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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1권 0호 (2016)

한국 역사학계의 만보산사건 연구동향과 과제

윤상원 ( Yun Sang-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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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진행된 만보산사건에 대한 연구동향을 살펴봄으로써 만보산사건 자체에 대한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사연구에서 만보산사건은 박영석의 선구적 연구로부터 출발하였다. 만보산사건을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의 일환으로 규정한 그의 연구는 만보산사건에 대한 총체적 연구로서, 이후 대부분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그의 연구를 계승하거나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이후 나온 새로운 연구들은 1920년대 조선에서 광범위하게 내면화되어 있던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악감정이 만보산사건을 계기로 화교박해사건으로 폭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악감정의 근원을 식민지조선의 노동시장을 둘러싸고 나타난 조선인과 중국인의 갈등에서 찾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중국사 연구자들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만보산사건에 대한 기존 민족주의적 시각의 한계를 강조하며, “‘민족주의와 탈민족주의를’ 넘어선 ‘비민족주의적 반식민주의’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안적 서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연구가 주목된다. 하지만 미력하기는 하지만 한국사학계 역시 만보산사건을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줄곧 숙고하며 모색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만보산사건 당시 조선에서 벌어진 화교박해사건을 민족주의 자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위험하다. 그보다는 ‘성찰 없는’ 민족주의가 문제일 것이다. ‘성찰 없는’ 민족주의가 초래한 비극적 사건이 만보산사건 당시 조선에서 벌어진 화교박해사건이었다면, 앞으로의 만보산사건 연구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고, 실현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더 생산적인 역사연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학/지식 장에서 ‘만보산 사건’이 기억되어 온 몇 가지 방식

김준현 ( Kim Jun-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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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만보산 사건’이 한국의 지식 장과 문학 장에서 기억되는 방식들을 살펴보았다. ‘만보산 사건’은 그 상징적 의미가 중대하고 복잡한 당대 상황을 적실하게 투영하고 있음에도 1980년대 박영석의 「만보산 사건 연구」가 간행되기 전까지 본격적인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 글은 사건이 발발한 1931년부터 객관적 논의의 대상이 된 1987년 이전까지 발표된 문건들을 참조하여 ‘만보산 사건’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억되어온 양상과 그 배경을 살펴보았다. ‘만보산 사건’은 시대적 담론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그 의미가 새롭게 규정되었고, 다른 양상으로 그 기억이 공유되었다. ‘만보산 사건’은 그 기호의 외연이 다양하고, 그 사건을 구성하는 여러 갈등 주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갈등은 흔히 여러 갈등 주체의 층위를 단순화한 이분법적 갈등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런 형상화와 의미 규정은 관련 텍스트가 처한 시간적/공간적 담론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태준의 「농군」(내선일체와 식민주의적 팽창주의)이나 안수길의 「벼」(오족협화), 그리고 박계주의 「대지의 성좌」(독립과정의 능동성 강화)는 각 텍스트들이 생산된 담론 환경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보산 사건’을 중국 대 조선인의 갈등으로 설정할지, 혹은 중국·조선 대 일본의 갈등으로 설정할지는 이러한 맥락의 자장 하에 놓여진 문제였다. ‘배화 사건’은 조선 사상 초유의 이민족 대상 증오 공격으로, 이 사건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가 극히 적다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이 조선인에게 윤리적 트라우마로 작용했다는 방증이 된다. ‘만보산 사건’을 일본의 획책으로 의미규정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조선인의 책임 의식은 희석되었다. 그러나 당대 조선에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던 배화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는 기억은 완전히 억압되지 못했는데, 그 기억은 중국인을 국제 정치의 공동체로 소환하지 않고 경제적 경쟁자로 소환했을 때 편린으로 드러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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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주는 프로문학적인 경향이 드러난 초기 작품들부터 통속적인 연재소설, 동경 또는 만주 이주 조선인을 다룬 소설, 국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 등 다양한 내용의 많은 소설들을 발표했다.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일본어작가로 평가받았던 장혁주는 이제 ‘제3의 공간’인 만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만주로 이주하여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적인 공동체를 세운 조선인들을 취재하고 쓴 『개간』을 발표한다. 식민지 조선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만주’에서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이주 조선인의 현실과 정주 희망 그리고 불안한 미래를 통해 ‘보이는’ 존재였던 식민지 조선의 작가가 ‘보는’ 존재와 ‘보이는’ 존재 사이를 오가며 결국 ‘보는’ 존재로 변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장혁주는 일본인들이 그에게 바라는 점이 일본인들의 ‘이국취미’를 만족시켜주는 데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그것을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자신 안에 ‘조선적인 것’의 가치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에게 ‘조선적인 것’은 그림자이자 생존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식민지 지식인은 자신이 동경하던 제국을 ‘봄’으로써 식민지를 ‘보임’의 대상으로 인식했고 어느 순간 식민지를 제국의 시선으로 ‘봄’으로써 식민지 안에서는 ‘보임’의 대상이 되어서 결국 그 안에 ‘봄’과 ‘보임’을 모두 갖게 된, 즉 ‘조선적인 것’을 ‘봄’의 대상과 ‘보임’의 대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영악한 존재가 되었다.

민족 갈등에서 계급 투쟁으로의 전화(轉化) - 이휘영, 『만보산(萬寶山)』론 -

장영우 ( Jang Young-w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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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산』은 ‘만보산 사건’을 사실에 거의 근사하게 재구한 일종의 보고 문학이다. 만보산 사건을 제재로 한 소설이 한중일 삼국에서 쓰여지고 그 내용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은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증좌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만보산 일대의 관황둔 개간과 관련한 중국 지주와 조선농민 대표, 그리고 실존인물이 그대로 등장하여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서술한 것은 보고문학적 특질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학영덕-마현장의 뇌물 수수 장면은 핍진하게 묘사하면서 중국과 일본경찰의 폭력적 행위 등은 소문으로 처리하거나 전지적 서술자의 요약적 진술이나 개입이 많은 것은 리얼리즘 소설로서의 취약점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황무지 개간에 필요한 수로 건설 문제로 조선농민/중국농민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계급의식으로 전화하여 반제·항일의 문제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이경평에게 ‘완벽한 인물’의 성격을 부여하고, 조선인 김복을 망명객으로 묘사하여 개간사업에 참여했던 조선농민을 중국농민과 연합하게 하는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부분에서 조중농민 연합세력이 수로를 붕괴시키는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조선농민들이 두 달여 동안 피땀 흘려 건설한 수로사업을 무화하는 모순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복의 말 한 마디에 수로건 설을 포기하고 중국농민과 함께 제국주의에 저항한다는 설정은 특정한 이념이나 목적에 종속된 계급문학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마무라 에이지[今村榮治]의 「동행자(同行者)」와 완바오산(萬寶山)사건

유수정 ( Yu Su-j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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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 에이지[今村榮治]는 1938년 6월 만주행정학회 기관지인 『만주행정(滿洲行政)』문예란에 단편소설 「동행자(同行者)」를 발표한다. 이마무라 에이지라는 일본명으로 문학활동을 하였지만, 그는 1911년에 조선에서 태어난 조선인으로 그에 대한 상세한 경력은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이마무라 에이지의 대표작 「동행자」는 1938년 6월에 발표된 이후, 『만주낭만(滿洲浪曼)』 창간호(1938.10)와 『만주문예연감』 제3집(1939.1)에 재수록될 정도로 당시 만주의 일본어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본 연구에서는 도입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소설의 내러티브를 분석하여 작자와 나레이터, 주인공의 거리를 파악하고, 주인공 신중흠이 안고 있는 갈등 양상을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신중흠의 정체성의 위기를 읽어내고, 이에 완바오산사건이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마무라 에이지의 「동행자」는 직접적으로 완바오산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도입부에서 구체적인 사건명이 등장하고, 그 이후에는 두 번 언급되는 정도이다. 그러나 작품 전편을 관통하는 주인공의 갈등의 근원에는 바로 완바오산사건이 있다. 이마무라 에이지라는 작가는 마치 소설 속 주인공 신중흠처럼 조선인으로서의 이름, 말, 공동체를 버리고 재만일본인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그런 그가 만주일본어문단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즉1938년에 발표한 작품이 바로 「동행자」이다. 그리고 그 작품의 주인공은 일본인의 ‘동행자’로서 ‘일본신민’으로의 길을 택하지만, 작가도 결코 같은 선택을 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작품의 비극적 결말은 그 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마무라 에이지가 1938년에 소환한 완바오산사건은 바로 만주라는 장소가 갖는 모순, 내선일체와 민족협화가 충돌하는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양은천미(揚隱闡微)』 소재 유화(類話)의 원천탐색과 편찬의 의미

권기성 ( Kwon Ki-s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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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야담집인 『양은천미(揚隱闡微)』의 논의가 주로 개별 유화들에 집중되어 있고, 야담집으로서의 종합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에 『양은천미』에 수록되어 있는 유화들의 원천을 전대문헌을 통해 찾아보고, 『양은천미』의 유화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편찬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양은천미』에는 3가지 정도의 방식으로 유화들이 편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전대 야담집에 수록되어 있는 유사 모티프를 차용하여 이를 상호 결합하는 등의 적극적 개작의 방식이었다. 둘째 야담집 외의 다른 문헌에서 이야기를 수록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변개하기도 했다. 셋째 당대에 떠돌던 이야기를 수록하여 재편하거나, 구전설화를 참고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한편 구성적 측면에서 『양은천미』는 나름의 일관성을 가진 채, 편찬자에 의해 다듬어진 완정한 형태의 야담집을 지향하고 있었다. 유사한 이야기를 2편씩 모아 배치하거나, 각 이야기의 말미에 빠짐없이 평시(評詩)를 남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내용적 측면에서 『양은천미』의 소재적 관심은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그 관심이 은미(隱微)한 것에 있었다. 그리고 2장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때의 ‘은미’는 남·녀 간의 결연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즉 결연 소재에 대한 관심은 『양은천미』의 흥미성 추구가 편찬의 주 동기였음을 방증한다. 소설에 해당하는 여러 작품들이 실려 있는 현상이 이러한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요컨대, 『양은천미』는 19세기 말에서 이어져 온 야담의 자기갱신의 노력을 마지막까지 보여주던 흔적의 일면이며, 흥미성이라는 편찬자의 강한 개작 기준에 바탕을 두고 편찬된 야담집이라 평가할 수 있다.

『불교』지 문학 지면의 연대기적 고찰

김종진 ( Kim Jo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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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불교』에 구현된 전체적인 문학 장(場)의 양상을 고찰하기 위해 잡지의 편집진, 편집체재, 문학지면의 변화 양상을 조사하고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같은 시기의 불교계 잡지나 문학사의 경향과 비교하여 그 특징을 살펴보았다. 『불교』지의 편집 겸 발행인은 권상로(1~83호, 1924.7~1931.5)와 한용운(84·85~108호, 1931.7~1933.7)이다. 이들이 담당한 시기의 시대적 상황이 차이가 있고, 각자가 지향하는 의식과 실현 양상이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교』지 10년의 역사는 한용운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 권상로 편집 시기의 경우, 그 중반인 46·47호(1928.5)에 백성욱·김태흡·유엽(시인)·방인근(소설가)이 기자 및 직원으로 입사하고 48호(1928.6)에 김일엽이 기자로 입사하여 새로운 편집진을 갖춘 이후 문예지로, 대중지로, 문화담론지로 잡지의 편폭을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이 경향은 62호(1929.8)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63호(1929.9)부터는 일반 문사의 문학 작품은 수록되지 않았고, 대신 순례기를 표방한 기행문, 찬불가와 희곡 등 포교 과정에서 활용한 문학작품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잡지의 종교성이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따라 권상로 편집 시기 문학의 장은 전기(1~45호), 중기(46·47~62호), 후기(63 ~86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용운은 새로 편집을 담당하면서 시조와 산문시 형태의 자유시를 [권두언]란에 수록하였다. 이와 함께 [불교시단]란을 신설하여 다수의 젊은 불교청년 문사를 발탁하였고, 이들이 장차 시문학 분야에서 불교문학의 장을 넓히는데 기여하였다.

고전서사에 나타난 외모의 문제와 심미안의 회복

최혜진 ( Choi Hye-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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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인문학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고전서사 속의 외모에 대한 관점을 분석하여 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고전소설 속에 드러나는 미인의 형상은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상상하고 주관적인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도록 묘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인은 성품과 덕행이 함께 묘사됨으로써 단순히 외적인 아름다움이 미인의 조건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추녀의 형상은 매우 과장되고 흉악하게 묘사된 감이 있으며, 추녀 역시 그의 성품과 행실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려져 미/추의 문제가 내면의 덕성과 연관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외모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극복한 두 작품을 통해 우리는 외모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두 가지 주제를 얻을 수 있었다. 「박씨전」의 박씨는 추모였던 박씨가 능력을 바탕으로 차별을 극복하며, 이시백의 심미안을 회복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노처녀가」의 주인공은 자신의 추모를 당당하게 여기며, 자존감을 잃지 않고 구애를 통해 행복한 삶을 성취하여 심미안의 회복과 확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고전서사의 외모 형상화는 전통시대의 심미안에 대한 두 가지 내용을 보여준다. 첫째는 외모가 외면만이 아니라 내면을 아울러 표상화한 것으로 보아, 다양한 심미안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둘째는 외모적 차별 요소를 극복하는 요소로 성품과 능력, 자존감을 중요하게 지목한다는 점이다. 이는 「박씨전」과 「노처녀가」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노처녀가」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또다른 심미안적 해석을 함으로써 획일화된 기준을 벗어난 아름다움을 찾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요컨대 고전서사의 외모에 대한 문제를 분석해본 결과, 우리는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편견을 넘어서 ‘전체’를 바라보는 감성적 지각과 인식을 회복해야 하며, 이를 심미안으로 확립하는 일이 긴요함을 알 수 있었다.

기형도가 희망을 말하는 방법

김행숙 ( Kim Haeng-s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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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기형도 시의 핵심적인 공간이자 모티프로 ‘사무실’과 ‘거리(길)’에 주목하여 기형도의 시적 욕망들과 실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는 특히 ‘유리창’의 존재와 기능을 유의미하게 살폈다. 이를 통해 기형도가 문학적으로 찾아 헤맸던 ‘희망’이 어떻게 기억되고 시작되고 지속되는지 탐색할 수 있었다. 기형도 시에서 ‘길’과 ‘사무실’은 대조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 특유의 상징성을 획득하게 된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길의 욕망’과 ‘사무실의 일상성’은 서로 대비될 때 더욱 강렬한 이미지를 얻는다. 사무실이 환기하는 반복적인 일상성, 그 익숙함이 문득, 한 존재에게 참을 수 없는 끔찍한 동일성의 지옥으로 드러나는 순간, 그 존재는 발작적인 울음을 터뜨리거나 내적 붕괴를 경험하게 된다. 그 절망의 몸짓으로 희망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무실의 바깥, 다시 말해 일상의 바깥에는 ‘길 위를 떠도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은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적 욕망과 희망을 쫒아 오류를 거듭하면서 지칠 때까지 어디로든 계속해서 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기형도 시에서 이들은 일상의 진부한 행복과 결별하고 불안한 방랑의 발걸음을 지속하면서 ‘지칠 때까지 희망을 꿈꾸며’ 미학적인 삶을 살아내는 비극적 형상들이었다. 기형도의 희망은 도저한 부정성을 통하여 기억되고 지속된다. 그는 희망을 망각하지 않았기에 가장 깊이 절망할 수 있었고, 또한 가장 심각하게 절망함으로써 희망의 존재를 희미하게 환기시킬 수 있었다. 기형도 시에 남겨진 좌절과 실패의 흔적들은 희망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희망을 계속하게 하는 시적 계기들이었다.

서정주의 「도화도화」 자세히 읽기

윤재웅 ( Yoon Jae-wo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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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도화도화」는 학계나 비평계에서 전면적인 분석이 되지 않고 있던 텍스트다. 다양한 맥락들이 중층적으로 얽혀 있어 ‘자세한 읽기’ 과정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맥락들을 섬세하게 살펴보면 의미 재구성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발표 당시 상황에 대한 종합적 분석, ‘도화도화’의 다채로운 이미지 분석, ‘푸른 나무 그늘’과 ‘볼그스럼한 얼굴’의 대비를 통한 접근, ‘예언’과 ‘원수’의 코드를 지닌 성서 「예레미아서」의 맥락,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타나는 ‘미친 오필리어’의 맥락, ‘비로봉상의 강간 사건들’에 대한 자료 분석을 통하면 「도화도화」가 한층 선명하게 다가온다. 특히, 최근에 새로 발굴된 미당 친구의 금강산 등정 회고담을 통해 ‘강간 사건들’의 맥락이 보다 분명하게 밝혀지게 된 것은 「도화도화」의 전체 맥락 분석에 중요한 기여다. 「도화도화」에 드러나는 시인의 초상은 이율배반의 모순적 존재, 본인 스스로 자평하는 ‘탁객(濁客)’에 가깝다.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내면에 간직한 채 상호 길항하는 욕망과 투쟁하는 이 이미지는 『화사집』(1941) 시절, 젊은 서정주의 창의와 개성의 본모(本貌)다. 또한, 처연한 슬픔과 무모한 광기가 강렬한 문체 속에 형상화 되어 있는 「도화도화」는 초현실주의 문학에 대한 서정주의 입문 과정을 진단해 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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