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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문학검색

COMPARATIVE LITERATURE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연3회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5-0910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83권 0호 (2021)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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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2000년대 통일 독일에서 등장한 홀로코스트 증언 다큐멘터리가 독일 사회 담론 속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그간 홀로코스트 증언에 대한 영상 기록은 잘 알려진 <쇼아>(Claude Lanzmann, 1985)에서와 같이 피해자 증언을 중심으로 제작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독일 통일 이후 2000년대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 증언이 아니라 나치와 직접 연루된 사람이나 그들의 가족 얘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들 작품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나치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오랫동안 숨겨온 사실을 카메라 앞에서 증언 혹은 고백하는 형식을 따른다. 그렇다면 2000년대 독일 사회에서 이러한 다큐멘터리 증언 혹은 고백이 지속적으로 등장해 온 배경은 무엇인가? 또한 이들은 통일 후 독일 사회에서 변화된 홀로코스트 담론을 어떻게 반영하고 동시에 영향을 끼치는가? 그리고 이러한 증언이 카메라 앞에서 수행된다는 점에서 이들 다큐멘터리 증언이 어떻게 독일 사회 내 전후 세대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가? 본 연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2000년대 가해자 기억 다큐멘터리의 대표적 사례로서 <히틀러의 비서>(2002)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2005)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이들 작품 속에 활용된 증언과 고백, 그리고 영상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홈비디오 푸티지 등이 나치 폭력의 가해자나 전후 세대로서의 증언자들이 지녔던 죄책감과 수치심을 어떻게 드러내며, 이 과정에서 독일 담론 지형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펴본다. 또한 본 연구는 증언 다큐멘터리가 지닌 미디어적 특성에 주목함으로써, 이러한 미디어적 특성이 가해자 증언과 고백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논의하고 나아가 영화 속 증언자뿐 아니라 영화 관객으로서의 전후 세대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탐구한다.
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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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의 논픽션 자전적 서사 『마우스』(1991)가 어머니 안자의 목소리를 침묵 속에 묻어 두었다면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2019)는 한국 문학 및 문화사에서 거의 주체화 되지 않았던 한 범부의 목소리를 복원하여 주체적 문화의 담지자로 재현하고 있다. 『마우스』의 서사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 즉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아버지와 전후 세대 아들 간의 대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내 어머니 이야기』는 식민시대와 전쟁을 겪으며 고향으로부터 내몰려 실향 난민으로 살아온 노모가 자신의 삶을 딸 은성에게 풀어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여정에서 이야기의 주체인 이복동녀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의 행로로 끊임없이 내몰려왔다. 『내 어머니 이야기』는 무엇보다 이와 같은 삶을 살아낸 한 여성의 지극히 개인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문화 주체 담론에서 오랫동안 잊혀지고 또 간과되어왔던 하위주체의 적극적 서사를 역사와 문화의 중심부로 편입시키는 기획으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문화적 하위주체의 재주체화 과정은 소외되고 내버려졌던 범부의 목소리를 캔버스 전지에 시각화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구체화된다. 본고는 이 같은 『내 어머니 이야기』의 기획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스피겔만의 『마우스』와의 평행선상에서 비교문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되, 탈식민주의적 여성주의 관점과 더불어 그래픽 서사라는 장르가 갖는 매개적 특이성 등과 연동하여 해제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 문화 전통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잊혀져왔고 때로는 비루한 존재감 뿐이었으며 이제는 노년에 접어들어 희미해져 버린 여성의 목소리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하고 주목함으로써 그 서사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한 개인의 목소리를 복원시키는 과정은 개별적 주체의 차원을 넘어 우리 시대 집단적 혹은 공동 사회의 문화적 유산을 재구축해 가는 기획으로 의미가 있다.

시적 자아의 ‘리젠더링’: 황진이 시조 영어번역과 ‘번역가의 가시성’

조성원 ( Cho Sung-won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83권 0호, 2021 pp. 79-120 ( 총 42 pages)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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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 번역이론에서 번역가의 존재는 더 이상 투명유리처럼 보이지 않는 상태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번역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의미 생산의 주체이다. 원작에 대한 ‘이상적 독자’로서의 번역가가 담당하는 역할과, 새로운 언어로 원작을 탈바꿈하여 재창출하는 ‘작가’로서의 번역가의 역할이라는 이중적 위치를 고려할 때, 실제 번역의 현장에서 번역가의 젠더가 그 번역의 과정과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다. 원작과 번역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위계질서를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는 최근의 번역이론의 시선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이와 같은 탈식민-페미니스트 번역이론에 초점을 맞추어, 원저자, 독자, 번역가의 세 주체의 젠더가 3중적으로 교차하며 이루어 내는 ‘힘’의 관계가 어떻게 원작 속 ‘시적 자아(the poetic self)’의 젠더를 규정하고, 변형하며, 재생성하는 지, 그 ‘리젠더링’의 과정을 황진이 시조의 영역텍스트들의 비교 분석을 통해 살펴본다.

히스테리증자로서의 서발턴 모더니스트: 제임스 조이스, 윤동주, 그리고 우리

김지윤 ( Jiyun Kim )
한국비교문학회|비교문학  83권 0호, 2021 pp. 121-155 ( 총 35 pages)
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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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제임스 조이스의 식민치하 아일랜드와 윤동주의 일제강점기 한국을 병렬함으로써, 서발턴 모더니스트 작가들의 글쓰기 행위가 수동적 제국 모방이 아닌 능동적 저항이었으며, 동시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신경증적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1914)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중 일부의 내러티브가 자크 라캉의 히스테리 담화에 입각하여 분석될 것이다. 그다음 본고는 동일한 이론적 구조를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피네간의 경야』(1939), 그리고 윤동주의 주요 시작품 전반에 담긴 작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에 적용시켜 두 사실을 밝힌다. 첫째, 이들은 반식민주의적 모더니스트로서 글쓰기를 통해 억압된 정체성을 되찾고자 했다. 둘째, 이들은 히스테리증자로서 타자적 주이상스를 누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조이스와 윤동주가 사용한 제국의 모더니스트 기법은 그들이 앓고 있던 “식민지적 히스테리”의 증상이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해 제국주의의 위계질서를 거부하고 실재계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존재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들의 히스테리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주장한 모더니티―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인류의 문명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을 지탱해 온 심대한 정신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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