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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6권 0호 (2014)

간첩의 시대 - 분단 디아스포라의 서사와 경계인 표상

허병식 ( Her Byung-sik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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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이란 경계 위에서 태어나 주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여된 정체를 지닐 수밖에 없는 자들이지만, 어떤 서사는 그들을 끊임없이 동일자의 자리로 기입시키려 하는 민족과 반공의 자리를 넘어서 나아간다. 간첩이란 국민국가의 법역이 설정해 놓은 배제의 규칙들과 경계들 속에 갇힌 존재인데, 우리가 살펴본 작품들에서 간첩과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경계에 저항하거나 거부하고, 때로는 그 배제의 영역 속에 머물고 있는 타인의 얼굴을 개인의 진실한 기억을 통해 다시 재현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서기원의 「반공일」은 간첩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통념을 가로지르며 당대 정치적 담론의 현장을 포착한다. 최인훈의 「금오신화」는 남쪽 사람들의 공비에 대한 저주와 자본에 대한 욕망의 절합이 분단의 상징인 임진강 속으로 밀실을 꿈꾸던 한 개인을 수장해 버린 서사이다. 송기숙의 「어떤 완충지대」의 서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당대의 간첩담론이라는 전략의 틈새를 가로지르는 실천으로서 소설쓰기이다. 이병주의 「삐에로와 국화」는 간첩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사건으로서의 당대성을 허구 서사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순녀의 「어떤 파리」는 앞에서 살핀 작품들처럼 주권자가 강요하는 법역에 저항하는 자기결정의 서사라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이산의 서사를 써나가려 하고 있다. 냉전의 상황과 반공주의라는 국가의 요구 속에서 배제된 간첩이라는 형상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귀환하고 있다는 것은 반공주의라는 회로 속에 갇혀서 그 바깥을 상상하지 못했던 한국문학의 서사에서 분명 의미 있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 통제되는 국민국가의 규제와 관리의 영역에서, 처벌의 대상이거나 통합의 대상으로서만 파악되던 경계인으로서의 간첩들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정체성을 넘어선 자리를 꿈꾸고 있다는 것은 경계인의 주체성을 새로운 모습으로 탐구하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것이다.

낙동강에서 입영열차까지 - 노래 속의 군인 표상과 그 의미

이영미 ( Lee Young-mee )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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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 논문은 6·25 전쟁 발발 이후, 대중적인 노래인 대중가요, 구전가요, 민중가요 등에서 군인이란 소재가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글이다. 그 사회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널리 불린 노래들을 통해, 그 시대 우리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군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러한 군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 하는 지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의 대중가요에는 전쟁 속의 군인 형상이 주로 나타난다. 대중들에게 널리 인기를 모은 대중가요들은 대개, 사적 삶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군인의 면모를 드러내면서 전쟁의 소모품으로서도 충실해야 한다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요구의 절묘한 절충점을 찾은 것들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이르면 대중가요에서도 전쟁 속 군인의 비장함이 사라지고, 일상 속의 군인, 다소 세련되고 멋진 모습의 직업인으로서의 군인이 등장한다. 이에 반해 군대에서 광범위하게 향유된 구전가요에서는 계층화된 부조리 속에 놓인 존재, 혹은 억압된 성욕을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1970, 80년대의 대중가요에서는, 전쟁을 체험한 바 있는 기성세대들과, 전후에 태어난 청년세대가 군인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각기 다른 태도와 기대가 대조를 이룬다. 전쟁을 겪지 못한 청년들이 의무적 군복무를 통해 ‘철 든 어른’이 되기를 기대하는 기성세대들과 달리, 청년들은 오로지 의무적 군 입대의 당혹스러움을 노래 속에서 내비친다. 그나마 이 시대까지는 군인의 공적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남아있는 시대였고, 이는 학생운동권의 민중가요에서 저항적 운동 주체를 유사군인으로 형상화하는 경향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 이후의 대중가요에서는, 의무적 군 입대를 오로지 개인적인 사건,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사건으로 형상화한다. 군인 공적 의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사라진 이 시대에, 군인이 대중가요의 소재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탈/냉전기 미국주의의 굴절과 영화표상

오영숙 ( Young Suk-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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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탈/냉전의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남한의 대중들이 미국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나 정서를 추적하기 위해 씌어졌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영화에는 미국을 바라보는 대중 인식의 심상치 않은 변화를 짐작케 하는 영화적 서사와 시각적 요소들이 출현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들은 미군정에서 한국전쟁, 근대사에 이르는 냉전의 기억들을 환기시키는 동시에 탈냉전의 변화된 분위기 안에서 독해될 여지를 품고 있다. 이 글은 남한의 대중들이 미국에 대한 어떤 태도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그에 상응하는 내면의 드라마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 경향의 영화들에 주목한다. 기지촌이나 미국을 배경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양상을 전면화한 영화들이 한 축을 이룬다면, 베트남전을 통해 한국전쟁과 한미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들이 다른 한 축을 형성한다. 어느 쪽이든 간에, ‘미국’ 혹은 ‘미국인’이라는 존재와 대면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대중서사로 육화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이들 영화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논의의 과정에서 문제화한 것은 가족의 부재로 인한 불행한 성장에 대한 기억의 서사화, 추악한 미국인에 대한 표상, 미국인을 향한 한국인의 폭력적 복수, 이태원이라는 기지촌 공간, 미국화된 스펙터클, 아메리칸 드림의 내면화 문제, 한국인의 자기 처벌 등의 사안이다. 영화들의 대부분이 미국에 대한 적대의식을 표명하고 있지만 좀더 문제적인 것은 한국전쟁 미체험 세대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갖는 이중성 내지 분열의 양상이다. 미국에 대한 적대와 선망이 동시에 표출되는 한국인의 내면 풍경을 비판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이 시기 영화들을 단순한 반-미국주의 영화들과 구분짓게 만든다. 그것은 원조자이면서 가해자이기도 했던 한국 내의 미국의 위상을 성찰하는 것이면서, 이상과 현실의 낙차를 보인 미국주의에 대해 사유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미국의 이상을 보편적 선으로 추종하면서 닮고자 했던 한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반추함과 동시에, 오랜 냉전기 동안 미국에 대한 환상뒤에 애써 가리고 있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끌어내고, 그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묻기 시작한 한국영화의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실의 세기’를 건너는 방법 ―1940년 전후 서정주 산문과 릴케에의 대화

최현식 ( Choi Hyun-s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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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정주와 릴케 시학의 연관성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된다. 한 연구자는 미당의 릴케에 대한 영향과 수용을 본격적으로 제기함으로써 일제 말 미당시의 전환, 특히 ‘영원성’으로의 도약 과정에 대한 새로운 입론을 제시했다. 필자는 서정주의 시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 릴케의 영향과 수용 문제에 대해 충분히 동의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미당의 ‘국민시’ 창작이 본격화되던 1943년 무렵으로 늦춰 잡는 것에는 문제가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고는 만약 미당과 릴케의 시적 대화가 사실이라면, 일본과 조선에 릴케가 본격 소개되던 1930년대 중후반부터 그들의 만남이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릴케와 미당은 적어도 그 시적 전환에서는 근대문명 비판과 순수시의 추구, 시적 영원과 유년기 기억의 절대화, 예지에 근거한 미래의 기획이라는 부분에서 어떤 공통점이 발견되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본고는 첫째, 미당이 최초로 릴케를 언급한 1950년대의 시론을 살펴보고 미당이 말한 ‘동양적 예지’의 실체와 의미를 살펴보았다. 둘째, 미당은 보들레르와 랭보에 대한 ‘영향의 불안’과 초극(이것은 현실부정과 탈향의 욕망으로 흔히 표현되었다)을 거쳐, 순수시와 영원성으로 귀향하는 탈향과 귀향의 변증법을 수행했다. 릴케 역시 보들레르의 영향에 깊이 경사된 바 있지만, 결국 최후에는 삶과 죽음, 신과 자연, 과거와 현재 등이 모두 통합된 ‘우주 내재적 공간’(‘무한한 현실’)에 대한 자아의 기투로 나아간다. 이 과정과 미당시 변화의 유사성을 특히 산문「배회」에 표현된 랭보와의 미적 단절과 ‘순수시’에의 동경, 그를 위한 현실(생활, 가족, 친우, 조선어)로부터의 탈출 의지에서 살펴보았다. 셋째, 릴케는 ‘무한한 현실’의 가능성을 작위적 미래가 아니라 유년시절로의 시적 회귀를 통해 탐구했다. 미당 역시 ‘순수시’의 가능성을 ‘동양적 영원성’에서, 또 그것의 토대를 유년기의 질마재에 대한 추억과 가치화에서 발견했다. 물론 미당은 유년기의 순진무구한 자아의 가치화보다는, 고향 ‘질마재’에서 소외된 ‘심미파’들과의 교유를 중심에 두었다. 이런 사실들을 충실히 고증하고 새로 해석하기 위해 독서대중에게 채 알려지지 않은 1940년대 초반의 ‘질마재’ 관련 산문 3편에 주목했다. 그중에서도 미당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네명의 소녀’ 이야기가 담긴 「향토산화(鄕土散話)」에 초점을 두었다. 본고는 이상의 과정을 통해 릴케가 미당에게 끼친 직간접적 영향과 그 수용의 내용이 얼마간 구체화되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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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와 산문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릴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릴케적인 것은, 서정주의 시세계와 독립적으로 수용되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요소들의 배치 속에서 재구성되는 서정주의 시세계 속으로 통합된 것이라는 관점이 요구된다. 서정주의 릴케 수용은 하우스만의 체험시론을 수용하는 도중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릴케의 수용은 체험시의 모색이라는 좀 더 큰 맥락 속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산문 「시작과정(졸작 국화옆에서를 하나의 예로)」은한 편의 시가, 거시적으로는 릴케적인 의미에서 일생에 걸친 인내와 무수히 많은 이미지의 축적에 의해 쓰여진다고 하고 미시적으로는 하우스만적인 의미에서 구체적인 한 순간에 3연이 떠오르고, 조금 쉬었다가 1, 2연이 떠오르고, 다시 마지막 4연은 오랜 시간 어렵게 제작하고 퇴고하면서 완성되는 전체로서 쓰여진다고 서술한다. 서정주의 「시작과정(졸작 국화옆에서를 하나의 예로)」은 하우스만-릴케의 절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릴케의 영향을 수용할 무렵 서정주가 구축해 놓은 시세계의 주조가 무엇인지 그 주조가 릴케와 상호작용하면서 시 안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서정주의 『화사집』의 핵심은 1938년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세계를 많은 선행연구는 보들레르적인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보들레르적인 악마성과 니체의 육체성은 이 안에서 구분되지않고 이해되는데 이는 섬세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당대에 쓰여진 서정주 자신의 보고에 따르면 서정주는 보들레르적인 ‘가면’을 쓰던 1935년까지의 시세계로부터 벗어나서 등단 직후인 1936년에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육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서정주의 유명한 연애실패담은 시세계의 이행 과정을 상징적 서사로 주조한 것이다. 「국화옆에서」에는 보들레르의 ‘지성’(가면쓰기)을 거부하고 니체의 육체성을 탐구하던 『화사집』의 세계가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 세부를 들여다보면 『화사집』이 디오니소스적인 육체성을 탐구한 세계였는데 비해서 「국화옆에서」는 아폴론적 육체성을 탐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국화옆에서」는 고통과 고뇌 속에서 살아내고자 하는 누님의 의지가 순수시라는 거울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변용시킴으로써 올림포스적인 환상을 탄생시키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소박함, 즉가상의 아름다움 속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라는 니체의 찬탄은 「국화옆에서」를 평가하는 데도 유의미한 척도가 된다. 서정주는 하우스만-릴케의 절합을 통해서 체험시의 거시적인 측면과 미시적인 측면을 종합하려 했다. 또한 하우스만-릴케의 체험시론적 사유를 거쳐서 도달한 「국화옆에서」의 세계는 『화사집』의 니체가 아닌, ‘거울앞에 선 니체’를 보여주었다.

김춘수의 릴케 수용과 문학적 모색

조강석 ( Cho Kang-s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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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에게 있어 릴케의 영향이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1950년대이다. 1960대 이후 그는 의식적으로 릴케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것은 관념으로부터 현상학적 관찰로 그리고 무의미시로의 전환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그런데, 단계론적으로 보아 1960년대 이후 김춘수는 릴케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지만 경향적으로 말하자면 릴케의 영향은 오히려 잠복하여 그의 시의식의 다른 부면에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김춘수가 평생을 사로잡혔다고 고백한 바로 그 질문,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하는 질문은 그런 의미에서 릴케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김춘수에게 릴케의 영향은 단계론적으로는 1950년대에 국한되고 집중된 것이었지만 경향적으로는 바로 정신적 외상 근처를 맴도는 존재론적 질문의 형태로 상주하는 하나의 구조로 자리잡게 되었다. 1991년에 「처용단장」을 완성하여 발표하고 이후 다시 의미의 세계로 귀환하며 『두이노의 비가』를 염두에 둔 『쉰 한 편의 비가』(2002)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릴케의 영향이 단계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경향적인 것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춘수에게 릴케는 요청이며 동시에 구조였다.

불온한 등록자들 : 근대 통계학, 사회위생학, 그리고 문학의 정치성

한민주 ( Han Min-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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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사회문제를 측정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널리 인정을 받아 왔다. 그렇다면 여전히 총독부의 통계자료가 첨예한 재구축의 대상이 되는 현 시점에서, 근대 식민지 조선의 통계란 무엇이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 다. 근대 조선의 통계 역사는 식민지적 특수성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혁 명성, 자료에 대한 믿음과 불신,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맹목성이 중층 적으로 결합되어 있던 것이다. 비록 근대 조선총독부의 통계장치가 메이 지기 일본의 통계장치를 본으로 하여 만들어진 것일지라도 식민지 시기 조선의 통계문화에 대한 연구는 당대 통치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 글은 1920년부터 1945년 해방 전까지 근대 통계지식의 대중적 보 급 및 수용이 조선인의 세계상을 구성해 온 역사적 경로를 살피는 작업이 다. 그런데 통계 자료 자체는 관찰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회활동을 성공 적으로 묘사할 수 없다. 근대 조선의 통계문화사 역시 통계상의 오류와 불신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따라서 식민지라는 환경 속에서 총독부가 제 공하는 통계 자료와 그 통계 해석에 의혹과 불만을 갖는 경우는 비일비재 했다. 그것이 유일하게 비권력자들, 피식민자들이 해방의 의지를 표출할 수 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 글은 식민지 통계가 재현 하고 있는 식민지상과 그 상에 대한 피식민자들의 개입적 재해석 및 전 유, 그리고 문학의 포지션을 고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글의 전개는 한국 근대 통계문화사를 검토하고, 사회위생학의 방법론으로 차용된 인구통 계학이 국가 통치와 문화, 문학에 투사되어 근대인의 세계상을 주조하는 데 관여한 역사적 현상을 검토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근대 통계문 화사 연구가 󰡔수자조선연구󰡕의 편집체계 및 방향 소개에 집중해 있는 것 에 비하여 식민지 전반의 통계 문화사, 그리고 그 속에 위치한 문학의 포 지션을 점검한다는 데 이 글의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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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차적으로 1980년대 노동문학·예술 혹은 노동담론의 계보에서 조세희의 『침묵의 뿌리』가 지니는 의미를 재조명하자는 데 있다. 사진을 중심으로 픽션·논픽션이 혼재된 지식인 작가의 이 난해한 텍스트는 1970년대 후반부터 부상한 노동자 글쓰기나, 계급적 당파성에 입각해 창작주체의 신원문제를 강조한 1980년대 노동문학(론)에 밀려 절박한 ‘운동’의 장에서 배제되어왔다. 그러나 국가의 통치성에 균열을 가한 ‘사북사건’의 진상을 엄혹한 언론통제 시기에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침묵의 뿌리』는 1980년대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급진적이다. 특히 조세희는 노동의 위계화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는 탄광노동(자)을 대상으로 자본주의 노동의 비인간적, 반생태적 속성을 문제 삼았다. 그는 열악한 환경과 고강도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탄광노동(자)의 삶을 재현함으로써 그들의 고통이 대중들에게 ‘재소유’되기를 희망했다. 그런데 『침묵의 뿌리』에서 조세희가 증언하고자 한 것은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이며, 그것을 통해 그가 기대한 것은 대중들의 죄의식이지만, 빈곤과 결부된 노동(자)의 고통은 재현되면 될수록 어떤 특정한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열악한 노동과 빈곤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삶은 재현되면 될수록 기피되고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소위 노동문학의 본령이 노동자들의 각성과 그들의 계급적 연대에 초점을 두는 것도 노동의 재현이 처한 딜레마와 무관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침묵의 뿌리』가 의도한 ‘고통의 재소유’는 국민국가의 틀로도, 민족이나 이념으로도 구제하지 못하는 광의의 ‘막장’노동을 과연 누구에게 맡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으로 전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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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일제 말기에 발간된 대중종합잡지 『文化朝鮮 (改題 前 觀光朝鮮)』(1939~1944)의 미디어 전략을 파악하고, 여기에 수록된 조선의 연극·영화 관련 자료와 기사를 수합·분석하는데 있다. 본고는 필자가 『문화조선』에 수록된 기사와 화보를 분석함으로써 피사체로 선택된 조선문화와 제국이라는 카메라 시선의 디스플레이 전략을 규명했었던 선행연구의 후속작업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화조선』의 연극·영화 기사와 화보 분석을 통해 내지와 반도의 국민들에게 내선일체 이념을 주입시키고 총후의 적성을 내면화시키는 프로파간다 매체의 특장을 확인했다. 동시에 발행 주체가 전경화한 황국신민화 이념의 과시적 성과와 달리 식민자 내면의 균열과 피식민자 사회의 (무)의식적 협력불가능이 노출되는 정황들을 포착했다. 『문화조선』은 화보와 사진의 시각적 재현을 통해 조선의 연극, 영화를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과시·재현했다. 하지만 해당 기사의 언어적 재현은 조선인의 일본 국민되기, 혹은 국민연극과 협력영화의 성과가 미완과 실패로 거듭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균질적인 국책물로 환원할 수 없는 『문화조선』의 다성성과 잡종성이야말로 이 매체에 대한 지속적이고 면밀한 독해가 요청되는 대목일 것이다.

김영하 소설의 죽음 연구

김지혜 ( Kim Ji-h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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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김영하 소설에 빈번하게 나타나는 ‘죽음’에 주목하여 그의 죽음 의식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영하는 등단 초기부터 ‘죽음’이라는 소재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인간 존재의 문제를 성찰하였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연구는 초기 작품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의 죽음 의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아름답다」에서는 자살하려는 여성인물과 그 순간을 기록함으로써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남성화자를 그려내고 있다. 죽음을 미학화한 그의 초기 작품은 기존 논의처럼 악마적 탐미주의, 급진적 허무주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죽음을 미학적으로 스펙타클화함으로써 전통적이고 근대적인 죽음관에서 탈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기존 체제에 저항하고 존재적 허무와 불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작품들에서는 초기의 탐미적이고 에로틱한 죽음의 특징이 약화되고, 낯설고 비일상적인 죽음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악어」, 「고압선」 등에서는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육체의 모습을 통해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능성, 그리고 고정되지 않은 죽음을 그려낸다. 또한 『검은 꽃』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영혼의 승천을 종교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비극적인 현실에 거리두기를 하며 고통받는 인간을 위로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 살인범 화자가 자신의 기억과 싸우는 것을 그리고 있다. 치밀한 이성의 힘을 믿으며 살인을 통해 악마 혹은 초인이 되려고 했던 주인공은 기억을 소멸함으로써 ‘무(無)’의 상태에 갇힌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기억의 ‘소멸’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묻고 있다. 김영하는 작품 속에 끊임없이 ‘죽음’을 등장시키고, 고정된 죽음관을 탈주하는 방식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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