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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8권 0호 (2016)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 메이에르홀드와 브레히트 사이에서

김수환 ( Soo Hwan K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8권 0호, 2016 pp. 5-41 ( 총 3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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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지금까지 주로 아샤 라치스와의 사적 모티브의 관점에서 읽혀져 온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를 외적 관찰자에 의해 씌어진 1920년대 혁명기 소비에트 사회의 매우 특별한 인상기로서 읽어보는 것이다. 사상가 벤야민을 보여주는 만큼이나 흥미롭고 다채롭게 혁명기 소비에트 사회를 비춰주는 이중의 기록이라 할 『모스크바 일기』를 ``연극``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읽어봄으로써, 혁명의 조건에 적응하려 애쓴 한 부르주아 지식인의 고문분투를 헤아려 보는 동시에 ``예술과 정치``라는 문제적인 짝패의 관계를 다시금 곱씹어본다. 모스크바에서 벤야민의 시선은 무대 자체와 더불어, 어쩌면 그보다 훨씬 주의 깊게 ``관객석``을 행해 있다. 그가 보고 있고, 애초부터 보고 싶어 했던 것은 [유럽 부르주아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는] 혁명적 아방가르드의 놀라운 예술적 성취(가령, 메이에르홀드)가 아니라 그것 너머, 그것 다음의 풍경이었다.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 나타난, 예술의 정치적 기능의 원칙적으로 새로운 형식들, 작가와 독자, 그리고 비평가 간의 전혀 새로운 관계를 향한 벤야민의 관심은 모스크바 여행 전체를 추동하는 가장 본질적인 모티브로서, 잘 알려진 브레히트의 영향 이전에 이미 모스크바에서 그 최초의 형태를 갖추었다. 벤야민의 행보는 일반적인 ``소비에트 방문객``의 그것을 따르지 않았던 바, 어떤 점에서 그는 반대 반향으로 움직여 갔다. 모스크바에서 그토록 우유부단했던 벤야민은 이후 놀랄 만큼 단호하고 명료한 어조로 아우라에서 해방된 ``대중의 잠재력``과, 투쟁하고 개입하는 ``생산자로서의 작가``에 관하여 쓰기 시작했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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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Said가 동양문학과 철학의 연구를 위하여 제시한 접근 방법과 자세를 이론적 기본 원리로 삼아,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동양철학과 문화의 부활과,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동양철학과 문화의 성격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구분하고자 노력하였다. Reymond Schwab의 저서 The Oriental Renaissance는 1984년 영어권에 처음 출간되는 순간부터 서양 학자들의 동양문학과 철학에 대한 접근방향과 인식구조에 대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었다. 그러나 Schwab은 동양철학과 문화의 부활을 논의할 때, 중국문화 철학이 당시 서양인의 우주관과 세계관의 정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음을 간과하고 오직 힌두이즘만이 유럽에 끼친 영향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시각으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였다. 본 논문은 그의 편향된 오류의 수정과 간간히 간과하고 넘어간 부분을 바로잡기 위하여, 18세기,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오리엔탈 르네상스의 도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중국문화와 철학의 영향에 관하여 성격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17세기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신봉해왔던 그들의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많은 선교사들을 동양지역, 특히 중국에 파견하였다. 낯선 중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점차 그 곳 생활에 정착하면서 그 곳의 토착 언어를 익히면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이교도들의 토착문화와 철학에 대하여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 조사과정에서 그 선교사들은 그들이 신봉해왔던 유럽의 기독교의 교리와 고전주의적 세계관과 우주관과 전혀 다른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가치관과 철학, 그리고 도덕관 그리고 풍습 등이 유럽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전에 중국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의 발견하고, 그 발견에 경이로움의 소식을 서신에 진솔하게 적어 그들의 고향인 유럽에 전했다. 중국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중국의 사회의 문화와 철학의 기술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17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문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인들은 중국문화의 상징인 공자를 그들의 철학적 성인으로 신봉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자를 통하여 기독교의 형식주의인 독단과 그리고 인위적 미신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들이 주창하는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와 가치관의 철학적 원천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주의 인공적 대칭과 형식적 규칙성미의 강조에 혐오를 느낀 서양인들은 인공적 조작이 없는 자연그대로 각자의 개성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정원디자인법인 중국식 정원 양식인 Sharawadgi가 18세기 유럽의 미학 기준으로 승화시키면서 오리엔탈 르네상스인 낭만주의 운동시대를 도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유럽의 오리엔탈 르네상스를 논의할 때, 이 운동의 근원이 인도에 독점권이 있다는 주장을 더 이상 인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Schwab은 유럽의 동양문화 부활과 미국에서 일어난 동양문화와 철학의 부활에 대한 성격을 똑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미국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반응은 유럽인들이 동양문화에 대한 반응과 아주 달랐다. 미국의 동양문화 철학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서양인이 오랫동안 추종해 왔던 철학적 기반은 동양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문화와 철학의 본질을 신세계에 적절한 새로운 인격체형성의 도구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와 역사적 사명을 구현할 수 있는 근원으로, 마침내는 그들은 동양철학과 문화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동양 철학과 문화의 가치를 새로운 미학적 매력을 충족시키는 근원으로만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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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장덕조의 「저회」와 미야모토 유리코의 「다루마야 백화점」에 재현된 일본과 조선의 백화점 여점원이 각각 공간적 맥락에 따라 재현된 양상과 의미를 논했다. 미야모토는 1930년대 초반에 일본의 후쿠이 현에서 번성했던 다루마야 백화점 여점원 기숙사의 부당한 규율과 노동착취를 폭로하고, 잠재적으로 저항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은 유보하는 것으로 여점원들을 재현했다. 장덕조는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여점원에게 매춘을 간접적으로 강요하는 관리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맞선 여점원들의 투쟁을 통해, 가부장적인 ``정조`` 개념을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반전시킨다. 두 소설의 지역적 맥락은 적극적 행위자로서 여점원들의 재현여부를 가른다. 개인을 대표하는 국민국가를 건설한 일본에서는 구조가 사회를 대표하는데 익숙하였고, 여점원도 자본주의 산업구조의 재편과정에서 등장한 새로운 노동자의 일부로서 재현된다. 개인을 대표할만한 조직이 없던 식민지 조선에서는 근대사회계약체제 안에 있지만 시민권은 없었던 여성, 특히 민족차별, 젠더차별이 중층적으로 반영된 백화점이라는 억압적인 노동상황을 변혁의 발판으로 전유하는 여점원들의 투쟁이 식민지적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으로 재현된다.

쇼펜하우어의 의지: 젠타 달란트와 캐서린 슬로퍼의 경우

임정명 ( Jeong Myung L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8권 0호, 2016 pp. 101-128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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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근본적으로 무의식적 생의 의지로 결합되어 있으며 이 무한정 반복되며 지속되는 의지로 인해 생명체는 권태로움과 고통에 직면하게 되고 이를 영원히 탈피할 길은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의지론은 가장 보편적인 인식 주관의 반응 양식으로서 "의지의 긍정"의 경우와 이데아의 인식에 보다 근접한 진전된 단계로서 "의지의 부정"의 단계를 예시한다. 바그너(Richard Wagner)의 <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The Flying Dutchman)의 경우, "죽지 않는 욕망"의 지배하에 영원히 바다를 항해하는 네덜란드인(Dutchman)은 쇼펜하우어적 "의지의 긍정" 상태에 있다. 그는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삶을 채우고 있는 보편적 상황 그 자체로서의 지속적인 욕망 행위에 충실하는 양상을 보인다. 네덜란드인의 구원자적 역할을 자처하는 젠타(Zenta Daland)의 선택 역시 이성과 의식의 세계가 아닌 전적으로 직관적이고 무의식적 세계의 산물이며, "적절한 객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거대한 심리적 에너지 즉 쇼펜하우어적 의지의 표출의 경우로 해석될 수 있다. 제임스(Henry James)의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의 경우, 캐서린(Catherine Sloper)은 진전된 인식 주관으로서 자발적으로 자신의 장점과 약점을 간파하고,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구분하며 이에 대한 맹목적 욕망 행위를 중단하는 "의지의 부정" 상태로 진입한다. 젠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캐서린 역시 의지의 적절한 객관화를 통한 이데아의 구현 단계로의 진입에는 실패하지만, 캐서린 슬로퍼가 예시한 자유와 자발성에 근거하는 의지의 부정 상태는 인간이 생의 의지의 불만족과 그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순간적으로나마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며, 적절한 객관화를 통한 이데아의 인식 가능 단계로의 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현재 시간의 미로: 질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에 대한 성찰

최영진 ( Youngjeen Cho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8권 0호, 2016 pp. 129-144 ( 총 16 pages)
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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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는 현재와 과거 사이, 지각과 기억 사이, 혹은 현실태와 잠재태 사이의 식별불가능한 관계에 의해 두 가지 서로 다른 양상을 드러낸다. 그의 영화연구서의 두 번째 책에 상세히 거론되고 있듯이, 지각이 선형적 연속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운동적 확장과 더 이상 연결되지 않을 때, 시간은 연대기적인 흐름으로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으며, 따라서 시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현재를 분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는 현재와 동일한 면(plane)에서 공존하게 되며, 현재의 매 순간에 "순수하게 잠재적인 회로"를 구성하게 된다. 들뢰즈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이러한 비연대기적 관계를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한다. 그 두 형태는 과거의 시트들과 현재의 첨점들이라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올손 웰즈 감독의 < 시민 케인 >(1941)은 주체의 중심이 없어짐이 어떻게 과거의 다양한 시트들에서 식별불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반면 알랭 르네의 < 지난해 마리안바드 >(1961)는 현재의 비실행적 접점들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드러내며, 그 접점들에서 단일한 사건의 시간은 세 가지 공시적이고 비연속적인 현재의 순간들로서 포착된다. 이 두 작품에 대한 분석은 시간의 비선형적 관계들이 시간-이미지의 두 형태에서 감지되고 가시화됨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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