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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연구검색

The Studies in Korean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어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9-4373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7권 0호 (2021)

서브컬처로서의 박태원 소설에 대한 고찰

안용희 ( Ahn Yong-hu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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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1930년대 발표된 박태원의 소설 중 구인회, 특히 작가 이상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에서 상호텍스트성을 재검토하고 세계대공황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카프 중심의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대타항으로 인식되어왔던 구인회의 문학을 주류 문화에 대한 서브컬처로서 고찰할 때 그 성격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태원의 소설이 허구 세계의 창조를 통해 미학적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모더니즘 문학의 명제를 공유하면서도 이러한 허구 세계를 통해 또 다른 리얼리티를 구축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즉, 박태원 소설은 구인회를 중심으로 한 허구 세계를 반복해서 재창조하되 그 세계가 자본이 구성한 리얼리티의 작동 원리를 무화하는 양상에 주목함으로써 실재하지만 은폐되어 있는 삶의 또 다른 경로를 형상화했던 것이다. 이러한 박태원 소설의 세계는 19세기 세계화를 통해 구축된 금본위제에 토대를 두었다가 그것의 토대가 허구로 드러나는 20세기 전반기의 경제적 상황에 일정 부분 대응한다. 유럽의 모더니즘 문학이 세기말의 풍요로부터 비롯되어 미학적 자율성을 강조했다면, 구인회 문학은 당대 자본주의의 풍요가 허구에 기반을 둔 것이며 이 허구 위에 조선의 식민지 경제가 구축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박태원 소설의 사유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라는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개되는 동안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 아래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삶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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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목적은 박완서의 『오만과 몽상』에서 불균등발전의 도시공간이 재현되는 양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박완서는『오만과 몽상』에서 사회ㆍ계급적으로 양극화된 도시를 포착하고 있으며, 월경의 환경적 조건으로 전유했다. 이를 나타내기 위하여『오만과 몽상』의 배경인 1970년대 서울에서 불균등발전의 공간이 어떠한 환경적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체의 노력이 어떻게 수행됐는지 재구성했다. 이러한 작업은『오만과 몽상』의 두 주인공인 현과 남상이 자기 계급의 공간을 떠나 타자의 세계를 탐사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가운데 이루어졌다. 2장을 통해서는 현이 탐방을 통해 타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교정하고, 진정한 유대의 기초를 구축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3장을 통해서는 남상이 염탐자로서 부르주아의 사회에 틈입하는 양상을 분석했다. 이는『오만과 몽상』에서 현과 남상의 주체성을 재평가하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렇듯 양극화된 도시공간 내부에서 불안정하게 움직이는 두 청년을 이동성의 주체로 평가하고자 했다. 두 청년이 타자의 공간을 향해 월경하는 일은 정확히 도시의 사회적ㆍ계급적 관계에 대하여 위협적인 실천이 되었으며, 일견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도시공간의 체제를 교란하는 일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댐 건설과 개발 난민의 서사 : 공선옥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조윤정 ( Jo Yun-j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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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댐 건설과 관련한 공선옥의 단편소설과 산문을 통해 국가가 내세운 개발 이데올로기의 사회문화적 피해를 드러내는 서사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둔다. 공선옥은 알지 못하는 사이 퍼져나가는 위험, 시간적 지연, 피해자들의 생존 자체가 기업형 언론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다층적 비가시성에 맞서서 작품을 쓴다. 작가는 공공의 이익과 보상금을 내세워 비자발적인 이주를 강요하는 개발의 정치와 그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비윤리적 행동에 이르는 인물들을 형상화한다. 특히, ‘개발 난민’과 ‘비거주자(사실상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국가적 폭력성을 들추고, 합법과 불법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위험과 희생을 일깨운다. 댐 건설은 지역 공동체에 물리적 탈장소와 상상적 탈장소를 자행했다. 개발의 기치 아래 놓인 공동체는 물리적으로 추방당하고 상상적으로 제거당하는 ‘공간적 기억 상실’을 경험했다. 공선옥의 문학은 그 과정에서 파괴된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기록하고 증언한다. 이로써 그는 최하위 계층의 삶에 스며든 일상적 공포를 전면에 부각하여 국가 개발과 테크노크라시 담론이 조장한 망각의 힘을 거스른다. 그의 글쓰기는 시간적, 감각적 의미에서 상상력이 부족한 거대 문화에 대응해 작고 여린, 파괴되기 쉬워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의 목소리와 가치를 복원하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버려진 존재들에 대해 보여주는 작가의 공감적 태도는 댐을 관광지나 관개 시설로 관망해 온 사고의 관습을 뒤흔든다.

대중 투자 텍스트의 담론 구조 : ‘경제적 자유’와 화폐 상상의 결합

권창규 ( Kwon Chang-gy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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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팬데믹 시대 투자 열풍을 배경으로 하여 대중 투자 텍스트의 담론 구조에 주목했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서적을 중심으로 한 온ㆍ오프라인 투자 텍스트의 발화 구조를 분석하고 발화 배경과 맥락을 포함한 컨텍스트를 분석했다. 유행하는 투자 텍스트는 ‘일반인’에서 투자자로의 변모를 설득하는 발화를 기본으로 한다. 발화의 전제와 목표는 부자 되기 내지는 ‘경제적 자유ㆍ독립’으로 집약된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하며, 투자자로 변모하면 경제적 자유를 성취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파이어운동이 내건 재정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로 번역됨으로써 ‘경제’가 ‘재정’으로 치환된 문제적 경제 상상을 보탰다. 부를 위한 욕망이 절대적이며 무한하다고 전제될 수 있는 것은 화폐를 통해 무한한 부가 축적 가능해진 역사와 실물(금) 없는 달러본위제의 신용 호황, 금융자본주의의 부상을 배경으로 한다. 한국에서 부자 되기의 전제와 목표가 설득력 있게 수용될 수 있었던 데는 고용 불안의 상시화와 복지 민영화로 체감되는 세계적 신자유주의화의 기조와 더불어 반공 개발주의에서 관례화되어왔던 가계 단위의 생활보장체계가 있었다. 투자 담론의 근저에는 재정으로 축소된 경제 상상과 함께 ‘돈이 일하게 하라’로 집약되는 화폐의 자기 증식 상상이 맞물려 작동한다.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하여금 일하게 만든다’는 화폐 상상은 자본주의 착취 노동에 대한 적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지만, 지배자이자 자본가로 ‘올라서기’ 위한 생존 경쟁의 양상으로 이어지며 적자생존의 정글밖에 남겨두지 못한다. 투자 동기와 목표가 부자되기로 전제된 만큼 투자 텍스트는 방법적 모색에 집중하는 기술적 성격을 띠지만, 기술적인 담론에 그치지 않는 것은 재테크라는 물리적 기술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술로서의 자기 관리를 필수적으로 포함하기 때문이다. 물리적 학습과 정신적 관리가 고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한 총력전의 형태를 취하므로 투자자로의 변모 과정에는 고투와 분열이 예비되어 있다. 투자자는 자기 경영인으로 호명되었던 신자유주의적 주체상과 접속하며, 기업이 환영했던 자본가로서의 노동자 상이 시장의 플레이어로서 개별화, 현실화된 대중적 양태라 할 수 있다.

<삼공본풀이>의 운명과 문명, 그리고 공존

허남춘 ( Heo Nam-ch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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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공본풀이>의 여주인공(가믄장아기)은 전생신이라 하는데, 불교의 전생과 뜻이 통하고, 운명과 연관된다. 사건 전개의 가장 큰 발단은 ‘누구 덕에 먹고 사냐’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에 대한 여주인공의 대답은 “자신의 음부 덕에 먹고 산다.”고 했다. 그 진의를 살피니 풍요의 여성성에 국한하지 않는다. 첫째, 자신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여성으로서의 주체성이 있다. 둘째, 집에서 쫓겨나서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는 진취성이 보인다. 셋째, 금을 발견하여 부를 얻는 지혜력이 보인다. 넷째, 자신을 쫓아낸 부모를 다시 만나 품어주는 포용력 등이 작용한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운명의 여신이 된다. 이 논문의 목차는 2장이 운명이고, 3장은 문명이고, 4장은 공존이다. 신화의 시대적 특성으로 살피면 중세, 고대, 원시의 역순으로 꾸며졌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삶에 관한 것은 중세적 질서와 연관이 된다. 그리고 구근을 파서 먹는 삶에서 쌀밥을 먹는 삶으로 이동하고, 쇠를 중시하는 문명으로 이동하는 것은 고대국가 건설기의 질서와 연관된다. 마지막으로 배려와 공존의 삶은 원시공산사회의 질서와 연관된다. 2장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주인공은 정해진 운명에 예속당하거나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운명을 바꾸어 나간다.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자력신앙(⾃⼒信仰)이다. 우리 인생을 우리 스스로 바꿀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는 제주도 본풀이의 백미다. 3장은 여주인공의 행적이 고대문명의 전파과정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삼성신화> 속 3여신과 같은 역할이라 하겠다. 고대문명의 요체는 농경과 비단과 염색과 철기 등이다. 여주인공의 행로에는 미개의 장소에 고대문명을 가지고 간 문화영웅으로서의 면모가 있다. 4장에서 다룬 삶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풀이의 첫 대목에서 동네사람들이 거지부부를 걷어 먹이는 장면이 있었다. 둘째 대목에서는 악인형 인물 일지라도 자신이 이 세상 천지자연의 도움으로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주인공이 부자가 되어 거지잔치를 연다.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우리는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인간 공존의 정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정신을 만나게 되었다. 지나친 경쟁과 사회적 양극화와 독식 구조의 현대사회가 다시 만나야 할 정신세계는 바로 ‘배려와 공존’의 가치일 것이다. 그래서 목차의 가장 뒤에 두고 그 의미를 강조하고자 했다.

곰나루 설화의 애니미즘적 성격과 지구생태시민주의

김창현 ( Kim Chang-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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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충남 공주시에 전해오는 ‘곰나루’ 설화에서 한국 애니미즘의 성격을 궁구하고 그 현대적 의미를 지구생태시민주의와의 사상적 공통점에서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곰나루’ 설화는 공주를 대표하는 이야기지만 현대인들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두 가지 특이점 때문인데, 그 첫 번째는 인간과 동물의 종 질서가 역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세 이후 지속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을 모든 종의 지배자 혹은 관리자로 본다. 그런데 ‘곰나루’ 설화에서 남자는 짐승인 곰보다 강하지도 현명하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대신 곰과 사람은 서로 소통 가능한 공통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공통 특성은 추상적이고 영적인 것인데, 이것은 부족기원설화의 곰 토템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특이점은 남녀의 젠더 이미지가 역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암곰은 아름다움이나 덕성이 아니라 힘으로 남자를 제압하여 자신의 소유로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억류된 남자가 달아나게 함으로써 힘에 의한 지배라는 남성적 통제 원리 자체를 전복하고 부정한다. 그런데 모성성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시각이 발견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모성성은 흔히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지만, 가족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하는 어머니는 약자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최고의 방패이기도 하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에서 아이들을 이용해 어머니를 억류하려는 나무꾼의 시도가 실패한 것처럼 한국의 설화는 모성성의 부정적인 면을 인식하면서도 모성성 그 자체는 긍정한다. ‘곰나루’ 설화에서도 남자가 아이들마저 외면하고 달아난 뒤, 아이들과 함께 남겨진 곰은 강물에 깃들어 신이 된다. 공주의 주민들은 어머니인 이 곰을 위해 수신제를 지낸다. 남자가 방기한 곰의 원정(冤情)에 대해 나루 근처 모든 사람들이 공동 책임을 진 것이다. 한국의 애니미즘은 모든 존재의 소통을 통해 억울하거나 외로운 존재가 없도록 해야 자연의 이치가 바로 잡히고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이런 생각은 지구공동체 전 구성원들이 화합하여 병든 지구를 치유하여야 한다는 지구생태시민의 사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낙선재본 『어우야담』의 번역 오류와 의미

남궁윤 ( Namgung Y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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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사물들은 재미있는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독자층이 확대되고 그들의 요구가 직접 견인되며 출현하였다. 야담의 한글로의 번역 역시 이러한 흐름에 편승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본고는 지금까지 밝혀진 야담의 한글 본 중 아직 그 번역양상과 특징이 면밀하게 밝혀지지 않은 낙선재본 『어우야담』을 주목하였다. 그런데 낙선재본 『어우야담』은 다른 한글본 야담과는 달리 번역의 오류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많다. 필자는 낙선재본 『어우야담』의 번역 오류가 한문본의 이야기를 번역자가 낭독하고 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살폈다. 그 번역의 오류는 고유명사를 다른 음으로 번역하거나, 한자의 음을 다르게 번역하여 본래 문맥과는 다른 의미가 되거나, 이야기 흐름을 혼동하는 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 모두 기록자가 작품에 쓰인 용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지 않고 낭독자가 불러준 음을 그대로 필사한 데서 발생한 오류이다. 그러면서도 낙선재본 『어우야담』은 원작자가 자신을 직접 드러내며 사건의 사실 여부나 정당성을 밝힌 평은 생략하지 않으면서도, ‘언왈(諺曰)’, ‘혹왈(或曰)’ 등과 같이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하는 서술은 생략하였다. 이는 야담의 한문본이 전재를 통해 새로운 야담집으로 엮이는 방식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점으로, 야담의 한글본이 원작자의 객관적 정보나 평을 신뢰하며, 한글로의 번역에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낙선재본 『어우야담』은 번역자의 특별한 번역적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니다. 오히려 야담의 한글 번역본 중 번역 오류가 가장 많은 작품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선재본 『어우야담』의 대부분 작품은 기이를 주제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번역했다는 점에서 당대 독자의 요구를 반영하고자 한 작품집이었고, 구연의 현장에서 있을 수 있는 오류의 실제 양상을 보여준 한글본 야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성성의 관점에서 살펴본 『창선감의록』의 형제 다툼의 양상과 의미

윤정안 ( Yoon Jeong-a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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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창선감의록』을 남성성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 것이다. 조선은 유교사회로 진입하면서 가부장을 중심으로 가문을 운영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맏아들을 적장자로 삼는 제도가 자리한다. 『창선감의록』의 화춘과 화진은 이로 인해 갈등을 빚게 되는데, 화춘은 생물학적인 우위를, 화진은 품성과 능력에서 우위를 보인다. 두 조건이 충족되어야 적장자로서 적합하고 가부장이 될 수 있는데, 화춘과 화진은 한 가지씩 결핍되어 있었다. 가부장인 화욱은 상춘정에서 화춘을 질책하며, 화진보다 능력과 품성이 못하다는 것을 공식화한다. 이로 인해 화춘은 적장자의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이 강박은 화진과 그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화춘은 범한, 장평, 조씨에 의해 조종되는 것으로 형상화되면서 악인보다는 어리석은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다면 다시 적장자로서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다. 한편 화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효를 구현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목숨도 지킬 수 없고, 아내인 남채봉과 윤옥화에게는 무책임하다. 그러나 화진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오로지 효를 중시함으로써 화진의 이러한 문제를 가려 버린다. 화춘과 화진은 모두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구현하는 것 같은 화욱조차도 마찬가지이다. 화춘은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화욱의 폭력을 경험하고 화진을 강박적으로 괴롭힌다. 화진은 뛰어난 능력과 품성을 갖춘 것으로 등장하지만, 실은 자신조차 돌볼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며, 효에 경도되어 자신의 아내를 위험으로 내몬다. 두 형제는 물론 가부장인 화욱, 윤옥화, 남채봉, 심씨 역시 모두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창선감의록』의 여성 인물은 물론 남성들 역시 헤게모니적 남성성에 공모적이자 종속적이며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창선감의록』은 가부장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두 형제를 희생시키는 서사로 규정할 수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서양인 여행자의 금강산 여행기 연구

이민희 ( Lee Min-heu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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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에 한국을 찾았던 서양인 중에 금강산을 여행한 후 쓴 금강산 여행기를 종합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서양인 여행자가 쓴 금강산 여행기 36편을 조사해 여행기의 전모를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그 특징을 밝히고자 했다. 1889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금강산을 방문한 여행자들은 외교관, 선교사, 기자, 전문 여행가, 작가, 화가, 교육자, 학자 등 다양했으며, 그중 여성 여행자도 13명이 확인된다. 특별히 찰스 캠벨, I.B. 비숍, 지크프리트 겐테, G.S. 게일, 앵구스 해밀턴, 장 드 팡주, 에카르트, 엘라수 와그너, 메리 테일러, 노르베르트 베버, 드레이크, 베리만 등의 금강산 여행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양인 여행자들은 세계적인 자연미를 간직한 금강산을 직접 구경하고 싶은 호기심과 금강산 내 불교사찰이 간직한 동양문화의 특성, 그리고 금강산이 간직한 다양한 한국적인 요소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1910년 일제강점기 전후로 금강산 여행 경로와 교통편, 여행의 성격과 내용도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서양인 여행기에는 공통으로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일 수 있는 금강산의 가치와 매력을 객관적으로 언급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양인 여행자들이 금강산을 바라본 시선을 ‘강원도 사람과 한국적인 것의 발견’, ‘금강산 사찰과 불교문화에 관한 이해’, ‘금강산 자연경관 예찬’이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세계적인 자연경관과 찬란한 불교 문화유산을 간직한 금강산을 방문한 서양인 여행자들은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 시선과는 다른 시각에서 금강산을 예찬하고 자신을 성찰하고 객관화하고자 했다. 이들이 쓴 금강산 여행기는 한국인과 서양인이 하나로 소통하고 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자료로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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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들어 PC와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널리 보급되었다. 워드프로세서와 PC 통신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글꼴/활자는 문자 조작과 놀이의 대상이 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육필에 의해 글쓰기가 개인의 것으로 귀속되던 과거와 달리 문자는 PC 너머의 전기적 신호가 교환되는 반도체를 비롯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등에서 사전에 설정된 공적인 틀에 입각한 것이 되었다. 한글 타자와 디스플레이 출력, 인쇄 그리고 웹상에서 한글을 가지고 의사소통하는 데 있어서 PC 사용자 환경에서 공적으로 합의된 표준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어 문장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분석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프로그래밍의 수준에서 합의되고 전기적 신호에 의해 광범위한 네트워크에서 작동하고 있는 다수의 표준에 의한 것이다. 반면 문학의 타자/문자 놀이의 사례는 그러한 표준의 체계를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활용하며 교란 가능하다는 환상을 고취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그러한 표준과 틀의 비가시적인 작동에 입각하여 그것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즉 문자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특권화를 지지하는 사물이 될 수 없다는 부지불식간의 직관에 입각하여 그러한 놀이가 행해진 것이다. 즉 그러한 표준과 틀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향후의 문체 변화를 주도할 수 있으며 또한 문자 형상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개인성/인간주체에 관한 믿음이 여전히 작동했던 데서 벌어졌던 아이러니컬한 현상이었다. 구효서의 에세이 「하지만 오늘도 키보드다」는 그러한 믿음이 미몽에 불과한 것임을 자의식적으로 수긍한 사례로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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