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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79권 0호 (2019)

주요한과 예이츠의 초기 시에 대한 숙고: 정체성의 균열을 중심으로

김한성 ( Kim Hansu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5-3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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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한과 예이츠는 제국과 식민지 간의 긴장을 ‘공간을 감각화한 시’로 풀어낸 시인으로, 그들은 개인 내면에 대한 발화와 국가/민족의 정체성 사이에서 분열하는 자아를 표출하였다. 그들은 공간에 상당히 민감한 태도를 드러내며 작품 활동을 펼쳤는데, 주요한은 동경, 상해, 경성을 주유하며 詩作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예이츠 역시 런던, 더블린, 슬라이고 등지에서 창작 활동을 활발히 수행하였다. 두 시인이 제국의 수도에서 각각 일본어와 영어로 문학 창작을 시작한 점은 문화 제국주의를 둘러싸고 많은 점을 시사한다. 주요한이 사랑했던 고향의 대동강과 수심가, 예이츠의 마음의 고향이었던 슬라이고는 동경과 런던에서의 문학교육을 통해 한층 더 예술적으로 형상화될 수 있었다. 물론 주요한은 모어와 제국의 언어 사이의 긴장 관계에서 모방을 통해 균열을 드러내었던 반면,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예이츠에게 제국의 언어와 모어가 일치하는 점은 두 시인의 비교를 어렵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 문인이 일본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긴장과 갈등에 비해, 예이츠는 언어 활용에서 상대적으로 좀 더 자유로웠으며 아일랜드의 문학을 유럽의 예술로 연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시인이 제국과 식민지의 여러 공간을 부유하면서 그들의 고민을 시로 풀어냈으며, 시에서 정체성에 대한 사유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비교의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

영화이미지의 인용불가능성, 또는 어떻게 ‘콧수염’은 신화가 되었는가?

남수영 ( Nam Soo-you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33-6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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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미지들은 스스로 현실의 일부인 감각할 수 있는 질료다. 그 어떤 말도 이미지로 구성된 영화적 경험을 모두 드러낼 수 없기에, 벨루(Raymond Bellour)는 영화 ‘텍스트’를 가질 수 없는 텍스트(unattainable text)로 칭하고 영화의 인용불가능성을 주장하였다. 이 연구는 영화의 이미지에는 인용불가능한, 즉 말로 의미화할 수 없는 실재의 잔여물이 남아 있으며, 이는 복제 이미지를 근간으로 하는 영화가 유사성을 추구하는 재현 예술의 중요한 변환점(모더니티)을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의 주장을 빌면, 영화는 인용을 통해 인용하는 대상(사물들과 같은 물적 이미지의 감각적 재료)의 표면(텍스트)에 새겨진 표현의 역량을 영화의 표현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기계적 수동성’을 ‘능동적 변증법’과 동일시하게 되는데, 이러한 영화의 극작술은 영화를 고전적 재현의 ‘신화’와 허구의 형태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우화’ 사이에서 이해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허구와 현실 사이, 복제와 원본 사이의 관계는 혼합되어 결국 ‘인용불가능’한 영화만의 세계가 구축된다. 바쟁(Andre Bazin) 역시 영화에 드러난 허구와 진실사이의 분리불가능성을 인용의 관점에서 기술한 바 있는데, 그는 이미 역사 속모방의 대상이 된 캐릭터,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사례를 들어, 영화 이미지에 근본적인 것과 사후적인 것의 구분이 불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수없이 모방되었던 그의 콧수염은 영화의 허구와 역사의 진실이라는 희극과 비극 사이에서 공명하며, 원본과 모방 사이의 관계를 재전유하고 서로간의 차이를 무화시키는데, 이것은 영화 예술의 한 효과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영화는 각자의 고유한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텍스트로 인용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영화의 인용불가능성이란, 영화의 구성 이미지들이 이미재료와 표현방식이 결합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에 인용가능한 원본을 추출하기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상호텍스트적 관계 안에서 인용이 이루어졌다하더라도 이를 통해 원래의 텍스트는 결국 무화되기 때문에, 원텍스트에 대한 인식과 인정에 기반하는 인용이 불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본 연구는 랑시에르의 영화이미지 그리고 인용불가능성에 대한 바쟁의 논의를 통해, 결국 진실에 대한 우화로서 영화가 복제와 모방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새로운 신화를 완성시키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대체불가능의 신화는 본질이나 영혼이 아니라 의미로 포착되지 않는 실재의 잔존을 지시한다는 것이다.

한인제재 시가에 나타난 한국(인) 상상

문대일 ( Moon Dae Il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61-91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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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중국작가가 창작한 한인제제 작품 중, ‘反帝國主義’, ‘中華主義’, ‘國際主義’가 드러나는 詩歌를 집중적으로 고찰함으로써 당시 한국(인)에 대한 중국 지식인의 인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郭末若, 艾靑, 楊靖宇 등 주류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무명작가 및 가명작가 작품 등 비주류 작가의 작품을 함께 분석하여, 한인제재의 시가의 총제적인 면모를 조망한다. 한인제재 시가 작품 중 첫 번째로 反帝國主義 관점을 나타내는 작품은 대부분 일제의 침략을 비판하며 약소국의 자주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제에 대한 강한 반감과 한국의 애국지사에 대한 찬양 및 중국민중에게 정면교사로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두 번째로 ‘中華主義’ 인식이 반영된 詩歌는 대부분 한중관계를 일방적인 주종관계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작품들은 표면적으로 한국의 ‘망국’을 애도하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한국(조선)을 ‘기자의 자손’, ‘중화의 소년’ 등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주종관계의 기조와 프레임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國際主義적 시각을 반영한 한인제재 시가는 작품의 수로 볼 때 월등히 많다. 이들 대부분은 한중 양국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일제타도를 호소하며, 궁극적으로 한국 양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다. 특히 조선독립연맹의 청년, 조선의용대 등의 업적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위로하며, 나아가 민족, 당파 등을 뛰어넘는 더욱 공고한 한중 연대의 형성을 주장한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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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영화에서 ‘인용’의 문제에 대해, 영화적 인용의 특수한 사례를 중심으로 논한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의 관계 내에서 구성되고 성립되는 예술 매체이다. 매체의 형식적 층위, 주제의식과 내용 그리고 이미지의 층위에서 영화는 다양한 예술을 참조하고 인용한다. 그런데 주류 픽션 영화는 다른 예술에서 인용한 요소들을 영화라는 형식 내에 투명하게 녹이고 이음매 없이 봉합시킴으로써 인용을 숨기는 방식을 취한다. 서사에의 몰입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반면 영화가 상호매체적이며 상호텍스트적인 요소들의 인용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전면에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서사보다는 영화의 형식적 구성을 더 중시하며, 이러한 가시화를 일종의 미학적 전략으로 삼는 것이다. 본고는 후자를 영화적 인용의 특수한 경우로 주목하고, 그 사례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나의 경우>(1986)와 <포르투에서의 어린 시절>(2001)을 상세히 분석한다. 두 영화에는 문학, 연극, 회화, 조각, 건축, 사진, 음악 등 다양한 예술로부터 인용된 요소들이 난립하며, 이는 서사로부터 돌출되어 불순한 덩어리로서 가시화된다. 이 인용은 상호매체적일 뿐만 아니라 공적 역사와 사적 기억, 그리고 미디어의 시간의 지층을 들춘다는 점에서 미디어고고학적인 것이기도 하다.

최인훈의 인용, 『화두』의 메타모르포시스(Metamorphosis)

배지연 ( Bae Ji-ye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125-164 ( 총 40 pages)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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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화두』에 제시된 다양한 텍스트들이 독자의 입장에서 다시쓰기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화두』의 인용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이에 앞서 『화두』에서 ‘화두’로서 강조되는 생물학적 발생 개념을 의식 및 언어에 적용한 ‘의식의 발생학’으로서 소설 쓰기로 등치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화두』에 인용되는 주요 텍스트들을 발생학적 차원, 즉 계통발생 및 개체발생의 반복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먼저, 『화두』에서 가장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조명희의 「낙동강」의 인용양상을 분석하고, 『화두』의 서사 자체가 「낙동강」의 계통발생을 되풀이함으로써 『화두』라는 개체 발생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질적인 텍스트가 산만하게 배치된 것으로 보이는 『화두』가 「낙동강」을 통해 ‘이질적인 것들의 종합’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낙동강」을 읽고 다시쓰기 하는 독자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음을 재구할 수 있었다. 한편, 『화두』에는 최인훈이 이전에 발표한 텍스트들이 호출·인용되고 그에 대한 메타이야기가 서술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화두』에 가장 중심적으로 인용되는 두 텍스트(「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어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를 분석했고, 이 두 텍스트를 인용하고 다시쓰기 하는 과정이 변이된 개체발생(메타모르포시스)의 반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화두』는 이질적인 텍스트들과 담론들이 화자의 균열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들이 특정한 서사적 구조를 통해 통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은 『화두』의 메타모르포시스의 개념이 30년 전에 발표된 「회색인」에서 출발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회색인」과 『화두』의 간극을 통해 두 소설에서 사용되는 ‘메타모르포시스’의 개념 또한 메타모르포시스(변이)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서구의 것이 아니라 조상과 ‘한국적인 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회색인』에서 실패로 머물렀던 ‘메타모르포시스’의 가능성이 비로소 『화두』에서는 ‘가능한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두 소설사이의 시간들에 내재된 변이의 과정들은 보다 면밀하게 논구되어야 할 것이다.

소설 『쿠깜』의 영화적 변용: 영화 “쿠깜”(1995)을 중심으로

신근혜 ( Shin Keun-hy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165-187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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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톰마얀띠의 소설 『쿠깜』이 영화 “쿠깜”(1995)으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서사적 변용과 그 의미를 살펴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쿠깜은 소설이든 영화든 두 주인공의 운명적인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멜로드라마다. 영화 “쿠깜”(1995)에 나타난 서사 변용과 각색 원리는 전쟁과 사랑이라는 멜로드라마적 구성에, 남녀 주인공의 의무와 마음(사랑)이라는 내적 갈등 위주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형식적으로는 역순행적 진행과 신문 자료 및 실제 전쟁 관련 영상을 삽입하여 현실성을 높인 것에 있다. 영화 “쿠깜”(1995)은 가능한 원작의 정신에 접근하여, 원작에서 문자 언어로 서술된 스토리를 영상으로 충실하게 재현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쿠깜』이 전쟁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했다면, 영화 “쿠깜”(1995)은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는데, 이것이 바로 소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소설의 영화적 변용은 이 주제의식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원작소설에 충실하면서도 주인공들의 사랑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것은 “전쟁” 때문임을 강조한다.

원본없이 액션! 벽돌의 변증법 혹은 인용의 상품경제학: 르네 비에네에서 ‘Joseph Velasco’까지

이영재 ( Yi Youngjae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189-219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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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등장한 홍콩 ‘권격영화’의 유행과 1972-3년의 이소룡 붐 이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영화 시장의 위계질서 속에서 가장 하위의 위치에 놓여있었던 영화 중 하나는 이소룡을 모방, 반복하는 영화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의 하부장르로 성립된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자르고 이어붙이기’, 무수한 도용, 수많은 예명과 가명의 세계는 어떻게 영화가 상품의 익명성을 획득하는가에 관한 하나의 사례를 보여준다. 이 영화들은 상품의 익명성을 획득함으로써 자본의 상품 경제학 내에서 국가 단위를 벗어나 전세계로 흘러넘쳐갔으며, 이 상품을 소비하는 하위 계급 남성들의 강력한 ‘시각적 유대 visual bond’의 자원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Joseph Velasco’와 르네 비에네라는 두 이름과 관계된 영화들을 추적함으로써 이 일련의 과정을 파악해보고자 한다. ‘Joseph Velasco’는 1970년대 이 영화-상품들의 글로벌한 유통의 밑바닥에서 가장 빈번히 발견되는 이름 중 하나이다. 상황주의자 르네 비에네는 한국/홍콩영화 <정도>/<당수태권도>를 전용한 영화 <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La dialectique peut-elle casser des briques? >(1973)를 통해 ‘창조적인’ 전용-훔치기를 감행하였다. 이 사례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하나의 답변을 제시한다. 영화는 어떻게 익명성으로서의 상품의 보편성을 획득하였는가? 그때 영화는 무엇이 되는가? 상품으로서 상품을 극복하는 것은 가능한가?

김동리 소설의 성서 모티프 인유와 기독교 교리의 재구성

전계성 ( Jeon Gye-seong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221-25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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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소설들은 다양한 종교의 융합 또는 내적 극복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드러내는 특징이 있고, 참조된 종교들 가운데서도 기독교는 매우 중요한 원천인 동시에 내적 극복 대상이었다. 지금껏 김동리와 기독교의 관련성 연구들에서 주된 대상이 된 것은 「무녀도」, 「마리아의 회태」, 『사반의 십자가』, 「목공 요셉」, 「부활」, 『을화』이다. 그러나 「아가」는 솔로몬의 잠언 및 전도서 다음에 위치하는 구약성서의 일부임에도 기독교와의 관련성 속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솔거」 연작은 불교 관련 소설로 주로 평가되었고, 「천사」도 다른 성서소재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기독교가 덜 부각된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감람 수풀」과 「까치소리」도 기독교와의 관련성 속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이들이 배제된 것은 간접적·파편적 요소만이 드러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김동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기독교적 부활 관념을 비틀고, 속죄양 모티프를 전유하며, 성서에 등장한 과부나 기생 인물을 원천으로 새로운 텍스트를 창조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가 암시적·간접적으로 활용된 작품들은, 원천을 수용하되 그것을 극복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어내는 김동리의 종교 인유 방식을 잘 보여준다.

인용, 간격, 압축: 발터 벤야민의 ‘기판적’ 역사철학에 관한 시론

조효원 ( Cho Hyow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257-28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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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의 가까운 친구 중 한 사람이었던 플로렌스 크리스티안 랑은 자신의 마지막 유작에서 ‘기판적’ 비평을 위한 선언을 감행한다. ‘기판적’ 비평이란 전래의 기독교 비판과 확연히 구분되는 착상인 동시에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독일 낭만주의에서 유래한 근대적인 예술 비평의 이념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생각이다.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던 시기 랑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벤야민은 랑의 도발적인 선언 및 거기에 담긴 사상에 대해 아주 잘 알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로 『비애극』을 위시한 그의 여러 저작들에서 우리는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적 역사철학이 근본적으로 ‘기판적’인 성격을 띤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칼 크라우스의 파괴적 인용,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제스처-연극 및 프란츠 카프카의 ‘자연극장’ 이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벤야민이 요한 페터 헤벨에게서 발견한 ‘세계사의 스무 줄’이라는 사유이미지를 중심으로 하여 벤야민의 역사철학을 새롭게 음미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벤야민의 메시아주의를 ‘기판적’ 비평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은 그의 역사철학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영지주의자로서의 단테 연구: 『향연』과 『신곡』의 연옥편을 중심으로

한성철 ( Han Sungchul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79권 0호, 2019 pp. 283-306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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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란 용어는 아직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개념이며 학자들에 따라 달리 규정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교와 비 그리스도교를 막론하고 2세기에서 5세기까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융성한 다양한 종교운동을 총칭하여 영지주의라 일컫는다. 그러나 중세 이후 유럽에서 암암리에 확산된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영지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그리스-로마 철학 그 중에서도 플라톤의 철학과 세계관이 만나 탄생한 것이다. 이들이 영지주의라 불린 것은 그들이 그노시스(Gnosis) 곧 지식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다른 이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비밀 지식을 가졌다고 여겼다. ‘영지주의자’라는 단어는 다양한 관점과 신조를 포괄하는 용어지만, 하나같이 자신들만이 비밀스러운 지식을 가졌다는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 문학적 가치 면에서 단테의 우수성과 탁월성을 폄하 할 평론가는 없다. 다만 그의 작품들이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중세 스콜라 철학을 재해석 한 것이라는 평가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사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요소들 중 그의 독창성으로 평가할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그의 감정도 현대적 의미에서 보면 그다지 건강해 보이지 않는 집착과 편집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를 성모 마리아가 아닌 지혜의 상징인 소피아(Sophia)의 이미지로 해석해보면 단테의 또 다른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의 교회에 대한 개혁은 단순히 부패한 교회의 인적, 물적 청산으로 그치지 않고 신앙의 본질 다시 말하면 순수했던 원시 그리스도 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꾼다. 이 지점에서 영지주의적 그의 지향이 은연중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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