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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1권 0호 (2006)

고향, 근대의 심상공간

김태준 ( Kim Tae-j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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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이전부터 있어 온 개념이지만, 근대에 들어와 고향의 심상은이산(離散)의 소용돌이 속에서 편안한 땅에 대한 동경과 망향의 표상으로 발전되었다. 이 글에서는 재일 교포 작가 김석범(金石範), 만주의 독립군 김산(金山), 유랑한 여성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를 중심으로 ‘고향’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층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산·망명자에게 있어 고향은 삶의 원풍경이다. 새로운 뿌리내리기와 고향의 정체성은 자주 고국이나 민족과 중첩하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그 초극을 지향하기도 한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의 고향 찾기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임과 동시에 역사의 부활이며, 작가 스스로의 정체성의 부활이기도 하다. 역사에서 은폐된 주체들과 망각된 기억을 복원해가면서 김석범은 치열한 내적 투쟁을 통해 민족 역사의 자기 동질화를 도모하였다. 김산은 민요 「아리랑론」에서 고향의 운명, 민족의 현실을 아리랑 고개에 비유하면서, 삼천리 강산의 운명을 망명객으로서의 자신의 운명과 등치시켰다. 이는 근대 민족의 고향상실의 역사가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조선 젊은이의 민족적 동질성으로 고향(고국)심상의 정점에 자리함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태어나 식민지 조선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무정부주의자로 천황과 대결하다 죽은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소외감과 절망감에서 같이 버림받고 억눌린 자로서 조선 사람에 대한 공감의 정서를 키워왔다.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과 만나면서 고향을 찾은 안정감을 체험한다. 이 둘의 결합은 아나키즘의 이상으로서 ‘공동체(communities)’의 뜻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빼앗고, 종속시키는 타기할 대상이었다. 무정부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일종의 유랑의 정신이라고 할만한 그녀의 삶은 정주자(定住者)의 세계관을 교란시키는 삶으로 발현되고 그것의 가학성을 폭로하는 삶 속에서 빛을 발했던 것이다. 근대가 만든 극복해야할 제도로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고향의 꿈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식민지 타이완문학에서 ‘고향’의 계보

朱惠足 ( Chu Huei Ch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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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식민지 타이완에서 생산된 소설 텍스트를 대상으로 타이완 청년들이 다양한 위치에서 고향과 그에 의해 규정된 자신을 발견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발전이나 전쟁 등에 의해 인종, 성, 계급의 경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근대적인 세계 안에서 자신을 위치 짓고자 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데 있다. 1920년대 타이완 일본어소설과 함께 탄생한 타이완의 근대적 지식인은 제국 수도에서 수용한 서양의 보편성이나 문명화 담론을 통해서 고향의 특수한 문제를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도쿄가 상징하고 있던 보편성이나 문명화도, 그것을 통해 타이완의 봉건 사회를 ‘개조’하려는 그들의 계몽적인 이념도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렀다. 1930년대 타이완청년들은 도쿄의 국제문화와 프롤레타리아운동을 체험하고 물질의 유동과 계급적 연대에 의해 민족이나 인종의 경계를 초월하는 세계 안에서 고향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후 전쟁기에 접어들면, 일본에서 돌아온 타이완 청년이 자신이 유학했던 도쿄에 향수를 느끼거나 고향타이완에서 ‘일본’이 자리 잡게 되는 등, 고향의 개념은 더욱 복수화되어 간다. 그와 동시에 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인 타이완 지식인은 식민지 모국이나 조국에서 안주할 수 있는 고향을 희구하지만, 타이완인이라는 태생 때문에 그 어느 쪽에서도 거부된 채, 양국의 군사적 충돌의 현장으로 내몰리게 된다. 타이완 지식인은 일본의 ‘근대’ 담론에 의해 제시된 다양한 보편적 가치와의 관련 속에서 타이완을 위치 지으려 했다. 식민지 모국과 조국, 그리고 고향이 길항하는 가운데 안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나서는 다양한 여행을 통해서 식민지 타이완의 청년들은 고향 타이완이나 그 곳에서 나서 자란 자신이 제국과 식민지의 확고한 위계관계에 속박된채, 근대적인 국민국가의 결속과 귀속으로부터 배제되면서 그 부(負)의 부분을 짊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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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근대계몽기 당시 지역학회가 재경이라는 조건을 통해 구성되는 과정에서 서도·서북이라는 지역의 경계를 발견·구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학회에 소속된 다양한 부류의 개인들은 지역이라는 유대를 통해 일체화되었다. 그들은 문명화된 공간을 동경하고 야만적인 공간을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거주해야 할 특수한 중간적 시간을 형성했으며 서도·서북이라는 지역은 그것이 실체화된 공간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지역의 경계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다. 그들이 동경했던 문명화된 공간이란 사실 도쿄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유학생들은 문명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고 향유하는 과정을 통해 문명화된 일본인도, 일반적인 조선인도 될 수 없다는 존재론적 불안을 치유하고자 했다. 유학생들의 학회 결성, 야유회 등은 그러한 맥락에서 행해진 것이다. 그리고 도시 내부에서 그러한 불안이 구체화된 형태가 개인이 태어난 자란 장소를 특별한 형태로 연상하는 행위, 즉 회향(懷鄕)의 형식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재경과 유학이라는 두 가지 조건 및 문명개화와 관련된 사회적·문화적·심리적 태도가 가져온 인위적인 중립의 현전, 비동시성의 인식과 근본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거리와 단절이 그들을 돌아갈 곳이 없는 이방인으로 자각하도록 했다. 스스로가 이방인임을 깨닫는 순간, 회귀하고 싶은 고향이 창출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특히 「혈의 누」가 그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평양은 한국 근대문학에 처음으로 출현했던 고향의 표리이며 이율배반적인 형상이 된다. 서북 출신의 재경 인사들도, 일본에 유학하고 있었던 조선인 유학생들도 이러한 고향의 이율배반에 봉착하면서 비로소 새로운 공동성에 기초한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꾸게 되었다. 학회는 그러한 유토피아의 미니어처로서 구성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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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한국근대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조선으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그 ‘조선’은 흔히 모성의 공간인 ‘고향’으로 표상되었다. 조선의 시인들은 이 ‘고향’이야말로 근대문학을 가능하게 할 원천이자, 방법이고 또한 가능성이었다. 이러한 세계는 근본적으로 도구적 합리성이나 탈마법화를 경험하지 않은 세계이다. 1920년대 조선의 문학 청년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각을 통해 그러한 세계로서 조선을 고향으로 표상하면서, 혈연의 역사성과 동일성에 대한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가운데 민족의 관념을 표방했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 관념의 감각적 표상은 한편으로 그것이 조선 혹은 조선인이라는 집단이 역사적 변천 과정가운데에서도 어떻게 동일한 정체성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딜레마를 은폐하는 역할도 한다. 아울러 그것은 어머니와 고향으로서 조선이 사실은 부재하는 기표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은폐한다. 그 대신 조선의 시인들은 도리어 그 부재하는 기표로서 어머니와 조선이라는 고향을 보다 추상화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사정은 조선 문학자들이 운명적으로 감내해야 할 식민주의의 주박(呪縛)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에 나타난 ‘고향’ 표상과 고향의식

김현숙 ( Kim Hyun-s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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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歸去來辭’에 畵意를 둔 그림을 제외하면 근대시기 이전에 고향의식이 표면화된 예를 찾기는 어렵다. 귀거래사에서 귀향의 의미도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에 있기보다 탈속과 은거에 더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근대적 고향 의식과는 크게 다르다. 근대기 이후의 고향의식은 자연에의 귀의나 은거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현대적 삶의 패턴에서 이향은 보편화된 삶의 양태라고 할 수 있지만 일제 식민기, 남북 분단,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통과하면서 고향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이 출현한 점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이라 할 것이다. 인류의 고향이자 낙원인 綠鄕, 조선인의 지난한 삶이 내재된 황폐하고 적막한 향토, 온화한 기후와 풍토의 장소에 존재하는 누이와 치유와 생산을 담당하는 숭고한 존재로서의 어머니, 신체적 결별과 심리적 귀향이 교차하는 境界地 등이 근대미술 속에서의 고향 표상으로 주목된다. 고향의 원점에 전통, 민족, 국가를 공존시키고 민족 공동의 고향을 상상함으로써 개별적인 기억이 억제된 측면을 큰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강경애 「소금」의 복자 복원과 검열우회로서의 ‘나눠쓰기’

한만수 ( Han Man-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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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식민지시기 검열에 의해 변형을 겪은 많은 한국문학 텍스트 중에서 강경애의 단편소설 「소금」에 나타난 붓질 복자(인쇄 후에 붓으로 먹칠해서 지운 복자)를 복원하고 그 결과를 주로 검열과 연관지어 해석하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문서감식실 팀의 협조를 얻어 지금까지 판독할 수 없던 복자 188~192자 중에서 164자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복원률 85.4~87.2%). 이 판본의 경우 인쇄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판본의 인쇄 및 보존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판본의 경우도 대체로 이 수준의 복원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복원 결과는 작품 「소금」 및 검열우회 전략의 이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 있다고 판단한다. 1) 「소금」 작품에서 삭제된 것은 마지막 부분으로서, 세 차례에 걸쳐(조금씩 변주되면서) 제기되었지만 답변은 유예되었던 ‘우리는 왜 가난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 제공되는 대목이었다. 2) 삭제된 대목에서는 작중 화자 ‘봉염 어머니’가 ‘흉악한 살인자’ 쯤으로만 인식하던 ‘공산당원’을 오히려 ‘선생’이자 조력자로 인식하게 되는 극적인 인식의 전환이 드러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직설적으로도 표현되어 있거니와, ‘돈 많은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마지막에 ‘공산당원 / 선생’이 ‘돈 많은 놈들’이라는 적대적 용어를 쓰자 ‘봉염어머니’ 역시 이 용어를 배워 사용한다는 점 역시 그 증거이다. 3) 위 1), 2)로 미루어보아 검열관의 삭제는 핵심을 잘 짚은 셈이었다. 그러나 강경애는 이미 이러한 삭제를 예상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는 이 대목이 삭제되더라도 메시지는 일정부분의 손상만을 입을 뿐, 전적인 손상을 당하지는 않도록 작품을 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4) 이 검열우회 전략은 ‘나눠 쓰기’ 기법이라고 간주하고자 한다. 즉 삭제가 예상되는 핵심적 메시지를 한 군데에 몰아두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 배치하는 방식이다. 5) 그 나눠 쓰기의 증거는 다음과 같다. 물음을 세 차례나 제기하면서 변주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마지막 대목에만 배치했다(이 답변 부분이 삭제되었다); ‘공산당원’과 ‘선생’이 동일 인물임을 암시하는 대목 또한 나눠서 배치했다. 6) 김동인, 이기영, 박노갑 등 당대 문인들 또한 나눠 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검열우회 전략을 구사했음을 증언하고 있어 「소금」의 이런 나눠 쓰기가 검열우회 전략이라는 추정의 방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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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라는 단어는 근대문학 형성 초기에만 하더라도 각별한 관심과 애호 속에서 활용되었다. 이 단어는 철학, 종교, 문학 등 지식 분야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으며, 특히 개성, 자아, 예술의 권능을 합법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지반이 되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본고는 니시다 기타로(西田畿多郞)의 주요 저작과 그에 상응하는 『학지광』세대의 문화 담론을 비교하여 검토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1920년대 주요 문학평론과 전영택의 초기작 「生命의 봄」을 분석했다. ‘생명’은 청년지식인들이 다이쇼기의 사상적 흐름과 접촉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다른 한편 『학지광』이라는 학우회 기관지 내부에서 그 실제적 의미를 체득한 근대어였다. 이 단어를 중심으로 비로소 ‘근대적 자아’에 관한 담론이 동인지 문학 내에서 창안되고 널리 확산될 수 있었다. 전영택의 경우, ‘생명’이라는 신조어에 크게 감화된 나머지 이 어휘를 포함하는 소설 「생명의 봄」을 창작하여 예술가 주체를 선진적으로 형상화해냈다.

사랑의 정치학과 죄의 윤리학 - 염상섭의 『사랑과 죄』를 중심으로

허병식 ( Huh Byung-sh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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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사랑과 죄』는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인 이해춘과 류진이라는 인물이 조선의 문화적 사명에 부응하는 청년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의 출생을 부정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교양의 프로세스가 핵심적인 서사는 이루는 작품이다.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창조해내려는 청년으로서 이해춘이 지닌 문화와 성장의 이상은 개인의 자기표현이 공공선의 증진과 합류한다는 것이다. 또한 20년대에서 30년대 초반에 이르는 염상섭의 장편들은 당대의 문화적 체계로서의 ‘성’과 ‘사랑’이라는 풍속에 대한 염상섭의 이해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사랑과 죄』에 나타나는 특정한 사랑의 양태는 당대의 현실적인 모순들을 드러내면서, 또한 특정한 방식으로 자아 실현의 매개가 되고 있다. 연애의 감정을 통한 자기 초상의 비준이 친밀한 관계를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학습되고 훈련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기 표현과 자아 각성에 관한 서사의 핵심을 제공하는 연애의 서사는 그런 맥락에서 교양의 서사 속으로 합류한다. 염상섭이 주목한 부르주아적 개인의 동력학이 그들이 기반한 계급에 대한 철저한 자기부정으로 구현된다는 것은 흥미롭다. 『만세전』으로부터 『사랑과 죄』를 거쳐 『삼대』에 이르는 염상섭의 서사적 여정 속에는 지배와 종속의 문제, 가문의식과 계몽의식의 몰락, 성의 대립과 연애의 출현, 금전을 둘러싼 천민적인 욕망의 발현 같은, 식민지 조선을 축약하는 온갖 욕망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의 세목들을 분명하게 기록하고 그것에 대한 전체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근대적 개인의 자유로운 자아발전과 정체성의 형성에서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에밀레종 傳說(전설)’의 政治學的(정치학적) 讀解(독해)

성낙주 ( Sung Nack-j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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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종전설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주성(鑄成)에 얽힌 비극적 스토리로, 어미에 의해 철부지 아이가 도가니 속에 던져진다는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문맥 그대로의 실화가 아니라 신라 혜공왕(惠恭王) 대를 장식한 권력암투 과정의 어떤 ‘원형적 사건’을 문학적 장치를 빌려 재가공한 ‘정치고발설화’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첫째, 채록된 여러 유형을 종합한 결과 등장인물의 캐릭터 및 가계도가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및 성덕신종의 명문(銘文) 등의 사료에 나타난 혜공왕 대 왕실 주변 인물들의 성향 및 가계도와 흡사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둘째, 혜공왕 대의 권력구조 및 정치상황이 기존 역사학계의 이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가설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곧 8살에 즉위한 혜공왕(惠恭王)은 모후 만월부인(滿月夫人)의 핍박 아래 무기력한 일탈 행위를 일삼게 되었으며, 그녀는 오라비인 김옹(金邕)과 더불어 국정을 농단하다가 최종적으로 자신의 친정 왕조를 개창하려다가 김양상(金良相) 등의 반발로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혜공왕까지 목숨을 잃어 중대왕실이 몰락한다. 셋째, 당대인들은 중대신라의 파멸과 하대신라의 출범 과정을 목도하면서 혜공왕에게는 연민을, 만월부인에게는 분노를 품게 되었으며, 그러한 정서적 흐름이 뒷날 에밀레종전설의 탄생에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서라벌 백성, 혹은 비판적 지식인은 자신들이 목도한 혜공왕 대의 정치사화를 전래의 인신공희담을 차용해 모자간의 갈등이 축을 이루는, 구원받을 수 없는 아이와 저주받는 어미의 이야기를 창조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수운의 문학작품에 담긴 글쓰기 방식의 특징

신상구 ( Shin Sang-g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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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은 조선조 후기의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학을 창도한 인물이다. 수운은 동학을 창도하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문학작품으로 드러냈다. 수운의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에 담긴 글쓰기의 면모는 수운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종교나 사상의 변화를 통해서 인간의 존재론적인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변화시켜 나가려는 시도는 물론 수운이전에도 있어왔다. 이러한 모습은 사회의 지배적 관념이나 제도가 타락할 경우 이를 극복하려는 개혁의 의지가 작동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수운이 쓴 글이 지향하는 목표는 輔國安民이다. 보국안민의 계책은 재생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사상이다. 이를 문학작품으로 표현함에 있어 수운은 不然其然이라는 상상력을 근본으로 하고, 한시의 창작수법인 賦比興을 지엽으로 하여 자세히 드러내어 玄機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현기는 天機를 의미하는 것이며, 천기론의 문학이론에 바탕한 개성주의가 수운의 문학작품에도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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