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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5권 0호 (2018)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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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환상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서 「안빙몽유록」 및 「서재야회록」과 〈포켓몬GO〉의 환상계를 고찰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이 둘은 16세기와 21세기라는 서로 다른 시기의 산물이다. 그러나 일상적 공간과 환상계의 중첩을, 창조된 공간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구조적 상동성을 갖는다. 「안빙몽유록」과 「서재야회록」에서는 환상계의 중첩이라는 설정에 더하여, 서사가 나타남으로써 주체에 균열을 가하고 타자를 불러들였다. 현실의 물(物)은 정령이라는 환상이 되면서 목소리와 신체를 가질 수 있었는데, 여기에 내력과 관계가 결부되면서 서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환상 서사는 근원적으로 타자에 대한 환대라는 의의를 갖는다. 이는 〈포켓몬GO〉와의 비교로 더욱 확연해진다. 〈포켓몬GO〉에는 서사가 결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각 정령들은 내력을 갖지 못하여 현실계의 주체와 동등해지지 못했고, 서로 간에 관계를 맺지 못하여 연대나 소통이 불가능했다. 이에 환상계는 내적 흐름을 갖지 못해 파편화되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환상계의 서사 부재는 플레이어-주체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여, 플레이어가 아무 고민 없이 포켓몬을 포획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종속적이기만 환상계는 플레이어에게 지속적인 흥미를 주지 못했다. 〈포켓몬GO〉가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었음은 여기에 기인한다. 나이언틱랩스는 「해리포터」를 다음 증강현실게임의 소재로 예고했는데, 「해리포터」는 환상계의 양상이 〈포켓몬GO〉와 다르기에, 본고에서 밝힌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처럼 고전문학은 비교를 통해 나아갈 점과 한계를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현대에도 살아 있는 것이 된다. 콘텐츠라는 대상화된 방식, 소재라는 파편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현대가 주체가 되어 고전을 잘라 쓰는 행위다. 본고의 논의는 그를 넘어서, 고전이 현대에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여기에 본고의 최종적인 의의가 있을 것이다.

벤야민 소설론에 대한 비평적 연구 -루카치의 세계를 횡단하여

남병수 ( Nam Byongsoo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5권 0호, 2018 pp. 33-69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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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에 대한 ‘소설론적 관점에서의 읽기’를 시도함으로써 그간 다루어지지 않았던 학문적 논의가능성의 지평을 새롭게 개시하고, 또 기존 연구의 저변확대를 꾀하고자 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전방위적인 이론가이자 비평가로서의 벤야민은 그 명성에 걸맞게 한국의 인문학지형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러나 벤야민 수용 및 연구사의 궤적을 면면이 짚어보아도, 소설에 대한 이론적인 성찰만큼은 크게 다루어진 바가 없다. 문예론 역시 그의 중요한 연구와 비평적 실천의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무엇보다도 그 주된 혐의는 벤야민 스스로가 ‘정교하고 체계적인 소설론’을 정초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돌려질 수가 있다. 더하여 그나마 소설에 대한 유의미한 사유를 담은 문장들 가운데서도 일부는 ‘소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쓰인 데 반해 나머지는 ‘소설에 대한 다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담고 있다는 점이, 또한 연구를 방해하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본 논문은 제2장과 제3장을 할애하여 일견 양가적인 태도로 이해될 수 있는 벤야민의 두 견해를 충실하게 다룬다. 논의의 풍부함과 정교함을 더하고자 2장에서는 근현대 소설론의 대부로 손꼽히는 게오르그 루카치를 경유할 것이며, 3장에서는 벤야민 스스로의 긍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는 소설비평 텍스트들에 대한 읽기작업을 병행할 것이다. 끝으로 종장에 이르러서는 종합적 판단 하에 벤야민에게 씌워진 양가성의 혐의를 해소할 것이며, 더 나아가 벤야민 소설론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데에까지 가닿게 될 것이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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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원작 소설인 피에르 로티(Pierre Loti, 1850-1923)의 <국화부인> (1887)은 서양 남성과 아시아여성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전형을 낳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이다. <국화부인>이 1885년 여름, 일본 큐슈섬의 나가사키에 한 달간 주둔하며 경험한 일본의 풍물과 열일곱 살 소녀 기쿠산과의 기묘한 동거를 바탕으로 쓴 여행기라면 <건자두부인> (1905)은 그로부터 십오 년 뒤인 1900년 겨울 다시 일본에 방문한 로티가 쓴 두 번째 일본 배경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이었던 첫 일본 소설에 대한 후속편 정도로 취급되어 그동안 거의 연구되어오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20세기를 맞이하며 달라진 동아시아의 위상과 당시 동아시아 3국의 역학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일본은 더 이상 극동의 조용한 섬나라가 아니라 러시아라는 서양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며 한반도와 중국으로 진군할 준비를 하는 모습이 로티의 시선을 통해 포착되고 특히 조선왕조의 마지막황제인 고종을 알현한 로티가 한반도를 향한 일본의 군사적 야심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모습이 이 작품을 통해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동아시아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날 20세기의 정치적 갈등이 촉발되기 직전의 상태에 대한 흥미로운 관찰이 가능했던 것은 낭만적 이성애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애썼던 <국화부인>에서와는 사뭇 달라진 로티의 자아인식때문이었다. 전통적인 남성성 연구에서 동성애 남성의 정체성이 텍스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했으나 19세기말 서구의 동아시아 재현의 역사에서 만큼은 전통적 이성애적 남성성에 대한 강박이 “남성적인 서양, 여성적인 동양”에 대한 인식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동기로 작동했음을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논문은 변화하는 로티의 서구 남성성이 작가의 동아시아 재현에 미치고 있는 흔적을 추적함으로써 그의 변화하는 남성성만큼이나 아시아 역시 근대화를 향해 변화 중인 사회였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연구이다.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 유럽의 19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일본열풍에도 유럽지식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입장과 비판적 견해들이 존재했음을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아감벤의 문학 사용법 -로베르트 발저의 경우

이경진 ( Lee Kyoung-ji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5권 0호, 2018 pp. 103-137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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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감벤의 발저 해석을 토대로 아감벤의 정치철학이 문학과 맺는 관계를 검토한다. 아감벤의 정치철학은 ‘조에’와 ‘비오스’의 구분에 토대를 둔 서구 법치국가와 주권 권력의 아포리아적 구조를 폭로하고, 이러한 아포리아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저러한 구분을 넘어서는 ‘삶-의-형태’에 대한 전망을 제안한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어떤 정치적 본질이나 신학적 목적에 종속시키지 않고 자신의 모든 속성과 잠재적 관계를 맺는 임의적 존재로 바라보는 전망이다. 아감벤의 사유에서 이러한 전망의 구체화는 문학의 몫이다. 그중에서도 발저의 구제불능한 무위도식자들과 산책자들은 아감벤에 따르면 신학과 정치학의 구원론에서 벗어나 완전히 세속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임의적 존재들의 ‘자연적 쾌활함’과 행복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아감벤의 이러한 주장은 발저의 텍스트에 대한 최소한의 충실한 해석보다는 다소 자의적인 인용법에 기대고 있으며, 필요한 논증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방식의 문학 사용은 아감벤이 제시하는 정치철학을 도로 신비화시키고, 정치학이나 철학에 대한 문학의 기여 자체가 가질 수 있는 의미를 공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금지의 한 가지 형식 - 북한의 프로이트 수용을 중심으로

이정민 ( Lee Jung Mi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5권 0호, 2018 pp. 139-172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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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프로이트의 이론(혹은 정신분석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관점을 살펴보고, 이 이론을 반동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데에서 금지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정신분석학을 긍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던 식민지 시기와는 달리, 해방 후 분단체제에 돌입하게 되면서 북한에서 프로이트의 이름은 반동의 대명사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미 제국주의와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주의의 이론적 첨병이었으며, 인민의 정신을 퇴폐주의로 물들여 결국 타락하게 만드는 악마 혹은 적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되던 남한의 경향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과 정신분석적 무의식 개념이 맞물릴 수 없다는 데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는 정신분석학적 무의식 개념을 상세히 독해하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칸트나 라이프니츠 등 프로이트 이전의 무의식 개념과 혼동이 일어나거나 프로이트적 무의식 개념을 잠재의식 정도로 해석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한국과의 상황과 비교해볼 때 북한의 무의식 부정은 대단히 간단명료하고 일관적이며, 나아가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첨예한 부분을 매우 잘 보존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이론 언급, 응용, 비평 등이 금지됨으로써 해석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되어 버렸으며, 따라서 의미의 분화나 전환이 원칙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역설적으로 금지가 원형을 더 잘 보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금지를 통한 원형 보존이란 이론의 실천적인 측면이 봉쇄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세계적으로도 특징적인 북한에서의 프로이트 수용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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