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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8권 0호 (2019)

역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 : 최인훈의 『태풍』과 세제르의 『어떤 태풍』에 대한 비교 연구

박규현 ( Park Kyou-hyu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5-33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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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 비교한 두 작품 최인훈의 『태풍』과 세제르의 『어떤 태풍』은 한국과 아프리카의 피식민 역사를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태풍』을 정전으로 삼고 있다. 세제르의 작품은 탈식민주의·반제국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반면, 최인훈은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본 후 화해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세제르나 최인훈의 이러한 관점들은 피식민지 경험을 지닌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여러 잠재적 심층구조들 중의 일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식민지배자의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패러디한 두 작가의 작품을 분석·비교하며, 지속적인 역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여러 관점의 역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과 문학의 관계를 생각하고, 여전히 피식민지의 심층구조 속에 남아 있는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의 필요성을 논해보고자 하였다. 여기서 역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이란 새로 발굴된 역사적 증거물을 통해 역사를 새로 서술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세제르나 최인훈의 작품을 통해서 생각해보려는 역사 다시 쓰기의 가능성이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함이다.

디지털 이미지와 여성의 장소 기억 : <개의 역사>를 중심으로

배주연 ( Bae Juye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35-59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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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등장 이후 영화의 존재론에 대한 최근의 다양한 논의는 매체성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러나, 디지털 시네마가 던지는 질문의 유효성은 시공간의 변형 가능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영화적 기억술을 새롭게 질문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디지털 시네마는 서사의 봉합 가능성을 확장하기도, 혹은 해체하기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쓰기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본 논문은 김보람 감독의 <개의 역사>를 통해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의 기억을 디지털 이미지가 어떻게 제시하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이런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영화적 기억술을 연구하고자 한다. 특히 사라져가는 장소를 여성 등장 인물의 기억과 연결시키려는 <개의 역사>의 기억 작업은 디지털 이미지의 ‘부재한 장소’라는 개념과 맞물리며 대항역사로서 디지털의 영화적 기억술이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기억과 젠더, 역사의 관계, 역사적 개입으로서의 영화적 기억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아시아의 ‘상흔’ 겹쳐보기 ―오키나와전투와 한국전쟁을 둘러싼 문학적 응전방식

손지연 ( Son Jiyou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61-87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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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관심은 오키나와전투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상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해 온 메도루마 슌(目取眞俊)과 전상국의 작품을 아시아의 ‘상흔’이라는 점에서 겹쳐보려는 데에서 출발하였다. 두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기억의 숲』과 『아베의 가족』, 이 두 작품 사이에는 전쟁이 남긴 상흔, 그 중에서도 미군(미국인)에 의한 자국 여성의 강간사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점을 비롯해 여러 유사한 접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카자토 이사오(仲里效)와 메도루마 슌의 최근 대담에서 환기시킨 바 있는, “식민지적 신체성” 혹은 양석일이 말한 “아시아적 신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키나와전투(沖繩戰)를 기점으로 선명해진 오키나와 공동체 내부의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메도루마 식 방식과 한국전쟁이 배태한 우리 안의 균열과 모순을 드러내는 전상국 식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특히, 미군(미국인)의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이 그러한데, 메도루마의 경우, 전시-전후로 이어지는 폭력적 전쟁 시스템을 고발하는 ‘미군(미국) 비판’에서 출발하여 ‘오키나와 공동체 비판’이라는 회로를 경유해 전쟁의 상흔이 각인된 전후적 신체에 대한 이해(‘심부통각’)로 사유를 심화·확장시켜 간 반면, 『아베의 가족』의 경우는, 미군(미국인)에 대한 혐오와 경멸을 여과 없이 표출한다거나, 동료 병사와 무고한 민간인을 사살하는 김상만의 행위를 ‘죄의식-구원’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사사화(私事化)해버린다거나, 미군(미국인)에 의한 폭력(강간)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은폐된 폭력(강간) 또한 드러내보이고자 했음에도 성찰의 깊이를 갖지 못한 한계 등을 노정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은 아시아의 ‘상흔’이 겹쳐지는 지점과 엇갈리는 지점, 더 나아가 공통의 ‘상흔’을 분유(分有)함으로써 폭력의 가능성을 불가능성으로 바꿔가는 문학적 응전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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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장아이링 「금쇄기(金鎖記)」와 오정희의 「바람의 넋」을 대상으로 중·한 여성작가의 여성주체 형성의 방식을 탐구해 보고자 하였다. 두 작가는 시선의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통하여 주체로 거듭나고자 하였다. 시선의 이동은 권력의 ‘장소’적 이동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근대 지식인들이 담론으로 만들었던 노라의 공간적인 이동과 이질적이다. 장아이링 「금쇄기」에 등장하는 치챠오는 끊임없이 욕망의 환상을 제거하고 자신이 대타자가 되는 방식으로 시선의 주인공이 되고 주체로 거듭난다. 그러나 전란이라는 현실과 가부장제의 전통이 여성이 주체가 되는 것을 간과하고 있지 않으므로 치챠오는 주체로 되는 과정에 가족이 제물로 바쳐지고 자신도 환멸에 이른다. 오정희의 「바람의 넋」 주인공 은수도 비판적인 여성주체로 그려지지만 비극의 결말로 끝 난 「금쇄기」와는 달리 대안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왜냐하면 은수가 던진 시선은 어디까지나 자아를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출이라는 행동을 통하여 실존적인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투여되는 남성적 시선을 인지하면서 이것을 주도적으로 이용한다. 장아이링이 보여준 시선의 권력 이동과 오정희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가출의 서사는 여성의 위치 이동 모티브와 연결되면서 ‘노라’ 모티브와 겹친다. 장아이링은 횡적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종적인 방향 ‘윗층’으로 이동하여 기존의 노라 모티브에 ‘예외’를 낳았고 오정희의 은수는 집은 나갔지만 ‘혁명의 천사’가 되지 않는 것을 통하여 기존 모티브의 결말에 균열을 낸다. 그녀들의 주인공은 남성중심주의 문학의 틀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을 탄생시켰다. 동시에 소설의 줄거리는 남성서사에 의해 전형화 된 ‘가출한 노라’의 서사를 전복시키면서 그녀들의 작품은 남성서사에 이중의 전복을 가져다준다.

‘무인양품(無印良品)’의 성공사례를 통해 보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사상의 전통 연구

이병진 ( Lee Byungji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125-159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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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는 무명(無名)의 공인들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일상잡기(雜器)에서 美를 발견하고 독자의 심미안(審美眼)을 통해 새로운 美의 개념과 민예(공예)이론을 전개했다. 야나기의 민예사상은 메이지시대(明治,1868-1912)에서 다이쇼시대(大正,1912-1926)로의 이행기인 20세기 초반에 등장한다. 이상주의적 낭만주의 성향의 시라카바(『白樺』) 그룹의 중심 멤버로 서구예술에 경도되었던 야나기가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양 민예품에서 새롭게 美를 발견하고 그것을 서구의 보편적인 가치에 대응하는 것으로 자리매김 한다. 이것은 야나기가 일본인으로서 강한 자의식과 함께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동양적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었다. 또한 공예(craft)는 순수미술(fine art)과 달리 숙련된 기술(technology)을 중심으로 창출된 아름답고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한다. 대표적으로 중세를 동경하고 산업혁명으로 인한 예술의 기계화에 반발하여 수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윌리엄 모리스의 ‘아트 앤드 크래프트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이 있다.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기계화로 인해 소멸된 인간성의 회복과 전통적인 美의 복구를 주장한 것이었다. 이렇게 근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회의하던 사상이 서구적 가치를 우선하고 따르던 일본에 동시에 유입되면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사상의 기저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야나기는 일본의 근대화시기에 근대를 회의하고 동양의 민중 공예품에서 동서양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것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예술’이라는 심미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지니면서도 생활과 미의 문제를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삼았던 야나기 무네요시. 그리고 쓰임새에 호응하는 형태의 도구(물건)가 본질적으로 아름답다고 하는 야나기의 공예 철학은 오늘날 세계적인 생활 잡품 의류 업체인 ‘무인양품(無印良品)’의 마케팅 철학으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협상 결과물로서의 고유명사 번역: 클로드 퐁티의 『끝없는 나무』를 중심으로

이성엽 ( Lee Sungyup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161-19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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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프랑스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의 L’arbre sans fin의 한국어 번역본 『끝없는 나무』에서 고유명사 번역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재 세계에서와 달리, 허구 세계에서 고유명사는 지시 기능뿐만 아니라 의미를 내포한다. 다시 말해, 작가가 특정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고유명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끝없는 나무』에 나오는 고유명사는 전적으로 작가가 만들어내어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발음에 기반한 언어유희가 발생되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에서는 고유명사가 작가의 고안물인 만큼 고유명사의 지위를 갖기 위해 첫 번째 알파벳을 대문자로 썼다. 이 고유명사는 단일어 형태와 합성어 형태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합성어 형태의 고유명사는 붙임표를 활용하여 하나의 이름임을 독자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국어에는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이 없으므로,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고유명사의 표지로써 작은따옴표를 활용하였다. 또한 작은따옴표는 붙임표를 대신하여 합성어으로서의 결합 상태를 유지시키는 기능도 하고 있다. 단일어 형태의 고유명사는 음차를 통해 낯선 외국어 인명을 발음 그대로 옮겨와 작은따옴표 없이도 고유명사로서의 지위를 보존하였다. 반면, 합성어 형태의 고유명사는 작은따옴표가 감싸는 부분에 따라 고유명사로서의 지위를 보존하는 범위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합성어 형태 전체가 고유명사 지위를 보존하는 경우, 합성어의 일부가 고유명사 지위를 보존하는 경우로 나눠진다. 그리고 작은따옴표 없이 번역된 합성어 형태의 고유명사는 보통명사구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발음에 기반한 언어유희를 동반한 고유명사는 언어유희가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번역하는 방법을 택했음을 확인하였다. 이 같은 번역 방법 분석을 통해, 번역은 출발텍스트의 복제가 아니며, 여러 번역 전략의 선택을 통한 협상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다.

독서와 기억 : 서사물의 분량과 독서의 한계

이충민 ( Lee Chungmi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197-230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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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 않은 분량의 문학 텍스트는 생산과 소비 양측에서 저자와 독자에게 적지않은 기억력을 요구한다. 고대 세계는 이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관객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비극의 분량이 너무 길지 않을 것을 조언한다. 한편 로마 수사학은 ‘기억법’을 수사학의 5대 분과 중 하나로 정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소설과 더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초기 근대소설은 액자구조를 자주 사용했는데, 속이야기의 화자이든 겉이야기의 화자이든 ‘과거에 겪은 일’이나 ‘귀로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단계가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엄청난 기억력을 사용해야 한다. 반면 19세기 사실주의 소설은 전지적 서술자를 애호함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 혹은 무시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진정 까다로워지는 것은 독자 층위에서이다. 독서의 실패를 막으려면 독자는 텍스트의 여러 층위(줄거리, 묘사, 코노테이션) 중 어디까지를 기억해야 하는가? 이에 우리는 추리소설 독서의 사례를 통해 독자의 기억력이 문학 서사물의 이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세르반테스의 「개들이 본 세상」에 드러난 대화적 양상 연구

장재원 ( Chang Jae W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231-266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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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세르반테스의 단편소설 「개들이 본 세상」이 내포하고 있는 대화적 특성과 그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개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겪은 삶의 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대화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지닌 주인공들끼리의 담론에서 발견되는 관점의 다양성과 상대성, 이질성과 불협화음 등이 야기하는 긴장이나 갈등, 소통과 상호작용, 혼종(hybridation) 등에 있다. 본 연구는 바흐친의 대화주의 관점에서 이 작품의 대화적 양상을 분석하였다. 이전 문학 작품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일원론적이며 독백적인데 반해 「개들이 본 세상」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율성과 주체성을 지니고 있어서 관점의 다양성, 상대성, 역동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대화적 양상을 제일 먼저 소설의 두 주인공 베르간사와 시피온의 대화를 통해 분석하고, 이 작품과 연계된 또 다른 작품인 「사기결혼」 사이에서 발견되는 한 문학작품과 다른 문학작품의 대화를 분석하였으며, 끝으로 현실과 허구 사이의 대화로 그 범위를 확대하여 간략히 고찰해보았다. 세르반테스는 대화주의적 기법을 통해 다면적이고 다차원적인 인물을 창조하였으며 독자 스스로 작품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게 하였다. 독자들에게 최대한 많은 상상력과 자율적 해석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열린 작품이며 또한 두 작품사이의 대화가 작품의 시작과 끝이라는 점에서 상호텍스트적이다. 세르반테스는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허구성과 허구의 현실성 사이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소설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다. 이와 같이 그의 소설에 대한 철학은 상호주의와 개방성에 입각한 대화를 통해 현실과 존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함으로써 일원론 적이고 도그마화된 지배담론/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학적 생각들이 오늘 날에도 이어지기 때문에 세르반테스는 문학적 근대성의 선구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실을 역동적으로 파악하는 모범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타난 수학적 요소의 함의

정익순 ( Chung Ikso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267-291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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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수학적 요소들이 배열되어 있다. 문학작품 속에서 수학에 대한 언급들은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그것들은 수학적 지식으로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분석하는 관계는 아니었다. 수학은 고대부터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인간에게 삶과 문명의 이치를 설명하기 위한 지식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철학자들은 자연의 절대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기 위해 수학을 연구했다. 우리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수학적 요소들이 들어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삶과 문명에 관계된 수학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 사유의 문제가 관계될 때였다. 수학적 요소에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대상에 대한 감각과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존재하도록 의미를 생성하는 사유의 힘이 들어있다. 물리학과 형이상학에서 미지의 혹은 아직 연구되지 않은 복잡한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수학적 요소를 도입하면 우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적인 지식이 있어야 해결되는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을 만난다. 이러한 논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원인은 수학의 허수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사유하는 문학적 상상력뿐만 아니라 수학의 원초적인 논리와 지식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학에는 비경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존재를 언급하는 언어는 없지만 수학적 요소는 그곳을 탐험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래서 수학은 우리에게 사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요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어디에서 발생되는지를 나열하고 정리하게 만든다. 이 논문에서는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수학의 원리가 적용된 지점을 재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의 지식에 의해 문학 속의 이질적인 문제가 사유될 수 있다는 것과 작품에서 나오는 수학적 숫자(앨리스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는)가 어떻게 인문학적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하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완전영화의 테크놀로지: 바쟁, 시네마스코프, 공간영화

정찬철 ( Jeong Chancheol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8권 0호, 2019 pp. 293-319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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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쟁은 영화가 소리와 컬러와 깊이감의 테크놀로지를 통해 이르지 못한 사실주의 경지에 비로소 시네마스코프를 통해 완전히 도달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바쟁에게 시네마스코프는 완전영화라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리얼리즘의 완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완전한 테크놀로지였다. 이 논문은 『영화란 무엇인가?』에서는 파편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완전영화와 영화 테크놀로지의 관계, 혹은 보다 보편적으로 영화와 테크놀로지에 대한 바쟁의 사유를 더들리 앤드류(Dudley Andrew)가 엮고 번역한 『앙드레 바쟁의 뉴미디어 Andre Bazin’s New Media』에 실린 시네마스코프와 시네라마 그리고 3D 영화에 관한 글을 통해 분석한다. 첫째, 본 논문은 바쟁이 어떠한 이유에서 시네마스코프를 완전영화의 테크놀로지로서 간주했는지를 3D와 시네라마에 대한 바쟁의 비판적 시각과 비교해 들여다볼 것이다. 둘째, 본 논문은 바쟁이 완전영화를 구성하는 영화적 이미지로서 제시한 ‘공간영화 the cinema of space’ 개념을 바쟁의 기존의 영화적 공간에 대한 이해와 접목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공간영화’의 현재적 의미를 뉴미디어의 ‘몰입감’과 연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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