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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5권 0호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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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고려이후 진행된 불가 자전의 역사와 아울러 有一의 「自譜行業」, 草廣의 「三花傳」, 梵海의 「自序傳」 등 조선 후기 佛家 自傳의 대표적 사례를 들어 불가 자전의 성격 및 서술방식 상의 특성을 점검해보는데 초점을 두었다. 고려가 불가 자전을 예비하는 시대라면 조선시기는 다양한 서술방식의 자전이 출현하는 시기이다. 논의대상으로 삼은 세 작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出家의 동기 및 전후의 사정, 스승 찾기, 傳敎의 歷程을 핵심적 내용으로 삼고 있어 방황과 편력의 과거를 술회하는 서구적 의미의 자서전과 상당부분 합치된다. 하지만 서술 방식에 있어서는 작품간 적지 않은 편차가 있다. 즉 「自譜行業」은 編年體的 기록으로 사실을 치밀하게 수습하는데 열중하고 있으며, 「三花傳」은 주인공 스스로 꽃으로 의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희미하게 처리함으로써 人世가 곧 夢中임을 표징한다. 그러나 주인공의 구도적 행각만은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自序傳」은 自序와 自傳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한 글쓰기 방식을 취한다. 아울러 유람의 궤적을 비중 있게 처리하고 있으며 評決 또한 상세한 편이다. 세 작품을 통해 볼 때 적어도 修行과 傳法은 핵심적 내용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술방식에 있어서는 편차가 적지 않다하겠는데 이는 ‘나’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는 접근법이 그만큼 다양할 수 있음을 말해 준다.

불가(佛家) 한시(漢詩)에 내재된 그리움과 번민

이승수 ( Lee Seung-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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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수행과 글쓰기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애착과 번민을 벗어난 청정 세계의 표현이 아니라면, 글쓰기와 수행 사이는 너무도 멀어 보인다. 하지만 예로부터 지금까지 수행자들은 종종 문예적인 글쓰기를 시도했고, 그 글들은 세속인들의 마음까지 감동시킨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글쓰기는 수행의 미숙함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수행이 완숙의 경지에 이른 뒤에만 가능한 것인가? 여기에는 일률적인 대답을 내놓기 어렵다. 이 글은 고려와 조선시대 선승들이 남긴 漢詩를 대상으로 이 몇 가지 문제를 검토한 결과이다. 그들은 출가수행 중이에도 불구하고 짙은 그리움과 번민을 숨기지 않고 표출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그들이 도달한 높은 수행의 경지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움과 설움 또한 수행에 포함되어 있고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의 실존인 것이다.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고뇌와 번민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것이 수행자의 삶에 있어 흠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마땅히 그 그리움과 시름, 고뇌와 번민을 포함하여 수행자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만이 수행자의 면모가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은 물론, 보통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사원과 사원 밖, 수행자와 세속인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과 대화, 그리고 이해와 공감이다. 거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언어이고 문학이다.

침굉현변(枕肱懸辯)의 글쓰기 방식과 문학치료

김종진 ( Kim Jo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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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침굉의 서간문을 중심으로 그의 글쓰기에 담긴 문학적 자가 치료의 양상을 정리하였다. 본고에서 착안한 것은 그가 조선조 중후기의 고명한 선승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이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어린 시절의 가족의 죽음이 가져다 준 충격과, 청소년기에 경험한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던 심각한 외적 충격이 그의 내면에 쉽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서간문에 집요하게 반복되는 자신에 대한 지나친 겸양의 언사는 어린 시절에 가져야 했던 자아존중감의 부족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과도한 자의식은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할 경우 심리적 상흔으로 나타나며 육체적 증상으로 드러난다. 이는 병세를 드러내는 몇 편의 시와 소화불량의 증세를 추정하게 하는 행장의 일화에서 확인된다. 문학치료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서간문에 드러난 자기 고백적 글쓰기는 자신의 심리적 내상을 드러내고 있는 치료의 제1단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렇게 상처를 드러낸 내면의 빈자리를 그는 교학의 탐구와 선 수행에의 정진을 통해서 극복했음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시경 논어 맹자 및 노자 장자의 호한한 세계에 탐닉함으로써 빈자리를 채워나가려 한 경과가 역시 서간문과 한시 및 가사 <청학동가>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치유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한 경지는 ‘달’을 소재로 한 한시작품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유난히 달이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데, 달의 이미지는 맑고 명징한 달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는 매개이자, 자신의 아픔을 치유한 결과로서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가운데 다가오는 심리적 상관물로 해석될 수 있다.

실존, 자유부인, 프래그머티즘 ― 1950년대의 두 가지 ‘자유’ 개념과 문화

권보드래 ( Kwon Boduer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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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기에 새로 등장해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자유’는, 그 합법적(legitimate) 원천을 따지자면 프랑스 실존주의와 미국 사회과학이라는 두 가지 지적 조류에서 유래되었다. 실존주의를 통해 ‘자유’와 함께 ‘실존’이, 미국 사회과학을 통해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가 들어오고 정련되는 과정에서, 그러나 두 가지 ‘자유’ 개념은 판연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존재의 부조리와 공포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 실존주의의 ‘자유’는 개인성의 수준에서 한국 전쟁의 충격을 명명하는 데 기여했고, 전체주의와의 대결 의식을 내재한 미국 사회과학의 ‘자유’는 사회체의 수준에서 자본주의와 보통 선거와 정당 정치 등 새로운 정치·경제적 조건을 수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자는 작가를 중심으로 문학과 철학·예술 분야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고 후자는 대학 중심의 아카데미에 압도적 위세를 떨쳤다. 문제적인 사회 현상을 스펙트럼화하는 다소 무리한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1950년대에 화제가 되고 과제로 떠올랐던 많은 현상 중 상당수는 이 두 가지 ‘자유’ 개념 사이에 분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 전쟁 이후 문제된 ‘아프레 걸’이라는 여성군은 실존주의의 통속적 판본으로서 그 절망을 모방한 존재이자 미국 대중문화로 치장한 물질주의적 존재였으며, ‘자유 부인’이라는 명칭은 ‘아프레 걸’에 이웃하면서도 미국 대중문화를 더 일방적으로 편식하는 데 대해 붙여진 조롱의 레테르였다. 실존주의와 미국 사회과학의 ‘자유’가 남성지식인 사이의 언어요 현상이었다면, 보다 대중적인 문화 실천은 그 언어를 절단·채취하면서도 심각한 혼란과 좌충우돌과 자의적 해석을 드러내 보였다. 한국 전쟁의 충격이 소화되고 1950년대 당대 현실이 점점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면서 ‘자유’의 이러한 상황 또한 변화하기 시작한다. 1950년대 전반에는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새로운 이념을 주조하기 위해 먼저 ‘부정’의 자세가 필요했다면, 따라서 ‘부정’을 통해 형성된 모호성의 지대를 두고 실존주의와 미국 사회과학에 의한 ‘자유’가 각축하고 그 사이의 다양한 문화적 스펙트럼이 전개될 수 있었다면, 정치·경제적 불만이 팽배했던 1950년대 후반에 ‘자유’는 적극적 이념을 향해 수렴되어 갔던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4·19에 이르는 195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란, 다기했던 ‘자유’의 이해와 실천이 단일화되어 간 과정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4·19로 상징되는 종합은 그러나 이후까지 계속되는 분열의 계기 또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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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식민지 말기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정비석 소설을 각 시대적 맥락 위에서 읽음으로써 파편적, 일면적으로 고찰되어온 정비석 문학의 문제성을 전면화하고자 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미국 헤게모니하 한국문화 재편의 과정에서 창작된 『자유부인』, 『민주어족』 등의 대중문학이 『사상계』 지식인 담론에 소설적 육체를 부여함으로써, 지배계급과 지식인 엘리트 집단 사이의 정치적 분열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석했다. 또한 왜곡된 근대화를 ‘자유부인’이라는 여성 젠더를 통해 표상하면서, 올바른 근대화의 중심으로 소환하는 ‘부덕’, ‘인종’ 등의 전통 윤리가 식민지 말기 파시즘 윤리를 구성했던 세목들을 재구조화한 것임을 규명하였다. 결론적으로 정비석 문학을 사례로 식민지 말기, 해방기, 1950년대의 한국문학을 연속/비연속의 ‘겹눈’의 관점을 통해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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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은 한국에 근대화론을 전파하고, 근대화를 위한 물적, 인적, 심리적 기반 구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경제발전이 당시 ‘근대화’ 노선의 중심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나, 경제발전에 대한 검토만으로 1960년대 ‘근대화’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음도 자명하다. 1960년대 미국이 한국에서 추진한 근대화 프로젝트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었고, 제도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적 측면의 변화를 추구했다. 냉전시대 미국은 미국을 전범삼아 따라잡는 ‘추수적 근대화’와 함께 이에 역행하는 ‘반동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대항적(counter) 근대화’를 병행 추진했다. 동시에 미국은 근대화 성취를 위한 핵심요소들 중에 ‘심리적 변화’를 중시했다. 한국인들의 심리적 변화를 유도 하는 임무를 맡았던 담당했던 기관이 주한미공보원이었다. 1960년대 주한미공보원은 미국이 구상하는 근대화를 추수하도록 유인하고, 근대화에 요구되는 신념을 불어넣고, 적대적 요인들을 배격하도록 만드는 일련의 ‘심리전’을 벌이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다양한 보도영화, 기획영화는 미공보원이 심리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 활용한 매체였다. 1960년대 미국은 대한정책의 장기목표를 자립적인 통일국가 수립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실제 추진된 근대화 프로젝트는 이와 배치되었다. 미국이 추진한 1960년대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는 민족문제 논의를 배제하고, 한국을 미국주도 세계질서에 공고하게 결합하도록 유도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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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기초로 하여 형성된 새로운 문화 형태는 타이완에 미증유의 충격을 가져왔다. 본래 蔣介石 정권은 타이완인에게 중국민족주의 교육을 철저히 실시하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國語運動’을 벌이는 등 타이완식 민족주의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덴티티적 통제는 계엄 해제 이후 차츰 와해되었다. 정치적 개념이 주도하는 구조 외에도 타이완에서는 사실 또 다른 자기 정체성의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또 하나의 문화적 가능성으로 타이완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신분적 상상이다. 즉, 타이완민족주의가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은 계엄해제 후 생긴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가 만든 포스트모던의 상황이었다. 미국식 문화가 주도해 온 패권은 여전히 경제식민의 형태로 타이완 사회를 통제하였고, 계엄 이후 다시금 수입된 구미, 일본, 한국문화가 가져온 새로운 문화 상상은 민족주의의 신성성을 해체시켰으며, 유행의 상징과 매체의 전파를 통해 위협적인 신종 아이덴티티 타입을 형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후기 자본주의의 충격 아래 있는 타이완 문화의 실체이다. 모든 집단 개념은 분해되고 소멸되었으며, 인간의 주체성도 자본주의가 구성하는 상업문화체로 방향을 바꾸어 이전의 역사문화체가 아니게 되었다. 요컨대 유럽, 미국, 일본에서부터 최근 타이완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이 자본주의 문화 전범은, 생활, 문화, 문학, 대중매체 등 각 분야에 들어와 타이완인의 자아에 대한 사고를 부단히 갱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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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산거영」은 백련사(白蓮寺)의 승 철경(掣鯨)이 다산(茶山)에 유배 중이던 정약용과 함께 석옥청공의 산거시(산에 살며 지은 시)에 차운하고 백련사의 또 다른 승려인 수룡(袖龍), 침교(枕蛟), 철선(鐵船) 등의 차운시도 함께 묶어 1818년 서문을 붙인 시첩이다. 석옥청공은 원말(元末) 절강(浙江) 하무산(霞霧山)에 은거한 선승(禪僧)으로 그곳을 찾은 고려의 태고보우(太古普愚)에게 임제선법(臨濟禪法)을 전해준 이며, 빼어난 산거시를 남긴 시승(詩僧)이다. 따라서 이 시첩은 불가(佛家)와 유가(儒家)가 함께 만든 산거시집이고 차운시집(次韻詩集)이며 교유시집(交遊詩集)으로 한국 불교문학과 한국 선불교사(禪佛敎史)를 보충하는 한편 정약용의 다산 유배기 시작품을 보충하는 자료인 점에서도 주목된다. 「육로산거영」에 실린 석옥과 다산의 시는 한적한 산중 생활의 소회와 감흥을 ‘산거시’ 양식에 담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산거시는 산중 생활의 정서적 감흥과 미의식에 있어 얼마간의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 이런 점은 그들이 산거하게 된 계기와 목적의 다름, 그들의 세계관적 바탕이 된 유교사상과 불교사상의 차이에서 기인함을 볼 수 있다. 곧 석옥은 선승으로 구도(求道)의 공간인 하무산에 은거하며 시를 지었고, 정약용은 유가사대부(儒家士大夫)로 다산에 유배객(流配客)이 되어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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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문화운동은 1920년대 들어 다양한 이념들의 이론적, 실천적 쟁투 속에서 활성화되었다. 그런데 이미 1910년대 후반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 내부에도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 다종의 서구 사상이 혼재해 있었다.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의 여명회에 가담했던 백남훈과 최승만은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의 핵심간부로 활약한 대표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였고, 그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선진적으로 흡수한 김영만이나 정노식은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의 기관지 『기독청년』의 주요 기고자였으며, 아나키즘에 경도되었던 염상섭도 바로 이 지면에서 현상윤과 수차례 논쟁을 벌였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1910년대 후반기의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는 단순한 종교적 친목단체가 아니라 민족독립운동과 다양한 문화담론적 실천들이 맹아적인 형태로나마 혼융되어 있던 근대 청년문화의 유력한 기원 중 하나에 해당한다. 전영택, 이광수, 이일 등은 서양선교사가 주도하는 조선교회의 실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통해 신앙의 자율이 곧 근대적 자아 형성의 중요한 기초임을 암시했다. 다른 한편, 『기독청년』의 주요 필자였던 정노식이나 김영만이 귀국 직후 각기 속한 사회주의 분파는 1920년대 이후 해방기까지 복잡한 대립과 길항을 형성하게 되지만, 흥미롭게도 이들 두 청년지식인은 1910년대 후반 『기독청년』과 동경기독교청년회 단체를 중심으로 동숙하고 있었다. 그 같은 사상적 혼재는 정치사상만이 아니라 문학·문화 담론의 영역 안에서도 발견된다. 『기독청년』에서 이루어진 현상윤과 염상섭의 논쟁은 1910년대 후반기의 사상적 지형 속에서 개인의 자아 함양과 실천의 가능성이 전대에 비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될 수 있었음을 증언해준다. 그러한 변화는 넓게는 1910년대 후반기 일본 사상과 문화를 석권했던 다이쇼 문화주의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 주도의 각종 문화행사와 그 기관지인 『기독청년』 내에서 기독교비판이 활성화되고 아나키즘과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사상과 문화 담론이 적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던 사정에 힘입은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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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근대문학 형성기에 발표된 나혜석의 「경희」와 삥신의 「두 가정(兩個家庭)」은 두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두 작가의 자국에서의 문학사적 위치, 창작 동기, 작품의 내용과 형식 등의 유사성으로 그 비교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다. 이 글에서는 ‘영향 없는 유사성’의 비교문학 방법론으로 ‘여성 교육’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이상적인 신여성의 표상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나혜석과 삥신은 여학생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결혼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글에서 다룬 두 작품은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근대적 가정에서 교육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이 부각되어 있다. 1910년대 말, 한국과 중국의 여성 계몽서사에서 신여성은 모범적인 근대 가정의 경영자로 부상된다. 봉제사를 관장하고, 자녀를 양육하던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서 자녀를 가르치는 교육자와 남편을 성공시키는 내조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제 여성은 자녀의 양육뿐 아니라 교육까지 담당해야 하는데, 이것은 아동과 여성을 호명해서 부국강병을 꾀하려던 개화사상가들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한·중 신여성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경희와 야첸은 근대적 가정 개조의 주체이자, 근대적 교육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번역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여성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여성으로 한정 짓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 확장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들이 받은 근대적 교육을 가정의 영역에서 적용하여 실천했다. 더욱이 이들의 번역 작업은 여성이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도 공적 영역인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상적인 신여성상에는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나혜석과 삥신의 시대적 사명감과 실천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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