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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3권 0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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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신문학 60주년을 기리며 1970년대 남한출판시장에 등장한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의 구성적 특수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문학선·전집의 발간을 통해 촉발되는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은 기획 및 규모에 있어, 출판시장에 등장한 여타 선·전집들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전집의 편집주체들은 남북 분단 이래로 남한 문단 내에서 일종의 거대서사처럼 기능하며 절대적 가치로 부상하였던 ‘순수문학’이라는 당위적 명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남한문단의 문학적 정체성을 구현해 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대문학』에 의해 주도되는 순수문학의 제도화 과정이란, 순문학 작가와 작품의 선택 이면에 작동하는 비논리적 프로세스를 통해 강화되는 것이었으며, 이는 『신한국문학전집』이 보여주는 정전화 기획이 불완전한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1930년대 조선문학장 내에서 문학적인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던 역사소설 장르가 전집의 기획에 포함되는 일련의 과정은 1960·70년대 남한문학장 내부에서 전개된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이 1) 순수문학에 대한 기원의 탐사와 2) 민족주의적 서사 양식의 발견이라는 2중의 모순된 기획에 기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순수문학=민족문학=『신한국문학전집』이라는 서사적 그럴듯함이 논리적 비약을 통해서만 가능한 명제이며, 전집 내부의 균열들이 민족주의적 이데올 로기에 의해 봉합된 상태임을 드러낸다. 순문학이라는 당위적 선택과 대중·통속문학을 가르는 비논리적 배제, 그리고 논리적 비약에 기반을 둔1960년대 남한문단의 보수주의적 문학사의 결합을 통해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인터넷 소설의 작은 역사

박인성 ( Park In-s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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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최신의 매체 속에서 발생하고 발전한 특수한 문학 현상인 ‘인터넷 소설’에 대한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 그 개념사와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 소설’에 엄밀하게 정의하고 연구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 현상에 대한 사후적인 논의만이 무성했을 뿐,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개념과 그 기술적(記述的)인 담화 현상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키치’와 ‘오타쿠’에 근접하는 서브컬쳐로 서의 ‘인터넷 소설’에 대한 폄하가 존재하며,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기대했던 최신 매체를 통한 문학의 혁신에 미달하는 단순한 문학의 지면 확장에 그치는 ‘인터넷 연재소설’이 존재한다. 동시에 이에 대한 연구 역시 최초의 하이퍼-픽션, 팬 픽션의 상정된 논의에 그치거나 대중문화 연구 혹은 스토리텔링 연구 등의 일부 영역에서 국한되었다. 그렇기에 아즈마 히로키 등이 제시하는 포스트모던의 비(非)-서사로서의 데이터베이스나, 컴퓨터 매개 의사소통 혹은 전자 담화 등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는 거시적·미시적인 연구의 병행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가능성에 그치며 새로운 매체 형식의 실험적인 양상 혹은 막연한 예감만을 주고 있는 ‘트위터 소설’ 등에서 기대되는 브리콜라쥬 형식 등의 기존 문학 외부의 ‘문학성’에 대한 논의 역시 ‘인터넷 소설의 작은 역사’를 경유하며 앞으로 기대할 연구 영역으로 대두될 것이다.

히스토리·미디어·스토리 - 텔레비전 역사-드라마에 대한 존재론적 試論

박노현 ( Park Noh-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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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드라마의 장에서 ‘역사’라는 질료는 유독 문제적이다. 드라마가 인간과 세계의 길항을 언제나 ‘지금/여기’의 시공간 위에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극화는 과거의 현재화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여기에는 소환할만한 과거 혹은 의미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 평가가 개입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역사관이 투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문자 드라마의 장에서 통용되어온 역사극과 사극, 정통과 퓨전, 사실과 허구를 절충한 팩션 등과 같은 수식어의 난립은 역사 소재 드라마를 둘러싼 역사관과 예술관의 복잡다단한 얽히고설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글은 이러한 난맥을 돌파하기 위한 하나의 모색으로서 ‘역사-드라마’라는 개념을 제안하는 시론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드라마는 미디어의 중재를 통한 역사의 극화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역사와 드라마를 연결하는 하이픈은 상징적이다. 이는 역사와 드라마의 접속을 환기하는 ‘이음’이고, 역사적인 것 가운데 드라마적인 것을 ‘추출’하는 수식이며, 역사와 미디어와 드라마의 연쇄를 지시하는 ‘기호’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인 것이 무대와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통해드라마적인 것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역사-드라마는 두 가지 덕목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진지함’과 ‘드라마에 대한 진지함’이다. 이는 역사가 드라마로 형상화되는 연쇄 속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진지함이란 역사의 사실 혹은 진실의 진위 여부보다 역사적 상상력과 그로 인한 역사 이상과 이외의 살핌을 텍스트 본연의 역할로 간주하는 것이다. 한편 드라마적 진지함은 이러한 역사의 재구 과정에서 드라마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미학 원리에 충실하게 텍스트를 직조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두 가지 진지함의 접점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아나 크로니즘적 상호텍스트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는 텔레비전이라는 일종의 타임머신을 통해 역사와 드라마가 상상의 시공간 속에서 조우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나누는 진지한 대화인 셈이다.

『연사일록』의 서술 방식과 청국의 혼란상 및 풍속에 대한 인식

신익철 ( Shin Ik-che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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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槎日錄』은 19세기의 문인 金直淵이 1858년에 연행한 체험을 기술한 연행록으로 최근에 발굴 소개되었다. 『연사일록』 한문본은 국문본에 비해 중국의 문물제도 및 청국의 혼란상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한문본의 체제와 서술 방식을 살펴보고, 저자 김직연의 청국 인식 및 내용상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한문본 『연사일록』은 日記와 <按>의 이중 서술이 주요한 특징이다. 일기는 저자가 연행 중에 직접 경험한 사실을 순차적으로 기술한 것임에 비해, <안>은 직접 체험하지 못한 중국의 다양한 경물을 여러 문헌을 폭넓게 활용해 연행록의 독자에게 소개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특히 皇宮과 북경의 경물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안>에서 북경을 수도로 한 明淸 代의 한시를 다수 인용하여 황궁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김직연은 각종 농민항쟁에 시달리며 영국을 위시한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 되는 19세기 중반 청국의 혼란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聞見雜識」란 항목을 따로 설정하여 이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였다. 청국의 혼란상 중 捻軍이 성행하고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상황임을 상세히 서술한 대목은 여타 연행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으로 주목된다. 김직연은 대명의리를 준수하는 유학자로 기본적으로 청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과 다른 청국의 제도 및 풍속에 있어 비교적 객관적 시각으로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다. 太平車의 마부 趕車的의 모습이나 胡女의 복식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는 이러한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김직연은 燕行路의 지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여러 문헌을 고증해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이 중 우리나라와 관련이 깊은 지역에 대한 서술에는 여타 연행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연행록(燕行錄)에 나타난 ‘구혈대(嘔血臺)’의 의미 연구

김일환 ( Kim Il-h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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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로는 중국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길을 지속적으로 다니면서 문화적으로 향유한 사람들은 조선의 연행사들이다. 연행록은 조선의 한양부터 중국의 북경에 이르는 길의 문학지리를 구성한다. 특히 명청교체기를 거치면서 심양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노정에 있는 주요한 전장은 조선 연행사들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이는 명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청나라를 위하여 파병된 조선 병사들의 참여가 있었고, 청나라에 항복한 조선이 명나라의 멸망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寧遠城은 지속적으로 영토를 잃어가던 명나라가 후금, 그리고 청나라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유일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포위된 남한산성을 구해내지 못하고 항복한 조선인에게 포위를 완벽하게 막아낸 영원성은 통쾌함을 주는 장소였다. 하지만 오랑캐의 공격을 물리친 원숭환이 그 오랑캐의 반간계에 의해 ‘황제’에게 죽임을 당하여, 스스로 ‘간성’을 허물어버리는 슬픈 역사에 절망하기도 하였다. ‘嘔血臺’는 이런 조선인들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호란을 경험한 세대들은 원숭환과 영원성의 이야기를 묘사함에 주저하는 바가 많았다. 원숭환이 황제에 의해 역적으로 규정되었고, 신원이 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기 때문이다. 원숭환의 죽음이 갖는 억울함에 공감했다 하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그들은 호란때에 남한산성이나 강화도에서 포격을 경험했기 때문에 영원성 전투의 참혹한 장면을 구체적인 묘사하기를 꺼렸을 뿐만 아니라 2차에 걸친 ‘瀋獄’의 기억 때문에 ‘칸’을 입에 올리지도 못했다. 반면 전쟁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 명나라의 멸망을 목도한 세대들은 ‘원숭환’의 억울함이나 ‘영원성전투에서의 참혹한 폭발’을 묘사함에 주저함이 없었다. 청나라의 직접 개입이 줄어듬에 따라 ‘反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하였다. 오히려 조선이 아닌 명나라를 등장시켜 통쾌한 복수극을 꾸며내기도 하였으니, 그 좋은 예가 ‘嘔血臺’ 이야기였던 것이다.

염상섭과 ‘조선문인회’

박헌호 ( Park Heon-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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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인회>는 염상섭, 황석우 등이 주도했던 문인단체로 지금까지는 그 족적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글은 <조선문인회>를 염상섭의 아나키즘적 문학관의 실천적 발현으로 고찰함으로써, 염상섭 문학의 사상적 위상을 재고하려는 의도로 작성됐다. 이를 위해 이 단체를 주도한 황석우와 염상섭의 사상을 살펴봤고, 이를 통해 근대사상의 핵심으로 ‘자아주의’를 내건 염상섭의 사상이 당대의 식민지 자본주의적 상황과 이를 돌파하기 위한 사회주의와 어떠한 상호작용을 가졌는지를 돌아보았다. 특히 염상섭의 노동관을 분석하여, 그의 예술관이 노동관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것이며, 이러한 노동관의 연장 속에서 <조선문인회>의 결성취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촉발됐던 여러 사회운동을 ‘인간의식’의 각성과 ‘자유’에의 옹호라는 관점에서 수용하고자 하였으며, 사회주의에 의해서 촉진됐던 계급운동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옹호하고자 하였던 염상섭 등의 조선문인회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유산되었음을 밝혔다. 그것은 『폐허』파의 끄트머리로 기억되거나, 문단권력에 대한 염상섭의 야심으로 평가되거나, 원고료 따위를 말하던 이익집단으로 치부되었다. 그러한 방식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사는 이념적 이분법으로 선명해질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만큼 ‘자아’를 중심에 두고 자본과 노동을 포괄하고자 했던 제3의 길은 자신의 사상적 좌표를 박탈당하고 오늘도 문학사의 책갈피 속에서 서성이고 있다. 염상섭은 우리에게 자신의 문학사적 좌표가 어디인지를 여전히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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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들어서면서 인쇄문학이 정착됨에 따라서 작가는 자본이 장악한 문자매체를 떠나서는 독자와 소통할 수단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1924년 민간신문에 문예면이 설치되고 동인지문단 시기가 끝나면서 발표지면은 신문자본이 장악하게 되었으며, 문학은 상품적 성격이 강력해졌다. 자본은 원고를 일종의 원료로 간주하여 선별적으로 매입하고, 이를 다시 상품의 형태로 유통시켰다. 결국 신문자본은 어떤 필자에게 어떤 글을 쓰게 하고 얼마에 이를 매입해서 어떤 방식으로 가공(편집)하여 판매할 것인가의 문제, 즉 문학 출판유통의 모든 과정에서 거의 지배적인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 청탁에 의한 ‘주문생산’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신문자본의 힘이 이렇게 비대해진 것은, 1930년대 일제의 만주침공과 중일전쟁을 두 핵심적 계기로 삼는 조선 및 일본 경제의 성장에 힘입은 것이었다. 전쟁기를 맞아 검열 역시 강화되었는데, 신문자본은 늘어난 광고를 소화하기 위해서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지면 즉 문예면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인들은 이러한 문학장(場)의 물질적 토대가 어떤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부족했다. 이 논문은 1930년대 문예면 증면에 대한 문인들의 반응, 그리고 문필가협회 창립과 관련된 논의를 살핌으로써 이를 확인했다. 문예면 증면에 대해서는 발표기회 증대라며 환영하거나, 수준 저하가 우려된다며 승인권의 약화를 걱정하는 반응이 주조를 이뤘다. 문인단체의 창립 과정에서는 정당한 원고료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비교적 풍족했던 일본 문단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부러움을 강력하게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 물질적 토대가 전쟁 고원경기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편 문필가협회는 검열 문제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는 1920년대 일본에서 문학단체가 출범할 때 적극적으로 검열 반대운동을 펼쳤음과 대조적이다. 이렇듯 문학장의 정치경제적 토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판매부수나 원고료 등 일본 문학의 현상을 ‘선진의 모범항’으로 상정함으로써 한국문인들의 인식에는 일정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학과 사회의 관련성을 그 정신적 차원에서만 인식하면서 문학텍스트의 물질적 존재가 맺는 관련성에 눈 돌리지 않는다거나, 또는 아예 문학을 고립적이고 자족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편향은 이와 관련될 것이다. 오늘날 원고료 없는 문학을 상상하기 어렵다. 원고료의 수준과 그 잡지의 문학적 권위를 비례해서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며, 베스트셀러에의 욕망은 내남없이 지니고 있다. 오늘의 한국문인들은 1930년대적 한계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왕자호동』의 중의적 맥락 고찰

장영우 ( Jang Young-w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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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후반 일제는 국어(일본어)상용을 강제하며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1942년 『매일신보』에 『원효대사』(이광수) 및 『왕자호동』(이태준) 등 역사소설 연재를 허락했는데, 이것은 일제의 언론 및 어문정책과 상반되는 것처럼 보인다. 일제는 ‘한사군’과 ‘만선일체론’ 등의 논리를 개발하여 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강변하였는데, 『왕자호동』의 연재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왕자호동』의 문학적 의미에 대해서는 “한(韓)민족의 재발견과 민족성 회복”이란 관점과 “이태준의 내적 분열이 반영된 텍스트”라는 상반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왕자호동』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설화를 이용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일제의 요구도 충족시키는 이중적 서사전략으로 쓰여진 작품이다. 이태준은 ‘낙랑=한(漢)=외세=일제’의 등식을 생각하고 고구려의 낙랑 정벌은 결국 우리 민족이 외세(일제)를 물리치는 것과 같다는 주제를 의도했는지 모른다. 이작품에는 ‘충효’라는 전제주의적(專制主義的) 이데올로기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 의미가 내재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개인’보다 ‘국가’를 내세우는 제국주의적 논리에 대한 부정과 비판의 목소리로 이해된다. 『왕자호동』은 민족주의라는 단선적 사고로만 분석될 작품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정황, 작가의 사상과 작품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다성적 주제를 탐구할 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과학의 영도(零度), 원자탄과 전쟁 -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을 중심으로

권보드래 ( Kwon Bo-due-r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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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중반 남·북한에서 각각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장편소설 『원형의 전설』과 『시대의 탄생』은 드물게도 원자탄이라는 핵무기를 화소(話素)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탄이 투하된 이래 핵무기는 언제나 한반도의 운명과 가까이 얽혀 있었다. 일본제국으로부터의 해방에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에 의해 원자탄 사용 계획이 검토되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북한 각각에서 핵에너지 및 핵무기에 대한 관심이 계속된 끝에, 2005년에는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다. 핵무기는 최초개발 직후부터 과학을 초과한 과학으로, 세계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자 인식론적 도전으로 취급받았던 만큼, 더욱이 한반도는 전쟁 및 휴전이라는 상황을 통해 그 무기의 사용 가능성에 가까이 노출돼 있었던 만큼 문학에 있어서도 일정한 응전(應戰)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의 전쟁문학에서 간간이 원자탄의 공포가 상기됐던 데 비해 남한 문학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원형의 전설』이라는 문제적 소설에서도 인류의 종말이라는 가상적 상황과 연결돼 알레고리적 용법으로 쓰였을 뿐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의 북조선 소설『시대의 탄생』에서는 원자탄이 한국전쟁의 근본적 변수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남·북한 사이 비대칭을 확인함으로써 전쟁 기억 및 이후 대응에 있어서의 차이 또한 확인하고, 동시에 아직도 인류가 적절히 응답치 못하고 있는 이 ‘과학을 초과한 과학’에 대한 사유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시적 표상공간의 장소성 - 백석을 중심으로

김춘식 ( Kim Choon-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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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는 남행 시초 편, 함주 시초편, 서행 시초 편 등 기행시임을 명시한 시편들 외에도, 대다수의 작품이 지방색과 풍물, 경치, 음식, 토속 정서 등을 묘사한 것이어서 실제로는 그의 고향 정주(定州)를 포함해서 그가 거쳐 간 모든 장소에 대한 ‘체험의 기록’이 그의 시적 내부 공간 안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체험성’이 백석 시의 중요한 특징임은 분명하지만, 그 체험은 어떤 식으로든 미적으로 ‘양식화된’ 체험이라는 점에서 시인 백석의 고유한 개성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적 상상력이 투영된 독창적인 이미지에 의해서 ‘고유의 시적 공간’, 즉 ‘표상 공간’의 특징을 지닌다. ‘표상 공간’은 ‘특정한 장소’에 대해 시인의 정서와 상상력이 작동한 결과 생산된 것으로서 바슐라르에 따르면 이러한 표상 공간은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새롭게 ‘표상’됨으로써 실제의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궁극적으로는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원형적인 감각’의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시화(詩化)된 ‘기억’의 장소가 된다고 한다. 기존의 백석 시에 대한 연구가 단순히 ‘기행시’로서 그 특징을 다루거나, 지리적 여행 체험에 주목하여 ‘향토성’이나 ‘시선의 모더니티’ 이상의 의미를 밝히지 못한 것은 이 점에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고향 정주를 포함해서 백석이 다녔던 장소에 대한 체험의 기록이 그의 작품 속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는 문학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장소성’ 혹은 표상 공간에 대한 연구대상으로 아주 적합하다. 특히, 1930년대에 백석의 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향토성/모더니티’ 논쟁은 백석 시의 장소성에 대한 규명을 통해서 좀 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체험성은 백석 시의 고유한 특성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의 시 연구에서 일정한 오해를 일으키는 요소이기도하다. 백석의 체험성은 감각성, 일상성과도 통하는 것으로 백석의 시가 아주 구체적인 일상적 체험을 그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은 그의 시 작품 속에서 ‘사실적 기록’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 체험은 미적으로 ‘양식화된 체험’이며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투영된 고유한 시적 ‘표상 공간’ 안에서 의미화 된 체험이다. 백석의 시에서 시적 표상 공간과 장소성의 관계는 앙리 르페브르에 의해서 규정된 표상 공간의 규약(code)이 백석의 상상력에 의해서 새로운 장소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방법에 착안하여 본고는 백석의 시를 음식, 인정, 사람, 이야기 등에 초점을 맞춰서 분석을 했고 그 결과 백석의 시적 표상 공간이 공동체적인 일체감을 지향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그의 시적 장소성은 다양한 장소를 시인이 실제로 이동할 경우에도 공통적인 ‘장소성’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적 소재로서의 장소와 시인의 ‘상상하는 의식’이 ‘지향’하는 대상, 장소는 이 점에서 서로 다를 수 있다. 백석의 경우, 북관이나 만주 등을 기행하는 경우에도 그가 지향하는 장소성은 인정(人情)과 사람, 이야기가 살아 있으며 공동체적 연대가 존재하는 곳으로 표현된다. 이런 그의 장소성과 실제의 장소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 백석의 시는 이에 대한 독특한 대응의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백석은 ‘타지(他地)’에 여행을 할 경우에도 언제나 그 지역의 음식이나 인정, 사람, 이야기, 풍물 등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그의 시적 특징은 그대로 그의 시적 표상 공간의 특징을 구성한다. 『사슴』에 수록된 유년의 기억을 다룬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백석이 명절, 친척, 이야기, 음식 등 공동체적 풍요와 충만함 속에 자신의 ‘정신적 원형’을 설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충만한 세계에 대한 기억은 그가 머무는 모든 ‘장소’에 대해 자신의 ‘장소 정체성’을 투영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백석의 시적 장소성은 이 점에서 실제의 장소와 무관한 ‘시적 표상 공간’의 공통성 속에 존재한다. 바로, 인정, 풍물, 사람, 이야기, 공동체적 충만함이 있는 세계에 대한 지향이 그 것이다. 이런 지향과 실제의 ‘장소’가 부합되지 않을 경우, 백석은 자신의 표상공간의 특징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데, 그것은 국경, 민족, 시간을 넘어서 자신과의 연대가 가능한 어떤 요소를 발견하고 시화하는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고독, 소외 등 공동체적 충일감으로부터 떨어질 경우 백석은 자신의 작품 안에 과거적인 존재를 비롯해서 자신과의 연대나 동일화가 가능한 인물, 이야기 등을 끌어들여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기법은 ‘낭만적 아이러니’의 전형적인 유형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장소성’, ‘시적 표상 공간이 시인의 의식적 지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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