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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0권 0호 (2019)

장호 시세계 연구 : 모더니즘에서 불교적 사유로의 여정

박상천 ( Park Sang-ch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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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 시인은 1951년부터 1999년 작고하기까지 1권의 합동시집과 7권의 개인 시집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50년의 시 창작을 통해 시적으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동안 그의 시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본고는 그의 시세계를 연구할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판단하여 그의 시 전편을 통시적으로 분석해보았다. 통시적 분석의 결과 그의 시세계는 대개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첫째 시기는 출발기로서 이 시기의 시들은 모더니스트로서의 장호의 현실의 절망과 그 극복의지가 드러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시기는 출발기의 관념적 현실을 벗어나 발을 딛고 있는 일상 삶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들이었다. 특히 현실 속 ‘나’에 대한 인식과 ‘너’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깊은 관심이 드러나고 있다. 셋째 시기는 역사에 대한 인식과 과거 시간들에 대한 기억들을 현재화하는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넷째 시기는 지금까지 세 시기의 시들보다 훨씬 더 불교적 사유가 진하게 드러나는 시들이었다. 장호의 시 전반을 분석해본 결과 그의 시는 시기별로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기나긴 정신적 여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의 궤적과도 잘 부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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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자는 김장호의 사후 20년에 즈음해 그의 시학 연구에 대한 평가의 기회를 스스로 가져보았다. 그는 주로 시인으로서 활동을 하다가 중년 이후인 1980년대 초반에서부터 1990년대 초반에 주로 학술논문이나 비평적인 성격의 에세이를 발표하고는 했다. 그는 많은 생산량을 지향하기보다는 좀 간헐적인 주기를 유지하면서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후에 인정해주는 후학이 거의 없어도, 그의 연구의 질적 수준은 사실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김장호는 한국 근대시 형성의 역사에 대한 개념의 틀을 ‘김억-한용운-양주동’으로 이어지면서, 서로 얽히는 관계에서 파악하려고 했다. 김억은 일본의 유학을 통해 시인과 시의 이론가로서 서구(西歐)의 교양을 수용하는 데 첫머리에 놓인다. 한용운은 전문 시인이 아니라 불교의 승려로서 시를 썼다. 그는 김억보다 나이가 17년이 앞섰지만 늦게 시를 창작했다. 하지만 한용운의 시는 생경한 언어의 표출보다 대중적인 한국어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양주동은 시인으로서 한용운의 큰 산맥을 넘을 수 없었지만 한국의 시가 모더니즘에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사실을 가리켰다. 김장호는 전통에 관한 논의의 폭을 확대한 비평문을 적잖이 발표했다. 시어의 개혁과 변혁의 차원에서 적잖은 학구적인 노력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생각의 궁극에는 전통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자신의 주요한 저서인 『한국시의 전통과 그 변혁』에는 ‘전통’이란 키 워드가 표제에 함유된 것이 적지 않다. 그는 전통의 기능, 전통의 계승 문제, 감수성의 전통과 변혁 등등의 문제에 깊고 넓은 관심을 나타냈다.

장호의 시극운동에 관한 연구

이상호 ( Lee Sang-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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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장호의 시극운동에 대한 연구이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기까지 약 10년간 한국 시극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바친 그의 업적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연구 결과, 한국시극사에 남긴 그의 주요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한국시극사가 형성되는 초창기에 사회적 혼란기로 인한 긴공백기를 깨고 산문(1957. 8)과 작품(1958. 8)을 잇달아 발표하여 단절 위기를 막아내고 시극사의 흐름을 이어주었다. 둘째, 그는 시극을 새로운 종합예술로 규정하고 현대 시와 연극의 문제점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조직적인 시극운동을 펼쳤다. 셋째, 그는 시극의 공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작품을 창작하여 최초로 라디오 방송을 통한 실험과 무대 공연을 실현했다. 넷째, 그는 최초로 4막의 장편 시극 <수리뫼>를 창작하고 공연하여 시극도 단독으로 공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장호의 시극운동의 결실은 거의 100년에 가까운 한국시극사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다.

장호(章湖) 연작시 연구

장영우 ( Jang Young-w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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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장호시는 모더니즘과 시극(詩劇)에 관심을 보이며 새로움을 추구했지만, 40대 이후에는 독특한 산시(山詩) 영역을 개척하는 한편, 신발 상상력과 실종자의 불이적 사상을 발전시킨다. 또 그는 동경 체험을 바탕으로 한 ‘까마귀 연작시’를 통해던 시인으로서의 사회적 발언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산·신발·까마귀·실종자 연작시’는 장호시세계의 특질을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장호의 ‘산 연작시’는 일반적 산수시의 자연친화적이고 생태학적 주제의식과 달리 높이를 지향하며 소심한 자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장호의 산시(山詩)는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한 경지를 개발한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산악인 장호는 강인한 자신의 다리와 발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목욕탕에 가서도 발부터 씻고, 하산후에는 등산화를 깨끗이 소제하는 등 정성을 쏟는다. 그의 발과 등산화 사랑은 ‘신(발)’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으로 진화하여 ‘신발 연작시’ 창작의 원동력이 된다. ‘까마귀 연작시’는 장호의 동경 체험에서 우러나온 일본(인) 풍자시다. 이들 시편은 그가 동경에서 직접 보고 들은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을 제재로 한 것이어서 장호의 역사인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실종자 연작시’는 장호의 등반체험과 신발 상상력이 융합된 결과의 산물이다. 그가 사랑했던 이들은 실종자로 시인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이며, 그런 장호에게 산과 바다, 삶과 죽음은 분리되는 세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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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로는 『조선문학사』를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30년대에 집필하였고, 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였다. 2번의 증보 과정을 거쳐 완성된 『조선문학사』는 문예(文藝)보다는 문헌학의 성격이 강하고, 현재 한국 고전문학 연구의 세부 분과/항목을 두루 갖추지 못한 약점이 있다. 하지만 이는 초창기 고전문학 연구가 국학(國學) 혹은 민족지(民族誌) 차원에서 이루어 졌다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사찰의 강원(講院)으로 대표되는 전통 방식의 교육 과정을 거쳐온 저자의 이력을 고려해야 한다. 한문학이라는 주류 학문과 불교라는 비주류 종교를 공유하면서 학문과 교육, 출판과 종교 활동등을 활발히 벌이던 권상로는 근대 문학 연구의 세례를 받은 식민지 엘리트 학자인 김태준, 임화 등과 ‘불교문학’에 대한 논쟁을 벌이면서 급격히 보수화된다. 불교문학이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승려의 삶이나 토론에서의 태도 등 처신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이후 권상로는 불교 문헌이라는 방대한 텍스트의 속으로, 그리고 시조를 한시로 혹은 한시를 시조로 역해(譯解)하는 전통적인 문학 행위 속으로 침잠하였다.

『이몽선전(李夢仙傳)』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연구

유춘동 ( Yoo Choo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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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구활자본 고소설 『이몽선전(李夢仙傳)』의 성격과 의미를 살펴본 것이다. 『이몽선전』은 아내의 불륜을 의심한 남주인공 ‘이몽선’이 가출한 뒤에, 집안에서 일어난 여러 복잡한 문제를 암행어사 ‘박공(朴公)’이 해결한다는 내용의 고소설이다. 이러한 내용만 놓고 본다면 이 소설을 ‘진가 쟁주형(眞假爭主型) 소설, 송사소설(訟事小說), 암행어사 『박문수전(朴文秀傳)』 계열’의 작품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몽선전』은 전대(前代)에 있던 고소설을 가져다 내용을 차용(借用)/변용(變用)하고, 다시 새로운 내용을 삽입(揷入)해서 만든 소설이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전체 구조를 『화산중봉기(華山重逢記)』에서 가져왔고, 작품 중간에 『몽유록(夢遊錄)』과 『박문수전(朴文秀傳)』을 삽입해서 소설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몽선전』은 1910년대 신소설(新小說)이 유행하면서 『단발령(斷髮嶺)』의 저본(底本)이 되었다. 그동안 1910년대에서 1930년대 간행된 구활자본 고소설에 대한 연구는 상당한 양이 축적되었다. 하지만 구활자본 고소설의 제작 방식, 고소설과 신소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연구가 미진한 편이다. 『이몽선전』은 이전에 존재하던 작품을 적절히 차용/변용하면서 한편의 새로운 구활자본 고소설을 만들고, 이것은 다시 신소설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이러한 『이몽선전』의 사례를 통해서, 구활자본 고소설의 의미를 규정하고, 구활자본 고소설의 생산 방식, 전대 작품과 구활자본 고소설로서의 전환 문제, 고소설과 신소설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용운의 일본 유학과 한시

고재석 ( Ko Jae-s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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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5월 일본으로 건너간 한용운은 조동종 대표 히로쓰 세쓰조의 추천을 받고 조동종대학(지금의 고마자와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고 12수의 한시를 조동종 기관지에 발표한다. 그리고 여러 근대 교양서들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고, 승속을 아우르는 사회적 관계자본을 축적한다. 그의 한시는 나그네의 우수와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일본에서 조국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불교 개혁에 대한 열망은 더욱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담긴 향수는 우국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품격과 정조와 구성력을 갖춘 그의 한시는 정신의 원풍경을 보여주는 동시에 저항 시인으로서의 그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근황을 보도한 기사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고, 한시 또한 원문과 다르게 소개되어 있다. 1908년 9월 1일 귀국 후 한용운은 승려 결혼에 관한 건의서를 당국에 두 번이나 제출하고, 1910년 9월 23일 화산의숙의 교사로 부임하면서 ‘학식이 풍부한’ 승려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유학은 그에게 불교계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용운은 훼손된 가치체계의 불교계 중심부에 머물지 않는다. 불교계의 학승이자 영혼의 도반 박한영과 함께 임제종운동을 일으키고 한국불교의 정신사적 정통성 회복에 앞장선다.

『서 있는 여자』에 나타난 계약으로서의 결혼과 ‘여성적 글쓰기’

김문정 ( Kim Mun-j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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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있는 여자』는 ‘남녀평등’을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으로 결혼한 부부의 갈등과 파국을 담은 서사이다. 이 작품은 남녀평등 및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적인 남성과 젠더 위계에 순응하는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인물 구도 탓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서 있는 여자』의 서사는 ‘남녀평등’을 전제로 출발한 결혼 생활의 파국을 통해 결혼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계약적 행위의 산물이라는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또한 여성 인물이 보이는 자기희생적인 모습은 단순히 젠더 질서에 따른 순응만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여성 스스로가 가정 경제의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결말부에서 보이는 여성주인공 연지의 글쓰기에 대한 인식은 ‘여성적 글쓰기’의 시도라 볼 수 있으며, 이는 1980년대 여성운동의 행보와 연관시켜 볼 때 좀 더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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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인희는 여성인물 중심 서사와 여성주의적 의식이 분명한 태도로 극작활동을 펼쳐온 여성 극작가이다. 엄인희 후기작은 여성의 몸과 성에 관한 논쟁적인 작품들로, 대표적인 페미니즘 연극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직설화법의 쉬운 풍자극으로, 대중극의 혐의를 받고 있다. 엄인희 작품은 성(性)의 주제를 다룬다. 그러나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성이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활 속의 성을 이야기한다. 한편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연희 중 재담공연에 대한 엄인희의 관심이다. 엄인희는 배뱅이타령을 모티브로 한 <배뱅이구설> 이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전통 재담극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엄인희의 전통극에 대한 관심은, 판소리나 탈춤과 같은 보다 정제된 형태의 ‘소리’가 아닌 ‘타령’, 곧 민속연희의 정제되지 않고 제도화되지 않은 살아있는 ‘속(俗)’의 세계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엄인희의 대표작<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의 ‘생과부’ 캐릭터는, 꼭두각시극과 탈춤의 미얄할미, 그리고 공옥진의 일인 창무극에서 병신춤을 추는 여성 춤꾼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상 엄인희 작품의 희극성은, 비록 공식문화와 주류 연극계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문화사적으로는 두터운 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정식의 낭만주의 기획과 인민주권의 상상

정영진 ( Jeong Young-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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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설정식의 낭만주의 기획과 문학적 실천을 그의 인민주권의 상상과 결부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설정식은 토마스 울프를 통해 낭만주의의 성격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학을 모순과 대립의 요소들이 지양·통합되는 운동의 양식으로 인식했다. 그는 현대에 적합한 낭만주의를 복원하는 것을 자신의 문학실천의 방향으로 설정하고, 낭만주의에서 허무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을 낭만주의의 현대화 기획에서 핵심적 사안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허무주의에 대한 경계는 고립적 자아주의 혹은 주관적 관념주의에 대한 배격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그는 낭만주의에 내포된 자아주의/주관주의를 제거한 그 자리에 인민의 생명성을 이식하고자 했다. 인민의 생명성은 시와 소설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시에서는 인민의 생명성이 원형/본질의 차원에서 접근되었으며, 소설에서는 인민 개별 주체의 내적 갈등과 고뇌, 그리고 선택과 변화를 통해 드러났다. 설정식의 소설에서는 고립적 자아주의와 관념주의를 비판적으로 다룰때 육체성이 강조되었다. 이는 새 시대(해방기)의 주인인 인민들(청년들)에게 현실적일 것, 구체적일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또한 설정식에게 육체의 의미를 심화·확장시키는 작업은 언어의 건축술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과 연동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해석의 지평을 새롭게 하는 과정이었다. 시를 통해 이념형으로 제시된 인민은 주권 자체의 존립 근거로 상상되었다. 인민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공간 관념과 결합되어 형상화되었다. 설정식은 무한한 시간성과 무한한 공간성으로 인민주권의 세계를 시화했으며, 이념형으로서의 인민은 ‘시’ 장르와 분리되어 사고되지 않았다. 즉 무한한 가능성과 자율성을 가진 시의 존재 방식은 인민의 본원적 속성과 유비적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 설정식 문학에서의 인민의 정치성은 생명성에 내재한 운동성과 결합되어 상상되었으며, 인민의 힘과 운동성은 인민주권의 세계를 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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