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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4권 0호 (2008)

1950년대 문화 재편과 검열

이봉범 ( Lee Bong-be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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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문화재편은 문화변동의 차원에서 한국전쟁이 야기한 사회문화적 변화의 급격함과 문화접변의 차원에서 미국문화의 영향 그리고 국가의 근대화 기획에 의해 추동되었다. 특히 한국전쟁을 통해 내부 평정작업을 완수한 국가권력은 시민사회에 대한 막강한 자율성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문화 통제력을 확보하고 문화를 통한 지배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을 도모한다. 그 문화 통제의 중심에 검열이 존재한다. 1950년대는 문교부를 중심으로 일원화된 검열체계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통제와 아울러 문화 육성이라는 모순적인 작동을 보여준다. 유한한 자원을 국가가 선별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통해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화주체들의 권력 투쟁을 야기하면서 문화 통제력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문화영역은 정치영역과 달리 무리한 검열을 동원하지 않아도 일정 정도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었다. 1950년대 검열이 겨냥했던 일차적인 목표는 사장 통제였다. 반공주의와 반일주의를 기제로 엄격하게 시행된 검열로 인해 1950년대 공론 장에서 반공 이외의 담론의 철저한 봉쇄와 자유, 민주, 교양과 같은 근대적 담론의 과잉을 동시에 초래했다. 근대담론의 총량적 증대는 일반대중들의 근대적 욕망과 교차되면서 사회 전반에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폐쇄적 개방’의 담론 지형이 야기한 풍선효과 는 탈정치적인 대중물의 번성으로 나타난다. 검열은 공식문화와 대중문화를 극단적으로 분할하여 양립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컨대 검열은 1950년대 한국문화를 새롭게 재편시킨 핵심적인 기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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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은 1955년에 창간되어 10개월 만에 자체제작에 들어갈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1970년까지 5년 동안 발행하는 기록을 세운 잡지이다. 주로 현모양처의 여성교양을 계몽한다는 잡지의 이념은 이 기간 내내 일관되게 유지되지만, 전 부수가 매진되기 일쑤였던 1955~58년 기간에는 담론적 비균질성을 보여준다. 본 고는 이 담론적 비균질성이 무엇이며, 여성의 주체화 과정과 어떤 식으로 연관될 수 있을지를 해명한 연구이다. 『여원』은 독자들의 인기에 힘입어 독자들이 원할 만한 기사를 기획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가부장적 여성관을 지닌 남성 필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활동을 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대거 필진에 참여하게 된다. 이 여성들은 남성 필자와는 다른 여성담론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런 여성담론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알려주고 있어 『여원』의 인기를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 다양한 여성담론은 현모양처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부부생활, 서구적 일상문화나 생활방식, 성지식 등 여성들이 도시화된 근대적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정보들을 포함하면서, 직업생활을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여성의 삶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여성들의 삶은 독신여성 담론으로서 『여원』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본 고는 『여원』의 여성담론에서 드러나는 비균질성과 그 속에서 구성되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인 독신여성담론이 근대적 주체로서의 여성 개인의 발견에 이르는 과정을 탐구한 것이다.

1950년대 대중적 극예술에서의 신파성의 재생산과 해체

이영미 ( Lee Young M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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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50년대 대중적 극예술인, 악극, 방송극, 영화에서 각기 신파성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해체되는가를 분석함으로써, 그 시기 근대적 시민의식의 질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신파성은 이미 신성성을 상실한 냉혹한 근대세계와, 이를 극복할 만한 근대적 주체성이 결여된 인물이 만남으로써 발생하는 것으로, 윤리와 욕망과 현실속의 세계의 갈등을 조율하면서 자신과 세계를 변화시켜 나갈 능력을 갖춘 근대적 주체성이 성장하면 약화되고 해체될 성질의 것이다. 이 시대의 악극은, 식민지시대에 만들어진 신파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더욱 대중화된 모습으로 재생산되고 문화자본이 적은 층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반면에 전기가 공급되는 도시에서 라디오라는 고가의 수신기를 소유한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었던 방송극은, 세 종류의 극예술 중 신파성이 가장 약화된 양상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사회와 국가의 공익적 사업에의 헌신이라는 국민화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영화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대중소설의 영화화가 선두에 서서 보여준 아프레걸(전후파 여성)의 형상화는, 물질과 육체에 대한 욕망을 인정함으로써 신파성을 극복한 인물이지만 얄은 성찰 능력으로 근대적 주체의 질감은 패션 같은 외양에 머문다. 영화가 급격히 대중화되는 1958. 9년에 이르러 이 새로운 인물형의 발전이 중지되고, 악극의 수용층의 영화계 유입과 함께 신파성이 강화되며, 방송극의 보수성이 유입되어 아프레걸의 불안하지만 역동적인 가능성은 보수적으로 순치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신파성이 약화되는 큰 흐름이 유지되면서 1960년대 대중적 극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고 있었다.

1950년대 연극과 신협의 위치

김옥란 ( Kim Ock-r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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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는, 1950년 국립극장 전속극단으로 출발한 신협의 활동을 통해 신극의 부흥기를 맞이했다. 신협은 정통 신극의 인적ㆍ물적 토대가 완전히 국립극단으로 통합되는 1961년 이전 활동한 대표적인 신극 단체이다. 신협의 대표작은 1950년 국립극장 개관 당시 유치진 작 「원술랑」, 중국 작가 조우의 「뇌우」, 1951~52년 피난지 대구에서의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 「오델로」, 「맥베드」, 1955~57년 환도 후 서울에서의 미국 현대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세일즈맨의 죽음」 등이다. 신협의 공연은 창작극보다는 세계명작이나 걸작 등의 번역극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였으며 1950년대 전반에 걸쳐 지속적이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이르러 기존의 ‘극연의 유치진.으로부터 ‘신협의 이해랑과 김동원’으로 연극계의 중심 주체가 이동했다. 유치진의 경우 식민지 시기 대표적인 신극운동가이지만 일제 말기 국민연극 활동으로 해방 이후 그 상징적 지위가 위축되었다. 반면에 이해랑과 김동원은 일제 말기 국민 연극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었고 해방 이후 우익 계열 민족연극운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재기하여 해방 이후 좌우익의 대립과 친일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고 정통 신극운동의 순수성과 민족연극을 대변하는 대표성을 획득하였다. 1950년대 내내 국립극단을 둘러싸고 연극계의 내부 분열이 계속되면서 국립극단의 역사 자체가 분열의 역사로 점철되었던 데 비해 극단 신협은 국립극단과의 끊임없는 길항관계 속에서 ‘신협’이라는 단체명을 고수하며 신극운동의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1950년대 창작극의 세계가 반공극과 역사극으로 퇴보해 들어갔던 데 비해 세계적인 걸작의 번역극 공연이라는 새로움에 도전하였다. 신협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셰익스피어극이나 미국 현대극은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던 1950년대의 ‘세계상’을 이루는 중요한 심상 지리를 제공해주는 한편 식민의 기억을 지우고 전쟁을 경험한 1950년대 문화 주체들이 새롭게 호흡하고 싶었던 동경의 세계를 보여준다.

전후, 실존, 시면 표상 - 청년 모더니스트 박인환을 중심으로

박연희 ( Park Yoen-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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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해방기에 등단한 청년 모더니스트 박인환을 통해 한국전쟁 이전에 존재하였던 탈국민적 주체상을 살펴보고자 하는 데 있다. 한국전쟁 이후 국민국가의 제도화 과정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국민 주체로 정형화되지만, 단정수립 이전 곧 이데올로기적 자기 규정성이 명확하지 않았던 해방 공간에서는 국민 주체와 변별되는 형태의 문화적 주체가 발견 가능하다. 박인환의 경우 그것은 '마리서사'라는 좌우 구별이 없던 자유로운 문예공간으로서의 고서점을 운영하던 이력이나 당대를 제국주의의 새로운 판본으로 인식하고 제3국가의 정체성에 천착한 시 작업에서 흥미롭게 부각되었다. 알다시피 해방기는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세계관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는 시기였다. 바로 이 시기에 1945년을 민족사 내부의 해방이 아닌 세계사 전반의 전후로 감지하였던 청년 세대가 존재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국민국가의 주체가 아닌 제국의 타자로 유동하는 무정형의 개인이라 할 만하다. 2차대전 이후 '전후' 개념은 냉전의 문화사, 사회사, 사상사적 전망과 긴밀하게 연접하여 발휘된다. 특히 박인환이 자신의 혼란스런 정체성을 피력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한 실존주의 역시, '전후' 개념의 확산 과정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농후한 전후사회의 지식ㆍ사상ㆍ문화를 지도하는 새로운 문화담론으로 한국에 유입되었다. 이는 박인환이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앤솔로지 제호와 서문에서 선진적으로 표현한 '시민' 표상과 유관하다. 남한 단정수립을 계기로 박인환은 해방 직후 무정형의 개인의 형상을 좀더 분명한 자기정체성으로 해명하고 규정할 내적 요구에 직면하게 되는데, 공공영역에서 좌파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배제와 억압이 이루어지는 등 국민국가를 경험한 최초의 청년 세대에게 '시민'은 비정치적 영역에서 제안된 새로운 문화적 주체 표상일 수 있었다. 다른 한편 분열된 자의식으로 표현되는 시편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시민'은 실존적 정체성의 한 면을 통과하는 자기존재 증명의 표지이기도 했다.

친일과 배타적 동양주의

박수연 ( Park Soo Y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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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제말기의 서정주의 친일문학을 살펴보면서, 그것의 전제사항으로서 당시 동양론의 사정을 간략히 고찰하기 위해 씌어진다. 일제 말기의 동양 담론은 흔히 일본의 반서구적 동양주의에 연결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동양 담론은 직접적으로 친일 이념에 연결되는 것이며, 대동아공동체의 이념을 긍정하고 태평양전쟁을 미화하는 논리라는 것이다. 당시의 동양 담론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친일문학의 이념을 분석하려는 관점에서는 타당한 면이 있지만 친일협력과는 다른 삶을 살고 문학적 행보를 보인 문인들을 설명하는데서는 옳지 않다. 그것을 서양과의 균형잡힌 관계 속에서 동양주의를 이해하려는 관점과 반서구적 배타적 동양주의를 이해하려는 관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육사와 김기림이 전자라면, 최재서와 서정주는 후자이다. 이 글은 서정주의 배타적 동양주의가 어떻게 그의 친일문학의 이념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해방 후의 친파시즘적 행동으로 연결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친일문학에 대한 ‘윤리’와 서정주 연구의 문제점 – 식민주의와 친일

김춘식 ( Kim Chun-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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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서정주에 관한 친일문학 비판과 기존 친일문학 연구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를 통해, 친일문학 연구의 새로운 관점과 태도를 모색하기 위한 논문이다. 우선 기존 친일문학 연구가 지닌 문제점은 대략 두 가지 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첫 번째는 ‘협력과 저항’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민족주의 담론을 벗어나지 못한 단순 논리를 그 분류기준으로 삼는 경우, 두 번째는 친일문학의 근본적인 성격과 원인을 이해하기 보다는 친일문학과 친일문학이 아닌 것을 분류하는데 더 치중하면서 친일문학을 여전히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특히, 친일문학의 복잡성이 식민지 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근대문학사의 핵심적 키워드’라는 점을 간과하는 것은 이런 태도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에 친일문학 연구는 이런 과거의 관점에서 벗어나 비교적 다양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처럼, 친일문학 담론에 관한 논의에는 ‘민족주의적인 관점’과 ‘절대악’으로서의 ‘친일’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점은 ‘친일문학’ 속에 존재하는 ‘내면’, ‘정신구조’, ‘사상’의 측면을 단순화함으로써, ‘친일문학’의 범주와 대상을 선별하고 그에 대해 비판하는 방식이 ‘과거 역사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이라는 다소 안일한 발상에서 연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론적인 ‘척결’의 방식은 문제를 명확히 하기는 쉬우나, 그 만큼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과연, “친일문학의 문제가 ‘규정’과 ‘처벌’의 문제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식민지적 상황’의 복잡성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은 “1930년대 후반기 친일문학적 담론은 훼절과 변절의 외화형식만이 아니라 수많은 하위 주체들이 나름대로 발화 형식을 찾고자 하는 고투의 과정”이라고 전제하고, “친일문학적 담론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1930년대 후반기의 문학 더 나아가 일제시대의 문학 전체를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과 순응의 이분법적 인식틀로부터 해방시켜(중략) 1930년 후반기의 그 다양하고 미묘한, 그래서 풍부한 문학적 지향들을 문학사의 새로운 범위 안으로 포괄하게 되었으며, 이는 근대 이후 한국문학의 특질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하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주장에는 친일문학의 연구가 윤리적 비난이 아니라 진정한 비판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식민지적 시스템과 정신구조’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과 친일문학 담론의 연구야말로 식민지적 조건에서 시작된 ‘한국문학의 특수성’을 파악하는 ‘열쇠’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서정주 연구에서 특히 친일문학의 관점이 어떻게 폭력적으로 적용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서정주 시세계의 한계를 “동양주의=친일문학”이라는 단순논리로 규정하는 시각이 지닌 문제점을 밝히는데 주력하고 있다. 특히, 친일문학에 대한 진정한 윤리적 접근은 ‘친일문학의 정신구조’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서정주의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적인 악조건’을 출생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 시인의 미학적 고투의 측면을 지나치게 간과하거나 폄하하는 측면 이 있다. 이 점에서 서정주의 전통주의와 ‘근대초극론’의 유사성을 ‘등가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이전에 그 차이성과 독자성을 주목하고 강조하는 일은 ‘친일 바이러스론’의 무차별적인 확산보다는 본질적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정주의 전통주의 탐구가 일본의 동양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주장은 의미 있는 것이다. 친일문학’은 논리적 파탄의 결과라기보다는 ‘복합적인 내면’, ‘복합적인 상황’ 아래서의 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친일문학’ 행위에는 전적인 자발성도, 전적인 ‘억압’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물리적 억압이든, 심리적인 억압이든, 일정한 억압적 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소극적 자발성’ 즉 ‘선택’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친일을 ‘절대선’이라고 인식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1930년대 후반 이후 ‘친일’은 ‘차선’ 혹은 ‘최선의 선택’으로 인식된 식민주의의 한 출구였다고 할 수 있다.

1940년대 전반기의 서정주-그의 친일이 의미하는 것

허윤회 ( Heo Yuhn-h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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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정주의 친일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것이 그의 시세계에서 갖고 있는 의미와 이후에 그의 시세계에 미친 영향 등이 살펴져야 할 것이다. 그는 『화사집』(1941)의 출간 이후에 새로운 시적 모색을 시도한다. 하지만 현실의 일제의 군국주의로 말미암아 점점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문학에 대한 한계와 극명하게 마주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정주의 시에 드러나는 형이상학적 요소는 이 시기에 준비되었으며 이미 자신의 문학이 되었으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일제의 군국주의와 강력한 국가주의라고 할 때, 이 시기는 해방 이후에 그가 보여주게 될 시적 미래의 선취를 보여주고 있다.

전통지향성의 시적 추구와 대동아공영권 - 서정주 친일시의 논리

홍용희 ( Hong Yong-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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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적 출발은 극단적인 자기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의 첫 시집 『화사』에서 보여주는 병적 낭만주의와 서구적 상징주의의 경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절대 부정은 역설적으로 자기 긍정의 계기성으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의 본령에 해당하는 토속적인 전통지향성의 추구가 본격화된다. 한편, 그의 이러한 시적 전환의 외적 계기는 김범부의 ‘동방르네상스’의 사상적 영향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범부의 사상은 화랑정신의 현재적 계승을 통한 민족적 미래의 구현과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의 동양적 가치를 제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김범부의 사상적 성향은 서정주의 『귀촉도』, 『서정주시선』을 거쳐 『신라초』, 『동천』으로 이어지는 토속적인 전통지향성 및 ‘신라정신’을 통한 민족적 근원 탐색과 ‘영생적’ 개안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미당은 자신의 전통지향성을 민족적 특수성과 당대적 현실성에 대한 탄력적 대응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추상적인 보편주의와 영원성으로 치닫는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은 그가 일본의 초국가적 전체주의 지배 논리에 해당하는 ‘대동아공영권’과 쉽게 조우하는 배경이 된다. 그는 대동아 공영권의 외면적인 문화적 논리에만 치중했을 뿐 정치적 파시즘의 본질적 지배 논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니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체부의 군속 지망」(『조광』, 1943, 소설), 『헌시(獻詩)』(『매일신보』, 1943, 시), 「보도행」(『조광』, 1943, 수필), 「무제」(『국민문학』, 1943, 시), 「오장 마쓰이 송가」 (『매일신보』, 1944, 시) 등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발표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우리 시사의 가장 신성한 성채에 해당하는 그의 시 세계에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형성되는 대목이다. 한편, 미당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전기 집필, 전두환 찬양 등의 행적을 노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정은 서정주의 민족적 전통지향성이 현재형과 미래형으로 열리지 못하고 과거형의 신화적 시간 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이 결국 그가 친일문학을 하게 된 주된 배경이며 해방이후 지속된 신라정신과 영원성의 시학이 구체적인 경험세계의 모순과 대응력을 확보하지 못한 주된 이유라고 할 것이다.

시품격론(詩品格論)으로서의 정종(正宗)ㆍ대가론(大家論)

김갑기 ( Kim Gab-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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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시품격론이라 할 정종ㆍ대가론의 소원(溯源)과 수용 과정, 그리고 그 우열론이라는 다소 낯설고 난삽한 몇몇 과제를 재점검함으로써 17세기 중ㆍ후반의 다양한 우리 시학사 정리는 물론, 이후 성당 시학의 실천에 이어, 실학ㆍ평민문학으로의 발전 과정 및 천기론으로 무장하므로 자못 『시경』시에 비견한 진시(眞詩), 곧 여항문학으로 발전해 가는 시학사의 계경을 이해함에 일조하고자 한다. 먼저 정종ㆍ대가론의 시원이 고병의 『당시품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남송을 대표하는 시론가 ‘엄우의 『창량시화』에서 유래되었다’ 하고, 『창랑시화』와 『당시품휘』를 통해 강서시파에 대한 의고문풍의 필요성과 수용과정을 논증했다. 특히 엄우의 ‘선으로 시를 논以禪喩詩論’하며 ‘묘오(妙悟)와 ‘입신론(入神論)’이 고병의 『당시품휘』에서 이백의 정종론으로, 한위(漢魏)의 법도와 육조(六朝)의 재주를 집대성한 두보의 대가론으로 정착되었음을 논증했다. 이어 정종ㆍ대가 우열론에서 「이ㆍ두우열론」은 엄우 및 왕정지가 불가라 했으나, 엄우는 암묵적으로 이백을 좌단(左袒)한 정황이 있음을 밝혔으나, 워낙 문풍과 기호에 따르는 바 제가의 각설을 주로 요약했다. 우리 한 시비평의 경우 정종ㆍ대가론의 전개 과정을 약술하고, 김득신의 「평호소지석시론」으로 총론하되, 관각삼걸의 몇 작품과 삼당의 몇 작품을 예시하여 그 ‘웅혼(雄渾)한 미감’과 철저한 용사성 및 위미 염려성(萎靡 艶麗性)이 석주 권필 시의 ‘전고ㆍ용사의 작흔(作痕)은 물론, 시어의 조탁도, 인위적 과장도 없는 진실한 사실적 비유가 현장성을 배가하므로 정종의 시격임’을 논증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석주야말로 관각삼걸의 강서시파적 특질은 물론, 삼당의 위미ㆍ염려로부터 17세기 조선사를 성당시풍에로 가장 근사하게 접근시킨 정종으로, 이후 18세기로부터 팽배하는 무실적 사실문학, 나아가 천기를 근간으로 한 중인문학의 계경(階徑)을 제시했다고 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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