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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제국 일본’ 붕괴 이후에 발생한 대규모의 이동, 이주에 주목하였다. 종전과 해방, 제국의 해체와 냉전 체제의 구축 속에서 대규모의 인구 이동이 발생하였다. 이와 같은 이동은 일반적으로 ‘귀환’이라고 명명되고 개념화되어 서술되었고, ‘귀환서사’라는 맥락에서 논의되었다. 해방기의 다층적인 인구 이동 현상을 귀환의 문제로 개념화하고, 민족수난사나 민족적 과제로 설정하여 신생국가건설과 국민통합의 과정으로 간주하는 시도는 일면적인 해석이다. 해방기의 광범위한 이동과 이주를 민족적ㆍ국가적 귀환으로 축소시키거나 포섭하고자하는 시도는, 의도하지 않았다하더라고 그러한 ‘이동성’에 내재해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봉쇄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이러한 ‘이동성’의 복원을 통해서 해방기의 정치적 가능성과 잠재성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글의 의도이자 문제의식이다. 다시 말해, 이 글에서는 해방기의 이동이라는 사건을 국민국가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잉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지점에 주목하여 해방기 이동을 다루는 염상섭의 소설들 ― 「혼란」, 「모략」, 「삼팔선」, 「엉덩이에 남은 발자국」―을 검토하였다. 이러한 염상섭의 소설에서 이동은 국가형성 혹은 국민형성의 자연스러운 과정들로 형상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동하는 자들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협하고, 불안을 야기하는 골칫덩어리로 형상화되며, 형성되는 국가는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체제의 안전을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