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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5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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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해방 전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해방기에는 미군정 관료, 작가,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월북 후 휴전회담에서 북측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던 설정식의 경우를 중심으로, 통역/번역체계로서의 냉전기 한국의 언어상황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첫째, 설정식이라는 한 시인의 면모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 온 기존의 작가론적 시각을 넘어, 해방기 언어/문학상황을 구축한 중요한 요소인 영어를 문학어이자 정치어로서 이해해야 했던 영문학자의 복잡하고 불안정한 위상을 재구성하고자 했다. 둘째, 설정식에 관한 픽션이나 회고 등의 기록을 통해, 그가 보여준 정치적·사상적·문학적 위치들 사이의 어긋남이 이후의 평가 속에서 ‘문제적 개인’ 또는 ‘중간파’ 등의 수사로 봉합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북한의 남로당 공판을 모티프로 삼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픽션은 설정식의 ‘신뢰하기 어려운’ 위치를 통해 그를 양면적인 냉전의 에이전트로 표상하였으며 이를 통해 적과 동지를 구별하기 힘든 해방기 조선의 정치적 상황을 부각시켰다. 최태응은 설정식에 관한 회고에서 그를 ‘중간파(회색)’로 묘사했는데, 이는 설정식이 실제로는 미군정 스파이가 아니었음을 강조하면서도 그의 ‘월북’이 지니는 실정성을 해명해야 하는 곤란함을 해소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최태응은 설정식의 영어능력이 어떤 식으로든 조선의 정치상황에 동원됨으로써 자신의 ‘문학’을 파괴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데, 이는 ‘영어’와 ‘영문학’이 양립할 수 없다는 냉전기 언어상황에 대한 인식이 1960년대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설정식의 마지막 공적 활동은 휴전회담에서 북측(인민군) 대표의 말을 통역하는 것이었다. 설정식에 관한 가장 중요한 문건 중 하나인 티보 메러이의 회고는 적대적이고 억압적인 냉전 상황에서 통역자의 수행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글은 끝으로 설정식이 참여한 휴전회담 기록과 그에 관한 회고를 겹쳐 읽음으로써 통역/번역을 통해서만 성립되는 냉전적 의사소통 상황의 특징과, 그 속에 은폐된 수많은 불연속점을 환기하는 주체로서 통역자가 지닌 수행성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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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사상계』의 자유민주주의론에 끼친 기독교 신학의 영향을 재구하는 데 있다. 에밀 브루너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정의’와 ‘질서’를 논했다. 김재준도 『사상계』에 발표한 글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브루너 신학의 주요 개념을 통해 ‘자유’의 의의를 역설했다. 자유주의 계열의 저항담론은 대개 ‘민족’(장준하)이나 ‘민중’(함석헌)을 공동체의 구성단위로 중시했다. 그에 비해 김재준의 자유민주주의론은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며, 물론 그것은 브루너 신학의 수용과 무관하지 않다. 김재준을 비롯한 신학자들의 글이 상당수 게재되면서 『사상계』 초기에는 서구 근대화론과 기독교적 말세론이 혼재하기도 했다. 김성한의 단편소설들은 그러한 맥락에서 재독해가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과 정치적 실천을 조화롭게 결합한 인물은 1956년 이후의 함석헌이다. 요컨대, 경제적 근대화론을 추종한 장준하는 물론 김재준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와도 연대하여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전면에 나선 함석헌이야말로 『사상계』가 창간부터 내세운 예언자의 풍모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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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백낙청을 중심으로 1960년대 후반 『창작과비평』의 번역양태 및 그 이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창작과 비평』 비평가들은 4·19세대, 외국문학 전공 한글세대 번역가란 존재성을 갖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혁명 체험으로 대사회적 소명 의식을 갖춘, 번역 텍스트를 스스로 선택하고 중역이 아닌 원어역으로 번역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번역가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해방과 한국전쟁을 자기 체험화하지 못한 세대로 반공주의 하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이념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4·19 혁명 이후 형성된 민족주의적 소명 의식 하에서 번역가라기보다는 비평가로 호명되기를 원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번역을 통해서 자신들만의 비판적 이념을 생산해 내고 그 정당성을 증명했다. 그리하여 『창작과비평』의 이념적 논리는 비평문과 번역문의 논리적 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citizen’(혁명적인 시기의 Bourgeoisie)의 번역어인 서구 ‘시민’의식을 변혁 이념으로 제시한 백낙청의 「시민문학론」 텍스트자체가 번역의 완성태였다. 실제로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은 1960년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1966년 1월 창간된 이후 『창작과비평』의 주요 논지를 총정리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텍스트이다. 그는 이 텍스트에서 이 글이 실린 1969년 6월 이전 창비에 실렸던 핵심 번역 텍스트들을 인용해 가면서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시민 이념을 번역하고 정통 마르크스주의보다는 서구의 신좌파적 자유주의 이념을 수용하고, 레이몬드 윌리엄즈가 소개한 D.H. 로렌스의 리얼리즘을 자신들의 입론으로 삼았다. 그것은 사회성을 외면하지 않는 도도한 문학주의의 형상이었다. 그런데 또한 중요한 점은 시민문학론의 이념은 4·19세대의 것인데, 그 실현태는 식민지, 해방공간,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이중어세대 김수영, 리영희였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사상/지식번역사의 흐름이 근대 이후 전개된 한국의 비극적 역사적 상황을 쉽게 단절시키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박용철 시론 연구 - 시어와 정서, 감각의 동기화

김춘식 ( Kim Chun-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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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박용철’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박용철이 20년대적인 낭만주의를 비판하고 새로운 조선시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김기림과의 대립점을 강조할 경우 박용철은 종종 낭만주의자, 센티멘탈리즘의 옹호자, 시적 영감과 감정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자로 상대적인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그가 1920년대적인 조건들과 어떻게 자신을 차별화하면서 『시문학』의 지향점과 미학적 이념을 만들었는가 하는 점을 쉽게 간과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박용철 시론의 가치는 우선적으로 1930년대적인 상황에서 전개된 순수시론, 모더니즘 시론, 현실주의시론의 상호 관계 속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러한 1930년대적인 문학장의 구도는 시를 둘러싼 서로 다른 근대적 인식과 입장을 지닌 주체들의 상호관계성을 보여준다. 김기림이 ‘기술’을 중심으로 시를 평가하면서 ‘시대 정조, 문명의 기미, 사회적 정황’등을 시가 담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임화가 현실주의적 정황과 역사적 조건의 전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시인이 담지할 것을 요구했다면 박용철은 1930년대에 처음으로 시창작의 과정에 대한 면밀한 시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박용철이 김기림, 임화가 변별되는 시점은 20년대적인 감상주의, 신비주의적 시론과 차별화를 위하여, 시창작 이전의 단계를 주관성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비평적 사유’로부터 배제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용철의 경우, 김기림과 ‘기술’이라는 것의 필요와 역할, 그리고 성격에 관한 생각에서 차이를 나타내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대 시인에게 있어서 현대적인 정서를 시로 표현하기 위한 기술의 지속적인 연마가 지닌 중요성은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단, 박용철이 시인의 가치와 존재론의 측면에서 낭만주의적인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내면화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박용철이 영감, 내면의 열정과 욕구, 무명화 등의 용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잘 나타낸다. 하지만 이런 시적 발생 과정에 대한 그의 관심과 신념이 곧 그의 한계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시론과 시에 대한 절연 과정에서 임화나 김기림이 선택한 ‘과학주의적 비평’ 태도가 작품에 대한 객관적 비평과 평가, 문학 작품과 시대 현실의 상응관계 등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전망을 제시하는 데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시 창작 과정의 비밀이나 정서, 감각, 체험이 어떻게 언어와 접촉하고 그것이 미적인 완성태를 만드는 지에 대한 세밀한 검토는 대부분 간과하고 있다. 반면 박용철은 『시문학』 창간 초창기부터 ‘미적 자율성’의 입장을 견지하면서, 특히, ‘시인, 언어, 작품, 감상, 독자’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며 서로 어떤 상호관계 속에 놓이는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박용철의 시론은 순수시론 혹은 서정시론의 본질에 다가서는 논의였고 『시문학』을 중심으로 1930년대 시론의 미학적 수준을 한층 심화시키는 공헌을 하고 있다. 특히, 미적 자율성을 고수하면서 시 창작의 과정에서 시인, 언어, 작품, 독자, 감상(비평) 등의 영역을 각각 자율적으로 독립된 영역으로 설정하고 그 상호 관계를 분석적으로 접근한 점은 그의 시론의 탁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창작과 작품의 존재방식, 감상과 비평의 과정 등을 각각의 독립된 행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상호 영향관계 속에 놓임으로서 문학적 소통의 행위가 일어난다는 발상을 ‘변용’ 혹은 ‘화학적 변화’로 설명하는 그의 시론은 상당히 치밀한 것이다. ‘범주와 영역’을 나눔으로써 시 창작 이전의 심리와 창작 과정, 그리고 완성된 작품의 의의와 존재성, 그에 대한 독자의 감상 행위를 하나의 ‘변용과정’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시론의 독특한 점이자 독창적인 성과이다.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면서 ‘예술적 형식과 구조’를 통해 창작자의 ‘전생리가 언어와 만나는 시어가 되는 과정’을 검토한 것은 특히 ‘시적 언어’의 탐구에 밀착한 『시문학』파의 입장을 충실히 뒷받침하는 논리이다. 시 창작 이전의 단계에 존재하는 시인의 영감, 발상, 정서 등을 전생리라는 용어를 통해 ‘체험’의 영역으로 정리하고, 그에 대한 서정적 전환(관조, 회상, ‘삭후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필연적 동기를 ‘시어와 형식’에 부여하는 그의 시론은 특히 독창적이면서 현대적인 측면을 지닌 것이었다. 시학적 문제, 창작 시론의 문제, 시인과 작품, 독자의 상관성에 대한 문제, 시적 창작의 심리와 감상자의 태도 및 심리 등에 관한 문제 등을 그의 시론이 모두 포괄하고 있다는 점은 박용철 시론의 가장 큰 문학사적 의의다.

김기림 후기 시 연구

김한성 ( Kim Han-s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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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에 쓴 「세계에 외치노라」와 1948년도에 출간한 시집 『새노래』 수록 시를 독해하여 영문학적 교양을 해방기 현실과 버무리려는 저자의 노력을 살펴본다. 해방기의 정황을 담은 민족주의적 시에 왜 세계주의적 욕망이 갈무리되어 있는지, 서양 고전의 모티프가 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시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확인하여, 민족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의 횡단을 검토해 보려 한다. 비록 그의 세계문학 개념이 괴테 수준의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어도 좌우 대립으로 민족이 정치적 격랑에 휘말린 당시 세계를 향한 시선을 담지하고 있으며, 세계 지향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후기 시가 지닌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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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속에서 자본의 이동은 순식간에 이뤄지고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인간의 삶과 인식범위는 일정한 제한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문학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으며 또 해내야 할 것인가.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 의해 쓰게 된 매우 작은 답변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던 1930년대 산출된 몇 작품(주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을 대상으로, 자본운동과 장소성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를 분석하고, 그 결과와 문학 이외의 자료들이 파악한 당시의 자본운동을 대비하였다. 무엇이 결락되어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찾아보고자 했다.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천변풍경』이 그리는 천변의 조선인들은 그저 생계유지에 급급하거나 도박에 빠져있을 뿐, 산업자본으로의 이행을 통한 부르주아로의 신분상승 의지가 없거나 불가능한 상태였다. 한편 현실 속에서는 그들의 생계유지를 위한 경제활동(생산, 소비, 저축 등)이란 자본운동에 의해 일본자본의 이윤 극대화, 심지어 전쟁이나 노동탄압, 생태파괴 등에 기여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런 자본운동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주로는 일본인과 그 거주지역인 남촌을 관찰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둘째, 이 작품의 조선인들은 대부분 돈을 벌려는 의지는 강력하지만 그에 실패한다. 그러면서도 조선에서 자본이 어떤 흐름을 갖는가는 거의 관심이 없다. 따라서 개인의 욕망이 어떤 경제구조에 의해 좌절되는가를, 가난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인식하기 어렵다. 셋째, 이 작품은 조선인 중에서도 가장 자본운동에서 소외된 개천 밑의 거지들에 대해서는 매우 냉소적인 어조를 유지한다.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한 자를 타자화하는 것이다. 당대 대중도 작가도,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동화되고 있을 뿐 가난의 원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음을 뜻한다. 가난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천변의 조선인에 대한 강력한 연민과 긍정은 이 작품의 널리 알려진 미덕이지만 이런 한계도 지적되어 마땅하다. 거지와 서민의 삶이 전세계적 자본운동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하지 못한 탓에 나타난 한계라 하겠다. 넷째, 자본운동의 세계화는, 내가 삶을 영위하면서 사용하는 재화 및 화폐가 전지구적 타자들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오늘날 더 절실한 문제이며, 오늘의 문학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본격적 탐색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는다.

근대 과학수사(科學搜査)와 탐정소설의 정치학

한민주 ( Han M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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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 식민지 조선의 법의학 발전과 탐정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형성·정착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 한다. 근대 탐정소설을 단순히 대중오락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근대적 주체 형성에 기여했던 감시와 처벌, 규율, 훈육 등 일상적 권력의 경험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장치’를 통한 주체화 과정이 탐정소설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는 과학적 장치를 통해 문화적 권위를 획득하는 탐정소설의 역사는 법의학 기술의 역사와 깊이 얽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핵심 기제가 되었던 과학과 과학적 교양의 수단으로서의 탐정소설이 식민지 조선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쳐가며 근대개인의 창조와 감시 기능을 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논문은 초기 근대성에 직면한 대중의 사회관계 및 정치, 과학, 문학장르상의 상호 협력 관계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그러한 과정을 『별건곤』과 『삼천리』라는 대중 잡지와 1920~30년대 신문의 범죄관련 기사, 그리고 채만식의 『염마』를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식민지 조선에서 근대 과학 수사 기관인 ‘형사이화학실’이 설치된 것은 1934년이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서는 과학 수사 장치 마련에 몰두한다. 과학 장치의 마련이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학 수사 장치는 탐정소설의 문화적 권위를 세우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탐정소설은 근대 주체의 창조와 감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한 근대 과학수사의 발전과 함께 형성된 식민지 조선의 탐정소설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학은 범죄에 대한 합리적 응징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식민지 조선의 대중이 갖고 있던 과학에 대한 열망은 국가 치안과 감시를 과학적 합리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해방공간 ‘미국 대리자’의 출현, 조선의 미국화와 책임정치

이행선 ( Lee Haeng-s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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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의 소련은 반공주의를, 반식민지였던 중국은 조선인의 사회 민주주의적 내면성을 구명하는 데 유효한 인접국이었다. 이와 달리 미국은 남조선의 주권을 대신한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였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미국은 반공주의가 보여주듯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조선 역시 정치사상적으로 황무지가 아니었다. 일본이 떠나가고 난조선에는 각종 주의가 창궐해 경쟁하고 있었으며 조선식의 주의를 창출하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군정과 조선인의 정치적 대립은 필연적이었던 셈이다. 미군정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인민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비례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민족감정도 덧씌워졌다. 그래서 미군정은 해방군과 점령군의 모순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이상화된 미국’이었다는 인식의 수정 및 재점검을 요하는 지점이다. 사정이 이럴 때 과연 조선인에게 미국화와 미국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조선인은 영화나 라디오, 신문 등을 매개로 한 간접경험을 넘어 미군정의 문화를 직접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재현한 소설은 (이념을 직접적으로 유포하는 정치계몽서가 아니라) 일상 영역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미국화를 모방하거나 부정하는 인물을 다루게 된다. 따라서 미국화의 효과를 구명(究明)하기 위해서는 연구대상의 범주를 미군정에 국한하지 말고 귀환한 미유학생·재미조선인 등 ‘미국 대리자’로 확장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기존연구에서 미처 심도 깊게 다루지 못한 ‘미국 대리자’를 통해 조선인의 미국관과 미국화의 실상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소설이 지시하는 직접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역으로 그것이 간접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당대 문제는 무엇인가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이 쓰인 맥락과 정치적 효과를 고려한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박인환과 영화 - 영화평론(1948~1956)에 나타난 아메리카니즘

박연희 ( Park Yoen-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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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박인환의 영화평론을 통해 한국에 수용된 미국영화의 규모를 살펴보고, 또한 미국영화 수용 담론 속에서 아메리카니즘의 굴절 양상을 검토하는 것이다. 서구영화를 무려 140편 가량 소개할 정도로 박인환은 단순한 영화 애호가가 아닌 정력적인 영화평론가이자 시인이었다. 그가 전후 서구의 불안의식과 극복에의 의지, 유럽적인 가치와 미국적인 가치의 대립 양상에 주목하면서 외국영화를 소개했다. 특히 1950년대 이후 상영된 미국영화를 통해서는 “미국의 청춘의 힘”을 발견하고 이를 한국의 전후(戰後) 문화와 비교하는 가운데 아메리카니즘을 긍정하는 글을 연이어 발표하게 된다. 해방기에만 하더라도 전후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조건을 제3세계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인식했으나, 1950년대 이후에는 탈유럽화된 서구사회를 실감하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입장이 변모했다. 그 같은 세계관의 변화에는 박인환 자신이 번역하고 소개한 당대 미국영화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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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21세기 한국의 문화적 욕망이 집약된 조어이다. 일련의 한국대중문화에 대해 1990년대 후반 외부로부터 부여된 이러한 기표는 2010년대인 현재에 이르는 동안 주로 내부로부터의 갱신을 통해 더욱 다양한 기의로 확장되었다. 서양의 대중문화에 대한 학습의 산물인 현대/한국/대중/문화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열광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자연히 한류는 발신지의 발신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콘텐츠가 지닌 특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수신지와 수신자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찰과 분석을 시도하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이러한 문화적 제국의 경험은 한국 사회를 맹목(盲目)으로 이끌었다. 한류를 둘러싸고 사회 각계에서 제기되는 최근의 진화론과 위기론은 이러한 맹목의 사례라 할만하다. 진화론과 위기론의 팽팽한 공존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 후반 TV드라마와 K팝으로부터 출발한 한류가 2010년대 초반인 현재 3.0 혹은 4.0 등의 버전으로 격상되었다는 진화론과 한류가 한때의 유행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을 앞세우며 변화를 주창하는 위기론의 공존은 곧 한국 사회에서 한류가 차지하는 무소불위의 가치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한류는 일종의 정언명령인 셈이다. 하지만 한류에 대한 수신지와 수신자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정언 명령으로서의 한류가 지닌 허상을 여실히 폭로해준다. 세계적 문화시장에서 한류는 독보적인 문화콘텐츠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다양한 취향이 접속하는 가운데 다른 국가와 다른 민족의 문화가 과거에 그래왔던 것처럼 특히 ‘지금/여기’에서 유난히 각광을 받는 문화적 ‘흐름’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류에 대한 담론은 이제까지의 진화론 및 위기론과는 사뭇 다른 방향 선회를 요구 받는다. 그동안 한류 담론은 발신지/발신자로서의 한국과 수신지/수신자로서의 외국이라는 일방적 관계에 함몰되어왔다. 그러나 21세기의 대중문화는 더 이상 일국적 콘텐츠가 아니라 초국적 콘텐츠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연히 이제 한류 담론은 종래의 편협한 대상과 범주로부터 벗어나 보다 너른 대상과 범주로 옮겨가야 한다. 그것은 한류를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의 향유라는 일방적 생산과 소비의 관계로 고집하는 문화 제국적 폐쇄성을 지양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외국의 향유 및 외국 문화에 대한 한국의 향유가 어우러지는 문화 횡단의 흐름을 살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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