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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는 특화된 존재의 탄생은 문학장이라는 자율화된 공간에서 활동하는 주체에 대한 구체적 모델을 생산하고 규범화하는 문제에 해당된다. 이 논문은 1920년대 문학장에서 예술가라는 특화된 존재가 탄생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자화상’, ‘초상’의 문제를 ‘죽음’이라는 관념의 인식에 비추어 접근하고 있는 연구이다. 1920년대는 죽음, 소외, 고독, 동경 등 추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정서의 울림이 큰 새로운 관념이 중심을 차지한 시대였다. 이런 관념은 추상적인 만큼 그러한 관념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주체와 감각화하는 주체의 능동적인 반응이 그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갖게 된다.
이 점에서 1920년대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 이미지는 전근대적인 공동체성 혹은 집단성이 탈각된 개체화된 죽음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개체화된 ‘죽음’은 주체로 하여금, 소멸에 대한 위기감, 불안, 단절감 등을 부여하며 동시에 ‘영원성’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군중으로부터 격리됨으로써 개체화된 단자의 소외와 죽음을 감지한 근대 예술가에게 죽음이란 삶에 대한 열정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좌절, 충동적인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이다. 자아의 낭만적인 확장 욕구를 ‘열정’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 자아의 낭만적 확장의 전제가 되는 ‘개체성’, ‘군중과의 격리’로부터 오는 소외, 불안감, 외로움, 무기력을 느끼는 신청년의 양면적인 모습은 1920년대 시의 전형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특히, 식민지 지식인에게 개체의 독립은 거대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미미하고 무력한 식민지 지식인의 근원적 결핍을 깨닫게 하는 원인이다.
1920년대 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는 이 점에서 식민지 청년 예술가의 ‘자아’가 놓인 한 극단적 상태를 보여주며, ‘죽음’을 미학화하는 자아의 형상화는 식민지 예술가의 ‘자화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규범, 미적 기억의 방식 등을 구성하는 전범이 된다. 예술의 존재 방식과 문학장의 자율성 원리가 ‘죽음’, ‘불안’, ‘소외’를 특화하면서 예술적 삶의 한 정점에 ‘죽음’을 위치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미학적인 실천’에 해당된다. 즉, 이장희와 같은 한 예술가의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는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문학적 신념의 공유에 의해서 ‘예술적 순교’, ‘미의 완성’으로 종결된다. 이런 죽음에 대한 기억의 방식은 1920년대 문학장의 한 아비투스로 자리잡음으로써 시, 미, 예술에 대한 신념을 단단하게 구축할 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새로운 미적 형식으로 구성한다. 즉, 일상의 미학화 혹은 문학의 일상화는 ‘죽음’, ‘고독’, ‘소외’ 등을 ‘미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초상’ 즉 ‘예술적 삶’의 유형을 고안하고 창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