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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06년 이인직이 창작한 소설 「혈의누」에 등장하는 고유명 ‘옥련’을 중심으로 하여, 그것이 최초로 1회가 연재될 당시에는 주로 ‘옥연’으로 표기되고 있다가 이후 소설 속 주인공 옥련의 이주의 과정에 따라 그 표기의 양상이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목하여 이러한 고유명의 표기 양상이 주인공 옥련의 이언어적 매개를 통한 세계의 인식과 내용적으로 연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실제로 「혈의누」 1회에서 옥련의 어머니 입을 통해 16번이나 발화되었던 고유명 ‘옥연’이라는 음성적 실체는 회를 거듭해감에 따라 그 형태가 ‘옥련’, ‘옥년’ 등으로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혈의누」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처음으로 신문이라는 매체에 동시대적으로 연재되어 작가의 창작 과정과 독자의 반응이 결부될 수 있었던 첫 번째 경험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소설이라는 글쓰기에 있어서 당연히 발생하기 마련인 작가와 독자 사이의 의미 생산과 전달의 불일치를 최초로 경험하게 되었던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후 소설의 주인공 옥련이 친숙한 공간인 조선, 평양을 벗어나 일본이라는옥 련이언어적인 공간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옥련의 고유명 표기가 ‘玉蓮’이라는 단일한 표기로 고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면, 「혈의누」의 작가 이인직이 ‘옥련’이라는 고유명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예민한 언어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후 옥련이 일본이라는 세계 속에서 일본어에 능숙하게 되어 일본이라는 공간을 더 이상 이언어적인 공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친숙한 자신의 언어적 집안처럼 여기에 되었을 때 다시 ‘옥연’, ‘옥련’, ‘옥년’ 사이의 음성적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분명 이인직이 오랜 일본 유학으로 인해 한자를 읽는 조선의 동음(東音)이라는 언어적 전통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는 위치에 놓일 수 있었던 사실과 관련되어 있으며 당시 조선이 중화의 전통으로부터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적인 체제로 재편입되었던 과정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혈의누」의 36회 이후, 옥련이 미국의 화성돈(華盛頓, Washington)으로 건너간 후에 있어서는 더 이상 이전의 고유명 ‘옥련’과 관련되었던 국한문 사이의 엄격한 구별을 찾기 어렵고 오직 ‘옥연/옥련/옥년’이라는 음성적 혼란만이 남아 있게 된다. 한자 문명권이 아니었던 미국에 유학하는 경험을 갖지 못했던 이인직이 한문이 담당하는 의미적인 기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까닭일 것이다. 다만 신문에 실린 옥련의 이름만이 국한문이 병용되어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은 국/한문이 각각 담당하였던 기능적인 위계만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