅傳)〉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참조한 것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루쉰 추도문〉은 이육사 자신의 당면한 문제의식이 깊이 침투되어 있어 〈루쉰전〉보다 훨씬 힘 있는 글이 되고 있다는 데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준다. 이육사는 루쉰의 전기적(傳記的) 사실, 루쉰 작품에 대한 분석, 루쉰 문학의 리얼리즘적 특성, 농민작가로서 루쉰의 작가적 위상, 진정한 프로문학 건설을 위한 루쉰의 노력 등을 서술하는 데 〈루쉰전〉를 참조했지만, 자신의 절박한 문제의식을 침투시켜 루쉰 문학을 통해 ‘예술과 정치의 관계’ 및 진정한 리얼리즘의 ‘창작 모랄’을 예증(例證)하고자 했다. 그는 루쉰 문학 비평을 통해 ‘예술이 정치의 선구자인 동시에 혼동도 분립도 아닌’, ‘예술과 정치의 관계’ 및 ‘현실의 진실하고 정확한 묘사’라는 진정한 리얼리즘의 ‘창작 모랄’을 예증함으로써, 당시 한국 문단에 강한 메시지를 주는 동시에 자신의 시창작의 실천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진정한 리얼리즘의 창작방법을 구축해나갔던 것이다. 또한 이육사는 민중의 삶의 진실을 ‘리얼리틱’하게 묘사한 작품을 중시하여 중국의 농촌 현실과 농민(민중)의 삶을 ‘진실하고 명확하게 묘사해낸’ 루쉰의 〈고향〉을 번역했다. 시사평론인 〈중국 농촌의 현상(現狀)〉이라는 글을 통해 중국 농촌의 피폐한 현실을 심각하게 분석한 바 있는 이육사에게 〈고향〉은 우선적으로 번역되어야 할 작품이었다. 이육사는 《루쉰선집》에 수록된 일역본에 의거해 〈고향〉 작품을 번역했지만, 형상적인 언어를 즐겨 사용하여 한국어의 묘미를 한껏 살리고, 문맥의 자연스런 연결을 위해 구절이나 어휘를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등 의역을 시도하며 유려한 소설적 문체로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은 창조적 번역으로서 번역문학의 전범(典範)으로 보아 손색이 없으며, 한국의 루쉰 문학 독서사(讀書史)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혁명의 번역: 루쉰의 ‘경역’에 대한 재고찰

김은영 ( Kim Eunyeong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221-249 ( 총 2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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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직역주의 및 탈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루쉰의 ‘경역'을 재고찰한다. 루쉰은 교육수준이 높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번역에 있어 일관되게 직역의 방식을 고수했으나, 이는 원천 텍스트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직역의 이상을 근본적으로 좌절시키는 번역가의 죽은 모국어 및 이에 기반한 주관성과 세계관을 드러내기 위해 경역을 선택하였다. 그의 경역은 ‘삶기’와 ‘씹어 먹기’라는 두 개의 과정으로 구성되는데, ‘삶기’가 자아의 주관성과 세계관을 해체하는 과정이라면 ‘씹어 먹기’는 그렇게 해체된 입자들이 완전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도록 주관화된 타자상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자아와 타자 모두에 대한 혁명이기도 한 이 같은 이중의 해체를 통해, 루쉰의 경역은 답보 상태에 빠진 듯한 기존 탈식민주의 담론에 돌파구를 제시한다.

초기 《문예보》와 1950년대 중국 문학장

성근제 ( Seong Geunje )
한국중국어문학회|중국문학  107권 0호, 2021 pp. 249-269 ( 총 21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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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50년대 초반 《문예보》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1950년대 중국 문학장의 일면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문예보》는 1949년 창간된 ‘문련’의 기관지이며, ‘국가급 간행물’로 지정된, 중국공산당의 핵심 간행물 가운데 하나이다. 1950년대 중국 문예계의 중요한 이슈 토론과 논쟁들은 대부분 《문예보》 지면을 통해 전개되었다. 때문에 《문예보》는 당시 중국의 문학장 형성 과정의 주요한 이슈와 특징을 살펴보기 위한 매우 적절한 연구대상 텍스트이다. 이 논문은 《문예보》에 대한 분석을 통해 1950년대 중국 문학장 내부의 갈등을 격화시킨 구조적 원인 가운데 하나가 문예 간행물과 조직에 대한 등급화 제도와 그 부작용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펑쉐펑, 후펑, 띵링, 천치샤 등, 1950년대 중국 문예계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은 사람들 모두가 《문예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이었던 것은 국가 간행물 제도가 당시 중국 문학장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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