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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신문은 신문 그 이상의 미디어로 기능했다. 구국운동과 대중계몽의 기관으로, 민중의 대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신문에 대한 특유의 관념을 생산해내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고 신문주체들은 지사로 인식되었으며 대중들의 신문에 대한 역할기대는 과도하리만큼 컸다. 식민지하 언론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는 이 같은 사회적 통념은 신문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변용과정을 거치지만, 신문의 공공성/기업성에 대한 대립적 인식태도가 배태된 가운데 해방 후에까지 지속된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신문, 특히 1920~30년대 민간지는 조선에서의 새로운 문학과 문단의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전통은 해방후에도 계승되어 신문의 공공성/기업성, 신문문예의 문화성/상업성의 모순된 양면성이 시대 변화와 대응해 조정·발현되는 가운데 신문은 과거에 못지않은 문화적 기능을 발휘했다. 그 과정에서 신문/문학의 결합에 의해 생산된 유산들과 이로부터 파생된 관행과 내면화된 관념이 해체·변형된다. 이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장편연재소설이다. 권력, 신문, 문학의 관계는 시기별로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정론성의 점진적 약화와 상업성의 비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해 신문의 문학전략도 상업주의의 극단화로 나타난다. 그러한 신문/문학의 관계 조정에 의해 신문에서의 문학의 비중이 현저히 약화되었고, 신문이 문학(인)에 대한 압도적인 주도권이 강화되면서 문학은 상품에 불과하며 문인은 상품공급자의 위치로 전락한다. 그것은 신문에 있어 문학의 전략적 중요성과 문학배치에서뿐 아니라 학예면으로 대표되는 신문과 문단(학)의 긴밀한 네트워크, 문인기자의 존재, 문학담론의 생산과 형성의 거점, 신문과 집필자의 배타적 섹트화와 집필도덕 등의 유산이 해체되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연재소설만큼은 과거에 비해 더욱 중시된다. 상품성을 기준으로 한 선택/집중의 문학전략의 결과였다. 식민지시기에는 연재소설 중 장편연재의 비중이 50%정도였으나 해방30년 동안에는 약 95%를 차지했다. 장편연재소설이 신문이라는 제도적 토대 품안에서 무한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작가들은 신문선택적 글쓰기가 불가피해졌고, 과거와 다른 차원의 연재소설의 통속성이 강화되었으며, 문단의 상품성과 문학성에 대한 상호배제적 인식이 극단화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정치권력, 신문자본, 민간자율기구, 독자 등으로 다변화된 검열이 신문소설의 소재, 주제, 형상화방식에까지 규정력을 발휘한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신문연재소설은 신문자본의 후원에다 독자들의 높은 열독률과 선호도 그리고 대중성에 대한 문단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면서 적어도 1970년대까지 문학의 대표자라는 상징권력을 부여받게 된다. 요컨대 신문/권력/문학(단)/독자의 상호관련성 속에서 해방 후 신문소설의 존재양상에 대한 좀 더 심층적 분석이 이루어졌을 때 신문소설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가능하리라 본다. 본고는 이 작업의 작은 초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