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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박용철’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박용철이 20년대적인 낭만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조선시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김기림과의 대립점을 강조할 경우 박용철은 종종 낭만주의자, 센티멘탈리즘의 옹호자, 시적 영감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자로 상대적인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가 1920년대적인 조건들과 어떻게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시문학』의 지향점과 미학적 이념을 만들었는가 하는 점을 쉽게 간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박용철 시론의 가치는 우선적으로 1930년대적인 상황에서 전개된 순수시론, 모더니즘 시론, 현실주의시론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1930년대적인 문학장의 구도는 시를 둘러싼 서로 다른 근대적 인식과 입장을 지닌 주체들의 상호관계성을 보여준다. 김기림이 ‘기술’을 중심으로 시를 평가하면서 ‘시대 정조, 문명의 기미, 사회적 정황’등을 시가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임화가 현실주의적 정황과 역사적 조건의 전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시인이 담지할 것을 요구했다면 박용철은 1930년대에 처음으로 시창작의 과정에 대한 면밀한 시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박용철이 김기림, 임화가 변별되는 시점은 20년대적인 감상주의, 신비주의적 시론과 차별화를 위하여, 시창작 이전의 단계를 주관성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비평적 사유’로부터 배제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용철의 경우, 김기림과 ‘기술’이라는 것의 필요와 역할, 그리고 성격에 관한 생각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대 시인에게 있어서 현대적인 정서를 시로 표현하기 위한 기술의 지속적인 연마가 지닌 중요성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단, 박용철이 시인의 가치와 존재론의 측면에서 낭만주의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박용철이 영감, 내면의 열정과 욕구, 무명화 등의 용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잘 나타낸다. 하지만 이런 시적 발생 과정에 대한 그의 관심과 신념이 곧 그의 한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시론과 시에 대한 절연 과정에서 임화나 김기림이 선택한 ‘과학주의적 비평’ 태도가 작품에 대한 객관적 비평과 평가, 문학 작품과 시대 현실의 상응관계 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전망을 제시하는 데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시 창작 과정의 비밀이나 정서, 감각, 체험이 어떻게 언어와 접촉하고 그것이 미적인 완성태를 만드는 지에 대한 세밀한 검토는 대부분 간과하고 있다. 반면 박용철은 『시문학』 창간 초창기부터 ‘미적 자율성’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특히, ‘시인, 언어, 작품, 감상, 독자’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며 서로 어떤 상호관계 속에 놓이는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박용철의 시론은 순수시론 혹은 서정시론의 본질에 다가서는 논의였고 『시문학』을 중심으로 1930년대 시론의 미학적 수준을 한층 심화시키는 공헌을 하고 있다. 특히, 미적 자율성을 고수하면서 시 창작의 과정에서 시인, 언어, 작품, 독자, 감상(비평) 등의 영역을 각각 자율적으로 독립된 영역으로 설정하고 그 상호 관계를 분석적으로 접근한 점은 그의 시론의 탁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창작과 작품의 존재방식, 감상과 비평의 과정 등을 각각의 독립된 행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상호 영향관계 속에 놓임으로서 문학적 소통의 행위가 일어난다는 발상을 ‘변용’ 혹은 ‘화학적 변화’로 설명하는 그의 시론은 상당히 치밀한 것이다. ‘범주와 영역’을 나눔으로써 시 창작 이전의 심리와 창작 과정, 그리고 완성된 작품의 의의와 존재성, 그에 대한 독자의 감상 행위를 하나의 ‘변용과정’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론의 독특한 점이자 독창적인 성과이다.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면서 ‘예술적 형식과 구조’를 통해 창작자의 ‘전생리가 언어와 만나는 시어가 되는 과정’을 검토한 것은 특히 ‘시적 언어’의 탐구에 밀착한 『시문학』파의 입장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논리이다.
시 창작 이전의 단계에 존재하는 시인의 영감, 발상, 정서 등을 전생리라는 용어를 통해 ‘체험’의 영역으로 정리하고, 그에 대한 서정적 전환(관조, 회상, ‘삭후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필연적 동기를 ‘시어와 형식’에 부여하는 그의 시론은 특히 독창적이면서 현대적인 측면을 지닌 것이었다. 시학적 문제, 창작 시론의 문제, 시인과 작품, 독자의 상관성에 대한 문제, 시적 창작의 심리와 감상자의 태도 및 심리 등에 관한 문제 등을 그의 시론이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은 박용철 시론의 가장 큰 문학사적 의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