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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Said가 동양문학과 철학의 연구를 위하여 제시한 접근 방법과 자세를 이론적 기본 원리로 삼아, 18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동양철학과 문화의 부활과,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동양철학과 문화의 성격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구분하고자 노력하였다. Reymond Schwab의 저서 The Oriental Renaissance는 1984년 영어권에 처음 출간되는 순간부터 서양 학자들의 동양문학과 철학에 대한 접근방향과 인식구조에 대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었다. 그러나 Schwab은 동양철학과 문화의 부활을 논의할 때, 중국문화 철학이 당시 서양인의 우주관과 세계관의 정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음을 간과하고 오직 힌두이즘만이 유럽에 끼친 영향에만 집중하는 편향된 시각으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였다. 본 논문은 그의 편향된 오류의 수정과 간간히 간과하고 넘어간 부분을 바로잡기 위하여, 18세기,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오리엔탈 르네상스의 도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중국문화와 철학의 영향에 관하여 성격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사실, 17세기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신봉해왔던 그들의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많은 선교사들을 동양지역, 특히 중국에 파견하였다. 낯선 중국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점차 그 곳 생활에 정착하면서 그 곳의 토착 언어를 익히면서, 그 곳에 살고 있는 이교도들의 토착문화와 철학에 대하여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 조사과정에서 그 선교사들은 그들이 신봉해왔던 유럽의 기독교의 교리와 고전주의적 세계관과 우주관과 전혀 다른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가치관과 철학, 그리고 도덕관 그리고 풍습 등이 유럽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전에 중국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의 발견하고, 그 발견에 경이로움의 소식을 서신에 진솔하게 적어 그들의 고향인 유럽에 전했다. 중국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중국의 사회의 문화와 철학의 기술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17세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문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인들은 중국문화의 상징인 공자를 그들의 철학적 성인으로 신봉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자를 통하여 기독교의 형식주의인 독단과 그리고 인위적 미신의 영향에서 벗어나 그들이 주창하는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사회의 질서와 가치관의 철학적 원천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주의 인공적 대칭과 형식적 규칙성미의 강조에 혐오를 느낀 서양인들은 인공적 조작이 없는 자연그대로 각자의 개성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정원디자인법인 중국식 정원 양식인 Sharawadgi가 18세기 유럽의 미학 기준으로 승화시키면서 오리엔탈 르네상스인 낭만주의 운동시대를 도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유럽의 오리엔탈 르네상스를 논의할 때, 이 운동의 근원이 인도에 독점권이 있다는 주장을 더 이상 인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Schwab은 유럽의 동양문화 부활과 미국에서 일어난 동양문화와 철학의 부활에 대한 성격을 똑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미국인들의 동양문화에 대한 반응은 유럽인들이 동양문화에 대한 반응과 아주 달랐다. 미국의 동양문화 철학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서양인이 오랫동안 추종해 왔던 철학적 기반은 동양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문화와 철학의 본질을 신세계에 적절한 새로운 인격체형성의 도구로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창조와 역사적 사명을 구현할 수 있는 근원으로, 마침내는 그들은 동양철학과 문화의 상속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동양 철학과 문화의 가치를 새로운 미학적 매력을 충족시키는 근원으로만 받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