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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1905)과 일본 국내 반전사회주의(反戰社會主義)의 등장, 러시아혁명(1917)과 시베리아 출병(1918~1922), 소일수교와 치안유지법(1925), 러시아의 극동개발과 일본의 지역블록화(1930년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소련)는 제3세계 민족주의와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보루(국내혁명의 배후세력, 사상치안의 대상)이자,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경쟁하는 실질적인 적이었다. 이른바 대내외적인 이중적 위협.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은 정보전, 선전전, 사상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전쟁이었다. ‘정신’의 동원, ‘말’의 정치는 전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1930년대 후반, 조선주둔일본군은 소련과 조선을 대상으로 정보사상전을 실시했다. ‘식민지제국’(/‘국민제국’)의 소수자들(예컨대, 조선인과 백계러시아인)은 첩자와 포로로 활용되어 정보전 및 사상전의 주체(agency)가 되었고, 조선주둔일본군 보도부(報道部)는 대소련러시아어 라디오방송을 실시했다. 소련은 적색제국주의국가, 비인도적 점령국가, 배후세력으로 표상되었고, 일본은 중일전쟁 승리를 위한 군사적·경제적 역량이 충분하다고 선전되었다. 중일전쟁에서의 전장승리와 조선이라는 ‘후방’의 동원을 위해 수행된 조선주둔일본군의 대소련정보사상전은 소련에 대한 특정한 표상의 창출을 의도한 것인 한편, 소련과 중국, 조선을 향해 일본 자신을 표상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중일전쟁기 조선주둔일본군의 대(對)소련, 대(對)조선 정보사상전이 실효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후 동아시아를 사로잡았던 ‘반공’ ‘반소련’의 역사적 기억과 일본군의 이러한 대(對)소련 ‘문화전쟁’(Cultural War)이 맺는 연관성 역시 새로운 문제관심으로서 포착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