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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만세전」은 식민지 조선을 공동묘지로 인식하면서, 근대화를 통해 그 묘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직설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에서 근대화의 상징물 또한 공동묘지이었다. 미신의 산물이면서 비생산적인 전통적 매장풍습을 버리고 근대의 산물인 공동묘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묘지는 벗어나야 할 장소이면서 동시에 지향해야 할 장소로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현실적 맥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오랜 매장관습을 일조일석에 일본식 공동묘지로 바꾸라는 총독부의 묘지령은 3·1운동의 한 원인이 될 정도로 조선인들의 원성이 높았지만, 급속한 근대화를 주장하던 일부 조선인들은 적극 찬성하기도 했다. 이 논문은, 전통적 묘지제도와 새로 도입된 공동묘지 제도를 대조하면서 그 사회경제적 의미를 살피고, 그 위에 염상섭의 묘지에 대한 인식을 재정위하고자 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염상섭의 전통 묘제에 대한 비판은 선산으로 집중되는 바, 이는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선산은 주로 중류층 이상이 활용했던 것이었을 뿐이니 염상섭은 무산층이 왜 묘지령에 저항했는지는 알지 못했던 셈이다. 무산층은 일종의 중세적 공유지라고 할 수 있는 북망산의 무료 사용 권한을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묘지령 이후에 그들은 죽어도 묻힐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묘지사용료를 내야 했고, 사망진단서 등 근대적 서류까지 챙겨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반발은 만세전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미신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염상섭은 유산층의 선산과 무산층의 북망산 사이의 구별을 무화시킨다. 더군다나 ‘조선인=근대미달=(묘지 속의)구더기’라는 등식을 떠올리는 것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무산층 인물을 보면서였다.
둘째, 이 소설에서 근대화의 모델로 상정한 공동묘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염상섭이 유학시절에 자주 찾았다는 도쿄(東京)의 ‘조시가야(雜司谷)’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인화의 아내를 매장하는 핵심적인 장면이 단 두 문장으로 압축되는 등, 이 작품에서 공동묘지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고 단지 관념에만 의존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인화의 아내가 매장되어야 했던 조선의 공동묘지는 일본의 그것과는 달리 전래의 황량한 모습 거의 그대로였으므로, 근대화의 모범으로서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셋째, 일제는 산림조사사업과 묘지령을 통해서 식민지적 근대화를 위해 토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으로 ‘1물 1주권’의 배타적 소유권 제도를 도입한다. 만민공유의 중세적 공유지로 남아있던 조선의 산림(및 그 내부의 묘지)은 식민권력이나 그에 협조적인 유력 인사의 소유로 바뀌게 된다. 한국의 산림을 자본주의적으로 재편성하는 극적 계기였지만, 「만세전」에서는 ‘생산에서 면제된 공간’을 극소화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적극 찬성하면서 오직 그 새로 늘어난 땅이 주로 일본인에게 넘어간다는 점만을 문제라고 인식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되는 배타적 소유권의 수익자에만 관심 갖는 태도라고 하겠으며, 그 과정에서 고통 받는 계급에 대한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세전」의 주된 소재인 묘지를 당대의 사회현실과 대조하면서, 식민화 및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가장 고통 받은 무산계급에 대한 인식이 모자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중간계급 출신 작가로 경제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염상섭이, 오랜 일본 유학을 거쳐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필한 작품이라는 점과 유관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대체로 민족과 근대성의 문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계급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소홀히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