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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9권 0호 (2010)

<최고운전>의 설화적 전승과 ‘최치원설화’의 연원

유광수 ( Yu Gwang-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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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최고운전>과 최치원설화를 대상으로 두 가지 점을 검토 했다. 우선, 최치원설화가 그동안은 별다른 검토 없이 지하대적퇴치설화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어 왔는데, 그렇게 보기 힘들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지하대적퇴치설화는 지하대적으로 빚어지는 혼란을 영웅이 해결하는 것으로, 어지럽혀진 사회질서를 재건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설화는 잡혀갔던 여성에 의해 긍정적 존재인 최치원이 출생한다는 점에서 금돼지의 긍정적 측면이 드러나고, 훼손된 질서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지하대적의 자식이 출생함으로 인해 어지러움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혼선이 생긴다. 즉 명확한 선악의 이분법이 작용하는 지하대적퇴치설화와 최치원설화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최치원설화는 <최고운전>의 최치원출생담과 같은 내용으로 분명한 수수관계가 성립하는데, 이 둘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소설 → 설화’의 관계가 됨을 확인하였다. 고상안의 『효빈잡기』를 통해 <최고운전>이 최치원설화보다 먼저 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그렇지만, <최고운전>의 최치원출생담에 여러 설화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 소설에서나 가능한 ‘금돼지’, ‘녹피’, ‘문창 고을’과 같은 명시적인 것들이 설화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 등을 통해, 소설이 먼저 출현하고 이후 소설을 향유한 사람들에 의해 설화로 전승되었음을 알았다. <최고운전>은 다양한 설화가 조합ㆍ적용된 소설로 작가의 독창적인 창작 방법과 의도에 따라 소설적 성취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작가의 창작 의도와 창작 방법을 면밀히 검토함을 통해 앞으로 본고의 결과가 보다 더 분명해질 것이라 생각한다.

가사(歌辭)와 지도의 공간현상학 - <관서별곡>과 관서도(關西圖) 견주어 읽기

김종진 ( Kim Jo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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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문학과 지도의 공간현상학이 상호 의미 있는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기행가사의 효시로 알려진 <관서별곡>과 평안도지도, 기성도를 중심으로 상호 관련성을 읽어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본고에서 확인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리적 정보를 도면에 배열하고 이를 선으로 연결하여 문화적인 의미의 길을 그려내며 부분적으로 각 도시의 역사성을 빈 공간에 보완하는 지도의 전달방식은 지리서의 그것과 상통하며, 이는 지명의 나열을 기본으로 하여 부분적으로 압축과 확장을 통해 공간의 문화적 의미를 드러내는 가사의 전달방식과도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이다. 둘째, 평양성을 그린 기성도와 평양에서의 여정을 담은 관서별곡의 해당 부분은, 서로 표현하는 대상이 일정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나의 작품, 한 폭의 그림에 담아내는 방식에서 상호연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견주어 읽기의 문학교육적 의의 - 구체적으로는 <관동별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한 <관서별곡>의 의의 - 를 드러내었다.

아이덴티티의 장소로서의 경주

황종연 ( Hwang Jong-y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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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건축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보고를 통해 경주의 고적이 일본인들에게 알려진 이후 경주는 신라의 도읍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인식되고 개발되기 시작했다. 식민지 정부의 관리를 비롯한 일본인 거류민은 신라 유적의 발굴과 보존 사업을 주축으로 경주의 공간을 재편하면서 그곳에 잔존한 고려와 조선의 자취를 억누르고 그곳을 신라 구도로서 재생하고자 했다. 그들의 경주 조사와 개발은 경주의 새로운 광경을 창출한 동시에 사실상 경주 경험의 새로운 조건을 창출했다. 1917년 조선 남부 순례 중에 경주를 방문한 이광수를 시작으로 조선인 작가들은 일본인이 개발한 유람 행로를 따라 경주를 여행하고 일본인이 만들어낸 표상 구조에 의존하여 경주를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일본인 거류민이나 여행자와 같은 방식으로 경주를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경주의 고적과 전설에서 조선인의 자각에 유용하다고 믿어지는 어떤 계시를 구하고 있었다. 경주 공간의 식민주의적 재편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조선인의 민족의식의 발양에 적합한 문화적 자원을 공급했으며 나중에 한국 국민문화 구축의 중요한 수단의 하나를 이루는 경주의 성지화(聖地化)에 토대를 제공했다. 경주는 식민지 조선인이 당대의 집합적 삶의 요구에 맞게 스스로를 형성하는 데에 유용한 상징과 이야기의 원천이 되었다. 현진건에게 박제상의 이야기는 현대의 자주적인 조선인의 전상(前像)을 담고 있으며, 이태준에게 오릉의 경관은 특유의 미적 감수성을 지닌 동양인이라는 의식을 북돋운다. 그들의 경주 텍스트는 흥미롭게도 1920년대와 1940년대 사이에 일어난 조선관의 중대한 변화, 즉 일본에 대립하는 자주 민족으로서의 조선에서 일본 제국의 한 지방으로서의 조선으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경주에 관한 현진건과 이태준의 텍스트는 그곳이 조선인 아이덴티티의 구성에 준거가 되는 장소의 하나였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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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만세전」은 식민지 조선을 공동묘지로 인식하면서, 근대화를 통해 그 묘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직설하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작품에서 근대화의 상징물 또한 공동묘지이었다. 미신의 산물이면서 비생산적인 전통적 매장풍습을 버리고 근대의 산물인 공동묘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묘지는 벗어나야 할 장소이면서 동시에 지향해야 할 장소로서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현실적 맥락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오랜 매장관습을 일조일석에 일본식 공동묘지로 바꾸라는 총독부의 묘지령은 3·1운동의 한 원인이 될 정도로 조선인들의 원성이 높았지만, 급속한 근대화를 주장하던 일부 조선인들은 적극 찬성하기도 했다. 이 논문은, 전통적 묘지제도와 새로 도입된 공동묘지 제도를 대조하면서 그 사회경제적 의미를 살피고, 그 위에 염상섭의 묘지에 대한 인식을 재정위하고자 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염상섭의 전통 묘제에 대한 비판은 선산으로 집중되는 바, 이는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선산은 주로 중류층 이상이 활용했던 것이었을 뿐이니 염상섭은 무산층이 왜 묘지령에 저항했는지는 알지 못했던 셈이다. 무산층은 일종의 중세적 공유지라고 할 수 있는 북망산의 무료 사용 권한을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묘지령 이후에 그들은 죽어도 묻힐 곳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묘지사용료를 내야 했고, 사망진단서 등 근대적 서류까지 챙겨야 했다. 따라서 그들의 반발은 만세전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미신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염상섭은 유산층의 선산과 무산층의 북망산 사이의 구별을 무화시킨다. 더군다나 ‘조선인=근대미달=(묘지 속의)구더기’라는 등식을 떠올리는 것은 일본 경찰에 체포된 무산층 인물을 보면서였다. 둘째, 이 소설에서 근대화의 모델로 상정한 공동묘지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염상섭이 유학시절에 자주 찾았다는 도쿄(東京)의 ‘조시가야(雜司谷)’ 묘지일 가능성이 높다. 이인화의 아내를 매장하는 핵심적인 장면이 단 두 문장으로 압축되는 등, 이 작품에서 공동묘지에 대한 묘사가 전무하고 단지 관념에만 의존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인화의 아내가 매장되어야 했던 조선의 공동묘지는 일본의 그것과는 달리 전래의 황량한 모습 거의 그대로였으므로, 근대화의 모범으로서 구체적으로 묘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셋째, 일제는 산림조사사업과 묘지령을 통해서 식민지적 근대화를 위해 토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으로 ‘1물 1주권’의 배타적 소유권 제도를 도입한다. 만민공유의 중세적 공유지로 남아있던 조선의 산림(및 그 내부의 묘지)은 식민권력이나 그에 협조적인 유력 인사의 소유로 바뀌게 된다. 한국의 산림을 자본주의적으로 재편성하는 극적 계기였지만, 「만세전」에서는 ‘생산에서 면제된 공간’을 극소화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적극 찬성하면서 오직 그 새로 늘어난 땅이 주로 일본인에게 넘어간다는 점만을 문제라고 인식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탄생되는 배타적 소유권의 수익자에만 관심 갖는 태도라고 하겠으며, 그 과정에서 고통 받는 계급에 대한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세전」의 주된 소재인 묘지를 당대의 사회현실과 대조하면서, 식민화 및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가장 고통 받은 무산계급에 대한 인식이 모자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중간계급 출신 작가로 경제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염상섭이, 오랜 일본 유학을 거쳐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필한 작품이라는 점과 유관할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은 대체로 민족과 근대성의 문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계급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소홀히 한 셈이다.

정지용과 ‘구인회’―『시와 소설』의 의의와 「유선애상」의 재해석

장영우 ( Jang Young-w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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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소설』은 구인회의 유일한 동인지로, 이 책에 실린 작품은 각자의 문학세계에서 매우 독특한 위상을 차지한다. 그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작품은 박태원의 「방란장주인」과 정지용의 「유선애상』이다. 「방란장주인」은 5,558자의 긴 문장을 하나의 마침표로 처리한 작품으로 그의 문체에 대한 실험의식을 알 수 있게 한다. 「유선애상」 또한 정지용의 시세계에서 이질적인 유형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이 시의 소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유선애상」의 소재에 대한 해석적 관점은 다양하지만, 이 시는 전체 구조가 일관된 하나의 서사를 형성한다. 필자는 이 시의 소재를 ‘유선형 자동차’로 보고 선행연구가가 해명하지 못했던 구절을 일관된 관점으로 해석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고 시의 어조가 냉소적이라는 사실과 시 제목이 “애상”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즉, 이 시의 대략적인 서사는 유선형 자동차를 하루 전세 내어 근교로 행락을 떠났던 화자가 경박한 유행풍조에 부화뇌동하는 자신을 반성하고 장거리 여행을 포기하고 중간에서 멈췄다는 내용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여러 논자가 다양하게 해석했던 구절의 의미가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해방과 기억의 정치학 - 해방기 기억 서사 연구 -

오태영 ( Oh Tae-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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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해방기 ‘기억 서사’에 나타난 개인의 자기 재정립의 욕망을 살펴보았다. 이태준의 「해방전후」의 서사가 ‘잊어야 할 기억’을 감추는 자기기만 속에서 자기의 재구축을 보여주었다면,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의 서사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드러내는 자기고백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재구축하고자 한 욕망을 펼쳐보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이태준의 「해방전후」가 ‘과거-현재’의 순차적 시간 구성에 의해 서사를 이끌어나가면서 해방을 기점으로 과거를 망각하고 변화된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고 있다면,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은 ‘현재-과거-현재’의 순환적 시간 구성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결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 두 서사 모두 해방기라는 혼돈의 시기가 개인에게 끊임없이 요청한 자기 갱신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응답했다는 점에서, 그것을 ‘자기의 정치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시 말해, 내적 욕망의 발로이든, 타자의 시선에 대한 반응이든, 해방기 개인이 정치적 주체로 자신을 새롭게 주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전후」와 「민족의 죄인」의 서사는 그 자체로 자기의 정치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잡지 『신천지』의 매체 전략과 문학

이봉범 ( Lee Bong-be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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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1946.2~1954.10)는 해방 후 매체와 문학의 상관성과 그 역동적 변화상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다. 1949년 전향국면을 경계로 잡지주체의 변용과 편집노선의 급격한 전환을 보이는데, 전반기는 자주국가 건설을 목표로 진보적 민주주의노선에 입각해 해방직후의 사상사적·문화사적 분위기와 담론을 수렴하고 있으며 후반기는 냉전적 반공주의를 즉자적으로 반영한 보수우익의 대변지로 기능하는 가운데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신천지』는 서울신문사잡지로 충분한 물적·인적 지원을 받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안정적인 재생산이 가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신문사 매체자본의 기능적 역할분담체계 속에서 편집방향과 담론영역의 조정을 받는다. 『신천지』의 편집방침은 국내외를 막론한 각 방면을 두루 포괄하는 망라주의로 1930년대 『신동아』를 비롯한 신문사잡지의 편집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신천지』는 단순히 불편부당의 중도의 노선을 걸었다기보다는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반제반봉건 과제를 중심으로 민중의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진보적 민주주의노선의 정론성을 견지했다. 『신천지』의 대중화전략의 핵심은 민중 계몽인데, 그것은 지적 계몽과 더불어 독자대중의 삶과 유관한 사회현상이나 사건을 르포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대중들의 현실이해를 도모하는 방식으로 독자층과의 유대를 강화했다. 그리고 해방조선과 전후 세계체제의 유기적 연관성에 주목해 세계사적 지평으로 의제 설정을 확대시키는 가운데 국제정세와 사상·지식의 동향을 적극적으로 소개해 민주주의노선을 강화하는 번역의 정치학이 작동했다. 이 모든 것은 문학에도 그대로 연동되어 나타난다. 이렇듯 정론성, 대중성, 세계성이 상호보완적으로 결합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신천지』가 담론 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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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4·19세대’라는 담론이 번성했던 데 비해 4월항쟁에 대한 직접 발언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껏 이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구사된 전략은 ‘소시민문학’론이 표명했듯, 4·19 세대의 작가들이 개인과 개인주의를 문학적으로 형상하는 데 진력한바 그것이 한국에서 근대적 시민의 형성과 일치한다는 것이거나, 혹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논의가 보여주듯 ‘민족’·‘민중’의 발견에 이르는 도정이 곧 4월항쟁의 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으로서 4·19 세대의 개인주의는 그 과정에서 부정적 매개로 현현했다는 것이었다. 각각 『문학과지성』과 『창작과비평』으로 연결되는 이 두 가지 설명방법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또한 4월항쟁의 개인·자유와 민중·민주주의를 분리시키는 효과를 발휘해 왔다고 생각된다. 「4월의 문학혁명, 근대화론과의 대결」에서는 이러한 분리를 넘어 4월항쟁의 자장 속에서 『산문시대』에서 『창작과비평』까지에 이르는 문학적 흐름을 해명함으로써 1960~70년대의 문학사를 연결시킬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보고자 했다. 특히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매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는 이청준과 방영웅이라는 두 작가를 통해 1960년대 후반 문학사에 있어 개발독재정권의 근대화론에 대한 대결의식이 ‘4·19 세대’의 문학을 이끈 주조음임을 밝히고자 했다. 이청준은 「퇴원」과 「조율사」,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등을 통해 상징성을 획득한 ‘허기’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론이 선전한 성장-발전의 논리에 저항하고자 했으며, 방영웅은 『분례기』에서 보이는 거의 몰역사적인 무명성(無名性) 혹은 불결성의 세계를 통해 빈곤이 순치될 수 없는 현실이자 개념임을 웅변하였다. 이 각각은 서로 다른 전략을 통해 ‘반정치성을 통한 정치성’, ‘몰역사성을 통한 역사성’이라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5·16과 이후의 개발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거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으되, 저항을 현실화하고 다중화하며 미래와 결부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독자적 문법과 시제를 획득한 저항의 양식은 황석영·신경림 등 새로운 문학 실천에 의해 가능해졌으며, 이른바 ‘창비’와 ‘문지’ 사이의 분리 또한 이를 중심으로 현실화된다. 그러나 1960년대 당시라면 『산문시대』에서 『창작과비평』에 이르는 젊은 세대의 반(反)문협 문학실천은 4월항쟁의 ‘자유’를 문학적 주제로 삼는 태도를 함께하고 있었고, 이청준과 방영웅으로 대표되듯 ‘문지’와 ‘창비’ 사이 예비적 분기에 있어서도 반근대화론이라는 공통지평은 널리 공유되고 있었다. 1970년대 문학의 변형과 성장이란 이러한 1960년대의 공동 유산에 기초해 자라난 가능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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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극작가 한운사는 한국 방송극의 초창기와 형성기 연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극작가이다. 그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히지 않고 ‘반전(反戰)드라마’의 틀에서 6·25전쟁의 참상을 전파로 기록한 ‘방송문학’의 선구자였다. 따라서 한운사의 방송극 세계의 전모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작가가 명명한 ‘통일연습시리즈’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고에서는 ‘통일연습시리즈’ 가운데 일차로 ‘반전(反戰)드라마’의 면모가 돋보인 <이 생명 다 하도록>, <어느 하늘 아래서>, <남과 북>을 대상으로 6·25전쟁의 실상과 ‘전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한운사의 ‘통일연습시리즈’ 가운데 ‘반전드라마’에 해당하는 작품들은 ‘반공드라마’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던 시절에 비록 ‘반공’ 이데올로기의 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함으로써 통일을 지향한 드라마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3편의 방송극 가운데 <이 생명 다 하도록>을 제외한 나머지 2편이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6·25전쟁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처리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극적 결말은 6·25전쟁이 허구의 세계에서조차 해피엔딩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참상이라는 작가의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운사는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떠나 한 핏줄로서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통일’이 6·25전쟁의 상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여 전쟁에 대한 당대 대중의 비판적 성찰을 유도하기 위한 작가의 선택이 비극적 결말로 표현된 것이다. 방영 당시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다시 제작될 정도로 당대 대중의 호응이 높았던 한운사의 ‘통일연습시리즈’ 가운데 ‘반전드라마’의 범주에 속하는 3편이 남북 분단이 고착되는 정치 현실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1차 자료의 분석 결과를 뒷받침할 만한 2차 자료 제시가 충분하지 않아 ‘통일 연습 시리즈’의 방송극사적인 의미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후속 연구를 통해 11편의 ‘통일연습시리즈’ 가운데 본고에서 다루지 못한 나머지 작품들을 분석한 뒤로 미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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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기표와 기의를 지닌 언어이다. 그것은 해독을 위해 별다른 학습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자와 음성보다 더욱 보편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미니시리즈 <추노>는 이러한 영상의 언어화를 적실히 보여주는 수작(秀作)이다. <추노>는 살아남은 슬픈 이야기 꾼 황철웅의 회고 형식으로 구성된다. 텍스트 앞뒤에 삽입된 그의 내레이션으로 인해 극은 사실-허구-사실의 포즈를 취한다. 허구가 사실적 허구로 승격되면서 텍스트의 현실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더불어 승리한 악인과 패배한 선인 가운데 전자를 화자로 내세워, 기록된 역사와 기억하는 역사 사이에 빚어지는 의미심장한 간극을 보여준다. 철웅의 절제되고 건조한 목소리는 현실과 육신의 승리가 이상과 정신의 패배보다 훨씬 보잘 것 없고 왜소한 것임을 시사하는 자기반성적 증언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추노>에서 한층 돋보이는 것은 영상을 통해 의미를 구축해 나가는 면면이다. 텍스트는 다섯 가지 차이의 기획을 통해 영상을 언어화한다. 고속 촬영과 심도 조절에 특화된 레드 원 카메라를 이용하여 ① 시간 교란 및 속도 조절, ② 공간 대비 및 방향 대조, ③ 색상·명도·채도의 변화, ④ 초점 거리의 이동, ⑤ 삼각 구도의 다변(多變) 등과 같은 화면 배치를 통해 인상적인 미장센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것은 문자와 음성에 의존하지 않은 채 화면에 산포된 다양한 기호와 이미지만으로도 서사를 진전시키고 긴장을 고조시킨다. 실제와 화면의 구분을 무색케 하는 첨단의 영상이 문자와 음성만큼 분명하면서도 문자와 음성보다 구체적인 언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추노>의 빼어난 미장센은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상 언어가 다다른 현재를 예시하고 도달할 미래를 예견케 해준다. 그것은 곧 형상(形象)과 형언(形言)이 동시에 달성되는 미학적 영상 언어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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