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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2권 0호 (2007)

구한말 일본인의 조선어교육과 통역경찰의 형성

정근식 ( Jung Keun-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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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배의 초기에 활동한 ‘통역’ 및 ‘통역경찰’의 사회적 배경을 알기 위하여 개항전후부터 한일합방 때까지의 일본인의 조선어 학습의 제도와 현실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어 교육은 대마도를 근거지로 하여 세습적인 가문들에 의해 ‘교린’이라는 맥락에서 이루어지다가 1872년부터 근대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는데, 청일전쟁을 계기로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활동으로 전환되었다. 일본인의 한국어 교육의 근거지는 대마도와 부산이라는 이행기적 축으로부터 동경과 서울이라는 근대적-식민지적 축으로 옮겨졌고, 이 때문에 통역들은 출신지역과 학연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식민지 관료제에서 한국어 통역은 구마모도현이 만든 낙천굴과 일본정부가 설립한 동경 외국어 학교를 통해 많이 배출되었는데, 전자는 실무자급을, 후자는 책임자급을 만들어냈다.

식민지 시기 근대기술(철도, 통신)과 인쇄물 검열

한만수 ( Han Man-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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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신문과 잡지가 정보생산 및 유포의 공간을 ‘국가’의 단위로 확대하고 자본의 순환(매체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전화, 전보, 우편), 철도, 인쇄라는 근대 기술을 주요한 기반으로 가능했다. 조선총독부는 이 기술들 중에서 인쇄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즉통신과 철도를 소유하고 통제함으로써 ‘합법적’ 신문 잡지의 검열에 구조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총독부는 전보와 우편검열을 통해 해외 및 지방기사의 취재 및 송고(送稿)과정에 개입하였다. 이는 통신검열을 통해 언론검열이 이뤄졌다는 점, 언론사의 편집단계 이전에 진행된 취재원 및 송고 차단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당시 신문은 대부분 철도로 우송되었는데 검열결과 압수할 필요가 있을 경우는 해당 경찰서에 전화로 통지하여 철도역으로 출동하여 압수하였다. 통신기술과 철도(시간표의 정시성)에 의해서 검열의 실효성(강제력)이 보장되었던 것이다. 총독부는 또한 ‘합법적’ 신문잡지의 경우에 한하여 이 근대기술의 이용을 허용하였으며, 특히 당시 인쇄자본의 영세성을 감안하여 그 기술이용료를 대폭 할인하였다. 이 글에서는 제3종 우편물, 신문전보, 신문통화(通話) 등 제도를 점검하여 이를 입증하였다. 이 요금할인은 총독부가 인쇄자본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동원한 각종 경제적 이윤의 조절방식 중 하나였다. 식민지시기 ‘합법적’ 인쇄미디어가 ‘비합법적’ 미디어와의 경쟁에서 승리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근대기술에의 접근이 보장되었다는 점이었다. ‘비합법’ 미디어는 취재, 송고, 배달 과정에서 근대기술을 거의 활용할 수 없었으며, 근대적 인쇄기술의 소유 또한 금지되었다. 구독료나 광고료 역시 전근대적 방식으로 비밀리에 전달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재정은 주로 기부금에 의존할 뿐이었다. 자본의 투입만이 있을 뿐 순환이 차단되었으니 미디어의 유지가 매우 어려웠다. ‘제국주의의 신경망’으로서 철도와 통신은 조선에서도 역시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바, 이 근대기술들은 인쇄미디어의 기반기술이기도 했으므로 총독부는 언론에 효율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합법적’ 미디어에 대한 이용료 할인을 통하여, 그리고 ‘비합법’ 미디어의 근대기술 접근을 차단하여 합법미디어의 기술적 비교우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의 담론유통구조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식민권력이 통치와 수탈을 위해 설치한 근대기술을 매스미디어는 자신의 기반기술로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검열의 기반기술이기도 했던 셈이다.

검열관 니시무라 신타로(西村眞太郎)에 관한 고찰

박광현 ( Park Kwang-hyo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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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의 조선문 검열에 있어서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였다고 일컬어지는 검열관 니시무라 신타로에 관해 연구한 이 논문은 아래의 세 가지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우선, 니시무라의 첫 저서 『朝鮮の俤(조선의 모습)』 (1923)가 그와 유사한 ‘조선 사정(事情)’을 전하는 취지의 출판물과 어떤 변별점이 있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통해 그가 조선에 대해 어떠한 책무와 사명감을 가지고 조선에서 생활했는지를 살폈다. 다음으로 업무상 일상적으로 조선어를 접해야 하는 검열관으로서 니시무라는 과연 조선어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졌는지를 살폈다. 그는 검열관으로서뿐 아니라 조선어 연구자로서의 사명감을 자주 피력했는데, 이논문에서는 그러한 발화의 관점과 그 내용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니시무라는 히노 아시헤이(火野葦平)의 『보리와 병대(麥と兵隊)』라는 작품을 총독부의 기획에 따라 『보리와 병정』이라는 타이틀로 1939년에 번역하는데, 그와 비슷한 시기에 『문장』에서는 「전선문학선」을 기획·연재하였다. 그 둘의 연관성을 살피면서 그의 번역 작업이 지니는 의미를 살폈다. 특히 『국민문학』 시대에 들어서면서는 ‘편집자의 지위와 책임’이 검열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되는데, 편집자가 그러한 지위를 갖게 되는 데는 그의 번역 작업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검열의 사상과 방법 -검열 자료집 구축 과정을 통하여-

손지연 ( Son Ji-yo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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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기의 검열관 및 검열 기관이 작성한 검열에 대한 통계와 분석, 검열관의 회고 등을 해석·분류하는 과정을 통해, 검열법이 실제로 적용될 때 드러나는 검열주체의 위치나 검열 시스템 안의 위계질서 등을 살펴보았다. 또한 검열 시스템 안에서 ‘내지’와 식민지 사이에 차별적으로 적용된 검열의 다양한 양상을 검토했다. 이를 통해 ‘내지’와 제국밖의 검열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의 기술이나 ‘검열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검열당하는 자’이기도 했던 조선인 엘리트가 식민지 본국의 검열 행위에 적극 동조·공모하는 형식의 글, 일본제국의 검열 시스템이 갖고 있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상대적 우월감 내지는 지배자의 시선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글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열연구가 식민지 시기 한국의 문화 및 지식의 형성과 유통의 가장 기본적인 기반이라고 한다면, 이 검열 자료집은 그 본격적인 검열연구를 위한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논문 마지막에는 검열자편 모든 자료와 자료집에 수록된 검열관들의 주요 경력 및 집필물들을 표로 요약하여 제시하였다.

1930년대 후반 조선주둔일본군의 대(對)소련, 대(對)조선 정보사상전

김인수 ( Kim In-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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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1905)과 일본 국내 반전사회주의(反戰社會主義)의 등장, 러시아혁명(1917)과 시베리아 출병(1918~1922), 소일수교와 치안유지법(1925), 러시아의 극동개발과 일본의 지역블록화(1930년대)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소련)는 제3세계 민족주의와 국내 공산주의 운동의 보루(국내혁명의 배후세력, 사상치안의 대상)이자,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경쟁하는 실질적인 적이었다. 이른바 대내외적인 이중적 위협.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은 정보전, 선전전, 사상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전쟁이었다. ‘정신’의 동원, ‘말’의 정치는 전쟁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1930년대 후반, 조선주둔일본군은 소련과 조선을 대상으로 정보사상전을 실시했다. ‘식민지제국’(/‘국민제국’)의 소수자들(예컨대, 조선인과 백계러시아인)은 첩자와 포로로 활용되어 정보전 및 사상전의 주체(agency)가 되었고, 조선주둔일본군 보도부(報道部)는 대소련러시아어 라디오방송을 실시했다. 소련은 적색제국주의국가, 비인도적 점령국가, 배후세력으로 표상되었고, 일본은 중일전쟁 승리를 위한 군사적·경제적 역량이 충분하다고 선전되었다. 중일전쟁에서의 전장승리와 조선이라는 ‘후방’의 동원을 위해 수행된 조선주둔일본군의 대소련정보사상전은 소련에 대한 특정한 표상의 창출을 의도한 것인 한편, 소련과 중국, 조선을 향해 일본 자신을 표상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중일전쟁기 조선주둔일본군의 대(對)소련, 대(對)조선 정보사상전이 실효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후 동아시아를 사로잡았던 ‘반공’ ‘반소련’의 역사적 기억과 일본군의 이러한 대(對)소련 ‘문화전쟁’(Cultural War)이 맺는 연관성 역시 새로운 문제관심으로서 포착될 필요가 있다.

민족과 제국의 동거 - 최남선의 만몽문화론 읽기

조현설 ( Cho Hyun-so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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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1939년 4월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1942년 11월 사임한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그는 만주국의 건국 유래와 만몽문화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쓴다. 이 논문들을 통해 그는 만주국의 역사적 정당성을 옹호하고 대동아공영권의 논리를 재생산했다. 그런데 최남선은 만몽문화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조선적인 것을 중심에 배치하려고 한다. 최남선에게 있어 조선적인 것의 핵심은 물론 단군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단군중심적 시각이 이미 1920년대에 완성한 불함문화론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남선은 불함문화론의 연장선상에서 만주국 문화건설의 신성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만몽문화론을 구성했던 것이다. 그 결과 민족주의 담론과 제국주의 담론은 일체가 되는 듯하면서도 충돌한다. 그런데 이런 모순은 그가 불함문화론, 나아가 만몽문화론을 정립하기 위해 선택한 신화학이라는 방법 자체에 내재된 것이었다. 신화를 통한 역사 이해는, 신화 자체에 내장된 보편성 때문에 종종 민족사를 벗어나 보편사를 지향하게 되는데 이 보편사가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도래할 경우 민족을 말하면서 제국을 옹호하는 자가당착에 이르게 된다. 최남선이 신화학을 통해 엮어낸 만몽문화론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조선영화의 만주 유입 ― 『만선일보』의 순회영사를 중심으로

김려실 ( Kim Ryeo-s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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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중국에서 발견된 조선영화 7편은 한국영화사 연구가 더 이상 한반도 내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해방 전까지 만주에는 230만의 조선인이 이주해 있었고 만주영화협회는 선전·선무공작을 위해 조선영화를 다수 수입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일천하다. 이 논문은 조선영화가 어떻게 만주국에 수출, 수용되었나를 밝히기 위해 만주국에서 발행된 조선어 신문 『만선일보』를 검토했다. 그 과정에서 이 신문이 재만조선인 사회의 구심점이었던 언론매체로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순회영사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만선일보』의 영화광고와 영화란을 면밀히 조사함으로써 만 주국 영화관의 실태와 만주에서 상영된 조선영화의 면모에 대해서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재조(在朝)’와 ‘재만(在滿)’이라는 차이가 관객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순회영사의 단골 래퍼토리였던 <장화홍련전>과 조만(朝滿)합작영화 <복지만리>를 예로 들어 논했다. 이상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 논문은 영화(film)는 하나일지라도 영화의 의미는 결코 단일하지 않았으므로 국경과 경계를 넘어 복수의 관객성(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새로운 한국영화사 집필을 제안했다.

만주경험과 백색테러 - ‘만주 건대사건’의 허와 실

許雪姬 ( Hsu Hsueh-c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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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기 만주국에서의 타이완인[臺灣人]의 활동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필자의 「일제시기 타이완인의 해외활동 – 만주에 있던 타이완 醫師」라는 논문을 제외하면 대만과 동북 사이의 무역을 다룬 논문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타이완인의 만주국 현지 활동과 전후타이완에 돌아와 맞이한 상황은 타이완 근·현대사의 중요한 일부이기에 연구의 가치가 있다. 이 논문은 만주에서 가장 좋은 학교였던 건국대학에서 공부한 타이완인을 연구한다. 전후 이들은 일본에서 중화민국으로 국적이 바뀐다1948년에 일어난 <만주건대사건(滿洲建大案)>, 즉 애국청년회(愛國靑年會)사건으로 처벌된 1기 졸업생 李水淸, 林慶雲, 黃山水의 사례를 살핀다. 계엄령이 아직 반포하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그들은 “‘애국청년회’를 조직하여 ‘2ㆍ28사건’을 모방하여, 중공군대가 타이완을 공격할 때 내부에서 호응하려 했다”는 이유로 각각 3년, 5년, 3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전쟁 시기 임시조례가 반포된 후에 사건에 연관된 黃溫恭, 湯守仁 사형, 謝秋林, 鍾謙順, 林恩魁, 塗南山 등은 30년 내지 더 긴 시간의 처벌을 받게 됐다. 이것은 모두 중화민국 정부가 공산당을 두려워하게 하기 위한 정치적 판결로, 이를 일반적으로 ‘백색테러’라고 한다. 물론 ‘만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처량한 신세를 맞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의 예를 통해 계엄시기 정치적인 숙청의 일반적인 정황을 알 수 있다. 이를 식민지 시기 만주 건대를 다녔던 조선인들의 귀국 후 상황과 비교하면, 탈식민 이후 새로 성립된 정부가 식민지 시기의 ‘공과’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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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과 일본에서 간행된 불교 문헌을 통해 삼국시대 승려들의 인물전설이 지닌 서사적 특성을 살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전승의 일차적 담당층은 주로 승려들로서 이들은 직접 견문한 것, 혹은 삼자에게 들은 것을 문헌에 기록하여 후세인들이 그들의 행적과 비범함을 알수 있도록 하였다. 승려전승은 동아시아 권역으로 전파되었다고 보거니와, 중국 내 전파, 일본 내 전파, 중국에서 삼국으로의 전파, 삼국에서 중국으로의 전파, 삼국에서 일본으로의 전파 등 최소한 5가지 경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승려 전승은 독특한 모티브를 통해 청자의 흥미를 끌고 있는데 특히 龍宮說法, 病者의 治癒, 스스로 빛을 발하는 放光 등 비범한 자취는 전승에서 두루 발견되는 모티브가 되고 있다. 전승에는 삼국 승려들에 대해 비판적 부정적 시각을 담고 있는 것도 드물지 않다. 이처럼 삼국 내승려 이야기가 위대한 모습으로 처리된 것과 큰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삼국의 고승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이국에서 들어온 타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외문헌소재 승려담은 불교설화가 갖춘 보편적 미학과 함께 동 아시아 속에서의 삼국의 위상마저 간접적으로 반영해주는 담론이라 할 수 있다.

서정주 번역 『석전 박한영 한시집』(2006)에 대하여

윤재웅 ( Yun Jae-wo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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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정주의 번역 텍스트에 대한 분석이다. 그의 사후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석전 박한영 한시집 石顚 朴漢永 漢詩集』(2006)이 그대상이다. 석전 박한영은 한국 근대불교계의 최고 지도자였으며 박람강기의 대석학으로서 미당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준엄한 자기 절제, 끊임없는 탐구, 시선일여(詩禪一如)를 체현하는 문화적 교양 등은 ‘도애(道愛)’의 형식을 통해 평생토록 미당에게 스며든다. 이 글의 의의는 두사람의 이런 관계를 본격적으로 조망한다는 데에 있다. 그 본격적 조망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미당의 『석전시초 石顚詩抄』 번역이다. 석전의 대표적 저술 중의 하나인 『석전시초』가 서정주에 의해 번역된것은 ‘스승 기리는 전통’의 아름다움을 복원시켰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한시의 대가와 한글시의 명장이 만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당의 한시 번역은 이 텍스트가 처음은 아니다. 『만해 한용운 한시선역 卍海 韓龍雲 漢詩選譯』(1983)이 이미 출간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당의 번역시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없는 형편이다. 이 글은 그간 미당의 번역 텍스트(한시 번역)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일정 부분 의의가 있을 터이다. 『석전 박한영 한시집 石顚 朴漢永 漢詩集』에서 보이는 미당의 번역은 한글시의 음보율과 어미처리 등에서 특히 돋보인다. 이는 한국 시문학의 전통과 관습을 잘 활용하고 있는 징후이며 또한 ‘소리’를 중시하는 자신의 작시 특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듯하다. 창의적인 의역도 번역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새로운 번역텍스트를 『만해 한용운 한시선역 卍海 韓龍雲 漢詩選譯』(1983)과 함께 검토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이다. 그렇게 할 때, 미당의 한시 번역 성과와 의의를 전반적으로 조명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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