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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9권 0호 (2005)

식민지 시기 검열과 1930년대 장애우 인물 소설

한만수 ( Han Man-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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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문학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장애우인물의 급증에 있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이 현상이 구술에서 문자로의 이행, 검열, 한국지식인들의 근대에 대한 열망과 좌절 등과 관련된다고 판단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문자보급과 문자문학을 근대적 계몽의 주된 수단으로 삼았다. 문맹(文盲)이라는 단어는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는 문자미 해독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서구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어이다. 즉 구술성을 근대미달의 장애로 인식하는 은유인 바, 여기에는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들의 근대에 대한 열망이 담겨있다. 1930년대 장애우인물 중에서 시각장애우 인물의 비중이 현실의 장애인 비율보다 훨씬 더 높다는 점은 이와 유관하다. 이 은유의 작품화가 바로 장애우인물 소설이다. 문맹이라는 (단어적 차원의) 은유는 식민지 상황에서 근대화에 대한 열망과 좌절, 검열, 문맹퇴치운동 등 당대 상황들 속에서 생성되었고, 다시 장애인물(특히 시각장애우 인물)과 구술대중을 동일시하는 작품 차원의 은유를 낳았다. 특히 1930년대에 활발했던 문자보급운동을 거치면서 지식인들은 국권상실의 원인을 구술대중에게 투사하게 되었다. 한편 문자보급이란 식민권력의 주요한 정책적 목표이기도 했다. (식민지적) 근대화를 위해서는 문자매체의 활성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총독부로서는 문자보급과 근대적 문자문학이 근대문학의 기여중 하나인 근대적 민족(독립)국가 형성에로 나아가는 것은 막아야 했으므로 검열을 통해 이를 탈정치화하고자 했다. 특히 역설적이게도 문자화란 검열을 효율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제이기도 했다. 구술되는 ‘소리’는 사전검열이 불가능했으므로 총독부는 모든 구술을 억압하였던 것이다. 구술에서 문자로의 이행은 근대화의 보편적 현상이지만, 식민지 조선에서는 검열장으로서의 성격을 강력하게 띠게 되었다. 장애우 인물 소설에서는 장애우 인물과 조선/조선민중/구술문화를 동일시하면서(이 역시 은유이다) 그들의 현재적 상황에 대해 자기연민을 보이고 있는 바, 이는 문자보급이 지니는 이중성과 연관된다. 강제합병과 동시에 거의 모두 판매 금지되었던 민족영웅전이나 외국근대담이 민족(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면, 장애우 인물 소설에서는 미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소멸하고 현재에 대한 책임론과 자기연민에 집중된다. ‘문맹’과 장애우 인물 작품이라는 두 은유를 통해서 지식인작가들은 검열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을 계몽의 소주체로 인식할 수 있었다.

1920年代 前半期 『每日申報』의 反-社會主義 談論 硏究

박헌호 ( Park Heo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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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탄압을 받았던 사상이다. 일제는 다양한 정책과 폭력을 동원하여 사회주의를 탄압하는 한편,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기 위해 반-사회주의 선전을 지속적으로 실행했다. 매일신보 는 그 중심적인 매체였다. 일제는 매일신보 지면을 통해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말미암아 굶주림과 무질서의 국가로 전락했음을 강조하는가 하면, 사회주의를 성적 방탕의 대명사로 인식시키는 선전 전략을 구사했다. 무질서와 성적 방탕은 이후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핵심 개념이 됐다. 일제는 사회주의의 철학적 기반인 ‘유물론’을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혹은 정신적 가치를 무시하는 물질지상주의적 철학으로 왜곡시키기도 하였다. 이 시기, 매일신보 에 나타난 반-사회주의 담론은 이후 지속되는 일제의 반-사회주의 선전의 핵심을 선취하고 있다. 일제의 반-사회주의 선전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한국 근대사상사를 굴절시키는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식민지 시기 문인기자들의 글쓰기와 검열

박용규 ( Park Yong-g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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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 문인들 중 상당수가 생계의 유지를 위해서, 또는 발표의 장을 확보하기 위해 기자로서 활동했다. 작품 활동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웠고, 그나마도 작품 발표의 기회를 잡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신문사 입장에서는 훈련 받은 기자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당장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문인들을 기자로 채용했던 것이다. 또한 원고료를 제대로 줄 수 없는 재정 상황 속에서 신문이나 잡지의 문예물 중상당수를 소속 문인기자들이 해결해 줄 것을 기대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1920년대부터 이미 미디어에 대해 일제의 강력한 통제가 가해졌고,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서는 최소한의 비판적 내용조차 용납되지 않는 가혹한 탄압이 행해졌다. 한편 미디어들로서는 자본 규모가 커지고 경영도 안정되면서 압수와 같은 탄압이 가져 올 경제적 손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이것은 곧 내적 통제를 가져와 기자들이 이제는 경영진이나 편집간부들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외적 통제뿐만 아니라 내적 통제까지 받으면서 활동해 가는 과정에서 점차 자기 검열을 하게 되었다. 기자로서의 활동이 문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식민지 시기 작품 활동을 하며 검열을 경험했던 사실을 털어놓고 있는 문인들 중 대부분이 당시에 기자로서도 활동했던 인물들이다. 내적 통제가 강화되면서 검열에 더 민감했던 문인기자들은 검열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검열을 피해가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적어도 기자로서의 경험을 지닌 문인들이 검열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른 문인들에 비해 더 적극적이었다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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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본 미대를 졸업했던 첫 조선인 중 하나인 나혜석(1896~1949)의 역사적인 특징들을 비평적인 관점을 통해 살펴보면서, 1920년대와 1930년대 신여성의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초창기 신여성의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전례없는 정체성 형성을 분석할을 것이며, 신여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로운 여성성을 구경거리고 설정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나혜석과 식민지 조선 대중들 사이의 관계는 일종의 뿌리깊은 상호간 오해이다. 나는 몇몇 측면에서 비정상적인 인물로 간주되는 자아인, 이례적인 한 개인과 “정상적인” 사람들인 대중사이의 관계란 다양한 형태의 가시성과 물질성(visibility and materiality)의 특징을 띠고 있음을 제시할 것이다. (식민지하의) 근대성과 서구 이념에 대한 신여성의 접근은 특권적인 물질적 조건이 부여된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이러한 조건을 통해 유럽과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 동시에, 초기의 자본주의와 인쇄 매체 문화를 통해 대중들은 초창기 유명인사를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에서, 신여성 삶에 대한 대중의 투자와 독법은 엄청난 수준의 호감, 찬사 그리고 판단의 근거를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식민주의에 관한 논의를, 나혜석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시대와 신여성의 성공과 실패를 구현함으로써 그녀의 심리적인 거부감과 자아의 분열로 귀결된 통합된 폭력으로 결론지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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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30년대 박태원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신경쇠약이 개인적인 것과 근대성이 지닌 모순 그리고 압박감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형상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논한다. 신경쇠약은 하나의 질병 모델로서, 상대적으로 폭넓은 범위의 잠재 요인과 증상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고, 이런 맥락에서 이 질병 모델은 여러 상이한 시대와 장소들에서 쉽게 사용될 수 있었다. 필자는 조지 비어드(George Beard)의 저술들을 통해서 “부정형적 가능성(amorphous possibility)”인 이 질병이 나타나는 원인들에 대한 설명을 찾아 확인해보고, 그 다음으로는 동아시아의 상황에서, 특히 동아일보 에 실린 일련의 기사들에서 이 질병이 어떻게 특징적으로 설명되고 있는가를 검토해본다. 필자는 이 기사들 속에서 신경쇠약의 원인에 대한 강조점이 외적인(사회적인) 병인에서 정신적인 병인으로 이동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이러한 측면은 박태원의 소설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두 명의 신경 쇠약 환자가 식민지 수도인 경성에서 제국주의의 중심 도시인 동경으로 이동하는 양상에서 반영된다. 필자는 신경쇠약에 대한 재현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미묘한 변화가 이 질병이 지닌 애매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며-이 질병이 개인적 타락을 나타내는 위험한 징후이면서 동시에 성공적인 근대화의 표지로서 기능한다는 점에서-앞으로의 연구는 이 애매성이 식민지 근대성 자체의 근본적인 모순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탐구함으로써 유의미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단일 언어 사회를 향해

서석배 ( Suh Serk-b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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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독립을 이룬 한국에서 국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지녔던 관점들을 분석하였다. 정치적인 입장의 광범위한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식인들의 스펙트럼은 전반적으로 동질적인 민족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어의 사용을 억압하고 한국어를 엄밀하게 표준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동의를 표하였다. 나는 이 논문에서 식민지 기간 동안에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당하다가 결국 독립 이후에는 오직 한국어를 사용하도록 다시 한번 강요를 당해야 했던, 한국인 세대의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지는 경험에 대해서 특히 더욱 관심을 기울였다.

석정 이정직 시론의 형성 과정과 문예론적 검토

구사회 ( Gu Sa-wh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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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말의 시인이자 실학자였던 石亭 李定稷의 詩論에 대하여 고찰했다. 먼저 시론의 형성 과정을 먼저 살핀 다음, 그것의 내용을 검토했다. 논의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석정은 당대까지 내려왔던 시에 관한 관점을 정리하여 여러 방식으로 비평을 하거나 의론하고 있다. 석정의 시론은 ‘性’을 위주로 문학적 관점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情’을 중시하는 神韻論이나 性靈論에 대하여 경계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자연히 그의 시론은 格調論이나 肌理論에 더욱 우호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석정 시론은 본질론과 창작론으로 대별된다. 석정 시론의 본질론은 성정론과 시경론이, 창작론은 학시론과 작시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성정론에 있어서는 ‘天性’을, 시경론에서는 ‘風雅’의 정신, 창작론에서는 학식에 바탕을 두는 ‘博悟’의 경지를, 작시론에서는 ‘理法’의 원리를 각각 강조했다. 성정론과 관련하여 석정은 시속이 변해도 인간사와 관련된 天性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으며 시인은 마땅히 시세에 따라 변하지 않는 시를 지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경지에서 우러나온 시가 雄渾超逸이라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경론과 관련하여 석정은 시를 고대의 시경 에 근본을 두면서 그것이 풍아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시를 지으면서 방자하고 날카롭거나 부박한 시풍을 버리고 고대 시경의 풍아가 지닌 진실하고 넉넉하며 순수한 시정신을 되찾자는 의미였다. 학시론과 관련하여 석정은 선천적 자질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의 학력을 중시하는 시론이었다. 석정은 자신이 설정한 고도의 시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 천성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후천적인 노력의 학력에 바탕을 두는 ‘博悟’의 과정을 거쳐 ‘造化’의 경지에 들어간다고 보았다. 作詩論과 관련하여 석정은 자신이 언제나 ‘理法’을 위주로 시문을 짓고 있다고 말하였다. 석정에 의하면 시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법의 주도면밀한 의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시작에 있어서 지나치게 이법을 염두에 두면 시가 너무 인위적이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에 대해서 이법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천의무봉의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석정 시론은 전통적으로 자리를 잡아온 심성을 중시하는 효용론적인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청 고증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석정의 시론은 역사적 격변기에 처해서 당대 현실에 대처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지나치게 복고적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20세기 초엽까지 전개되었던 한국시론사를 풍성하도록 일조했던 마지막 시기의 시론가였다고 규정하였다

김억(金億)의 격조시형론(格調詩形論)에 대(對)하여

구인모 ( Ku In-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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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이후 김억은 근대적인 자유시론을 전개하면서, 서정적 주체의 사적인 음성 혹은 내면과 판단이 아니라, ‘향토성’과 같은 조선인의 원초적인 공통심성, 그리고 그러한 심성을 공유하는 전근대적 구술사회의 항상성 속에서 민족의 실체를 현존하게 하고자 했으며, 결국 정형률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같은 김억 등의 국민문학론은 일본다이쇼기의 근대자유시의 전개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특히 가와지 류코의 정음자유시론은 김억의 문학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김억의 문학론은, 1920년대 국민문학론의 시가개량의 논리가 하나의 민족 이데올로기임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러나 그의 향토성 개념은 국민국가가 부재한 1920년대 조선에서는 기의가 부재한 채 기표만 존재하는 개념일 뿐이다. 또한 김억의 문학론은 ‘조선심’ 혹은 ‘향토성’, ‘민족성’, ‘국민성’을 둘러싼 외연이 아닌 그 함의와 직면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이해해야 하는 방법까지 제국의 자기 규정과 자기 확장의 논리를 통해서 스스로를 규정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의 운명으로 인해 결국 파국을 맞게 되었다.

김수온(金守溫) 시문학의 일 국면 - 불교적 시세계를 중심으로 -

김상일 ( Kim Sang-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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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崇儒排佛의 정책적 기조가 강제되던 조선전기에 儒家士大夫로서 불교 세계를 지향했던 金守溫(1409~1471)의 시세계를 살펴본 것이다. 김수온은 性理學[新儒學]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전기의 유가사대부였다. 따라서 그는 유교적인 의식과 규범으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異端으로 배척되었던 불교 세계를 지향하였고 왕실의 佛事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불교를 신앙하는 행위도 감추지 않았고, 드디어는 세조에게 出家를 탄원할 정도였다. 때문에 그는 儒林으로부터 ‘유가사대부로서 불승의 행동을 한다[儒名僧行].’는 비난과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儒佛融通論으로 이러한 비난에 대응하고 오히려 다스림의 방법으로 유교의 仁義에 의한 德化와 불교의 淸淨寡慾에 의한 無爲之治가 다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유불융통론은 유교와 불교가 ‘一心’이란 根源에서 보면 ‘一理’로 관통되어 있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담론이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서 불교 중심적 유불융통론이다. 한편, 김수온은 徐居正, 姜希孟 등과 더불어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館閣文學人이었다. 세종과 세조는 그의 문장력을 높이 사 많은 官 주도의 佛書의 諺解나 통치용 서적 편찬 사업에 참여시켰고, 성종은 그의 문집을 간행하도록 명하였다. 또한 중국사신과의 酬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그 명성이 중국에까지 났다. 그러나 그의 시문은 많은 양이 소실되어 전하는 것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당대 문단의 거수로 一家를 이룬 문장가였다. 특히 불교적 사유와 감성이 녹아들어 있는 작품들은 당시 성리학적 일색의 주제의식에 바탕을 둔 작품들과 그 미의식이 다른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 글은 먼저 그의 佛敎詩에 한정해 주제 의식을 중심으로 작품의 성격을 살펴보았는데, 그의 불교시는 승려들과의 交遊와 불교적 사유가 들어 있는 작품들이 중심을 이룬다. 승려들과 교유를 다룬 시는 시상이 이원적 구조로 짜인 작품이 많다. 이것은 사대부로서의 자신의 처지와 승려로서의 상대의 모습을 대비하고 세속적 환경에 묻힌 자신의 처지를 경계하면서 각자의 처지에서 추구하는 도가 결국은 하나임을 주제로 삼은 것들이다. 한편 불교적 사유가 반영된 시는 불교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의 세계가 녹아든 작품들이다. 이상에서 김수온의 유불융통론은 그 자신만의 孤聲에 그친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의 시문학은 조선전기 이후의 문학사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유불융통론은 미온적이고 절충적이긴 하나 성리학적 지배 질서가 專制的으로 구축되어 가는 과정에서 유가사대부쪽에서 제시한 儒佛同質論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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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龍灣忠義八壯士傳의 작품 세계를 병자호란, 특히 昭顯世子와 鳳林大君의 심양 인질 생활과 관련지어 살펴본 논문이다. 이 작품은 병자호란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기록한 實記과 병자호란을 소재로 한 小說의 성격를 모두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요소는 팔장사의 용력과 왕자들에 대한 충성담이다. 팔장사의 용력은 淸軍과 전투를 벌이는 백마산성 공방전과 朝淸 연합군이 明軍과 싸웠던 松錦戰役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병자호란과 관련된 전투는 주로 「임경업전」의 전투 양상에서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송금전역을 다룬 부분에서 실제 적군이었던 明軍이 아닌 당대 전혀 존재하지 않던 金軍을 적군으로 상정하고 있어, 尊周의 논의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팔장사의 충성담은 서문이나 본문 모두 화려한 수사로 크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잘 해서 무료한 인질 생활을 달래주고, 뇌물을 건네주어 비공식적인 협조관계를 맺고, 왕자들의 입맛에 맞는 물고기와 名醫를 구해오고, 왕자들의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게 보살피는 등 의주 사람들이 연행에서 담당하던 일상적인 임무에 불과하다. 즉 용만충의팔장사전 은 麟坪大君의 복권에 즈음하여, ‘의주 사람’들이 인평대군과 관려이 있던 조상들의 삶을 당시 널리 알려져 있던 ‘팔장사’의 형태로 꾸며내고, 인평의 후손들의 題詞를 받아 권위를 세움으로써, 자신들의 꿈을 피력하며 후손들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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