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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9권 0호 (2019)

한시에 형상화된 패랭이꽃에 대한 인식과 문학적 수용

강지희 ( Kang Ji-he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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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꽃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꽃이다. 한국의 시인들은 오래 전부터 패랭이꽃을 소재로 시를 지어 왔다. 그들은 길가 또는 조용한 숲에 피어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꽃의 모습에서 소탈하면서도 담박한 천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또한 가을바람이 불어도 지지 않고 남아 있는 그 인고의 미덕을 노래하였다. 패랭이꽃은 중국에서 ‘석죽화(石竹花)’라고 불렸다. 역시 이 꽃의 아름다운 외양에 매료되고 가을까지도 피어 있는 질긴 생명력을 예찬하였다. 그러나 미인들의 옷에 수놓이는 꽃, 신선세계, 찬란한 노을 등을 언급한 것은, 이 꽃의 소박하고 친근한 모습보다는 농염함과 짙은 향기에 더 주목하였음을 뜻한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패랭이꽃의 다정한 모습을 인상 깊게 보았고, 그에게 자신의 고독한 상황을 투영하였으며, 그로부터 깊은 위안을 받았다. 패랭이꽃을 통해 느껴지는 천연의 자태와 향기, 전옹(田翁)·유인(幽人)과 같은 은자(隱者)들에게 다가오는 친근함, 소박하고 고요하게 피어 있으면 서도 추위를 이겨내는 강인함 등은 한국인의 마음에 새겨진 독특한 심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한시에서 드러나는 패랭이꽃의 모습과 상징은 한국의 현대시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만주(晩洲) 정창주(鄭昌胄)의 시세계 연구

김묘정 ( Kim Myo-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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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소북팔문장(小北八文章) 중 한 명인 만주(晩洲) 정창주(鄭昌胄)에 대한 연구로, 그의 생애를 시기별로 개관하고 문집 수록 현황을 확인한 후 시세계에 드러나는 몇 가지 특징적 면모를 추출하였다. 첫 번째는 동일 소재 영물의 다채로운 심미적 포착 양상으로 만주는 다양한 대상을 취해 영물시(詠物詩)로 구현하면서도 반복적 작시 경향성을 보인다는 특징을 지닌다. 두 번째로는 누정 공간 인식과 개인적 정서 표출 양상을 살펴보았다. 만주가 누정을 탈속 공간으로 인식함으로써 주변경관을 완상하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으며, 회고와 소통의 공간으로 상정함에 따라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정서를 누정시(樓亭詩)에 담아냈음을 확인하였다. 세 번째로는 만시(挽詩)에서 포착되는 기억 공유를 통한 추모와 애도의 형상화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만주가 사적 기억을 기반으로 만시를 창작함으로써 진정성을 겸비했으며, 신선 세계 이미지를 활용해 만시를 구성했음을 확인하였다. 만주 정창주에 대한 첫 연구인 이 글은 17세기 소북 문단을 비롯해 소북팔문장의 문학적 특징을 규명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달구장축(達句長軸)」을 통해 본 18세기 후반 교남성사(嶠南盛事)

손혜리 ( Son Hye-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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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정조 7년(1783) 사근 찰방 이덕무(李德懋), 달성 통판 홍원섭(洪元燮), 흥해 군수 성대중(成大中), 경상도 관찰사 이병모(李秉模), 주천 태수정지순(鄭持淳)과 경상도 출신의 재야 문인인 김득후(金得厚)와 원득정(元得鼎)이 서로 잇달아 차운하여 만든 시축을 「달구장축(達句長軸)」이라 하고 교남(嶠南)의 성사(盛事)라고 평가했던 바, 이들 7명의 경향(京鄕)을 대표하는 문인들이 지은 7언 고시 22운으로 이루어진 연작시 7편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달구장축」이 성사된 배경과 구성원에 대해 소개하고 연작시를 면밀하게 분석하여, 18세기 후반 대구를 중심으로 일어난 문단의 성대한 일로 일컬어졌던 아회(雅會)를 밀착 취재한 결과 규장내외각 출신으로 당시경상도 지역에 재임하고 있던 지방관들의 해후와 지역 문인의 합류는 모임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서울 출신 문인들은 규장각을 배경으로 이미 인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달구장축」을 통해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인할 수 있다. 또 각촉(刻燭)하고 시재(詩才)를 겨룬 만큼 문학적 역량을 가늠하기에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시축의 구성원 중 이병모·원득정·김득후의 문집이 전하지 않는 현재 「달구장축」에서만 확인되는 이들의 시를 통해 자료적 가치 또한 주목할 만하다.

『심청전』의 현대적 변용과 의미 : 창작 판소리극 <떳다, 물에가 풍>을 중심으로

신효경 ( Shin Hyo-ky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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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떳다, 물에가 풍>은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에 국보 62호인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설화를 활용하여 만든 창작 판소리극으로, 해당 사찰 공간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이 연구에서 다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떳다, 물에가 풍>의 창작배경이다. <떳다, 물에가 풍>은 2018전통문화재 활용사업의 일환으로 전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소리꾼들에 의해 창작·공연되었다. 작가는 심봉사를 통해 진정한 자유는 육체적 개안이 아닌 마음의 개안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둘째, <떳다 물에가 풍>의 극적 구성과 인물이다. 이 작품의 극적 구성은 총 4장으로 되어 있으며 새로운 화소를 활용하여 기존과 차별화하였다. 심청의 경우 아버지에 대한 효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인물로 형상화하되, 심봉사는 현대인들에게 오유지족의 깨달음을 전하는 인물로 그렸다. 셋째, <떳다, 물에가 풍>의 지향의식이다. 이 작품은 인간성이 상실되고 물질을 숭배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비판하고, 인간의 행복과 진정한 자유는 물질과 욕망에 있지 않음을 강조했다.

한국 근대 희곡과 제도 1 : 춘원 이광수의 희곡 인식을 중심으로

박노현 ( Park Noh-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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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드라마가 현재와 같은 문학 장르로 설정된 것은 불과 백 년정도이다. 이는 근대적 문학 개념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1910년대 전후 서양어 리터러처에 조응하는 번역어로 문학이 채택되고 그와 관련한 문학론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극내지는 희곡이 문학 장 속으로인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학을 에워싼 현실의 담론장에서 희곡은 종종시나 소설에 비해 주변부적 취급을 받는다. 이러한 정황은 창작과 비평, 연구와 교육, 출판과 독서를 망라한 한국 문학 장 곳곳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 이 글의 목적은 희곡의 이와 같은 주변화를 한국의 근대적 문학 제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특이점으로 보고 그 추이를 살피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추적의 시작점을 춘원 이광수로 삼는다. 드라마는 춘원이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文學이란 何오」를 통해 비로소 문학임이 선언되었다. 게다가 그는 개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규한>과 <순교자> 등 두 편의 희곡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 문학 초기 희곡의 장르 정체성 형성에 끼친 이광수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통관하는 동안 그가 희곡과 관련해 남긴글들은 초기의 영향력을 무색케 한다. 심지어 그는 희곡에 대한 자신의 선구적 선언을 스스로 포기한 채 희곡을 문학의 주변부에 방치하는 것 같은 태도마저 취한다. 일제강점기 그가 차지하고 있던 문단권력을 고려했을 때 이는 희곡의 주변화와 적지 않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 문학 장에서 희곡이 딛고 있는 어정쩡한 위치의 시원에는 춘원의 피상적 장르 인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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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그동안 한국 영화사에서 졸작으로 취급되어 온 우뢰매 시리즈의 영화사적 의의를 찾아보고, 과학 기술을 중심으로 80년대 한국 사회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우뢰매 시리즈는 허술한 영화 내러티브와 저급한 특수 효과,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절등으로 인해 비판받아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9편의 우뢰매 시리즈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으며, 80년대몰락하고 있던 한국 창작 SF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탈출구였다. 또한 기존의 SF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여 실사영화에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최초의 실사합성영화이기도 했다. 김청기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특촬물의 촬영 기법을 도입하면서 한국에도 특촬물이라는 영역을 만들어냈다. 우뢰매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심형래의 등장은,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서서 선진국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 이려는 개발도상국 한국이라는 상징성을 띠게 한다. 모자란 형래가 우주의 과학을 통해 에스퍼맨이 되었듯, 개도국 한국은 선진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비록 과학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경계해야 하는 냉전의 마지막 시대였지만, 과학이 한국으로 와서 한국적 가치들을 만날 때 완전해질 것이며 결국 과학의 주인은 한국이 될 것이라는, 그래서 한국은 근대화에 성공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린이 영화로서 가져야 할 교육적 가치이자 아시안 대회와 올림픽을 개최하고 경제적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던 80년대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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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노을』을 빨갱이/백정 아버지를 둔 갑수의 이야기, 현재 중산층 가부장이 된 갑수의 성장 서사로서 살펴보았다. 근대 사회에서 중산층남성이 된다는 것이 경제적 성실성과 사회적 규범에의 순응을 전제로 길들여지지 않으려 하는 자아의 일부를 깎아내고 배제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6.25 전후부터 중산층이 늘어난 70년대까지의 한국 사회에서 이는 더 극적으로 나타난다. 반공/개발주의 국가 주도 하에 중산층이 사회안 정세력으로 규정되면서, 새로운 중산층 남성상은 공적 영역에 복무하는 핵가족의 가부장성과 이념적 온건성 등을 필수요건으로 삼으며, 국가는 여기에서 벗어나는 모든 경향에 대해 강력한 징벌로 위협한다. 따라서 빨갱이/백정 아버지는 철저히 망각되고 침묵되어야 할 가족사적 기억인 동시에 갑수가 중산층 남성으로 성장하기 위해 배제해야 했던 ‘그림자 상’으로 의미화된다.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무법자, 국가의 반역자인 아버지를 둔 갑수에게는 젊은이들이 겪는 보편적 성장의 계기들- ‘대항하고 타협해야 할 완전한 기성세대로서의 아버지’가 부재한다. 대신 그러한 아버지의 부정적 반대상을 통해 체제를 위반할 경우 겪게 될 공포를 추체험하며 그 공포로써 스스로를 훈육해 길들여야 했던 손상된 성장을 겪는다. ‘백정’과 ‘빨갱이’로 상징되는 ‘살’과 ‘이념’에 대한 욕망과 자유를 반납한 채 성장한 갑수는 자발적으로 소시민이 되지만 그것은 완전히 길들여지거나 억압될 수 없으며 악몽을 통해 반복적으로 귀환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귀향한 갑수가 (할)아버지가 빨갱이였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고백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의 결손을 사후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주체적 시도이지만, 아버지가 백정이었다는 것만은 끝내 말하지 못한다는 데서 그의 시도가 아직 불완전한 것임이 드러난다. 『노을』은 이런 의미에서 분단과 개발이라는 국가 담론이 지배하는 70년대, ‘갑수’로 표상된 한국 중산층 남성의 성장 서사에 깔린 무의식의 드라마를 보여준다.

동원되는 정체성, 교차되는 장소 : 1940년대 부산의 장소성

허병식 ( Huh Byung-sh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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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20세기 초반 청일전쟁 당시부터 군사수송의 기점으로서 군대의 이동과 병참수송을 담당하는 장소였으며, 이는 1918년부터 시작된 시베리아 출병 파견의 기점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1930년대에 접어들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의 확전에 따라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이 변화함으로써, 대동아공영권 확대를 위한 병참기지의 기점으로서 부산이 지니고 있는 장소성은 더욱 중요해 지게 되었다. 특히 부산항을 통한 수송의 중요성이 강조됨으로써 철도, 항만 등의 도시 인프라가 새롭게 정비되고 병참기지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제국 일본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창구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조선인들이 학업과 노동의 공간인 일본으로 나아가는 관문의 역할을 했던 부산항은 그 흐름에서 통제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는 민족과 개인의 권력관계를 절감하게 만드는 넘을 수 없는 경계로 인식되었다. ‘관문’으로서 부산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알려주는 서사들은 부산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린 개방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감시와 배제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의 경계를 신체에 각인하는 폐쇄성의 무대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이 정치적 불평등과 인종주의의 경계에서 버려지고 범죄에 노출된 신체들이 발생하는 장소가 식민지의 관문인 부산이었던 것이다. 지원병이 되어 전장으로 나아가거나 강제로 징용되어 끌려나가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부산항은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소였다. 이들은 일상적인 감시와 소문 속의 처벌이라는 권력의 현장으로 부산을 인식하고 있었다. 부산은 그들이 정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더욱더 철저한 감시의 시선이 작동한 곳이기도 하였다. 동원의 현장으로서 부산항의 광경을 전달하는 서사들은 부산이라는 장소가 필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정치적 함의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체성이 형성되고 동원되는 장소로서 부산이 지니고 있는 장소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산은 식민지인이 자기 스스로의 모습과 직면하게 만들어준 장소였다. 부산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식민지적 장소성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지와 임시 수도라는, 식민지의 장소성의 흐름과 이어지면서 그것을 거스르는 또다른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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