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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7권 0호 (2014)

낭만적 영성(靈性)의 탄생 - 변영만 사상에서의 과학과 종교

황종연 ( Hwang Jong-y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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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의 전래 이후 인간계와 자연계에 대한 지식으로서 유교의 효력은 회복이 불가능하게 약화되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은 왕조국가가 몰락함에 따라, 과학과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폭발함에 따라 유교식 학문과 교육을 무효화하는 주장이 빈발했다. 그럼에도 유교적 신념이 폐절되지는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근대의 새로운 문화적 편제 속에서 인간의 영(靈)적, 도덕적 필요에 응하는 설명과 평가의 체계로서 변형을 거치며 존속되었다. 변영만(卞榮晩)은 그의 사상적 편력 속에서 과학적 지식과 분리된 유교적 신념이 근대문화의 이상들과의 타협 속에서 창조적으로 작동하는 양상을 예시했다. 그는 1900년대 초반 한국사상의 주류였던 민족자강론을 지지했으나 그 사상적 기초인 다윈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에게 다윈주의는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구실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진실을 왜곡하는 묘사였다. 그의 다윈주의 거부는 역(易)의 우주론의 창조적 해석으로 진화론을 대체하려는 시도로 나아갔다. 그는 역의 명제에 따라 왕성한 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간주했고 만물의 형식 속에 나타나는 기의 밝은 현상을 영이라고 보았으며 영을 원리로 하는 만물의 영통을 생각했다. 그의 대령론은 그것이 매우 닮아 있는 에머슨의 초령론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신령범유론이다. 그가 유교적, 기독교적 사유를 절충하여 영의 우주론을 주장한 것은 유럽 낭만주의 문학가들이 뉴턴 이래의 기계론적 자연관에 맞서서 인간을 치유하고 보전하는 힘의 원천으로서의 자연관을 발전시킨 것에 견줄 만하다. 그의 영성주의는 이성의 폭정에 대한, 유교를 비롯한 한국의 재래 사상으로부터 자라난 낭만적 저항의 최초 형식을 성취했다고 판단된다.

1918년 인플루엔자의 대재앙과 문학

서희원 ( Suh Hee-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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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인플루엔자로 인한 전 세계의 사망자 수는 연구자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적게는 2,000만 명에서 많게는 당시 세계 인구의 5% 이상인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대의 이동, 근대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한 물류의 국제적 유통, 교통 시스템의 발전으로 인해 1918년의 인플루엔자는 극동에 위치한 식민지조선에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1918년 9월 『매일신보』에 처음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인플루엔자는 10월에 첫 사망자가 확인되었고, 11월에 정점에 이르렀으며, 1919년 1월에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20년까지 곳곳에서 보고가 되었고 1921년에도 간헐적으로 발병하였다. 1918년 인플루엔자는 식민지조선에 최소 143,787명에서 최대 203,10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당시의 과학적 지식도, 의학적 예방과 치료 기술도 무용지물이었던 1918년의 인플루엔자는 20세기 인류가 경험한 최대의 재앙 중 하나였으나 놀랍게도 곧 철저하게 망각되었다. 엄청난 사람이 죽었고 사망자의 숫자가 신문에 기록이 되었으나 사람들은 이를 일상적인 전염병의 하나로 생각하며 기억해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 망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참혹한 질병보다 식민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묘사나 근대적 자기 이해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대다수 문인들의 강박적 믿음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분명 당대의 문학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몇몇 소설에 남겨진 끔찍한 죽음의 흔적은 주의 깊지 못한 시선에 의해 무시되거나 일상적인 것으로 치부가 되었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1918년의 참혹한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인플루엔자와 관련된 사항은 이인화가 지나치는 식민지의 풍경 속에 깊숙이 내재한 죽음의 감각 이상으로 서사에 돌출되지 않았다. 오직 『창조』에 실린 김동인의 「마음이 옅은 자여」와 전영택의 「생명의 봄」만이 이 재앙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나 김동인의 소설에서는 ‘금강산 여행’이, 전영택 소설에서는 3·1운동에 의한 투옥자의 신변이, 그리고 이 소재와 관련된 주인공들의 예술가적 자의식이, 의미 있는 것으로 읽혔을 뿐이다. 이 논문은 김동인의 「마음이 옅은 자여」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식민지조선에 전염된 대재앙에 대한 문학적 기록의 탐색과 망각의 이유에 대한 모색을 시도한다.

프롤레타리아란 무엇이었는가 : 카프 초기의 프롤레타리아 개념의 변모

차승기 ( Cha Seung-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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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는 계급 자체를 철폐하는 계급, 즉 계급이면서 계급이 아닌 존재이다. 미래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는 이 변증법적 존재의 특별한 성격은, 식민지 시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이 형성·전개되는 과정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변용된다. 제1차 세계대전과 3·1운동의 파장이 이어지는 문맥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피식민지인, 가난한 자, 부랑자, 병자 등 사회-경제적·정치적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이름이기도 했다. 특히 ‘감각의 혁명’에서 인간 해방의 단초를 발견한 김기진에게 프롤레타리아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에서 마이너리티 또는 추방된 자들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식민지/제국 체제의 재현장치들과 관계하며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받는 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는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명료해져야 했다. 문학에서는 ‘계급의식’,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전위의 눈’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프롤레타리아 개념에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를 관철시키려 하면 할수록 그 개념은 점차 정체성 정치의 맥락으로 전이되어 갔다. 추방된 자들의 공통된 이름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는 점차 노동계급 전위의 깃발로 변용되어 갔다고 할 수 있다.

철(鐵)과 탄(炭)의 장면 : 광업과 자원의 인간학

김예림 ( Kim Ye-r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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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생산, 개발의 근원인 광물과 광업은 근대적 역동의 원천인 만큼 죽음과 폐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피폐와 고갈은 자연의 영역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탄광 노동자가 알려주듯이 소진은 자연의 사건만이 아닌 것이다. 이들은 강고한 자연과 잔혹한 자본 그리고 교활한 국가가 교접하는 두터운 지표를 작은 칸델라 불빛에 의지해 횡단한다. 이 글에서는 광물과 광업 그리고 광업노동자가 일련의 시대적 현실을 배경으로 어떤 표상을 부여받았는지, 철과 석탄의 의미론에 초점을 맞춰 분석한다. 시기적으로는 전시체제기부터 해방기에 이르는 시점에 주목하였다. 전시의 물자부족으로 인해 자원의 보전과 증산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조되었다. 이 시기에 이북명은 ‘국방자원’을 암거래하는 조선인 룸펜프롤레타리아를 통해, 버려진 철조각을 파내는 저발전 지대 빈곤층의 현실을 ‘지상의 광부’라는 뒤틀린 상으로 묘파했다. 해방과 더불어 자원, 광업, 광업노동자를 둘러싼 상상력은 크게 변화하여 내셔널리즘적 틀이 공고해진다. 이는 근대 광업에 내재되어 있는 마이너 트랜스내셔널리즘적 경향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양상은 안회남, 한설야, 황건의 소설에 기대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한설야와 황건은 국가건설기의 광업과 광업노동자를 식민주의적 노예노동으로부터 벗어나 기술과 지식을 전유한 존재로 그리면서 ‘찬란한 국가’의 서사를 썼다. 이 과정에서 광업노동자의 포섭될 수 없는 이타성은 소거되었다. 광업과 자원의 인간학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탄광 노동자가 국가-자본의 높고 강한 파고에 부딪치면서 생겨난 미세한 흔적, 채 상상되거나 기록되지 못한 충돌과 길항의 사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심우장 시절의 만해 문학

장영우 ( Chang Young-w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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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는 재혼을 해 심우장에 기거하면서 장편소설 『흑풍』과 『박명』을 쓴다. 그는 소설의 교화적·계몽적 효과를 통해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러한 태도는 근대 서구문학을 모방하는 데 몰두했던 한국 근대문학에서 매우 예외적이고 소중한 자산이다. 『흑풍』의 앞부분에서는 지주 징계, 빈민 구휼, 사회혁명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곧바로 ‘보구’의 모순을 깨닫고 ‘보은’의 생명사상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에는 ‘시검교사건’이나 ‘사직공원 여인’과 같은 실제 사건이 큰 역할을 했는데, ‘시검교사건’은 『철혈미인』으로 작품화하려다 중단한 데 반해 『후회』에서 끝맺지 못했던 ‘사직공원 여인’ 이야기는 『박명』에서 완성한다. 누군가는 만해를 가리켜 “권력 없는 정치가”로 평가하지만, 심우장에서의 만해는 승려의 삶을 살았다. 그가 조국의 독립만을 위해 헌신한 투사였다면 『흑풍』의 주제가 달라졌겠지만, 승려로서 그는 『박명』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카프 문학비평의 낭만주의적 기원 : 임화와 김남천 비평에 대한 소고(小考)

이철호 ( Lee Chul-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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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 해체 이후 임화와 김남천 모두 카프 문학의 공식주의적 오류를 지양하는 대신에 새로운 비평적 준거를 확립하고자 고심했지만, 주체 재건의 방식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생활’이라는 용어를 재전유하는 방식의 격차에서 비롯한다. 임화의 경우 ‘사실’로부터 분리시키거나 ‘생활’과 접합시키는 방식을 통해 ‘현실’ 개념의 담론적 권능을 재탈환하고자 했다. 하지만 김남천은 ‘현실’에 내재된 어떤 본질을 여전히 고수하려 한다는 점을 들어 임화를 비판했다. ‘현실’이란 어떤 완미한 조화의 이상 속에 있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래서 김남천은 작가나 주인공의 분열된 의식을 전제로 삼지 않고서는 주체 재건이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유다적인 것과 문학」에서 ‘자기 고발’을 주체 재건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김남천은 『1945년 8·15』에서도 주인공을 형상화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자기 반성의 수준을 그 전형성의 기준으로 삼았다. 주인공 지원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자기고발을 통해 보여준 통찰은 정치와 문학의 관계 속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예증해준다.

‘재일’의 심상지리와 사할린

박광현 ( Park Kwang-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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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남한 사회에서 사할린 동포의 (미)귀환 서사는 탈식민과 반공(반소)이 결합된 형태로 형성되기는 했으나, 국민사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지 못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인양’ 서사에 대항하며 1960년대 이후 징용피해 서사의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 중 이회성 작품은 사할린의 기억을 이산의 원점으로 하여, 귀환을 유예하거나 포기한 채 과거 식민지 역사의 산물인 재일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 속 강박처럼 반복되는 사할린(의 기억)은 과거나 향수가 아닌 ‘지금-여기’의 아픔이고 또한 거기에 남겨진 자들에 대한 강한 동류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에게 사할린은 재일조선인이 살아가는 일본을 바라보고, 또한 동시에 조국을 바라보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로 이회성의 소설 『또 다시 길을』(1969)과 『백년 동안의 나그네』(1994)를 텍스트로 삼아 두 작품 속에 담긴 ‘사할린’ 기억의 차이와 함께 그것들이 각각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국민’과 ‘국민국가’의 경계가 자연화되는 과정에 대해 비판이 농후해지며, 『백년동안의 나그네』에서 사할린을 ‘증언’하고 ‘고백’할 장소로서 재현하였다. 사흘간 일본 열도를 종(횡)단하는 여정은 그 체험과 기억의 피해서사를 일본 열도 전역에 덧씌우는 방법이었다. ‘버리고 온 가족’, 조국으로 가지 못하고 과거 식민 본국에 ‘남겨진 자’, 분단된 조국으로 귀환해 숭고한 ‘희생양이 된 자’들의 서사를 통해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한 사할린이라는 장소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기억 속의 사할린-일본열도-분단조국으로 이어지는 심상의 네트워크가 이중, 삼중의 ‘겹쳐진’ 이산으로 말미암아 결락과 단절로 연상되는 역설을 보여주었다. 이런 그의 사할린 기억은 일본인의 이름으로 서술되는 역사적 서사로부터 거리를 만들어내고, 일본의 국민사적 서사로 회수-환원되지 않는 ‘대항-기억(counter-memory)’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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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한민국의 수립 나아가 남북 두 정부의 수립에 따른 분단의 제도화로 귀결된 해방3년의 역사에서 일군의 민족주의 문화지식인에 의해 제기·실천되었던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수립 운동을 복원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들이 상상하고 추구하였던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본고가 주목한 것은 첫째, 최선이든 차선이든 제2차 미소공위가 결렬된 뒤 한국문제가 유엔으로 이관되면서 이에 편승/거부하며 민족의 생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국내의 모든 정치·사회문화세력들에게 있어 북조선은 어떤 존재였고, 또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시기에 생산된 일련의 북조선기행기들은 북조선 파악의 민족적 의의에 주안점을 두고 비교적 사실 그대로 북조선 현실의 전모를 소개하려는데 주력함으로써 실제의 확인보다 풍문, 선전, 관념 등에 치우진 북조선인식을 교정하고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건설의 정당성과 그 비전을 뒷받침하는데 기여했다. 자주적 통일민족국가의 비전 발견(김동석), 문화적 이상국가(서광제), 동아시아 질서재편의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북조선(온락중) 등 북조선의 현실을 직접 확인하고 자기화하는 방식은 다소 다르게 나타나나, 대체로 북조선의 혁명적인 민주주의개혁에 대한 찬사·동경과 함께 그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의 성취를 철저한 민족의 관점으로 접근해 자주적 통일의 자양분, 교두보로 인식·배치하는 태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치열한 계급투쟁의 폭력적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국민국가형성을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으로 전유함으로써 자신들의 비전을 스스로 제약하는 문제점을 드러냈지만, 이들의 비전은 당시 외세에 의해 부과된 또는 이에 편승해 획책된 단선단정에 의한 분단정부 수립에 대안적 가능성으로서 의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시기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건설의 비전을 공유한 지식인들이 전개한 집단적 성명운동의 조건과 논리이다. 단선단정 국면에서 지식인사회는 단정추진세력과 자주적 단일정부수립세력의 대립구도로 재편되고 대다수를 차지한 후자에 의해 남북협상, 외군 철수, 단선단정거부 등을 골자로 한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수립을 위한 실천운동이 총력적으로 전개된다. 좌파 및 중도파로 규정할 수 없는 약 400명에 달하는 이 범지식인운동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 극좌/극우 정치노선의 배제, 단독정부수립 기도 반대, 통일자주독립을 목표로 남북협상을 지지·성원한 ‘108인 문화인성명’을 비롯한 일련의 성명서운동이다. 지식인들의 이 같은 운동의 의의는 단순히 단선단정을 저지하거나 남북협상을 지지한 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항구적 민족분열과 외세에의 예속 및 내전의 발발 등 장차 단정으로 초래될 민족의 위기상황을 막고 독립국가로서의 발전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민족 총의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념과 노선은 정당하고 당시 급박하게 돌아가던 엄중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모색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이들의 실천적 지향은 미국이 부과한 질서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또 자신들의 노선을 현실정치화 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허약했던 관계로 대안적 가능성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현실정치에 패배한 일군의 민족주의 지식인들의 민족적 양식 내지 도덕적 의지만이 남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자주적 통일국가수립을 주창하고 분투했던 당시 대다수 지식인의 통일운동은 여전히 민족적 과제로 부과되고 있는 자주적 통일국가의 비전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최선이 차선·차악에 의해 반민족적, 반국가적인 불온으로 매도되고 축출된 오도된 역사 속에서 이들의 이념과 노선은 생환되어 민족통일의 또 다른 대안 모색에 초석이 되어야 한다.

신(新) 가정의 건설과 가부장(성)의 굴레 손창섭 장편소설 『부부』 연구

염승숙 ( Yum Seoung-s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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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의 신문연재소설 『부부』(1962)는 ‘부부가족제’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핵가족화의 확대라는 당대사회적 맥락에서 독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결혼 생활의 안전과 행복한 가정 건설의 기반을 책임지는 주체로 ‘부부’의 위치가 재설정되었던 60년대 한국사회의 ‘(신)생활창조’라는 시대 현실을 배경으로, 성 생활의 취향과 가치관의 대립으로 갈등하는 부부 관계를 묘사해 보여줌으로써 당대 사회적 특질, 곧 산업화를 빌미로 강화된 국가주의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특질을 폭로하고 전통적 결혼제도의 부부관습을 교란/비판한다. 손창섭은 『부부』를 통해 당대 성인 남녀의 결혼 생활을 ‘몽따쥬’처럼 리얼하게 그려내면서 부부가족 안에서의 남편/아내, 남성/여성, 가장/가족구성원의 고정화 된 성 관습과 가부장의 ‘위치’를 욕망하는 자의 내면, ‘가부장(성)’의 허위를 ‘클로즈업’해 서사화하고 있다.

근대의 노스탤지어, 사회의 자기조절 : 이농/탈향 시대의 빈곤과 하위자의 몸

소영현 ( So Young-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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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과 탈향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동반한 사회변동의 가시적 원인이자 결과이고 한국사회가 겪어야 했던 점진적 사회 변화의 한 계기이자 양상이다. 한국사회의 성격 형성에 이농과 탈향은 어떤 여파를 미쳤는가. 종종 농촌과 도시의 대립 구도 속에서 논의되지만 도시화/산업화는 사실상 근대적 세계로의 점진적 변화를 의미하며, 전통적 시공간으로부터 단절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속성이 도시적 삶과의 충돌 속에서 내화되고 안착되는 과정이다. 압축적 근대화를 겪은 한국사회는 여성의 내치를 지향하는 가부장제 윤리와 공모하면서 산업화가 야기한 시차에 적응하고자 했다. 도시적 삶을 위해 복원해야 할 전통이 호명되었고, 구습으로 분류되었던 농촌 사회의 속성이나 산업화의 일면이 폐기되어야 할 부정적 폐습으로 치부되었다. 그간 충분히 지적되어왔듯이, 공간적, 경제적, 문화적 차원에서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시차를 통과하던 이농과 탈향의 주체들이 산업화의 모순 한 가운데 놓인 존재들이었다면,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적 전치를 겪음으로써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종종 떠나온 고향/전통으로 환기되었고 지금 여기에 없는 것으로 낭만화되거나 훼손되어 폐기될 것으로 치부되었다. 농촌과 고향을 떠난 이들이 도시의 빈민이 되는 동안 점차 도시 빈민은 사회적 위험군으로 산업화의 모순은 빈민에 대한 처리/관리 문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빈민 여성의 계급성은 젠더 위계 안에서 최소화되어 젠더화된 하위자의 몸에 대한 평가가 산업화의 긍/부정의 판정기준으로 대치되는 경향으로 드러났다. 근대의 재전통화에 젠더화된 하위자가 동원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터, 농촌과 고향을 떠나 도시로 진입하는 젠더화된 하위자의 몸의 의미와 그 이동 경로의 추적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전근대적 유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실체이자 유의미한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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