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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2권 0호 (2012)

사실, 방법, 질서 - 근대문학에서 과학적 인식의 전회

차승기 ( Cha Seung-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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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 근대문학에서 과학적 인식의 개념이 전환되어 온 계기들을 고찰함으로써 근대문학이 ‘사실들’을 취급해 온 방식의 변화와 그 진폭을 가늠해 보고, 근대문학 내에서의 과학적 인식의 한계지점을 사유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문학에서 과학적 인식을 요청하는 마르크스주의자와 모더니스트의 텍스트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과학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입장에 기초해 문학과 예술의 계급성을 강조했지만, 신경향파 초기의 과학적 인식이란 문학 이전에 선결되어야 할 전제였다. 그러나 김기진의 ‘감각의 혁명’론에서 이어지는 리얼리즘론과 KAPF 내의 다양한 리얼리즘 논쟁을 거치면서 여러 역설과 한계를 내포한 채로 과학적 인식은 문학 내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모더니스트들에게 과학적 인식이란 주관성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사실에 접근할 때만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관점을 견지함으로써 예컨대 최재서는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대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의 장치성을 망각했고, 김기림은 지적인 투명한 비약을 통해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인 것으로 전화시키는 길에서 과학성을 찾으려 했다. 한편 중일전쟁 발발 직후 발레리의 ‘사실의 세기’론으로 상징되는 주객분리와 인식적 주권상실의 사태 속에서 과학적 인식은 기술-수단적인 의미로 변형되어갔다. 도식적으로 볼 때, 식민지 시기 근대문학에서 과학의 지위와 성격은 ‘과학적 세계관’에서 ‘과학적 방법’으로, 그 다음엔 ‘기술적 이해’로 전환되어 갔다. 하지만 ‘전체성에 대한 파악’의 방법으로 이해된 과학은 환원불가능하고 통약불가능한 것들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파편화되고 소외된 것을 극복하려는, 요컨대 식민지 상태를 탈피하려는 유토피아적 충동을 내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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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은 학지(學知)의 언어횡단적 실천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기였다. 을사조약을 계기로 근대지(近代知) 도입과 번안의 루트가 일본 쪽으로 급속히 일원화되었다. 특히 분과학문 체제의 도입을 반영한 잡지 간행 및 교과 편제의 개편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때 출간된 『수리학잡지』 (1905)와 『신찬소물리학』(1906)은 과학적 세계관의 도입에 중대하게 기여했다. 전자는 과학의 언어로서의 수학적 서술, 후자는 실험을 통한 법칙의 도출이라는 과학적 방법의 예시를 국문으로 번역했다. 『소년한반도』는 이과를 비롯한 각 분과학문을 대등하게 배치했으며 특히 광물학과 생물학, 유기체와 무기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도입했다. 이러한 개별적 사례들은 특히 류근이 역술한 「교육학 원리」의 교과목 체계 속에서 종합되고 있었고 그 과정 속에 문학 개념 또한 예기치 않게 출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매체의 경우 초기에는 과학적 상식과 이론적 원리의 소개에 치중했지만 점차 테크놀로지적 실용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지면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신소설 작가 중 이해조는 일본유학생과 유교적 교양을 갖춘 교원 출신의 인사들이 주도했던 이러한 인식론적 전회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신학문 및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과정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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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근대 계몽기 및 식민지기 조선에 ‘과학적인 것’이 ‘이식/유입된 방식’을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에 나타난 ‘소문’의 전개양상 통해서 살펴보았다. 또한 ‘과학적인 것’을 둘러싸고 확산된 소문에서 드러나는 대중들의 반응을 “적극적 수동성”과 “욕망하는 거부”라는 역설적인 말로 표현함으로써, 조선 대중들이 형성해 온 ‘과학적인 것’과의 접촉의 사상과 ‘과학적인 것’을 형성해 온 동력을 밝히려고 했다. 근대 계몽기 ‘과학’이라는 말 속에는 과학적이지 않은 것들이 포함되었고, 과학의 판단 기준은 ‘서구에서 온 문명인가 아닌가’였다. 즉 서구 문명=‘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동시에 ‘과학적인 것’ 주위에는 풍설, 소문, 거부, 배제가 동시에 발생했다. 예를 들어 근대 초기 신문매체에는 외국소식 전쟁소식, 식민지화된 민족에 대한 소식 등이 ‘풍설’과 ‘소문’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특히 『대한매일신보』와 같은 민족 언론이 사라지고 한일 강제병합이 이루어질 무렵에 번성한다. 대중들이 확산시킨 ‘소문과 풍설’은 서구 문명으로부터 온 ‘과학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자 동시에 공포의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적극적 수동성”을 띠었다. 또한 ‘과학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들여오는 식민화에 대한 거부이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인 것’을 받아들여 주권을 되찾으려는 욕망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욕망하는 거부”였다. 이러한 ‘과학적인 것’에 대한 역설적인 수용태도는 한편으로는 근대/과학/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한 근대/과학/문명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소문과 풍설은 ‘과학적인 것’에 대한 매혹과 식민화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그 ‘과학적인 것’을 민족 공동체의 “외부”영역으로 밀어내는 형태로만 “내부화”하는 복잡한 역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문의 형태로 유입된 ‘과학적인 것’에 대한 적극적 수동성과 강렬한 욕망하는 거부라는 수용방식은, 주체적으로 ‘과학적인 것’을 형성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중들이 모색할 수 있었던 다양한 벡터를 지닌 에너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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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박영희의 사상적인 궤적을 당대 과학 담론과의 상관성 속에서 살피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으로, 그가 『백조』로 대표되는 감상적 낭만주의로부터 신경향파의 문학으로 이전하게 된 과정을 당대 맑스의 사회주의가 표방했던 과학성 속에 담보된 이상주의의 영향 속에서 해명해보고자 하였다. 특히 그가 사용했던 ‘신이상주의’라는 용어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정신주의의 한 흐름으로서 자연주의의 과학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발전해나갔던 크리스토퍼 오이켄의 ‘신이상주의’의 영향 아래에서 간출하여 쓴 용어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착목하여, 박영희의 사상적인 전회가 자연주의와 이상주의 사이,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인생을 위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 사이에서 사상적인 고투 과정을 통해 자신의 지향점을 획득해가는 과정임을 확인해보았다. 특히 1924년 박영희가 낭만주의의 파산과 함께 바로 신경향파로 전향하게 되었다기보다는 감상적인 낭만주의의 이상주의적인 지향성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자연주의 문예론에 대비되는 신이상주의적인 지향성을 획득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박영희는 이러한 이상주의(혹은 정신주의)의 기치 아래 인생의 실제생활이라는 추구되어야만 하는 이상을 발견하고, 이를 이광수에 대한 논전을 통해서 차별적인 지점을 구체화한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결국 인생의 실제라는 이상을 구분하는 기제는 유물론이 제시하는 계급적인차이에서 비롯되고 그 지점에서 이광수와 구별되는 것이다. 이후 카프가 조직된 뒤, 박영희는 유물사관을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되는데, 그는 특히 사카이 토시히코의 진화론적인 과학에 기반한 유물사관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전대의 사상적인 고민으로부터 이어진 이상주의적인 경향성과 유물사관 사이에서 딜레마를 겪으면서 객관적인 현실과 주관이라는 관계성을 밝혀내는 방식으로 방향전환론을 전개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검토를 통해 본다면, 카프 초기의 핵심적인 이론분자였던 박영희는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이라는 외재적인 분과학문이 갖는 과학성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고 있었으면서 그것을 문예비평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예민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학전의 시대, 총후여성과 인조의 상상력

한민주 ( Han M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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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일본이 내세운 ‘과학기술신체제’는 전쟁수행을 위한 자원개발과 물적, 인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였다. 본 연구는 총력전의 시기에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타자화된 하위주체로서의 식민지 조선 여성들에게 형성되었던 과학담론의 특성을 밝혀보고자 했다. 그것은 근대과학이 여성을 객체로 삼아 지식체를 형성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하며 고유의 영역을 확보하여 왔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전시총동원체제 아래 동원된 과학 기술 프로그램이 어떻게 조선의 여성을 식민화했는 가를 탐구함으로써 식민지 근대성 및 여성과학문화사에 대한 이해의 장을 심화시켰다는 데 그 의의를 둘 수 있다. 근대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에게 과학은 엄격히 젠더화된 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근대 초기부터 여성에게 과학은 가정생활을 위한 ‘상식’, ‘교양’이란 취미담론의 형태로 보급되며 지식체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일제말기로 오게 되면, 과학은 여성이 개혁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적극적 기제인 것처럼 선전된다. 과학기술신체제는 총후에서 여성이 그들의 과학적지식으로 전시기 민족과 국가를 위해 다음 세대에 대한 과학적 교육과 가정의 합리적 운용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기획하였다. 그러나 사실여성을 변혁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했던 ‘과학적 교양’은 평등의 기제가 되었다가 차별의 기제로도 변신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했다. 뿐만 아니라 전시과학은 총후여성을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무상한 젠더 정체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남성의 영역을 대신하는 총 후여성의 대체기능성을 정당화했던 과학기술신체제의 논리에는 자연을 대체하여 제2의 자연을 생산하는 인조과학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던 것이다. 이러한 인조과학의 상상력은 당대 유행했던 대용품 공학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당시의 총후여성은 대용품공학의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기능하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용품공학은 피식민지인들의 삶과 사유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남성을 대체하는 여성의 젠더수행, 그리고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는 총후의 방공훈련이나 현실을 변혁하고 재구성하려는 주체의 노력 등에는 인조과학의 상상력이 개입되어 있던 것이다. 본 연구는 일제말기 여성관련 과학담론 연구에 이어서 이태준의 장편소설 『별은 창마다』(1942)와 『행복에의 흰 손들』(1942)에 이러한 과학담론이 문학적 실천으로 드러난 지점을 분석하였다. 이태준의 두 작품 속에서 여성은 이중적인 의미의 사이보그로 창조된다. 그 여성 사이보그는 감성과 욕망의 절제를 통해 불가능한 것들을 종합한 인공의 형식으로서 남성의 자리를 대체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변과 변혁의 거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시대의 균열로 기능한다. 이러한 인조적 상상력 그 자체가 당대인들이 느꼈던 현실감이자 실존방식이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기 시인의 현실과 유행가요 창작의 의미

구인모 ( Ku In-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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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광수를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유성기음반을 통해 유행가요로 발표한다. 이것은 1929년에 창립한 조선가요협회 활동의 결과로서, 이후 조선의 시인들이 유행가요 가사 창작으로 나아가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들의 유행가요 가사 창작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근대시의 본령과 거리가 먼 비문학적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이 사실 근대시의 선구자들이자 1920년대 시가개량·국민문학 담론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비문학적 행위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1932년 이광수 등의 유행가요 창작은, 1920년대 이후 문학 전문 잡지의 명멸과 단명, 상업출판물 사이에서 시집의 낮은 위상, 시에 대한 감식안과 취향을 갖춘 독자층의 빈약, 직업인으로서 시인의 궁핍한 삶 등, 근대시를 둘러싼 삭막한 환경이 낳은 결과이다. 이러한 사정들은 1920년대 조선에서 근대시의 의미와 존립의 근거를 반성적으로 검토하게 한다.

파시즘기 외국문학의 존재방식과 교양 - 『인문평론』을 중심으로

서은주 ( Seo Eu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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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40년을 전후해 간행된 『인문평론』을 대상으로 파시즘기 외국문학의 존재방식과 그 의미를 교양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였다. 『인문평론』은 최재서로 대표되는 제도권 학문의 엘리트들과, 당대 담론장을 주도하던 좌파 이데올로그들을 동시에 포용함으로써 단일한 성격으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담론 공간을 생산하였다. 이 공간 안에서는 신체제로의 투항을 예비하기 위해 논리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시도와, 파시즘에로의 이행을 거리화하면서 최대한 그것을 지연하려는 노력이 공존한다. 이 글에서는 외국문학에 대한 아카데미즘적인 번역·연구와 ‘교양론’을 중심으로 후자의 사례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구체적으로 『인문평론』에 게재된 나치 치하 독일문학의 단일화 경향비판, 발자크연구를 통한 비판적 산문정신의 강조, “시민적인 리버럴한 교양”의 무력화에 대한 성찰 등을 분석하였다. 『인문평론』의 여러 주체들은 서구의 파시즘을 닮아가는 제국 일본의 ‘신체제’화를 목도하면서, 자신들의 최후의 ‘포즈’를 여전히 서구문학 속에서 찾고자 했다. 이 연구는 외국문학을 중심으로 『인문평론』의 담론 지형을 재편해봄으로써 파시즘하에서 ‘전체’, ‘집단의식’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개성’, ‘지성’, ‘교양’이 지니는 함의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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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신문은 신문 그 이상의 미디어로 기능했다. 구국운동과 대중계몽의 기관으로, 민중의 대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신문에 대한 특유의 관념을 생산해내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고 신문주체들은 지사로 인식되었으며 대중들의 신문에 대한 역할기대는 과도하리만큼 컸다. 식민지하 언론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 같은 사회적 통념은 신문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용과정을 거치지만, 신문의 공공성/기업성에 대한 대립적 인식태도가 배태된 가운데 해방 후에까지 지속된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신문, 특히 1920~30년대 민간지는 조선에서의 새로운 문학과 문단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전통은 해방후에도 계승되어 신문의 공공성/기업성, 신문문예의 문화성/상업성의 모순된 양면성이 시대 변화와 대응해 조정·발현되는 가운데 신문은 과거에 못지않은 문화적 기능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신문/문학의 결합에 의해 생산된 유산들과 이로부터 파생된 관행과 내면화된 관념이 해체·변형된다. 이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장편연재소설이다. 권력, 신문, 문학의 관계는 시기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정론성의 점진적 약화와 상업성의 비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해 신문의 문학전략도 상업주의의 극단화로 나타난다. 그러한 신문/문학의 관계 조정에 의해 신문에서의 문학의 비중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신문이 문학(인)에 대한 압도적인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문학은 상품에 불과하며 문인은 상품공급자의 위치로 전락한다. 그것은 신문에 있어 문학의 전략적 중요성과 문학배치에서뿐 아니라 학예면으로 대표되는 신문과 문단(학)의 긴밀한 네트워크, 문인기자의 존재, 문학담론의 생산과 형성의 거점, 신문과 집필자의 배타적 섹트화와 집필도덕 등의 유산이 해체되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연재소설만큼은 과거에 비해 더욱 중시된다. 상품성을 기준으로 한 선택/집중의 문학전략의 결과였다. 식민지시기에는 연재소설 중 장편연재의 비중이 50%정도였으나 해방30년 동안에는 약 95%를 차지했다. 장편연재소설이 신문이라는 제도적 토대 품안에서 무한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작가들은 신문선택적 글쓰기가 불가피해졌고, 과거와 다른 차원의 연재소설의 통속성이 강화되었으며, 문단의 상품성과 문학성에 대한 상호배제적 인식이 극단화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정치권력, 신문자본, 민간자율기구, 독자 등으로 다변화된 검열이 신문소설의 소재, 주제, 형상화방식에까지 규정력을 발휘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신문연재소설은 신문자본의 후원에다 독자들의 높은 열독률과 선호도 그리고 대중성에 대한 문단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면서 적어도 1970년대까지 문학의 대표자라는 상징권력을 부여받게 된다. 요컨대 신문/권력/문학(단)/독자의 상호관련성 속에서 해방 후 신문소설의 존재양상에 대한 좀 더 심층적 분석이 이루어졌을 때 신문소설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가능하리라 본다. 본고는 이 작업의 작은 초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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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2009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의 후속 작업으로 태동한 2011개정 국어과 교육 과정에서 새롭게 보이고 있는 고등학교 국어Ⅰ·Ⅱ 교육과정의 내적 한계를 밝혀내고, 그러한 문제점을 교과서 구현 방안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국어Ⅰ·Ⅱ 교육과정은 교육 체계가 학생들의 학습 과목 구조를 결정하는 우선권을 쥐게 되면서, 학생이 과목을 선택함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국어 활동 경험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실행되면서 한계점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국어교과는 더욱 황폐화되어 학습자들에게 외면받는 교과가 될 수 있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모호한 성격을 가지는 ‘국어Ⅰ·Ⅱ’ 과목에 집중하여 이 교육과정이 가지는 내면적인 한계를 지적하고자 하는데 그 기준은 2009 교육과정을 검토한 전문가 집단과 현장 교사 집단의 시각과 요구에서 추출하고자 한다. 또한 교육과정은 교과서를 통해 교실에서 실행된다는 점을 상기하여, ‘국어Ⅰ·Ⅱ’ 교육과정이 교과서로 실현되는 상황을 가정하여 텍스트를 중심으로 한 영역 통합 단원이 개발되어야 할 것을 제기하였다. 구체적인 실현 방안으로는 성취기준 재구조화를 통한 비평 텍스트 쓰기 교육을 제안하고 있다. 이는 ‘국어Ⅰ·Ⅱ’ 교육과정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학습자의 국어능력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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