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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69권 0호 (2016)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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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가 제기해 보고자 한 아젠다는 새로운 문학사 시대구분 기준으로서의 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적 패러다임이다. 현재의 한국문학계는 디지털매체(digital media)란 뉴미디어(new media)가 등장하기 이전 시기까지 전개되었던 문학 작품들이 디지털문 화콘텐츠(digital cultural contents)로 재생산 되는 재매개화(remediation)의 시대로 진입해 있다. 즉, 디지털시대 이전 단계에 존재한 매체에 얹혀서 창작되었던 문학 작품들이 해당 내용을 전달할 매체를 디지털로 전환하여 디지털문화콘텐츠로 재창작되는 흐름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재매개화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미 상당부분 축적되어 있는 상태다. 해당 최신의 선행연구 결과물들이 확고히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들 고대·중세 문학작품들의 디지털문화콘텐츠화가 근대 이후 문학 작품들의 그것과 같은 매체전환에 의한 재매개화의 결과물임이 문학사적으로 입증될 필요가 있다. 즉, 고대·중세 문학 작품들의 매체전환에 따른 재매개화와 근대이행기·근대·현대 문학 작품들의 그것이 같은 차원에 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매체를 다섯 번째 시기구분 기준으로 한 문학사의 기술을 위한 인식적 전환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때, 매체에 따른 새로운 문학사의 시기구분론은 기존 문학사론에서 성립되어 있는 장르 및 갈래 이론의 체계와 유기적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만 국문학사론의 연구사 속에서 논리적 정합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었다. 첫 째는 "현대"란 것이 문학사의 자기 확장·갱생성에 의해 상시적으로 재규정되는 것을 본질로 한다는 것으로, 디지털문화콘텐츠는 이렇게 상시적으로 재규정되는 "현대"의 자기 확장·갱생 과정 속에 하나의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입증하는 작업이다. 두 번째는 시기구분 기준으로서의 매체의 성립 가능성을 기존 문학사의 기술상 한계와 관련하여 비판적으로 반증하는 작업이다. 상기 두 작업을 통해 매체전환에 따른 재매개화가 문학사의 실제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임을 기존 문학사의 시기구분 양상과 기술내용을 통해 입증할 수 있었으며, 재매개화 국문학사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에 대한 내재적인 필요성을 기존 한국문학사론의 연구사 내부에 서부터 정립할 수 있게 되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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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철의 번역 희곡 「바다로 가는 者들」 (1922)이 구스야마 마사오(楠山正雄)의 일본어 번역 「바다로 타고 들어가는 자들(海へ乘り入るもの等)」(1920)을 저본으로 한 것임을 논증한다. 즉 「바다로 가는 者들」 은 중역의 산물인 것이다. 싱(J. M. Synge)의 "Riders to the Sea"의 한국어 번역 「바다로 가는 者들」 은 아일랜드 영어 원작이 아니라 일본어 번역을 저본으로 한 번역이라는 논의를 전개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1914-1920년에 걸쳐 발간된 다수의 일본어 번역 가운데 구스야마 마사오의 번역 저본 선택의 구체적 근거를, 번역자의 생애 및 잡지 매체 등 미디어의 관계에서 살폈다. 또한 『개벽』의 특집 ``해외걸작명편부록``에 수록된 한국어 번역 현황 전반을 검토하면서 새롭게 일부 일본어 번역의 저본을 추가했다. 나아가, 원작과 다양한 일본어 번역과 「바다로 가는 者들」을 비교함으로써 저본을 확정하고 번역 경위를 추적함으로써 한국어 번역의 특질과 번역 태도를 탐색했다. 이러한 비교 연구의 기반 위에서 한국어 번역을 ``Scene`` ``God``등 근대의 번역어 및 희곡 번역 문학사의 흐름에서 그 의의를 규명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본 논고는 ``중역``의 문제를 원작(Original) 의 번역에서 매개가 되었던 일본어 저본을 해명하는 단계로 진척시킨 성과를 제출했다. 번역의 문제에 미디어의 시각을 관련시킨 결과인 것이다.

파졸리니의 시학, 『장미 모양으로의 시』를 중심으로

김시몽 ( Simon K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83-103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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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졸리니는 주로 영화감독으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영화에 서뿐만 아니라, 시, 소설, 희곡, 언어 이론에까지 뻗어 있다. 본 논문은, 파졸리니의 표현방식이 시든 영화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같은 일관된 비전을 갖고 있다는 전제를 시작으로, Poesia in forma di rosa (장미 모양으로의 시) 시집을 들여다보고, 파졸리니가 사용하는 다른 장르의 표현방식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 지 살펴보고자 한다. Poesia in forma di rosa가 발간 된 해는 파졸리니가 영화 ``마떼오에 따라 복음``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위원특별상을 수상한 1964년이다. 그 해부터가, 파졸리니가 자신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던 고전 시의 전통과 거리를 두며, 체계적으로 여러 장르에서의 표현방식을 발전시키는 시기였다. 이 시집에서 파졸리니는 이탈리아 시의 전통 형식인 terzetto (일연 삼행식)를 포기하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파졸리니가 그의 영화 라 리코타 때문에 국가 종교를 모욕한 죄목으로 심판에 섰을 때,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쓴 일기 에는 기자와의 인터뷰, 추후의 창작 프로젝트 등이 다양한 형태의 시로 쓰여 지는데, 이 시들이 Poesia in forma di rosa 시집에 수록된 것이다, 그는 시창작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을 변환시키면서, 자신을 평생동안 이토록 공격하고, 비판한 이 신-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탈출구를 추구한다. 파졸리니는 공산당과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의 독단이 그 탈출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과 이탈리아의 룸펜프롤레타리아 역시 자신의 해방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따라서, 파졸리니는 역사의 변증법적 흐름의 탈출구를 찾아서 제3세계로 관심을 돌린다. 신-자본주의로 도달한 역사에 맞서서 파졸리니는 소위 신-선 사 시대를 내세운다. 자신이 내세운 이 신-선사시대를 계기로, 파졸리니는 시인의 위치와 시창작의 개념을 재평가 하게 된다. 그는 신-자본주의세계에서 사용되는 합리적인 언어에서 이별하고, 신화의 언어를 택하며, 예언행위를 통 하여 자신의 창작을 재정의한다. 파졸리니는 신화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시를 넘어 시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시는 영화나 시사적 기사와 똑같은 위치로, 세상에 가하는 행위로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파졸리니가 택한 모든 장르와 표현방식은 미적이든, 이 데올로기적이든 "실천적인 시"로, 또한 시적인 행위로 인식된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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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이라니언 시네마, 그 중에서도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대한 네가르 모타헤데의 연구는 포스트 식민주의적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이란 정부의 검열과 뉴 이라니언 시네마 모두를 서구의 남성중심주의적인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전복적인 것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었다. 모타헤데는 뉴 이라니언 시네마, 특히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어떻게 정숙 체제에 근거한 검열의 규제를 따름으로써 이란 여성에 대한 영화 이미지를 정화시켜 관객을 ``상품화된 이미지``로부터 해방시켜 이슬람 시아파 교리에서 강조 된 메시아적인 ``이미지적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시각성의 윤리에 대한 후기 라캉적 이론의 관점에서 모타헤데의 논의의 한계들을 지적하고 이란 정부의 정화주의적 영화 검열과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그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1999)에 초점을 맞춰 재성찰한다. 모타헤데의 주장과는 달리 몇몇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은, 특히 젊은 여자들의 욕망을 다루는 < 올리브 나무 사이로 >(1994)나 <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와 같은 그의 영화들은 오히려 이란의 영화 검열이 지향하는 이미지 정화 기획과 마찰을 빚어왔다. 이 논문은 특히 < 바람 >이 어떻게 이란의 정숙 체계와의 이러한 외관상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그 체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서구 남성중심주의적 자본주의에 의한 상품화 논리를 극복하는데 성공하는지를 보여준다. < 바람 >은 이란의 변방 여성의 욕망을 대도시 혹은 서구 남성의 관음증적이고 이국주의적인 환상으로부터 절연시킴으로써 그 욕망의 번역불가능한 불가해성을 강조하는데 성공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관음증적 성향을 가진 남성 중심인물과 그와 동일시하는 관객에게 수치심을 야기하는 불확정적인 제3의 응시를 각인함으로써 도시 대 시골, 남성 대 여성, 서구 대 비서구의 대립들을 해체하고 주체들의 욕망의 불투명성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상호 변화가 가 능한 새로운 사회적 결속 양식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 점에서 < 바람 >은 이제 상품 화된 이미지로부터 신성한 이미지적 세계로 나아가려는, 뉴 이라니언 시네마의 기존의 경향을 넘어 상품화된 이미지와 이미지적 세계 중 그 어느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제 3의 영화적 베일의 세계를 창안하려는 새로운 영화적 시도를 하고 있다.

『돈키호테』 수용과정에 나타난 몰이해성

박철 ( Chul Park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139-164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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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에 의해 『돈키호테』가 1915년 처음으로 소개된 지 100년이 지났다. 최남선에 의해 번안되어 소개된 돈키호테는 한낱 아둔한 늙은이이자 현실과 동떨어진 모험을 하는 인간으로 소개되었다. 이후 국내에서 돈키호테는 아둔하고 기이한 인간형으로 간주되었다. 줄곧 국내에서 『돈키호테』 번역은 스페인어 판본보다는 일본어나 영어 판본을 사용하여 작업하였기에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좋은 번역은 독자들이 작품을 제대로 읽는 데 필수적이다.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1편을 1605년에, 2편을 1615년에 출간하였다. 그러나 1905년 『돈키호테』 출간 300주년을 맞아서야 비로소 메넨데스 펠라요와 아메리코 카스트로 등에 의하여 돈키호테의 자유 사상과 심오한 현대 사상이 재평가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돈키호테』 에 대한 수많은 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에라스무스 사상은 물론 현대적 페미니즘과 유토피아적 조망 등 다양한 연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1925년 아메리코 카스트로는 세르반테스를 당대의 사상가이자 개혁가로서 평가하였다. 사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라는 광인의 입을 통하여 왕족, 귀족, 성직자, 등 상류 계층의 위선을 폭로 비판하였고, 자유와 명예를 옹호하고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돈키호테』가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후 백년동안 수용과정에서 번역가나 독자들은 작가의 진정한 의도와 작품에 숨겨진 귀중한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였다. 스페인에서 조차 『돈키호테』의 난해성과 작품에 대한 몰이해를 언급하고 있다. 이제 『돈키호테』출간 4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도 스페인어 원본에서 작업을 한 완역본이 출간되어서 독자들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맛보는 동시에 인류에게 주는 작품의 위대하고 값진 교훈을 찾을 수 있기 바란다.

수신(修身)과 애국(愛國): 『조양보』와 『서우』의 「애국정신담」 번역

손성준 ( Sung Jun S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165-19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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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00년대 후반 한국에 번역된 『애국정신담』 판본 4종 중 잡지 『조양보』와『서우』에 각기 연재된 2종을 분석한 것이다. 『애국정신담』은 보불전쟁에서 참패한 프랑스가 여러 애국자들의 희생과 헌신 속에서 다시 강대국으로 일어서는 과정을 담아낸 역사담이지만, 독립된 수십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교훈담이기도 하다. 개별 주인공 들은 각기 다른 개인의 덕목들을 표출하며 이 텍스트가 지닌 수신서적 성격을 드러낸다. 『애국정신담』이 집중적으로 번역되던 시기, 통감부 체제의 학부(學部)는 ``충``과 ``애국`` 같은 공덕(公德)들을 배제한 수신교과서들을 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수 의 민간 계몽단체들은 당대의 교육현실을 비판하며 여러 대안들을 모색했으며, 학회지의 정기간행을 통해 공교육이 담당했어야 할 분과학문의 보급을 대신하기도 했다. 『조양보』와 『서우』가 공통적으로 연재한 「애국정신담」의 사례는, 당시 학회지들이 빈번하게 역재(譯載)한 각국의 역사담들이 사실 공덕에 초점을 맞춘 수신교과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개인의 수양을 문제 삼는 것은, 제아무리 공덕을 강조한다 해도 결국 ``개인의 발견``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1900년대 후반에 번역된 수많은 역사물과 전기물의 존재 역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단순히 애국주의나 영웅주의의 산물만이 아니라 결국 개개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도정 속에 함께 놓여 있던 수신용 콘텐츠이기도 했다.

영웅신화 원형으로 본 『서유기(西遊記)』의 삼장법사: 영웅의 제자리 찾기

안혜진 ( Hye Jin A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199-228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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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유기』 속 당삼장(삼장법사)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요괴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주인공은 손오공이며 삼장법사는 유약하고 무능한 지도자라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지만 사실상 『서유기』 속 삼장법사는 신화종교학자 캠벨이 제시한 영웅 신화의 원형에 부합한다. 본고에서는 『서유기』의 삼장법사가 겪는 모험의 궤도를 ``분리-입문-회귀``의 확대판으로 볼 수 있는지 고찰해 보았으며 그 결과 소설 속 삼장법사의 출생, 고난, 성불은 캠벨의 영웅의 모험 도식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었다. 삼장법사는 석가여래로부터 불경을 전해 중생을 구제하라는 ``소명``을 받고 태어나, 성장과정에서의 ``시련``을 겪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잊혀진 세계로 ``불가사의한 여행``을 떠난다. 그는 험난한 모험에서 손오공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조력자``의 도움으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선약-불경``을 가져와 그가 속했던 세계를 ``구원``하는 한편 시련을 극복하며 자기 내면의 불성을 깨달아 부처가 되어 그가 있었던 본래의 위치로 ``귀환``하게 된다. 즉 『서유기』는 손오공이 요마를 물리치는 내용이 골자가 아니라 삼장 법사가 고난을 겪고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그 시련을 이겨낸 후 성불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의 번역어에 대한 고찰: Verdrangung(억압)을 중심으로

이정민 ( Jungmin Le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229-263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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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가 어떻게 한국어로 번역되어 왔는가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일반적으로 ``억압(抑壓)``이라 번역되는 ``Verdrangung``에 초점을 맞추어 용어번역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그 역사적인 경위를 추적하려 하였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일본을 거쳐 당시의 식민지 조선에 수입되었다. 일본 학자에 의한 프로이트 이론과 용어의 일본어화(또는 한자화)는 식민지 조선의 문학연구자와 의학자, 일반 대중 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는 식민지 조선 및 오늘날 한국에서의 프로이트 이론의 이해의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후에 한국이 독립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번역자에 의해 프로이트의 저작이 번역되었고 번역어 또한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으나, 흥미롭게도 ``억압``은 계속하여 동일하게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이 번역어를 만들어낸 일본에서도 지적 받은 것이지만, ``Verdrangung``의 번역어로 ``억압``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면, 위상학적으로 ``억압하는 것``과 ``억압되는 것``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억압``과는 달리, ``Verdrangung``은 양쪽이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유사한 의미의 타 용어 또한 ``억압``으로 번역되면서 내용의 이해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억압``이라는 번역어는 한국어든 일본어든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는 단지 번역어 선택의 문제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이론이 식민지 조선에 들어온 후 현재까지의 90년 가까운 시간동안 비판적으로 고찰된 바 없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같은 번역어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정신분석학의 공통의 문제라 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를 재고찰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프로이트의 번역어를 조사하였고, 이후의 프로이트 번역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자료를 정리함과 함께, ``억압``의 대안적 번역어를 제시하려 하였다. 이 논문이 프로이트의 번역에 관한 논의에 도움이 되길 희망하는 바이다.

영화 윤리학의 현재성에 관한 연구

이지영 ( Jiyoung Le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265-284 ( 총 20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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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들뢰즈의 철학적 논의를 근거로 그의 영화 윤리학이란 무엇일 수 있는가를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과 < 마더 >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들뢰즈 철학에서 존재론적 근거라 할 수 있는 무한인 카오스가 가지는 규범적 방향성과, 그러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들뢰즈에게 좋은 영화란 무엇인지, 영화 윤리학이란 무엇일 수 있는가에 대해 탐색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봉준호 감독의 < 살인의 추억 >과 < 마더 >라는 구체적 사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불가능성``의 일종인 ``받아들일 수 없음``이라는 사유의 계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영화 속에 존재하는 사유를 가로막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가리키는데, 이는 서사와 의미 구조에 균열을 내며 사유의 진행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유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직시하고 그 상태 자체를 긍정한다면 이 불가능성이 사유의 더 큰 역량으로 바뀌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사유의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들뢰즈에게 이러한 사유의 창조는 삶의 역능의 고양과 다르지 않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봉준호 영화의 ``좋은 영화``로서의 윤리적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백치를 통한 워즈워스의 문학적 상상력 재현

황병훈 ( Byeonghoon Hwa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69권 0호, 2016 pp. 285-31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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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워즈워스가 시인의 임무에 대해 공을 들이고 있음을 「백치소년」을 통해 찾아보고자 한다. 인간의 느낌을 좋아지게 하고 또 그 느낌을 순수하고 지속적이게끔 유지하면서 모든 사물의 영혼과 부합되게끔 만드는데 워즈워스는 관심이 있다. 그는 독자들이 감정의 불편함을 극복하고 사랑의 가치를 키워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해 보여 준다. 그는 「백치소년」에서 죠니가 백치이기는 하지만 신성한 비전을 가진 역량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죠니 이외의 다른 등장인물들은 그러한 비전을 감지할 능력조차 없음을 보여준다. 다른 인물들은 죠니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에 대해 이해조차 하기 어렵다. 죠니는 「영원불멸송」에서 묘사된 환영적 미광을 전혀 잃지 않고 영구히 어린 아이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그러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아이이면서도 경계적 인물로 간주된다. 그는 환영적 영역 즉, 영험의 영역에 접근할 능력이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따라서 어느 독자라도 워즈워스가 죠니와 같은 정신 질환이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워즈워스의 전략적 심오함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낮/밤과 같은 상반된 개념을 전복시키는 능력이 죠니에게 있음을 보여주면서 워즈워스는 죠니의 창조적 역량과 자연에 대한 영적 깨달음이 상통할 수 있음을 증명 한다. 죠니는 젊은 워즈워스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죠니의 역량에 대한 기록 은 워즈워스가 진정한 영적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 것을 이야기한 『서곡』의 "스노우돈 산" 장면을 예견케 한다. 워즈워스는 「백치소년」을 통해서 백치와 연관된 시작업이 어떻게 풍자적 즐거움과 숭고한 기쁨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본 연구는 「백치소년」이 워즈워스의 시적 상상력에 대한 연구에 필요한 작품임을 증명한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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