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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on Min Hak Chi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2092-7428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17권 0호 (2012)

신라(新羅)와 일본(日本) 고대설화(古代說話) : 기획의도

허경진 ( Kyoung Jin Hur ) , 하카마다미츠야스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9-16 ( 총 8 pages)
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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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일본해)를 건넜던 신(神)들

나가후지야스시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17-53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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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サノヲノ神は、『古事記』や『日本書紀』ではイザナキ、イザナミの間に生まれたアマテラスの弟神ということになっている。いわば記紀がつくりあげた王權の神統譜に組みこまれた神であった。ところが『日本書紀』の「一書」においては、また別の傳承を語っている。スサノヲとその子神であるイソタケルは、多くの木種を持って新羅の國の「曾尸茂梨」に渡ったけれども、そこには蒔かずに再び出雲に歸り、ヤマトの地にこれを蒔いたというのである。そして興味深いのは、新羅國から歸って來るときに「埴土」で舟を造り、それに乘って태ってきたという傳承である。これまでの多くの硏究は、もっぱら新羅の國の「曾尸茂梨」がどこかといった比定地の考察に目をむけられ、なぜスサノヲが「埴土」の舟を造ったのかを問題することはなかった。神話の上での荒唐無稽な言說と考えたからである。しかし神話は、たとえ荒唐無稽な、現實にありそうもない話であっても、そこにある意味が埋めこまれているのが普通である。この一連のスサノヲの話は、過去の不幸な歷史の中で、日鮮同祖論者に利用され、神功皇后の話とともに評判がよくない。このために韓國においても注目されることは少なかったといってよい。本論は、「埴土」の舟に注目し、この神話のもつ眞の意味について考えたい。

신화와 꿈: 일한 비교를 통해

도노마에아키코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55-86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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洋の東西を問わず、夢とは現實と異なるもう一つの世界であり、神話そのものであると考えられてきた。あるいは日本の記紀神話では、夢の中で神の託宣があることから、夢は神の世界と現實を繫ぐ交信回路であり、國家にかかわるような公的なものとされてきた。夢は神によって與えられた啓示であれば近い將來の現實ともなり、神話の時空と現在が遠い過去で交差しているように、現實とはひと續のものであった。例えば『遠野物語』第二話において、夢という言葉が語られた途端私たちは神話世界へと誘われていく。そのような神話表現として夢は語られていた。また、夢は盜まれることによって吉夢に轉じたとも考えられることから、「交換」によって價値を增す機能を夢に見出すことができる。それは『三國遺事』卷一紀異第一で語られる、武烈王妃文姬の買夢にも當てはまる。姉から夢を買うことで后の座を得たのは、ひとところにとどまるのではなく交換されたことによって夢の價値が增したからであり、そのような意味で夢とは神から與えられた「贈與」(Gift)でもあった。價値を增していく「交換」には世界を創造する力が秘められていて、『三國遺事』の夢中の放尿にもそのような力が暗示されていた。都を滿たしてしまうほどの放尿が意味するのは洪水であり、洪水とは世界を始原に태すことであれば、ここで夢に託されているのは始原の創造である。それゆえに夢を語ることにおいて私たちは始原の時空に立ち會うことにもなるのである。そしてその始原の時空を出現させることができる夢は、『日本書紀』崇神天皇條で語られる皇位繼承譚の中では王の神聖さを保證するものとして機能していた。武烈王にしても崇神天皇にしても、彼らがある意味で始祖となる王であるがゆえに始原と繫がっていることを示さねばならず、夢をめぐる言說は王權をささえるものともなっていった。神話とは現實世界を支える「異界」のことであり、その神話の語りを手に入れるために夢は語られていたのである。

헤이안[平安] 불교의 신라묘진

하카마타미츠야스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87-128 ( 총 42 pages)
1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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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天台宗寺門派の本山である園城寺(三井寺)には、新羅明神という神が祀られている。園城寺の守護神とされるこの神は、寺門派の開祖であり、同寺の再興者である入唐僧円珍の歸國の船中に現れ、後に円珍を園城寺の地に導いた神と傳えられている。しかし、円珍が新羅明神を信仰した事實は認められず、後世に円珍に付會された傳承と見られている。このため、正體不明な新羅明神は、對立する円仁一派の赤山明神に對抗して創祀されたものであろうと論じられてきた。だが、記錄の上では、新羅明神が赤山明神よりも早くから朝廷の敍位に與っており、むしろ、赤山明神の方が新羅明神に對抗した形である。從って、新羅明神の起源については、赤山明神と切り離して獨自に考える必要がある。園城寺の由來に關する最も古い記述は、1062年に記された『園城寺龍華會緣起』である。それは新羅明神の海上出現譚、大友氏の氏寺創建傳承、敎待說話という三つの要素から構成されている。それらに共通して見られるのは彌勒信仰であるが、特に敎待說話において敎待が「彌勒之化身」として語られていることは特筆される。日本の佛敎說話では、觀音が化身する話が多く、彌勒が生身の人間に化身するという信仰は特異なものだからである。それならば、彌勒の化身という發想はどこから齎されたのであろうか。それは、6、7世紀における新羅の彌勒信仰の影響を受けたものと考えられる。新羅の彌勒信仰は、花郞と結びつくことで獨自の展開を遂げた。花郞の制度は、新羅の眞興王の37年(576)に定められたが、『三國遺事』には次の眞智王の代に未尸郞という傳說的な花郞が出現したことを記している。その未尸郞の說話では、未尸郞が「彌勒仙花」と呼ばれる彌勒の化身として描かれており、日本の敎待說話との類似性が注目される。この未尸郞の說話には、「彌勒仙花」を乞い求めた眞慈という僧、水源寺の門前で眞慈を待っていた少年(未尸郞)、少年が「彌勒仙花」であることを敎える「山靈」(老人)が登場する。これを敎待說話と比較するならば、眞慈は円珍に、「彌勒仙花」は敎待に、「山靈」は新羅明神に、それぞれ對應するものとして把握される。卽ち、新羅明神は、本來は山頂や麓の水源地に出現する山神であったと推察される。天から山に降臨する子神とその母神の信仰が、「彌勒之化身」と護法神の關係に變化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しかしながら、園城寺の由來傳承では、新羅明神は、山ではなく、海に出現している。また、「彌勒之化身」である敎待は、少年ではなく、老僧として表現されている。このことからも、直接的に未尸郞の說話と重なるのではなく、別な要素によって變容されていると考えるべきである。卽ち、彌勒の護法神的性格を帶びた山神が、更に日本神話の鹽土老翁と習合することで新羅明神が誕生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これは、新羅との關係が惡化した10世紀における、神功皇后神話の再生とも深く關係するものであろう。神功皇后神話は、流離する母子神の信仰を基盤とするが、韓半島の佛敎の影響を强く受けた八幡信仰は、9世紀から10世紀にかけて神功皇后神話と結びつくことで、急激に護國神的武鬪性を强めていった。これと同樣の現象は、「彌勒之化身」を語り繼いできた園城寺の傳承についても起こり得たであろう。園城寺の傳承は、円珍を由來譚に取り입む中で、彌勒の護法神を円珍の護法神へと變換し、更に円珍と護法神の關係を神功皇后と鹽土老翁に重ねることで、新羅明神を護法神から護國神へと据え直していったのである。新羅明神という異國の神の名も、新羅の神を祀ることで新羅の外患を調伏することを期したからであると考えられる。その意味では、新羅明神は、円仁派の赤山明神に對抗する神などではなかった。新羅明神は、新羅の山神に起源を持ちながら、自らの故鄕である新羅の神神に對抗するという矛盾した役割を負わされた神である。それは、外來の神を日本の護國の神として佛敎的に習合していく平安佛敎の國風化の中で、新たに生み出された神であったとも言えるだろう。

구양수(歐陽修) 산문의 고려(高麗) 유입과 전파

김춘란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129-160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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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에서 한문학의 위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삼국시대부터 유입된 한문학은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조선의 수많은 문인들에게 필수적인 문화생활로 여겨져 왔다. 특히 중국의 당송고문(唐宋古文)과 진한고문(秦漢古文)은 조선 사대부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당송 팔대가인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이 조선 사대부 문인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구양수는 여말선초(麗末鮮初)에 구소(歐蘇)와 한구(韓歐)의 형태로 조선 문인들의 의식구조에 자리 잡으면서 구양수 산문작품과 그 사상은 점차 전파되고 확산되어 고문과 조선 성리학이 형성, 발전, 정착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주체의 내재적인 덕(德)을 수양하여 전반적인 국면을 돌보는 구양수의 사상 및 실천적 행동은 이 시기 안정된 봉건통치 질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조선 성리학이 배태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 고려후기 구양수 산문의 유입과 전파를 살펴봄으로써 고문과 성리학의 분리되기 전 조선 문인들의 구양수 산문의 수용 양상과 그 흐름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다.

연민(淵民) 이가원(李家源)의 인물전(人物傳) 일고(一考)

안장리 ( Jang Li An )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161-191 ( 총 31 pages)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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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연민의 『韓國名人小傳』과 『李朝名人列傳』 등 인물전을 통해 역사서 기술의 기반이 되는 역사관과 인간관을 고찰하였다. 연민의 인물전은 인물사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669명이라는 많은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역사 전개에 있어서 다양한 계층, 다양한 역량의 필요성을 인정한 연민의 역사관 때문으로 여겨진다. 연민 인물전은 개개 인간의 총체적인 면모를 밝히기 보다는 역사적 상황에서의 거취를 중시하고 있다. 연민의 인물전에서 정몽주는 대의를 위해 순절한 인물로, 정도전은 고려를 배반하고 나아가 조선에서도 반역의 기치를 올린 출세주의자로 부각되어 있다. 연민은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혈통과 학통을 연계지어 역량을 평가하였고, 성리학·문장·벼슬 등 당대의 잣대를 인물 평가의 기본으로 삼았지만 미천한 신분의 중인, 하찮게 여겨지던 예술가 그리고 반역자의 경우도 과학이나 문장 등에 있어서 실력이 뛰어나고 훌륭한 작품을 남겼거나 세상의 부조리를 개혁하려 하였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인물로 평가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국애족의 거취에 최상의 가치를 두었다. 본고에서는 연민의 인물전이 신분이 높은 기득권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 즉, 사화와 당쟁으로 점철된 역사, 정치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안용복과 같은 미천한 애국자가 설 자리가 없다고 판단하여 시작되었음을 밝혔다. 연민은 인재가 쓰이지 못하는 시대의 부조리함을 비판하고 우리나라가 인재가 많은 나라라는 자부심을 그려냈는데 이는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아울러 본고에서는 연민이 인물전에서 野史에 전하는 다양한 인물과 그들의 이면적 모습을 흥미있게 소개하였음을 밝혔다.

일본 에도[江戶]시대의 세책집

이윤석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193-221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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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이 아래에서는 에도시대라고 함) 카시혼야[貸本屋]에 대한 것이지만, 에도시대 세책집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제까지 日本에서 세책집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또 에도시대 세책집은 시기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일본 연구자들의 글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는 조선후기 서울에서 성행한 貰冊집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조선후기 貰冊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선후기 세책집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본의 세책집에 대한 연구를 살펴봄으로써 조선후기 세책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영업을 貰冊業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영업형태는 과거 세계 여러 나라에 있었고, 현재도 이러한 영업형태가 있는 나라도 있다. 필자는 18∼9세기의 유럽, 일본, 조선 등에 세책집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 여러 나라의 세책집의 양상을 연구해서 그 보편적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면, 조선후기 세책집의 연구에 이 보편적 구조를 원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세책집에 대한 연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게 중요한 연구분야는 아닌 것 같다. 대체로 도서관이나 독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연구에 부수적으로 세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어떤 경로를 통해 독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가 하는 것이 문학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가 된다면, 세책집에 대한 연구도 문학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본고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에도시대 세책집에 대한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도시대 세책집의 전개를 17세기, 18세기, 19세기로 나누어서 본 것이다.

연민학술상 수상 강연 : 연민선생의 문학연구방법론에 관한 규견(窺見)

심경호 ( Kyung Ho Sim )
연민학회|연민학지  17권 0호, 2012 pp. 223-248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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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문학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문학과 한국학(국학)의 한 분과를 이루면서 지적 고유성과 보편적 가치관을 지닌 주체를 확립해 가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 한학이 문헌학의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의리학(義理學)을 중시했던 소중한 경험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한국한문학사』와 『조선문학사』(한문학부문)을 중심으로 연민선생의 문학연구방법론에 관한 규견(窺見)을 밝히고 그 연구방법이 지닌 계도적(啓導的) 가치를 논하였다. 『한국한문학사』와 『조선문학사』(한문학 부문)의 서술 원칙과 문학연구방법에 대해서는 ① 민족문학으로서의 한문학 위상 정립 ② 춘추필법과 유가적 민족주의사관 ③ 전통 한학의 근대적 접목 ④ 한국한문학사 서술 범위와 방법의 제시 ⑤ 대가비평(大家批評)의 방식 ⑥ 전근대 시기의 문체분류법의 활용 등의 특징을 제시하였다. 한편 『한국한문학사』와 『조선문학사』(한문학 부문)가 새 연구영역을 계도한 측면에 관해서는 ① 문체 실험에 관한 고찰 ② 조선식 한문문체의 발전사 연구 ③ 시문 발달과 시대적 상황 및 풍조와의 연계성 고찰 ④ 주제 개발의 방향성 제시 ⑤ 단대사(斷代史)별 연구의 촉구 ⑥ 한국 한문문체의 정리 요청 등을 거론하였다. 『한국한문학사』와 『조선문학사』 이후로 한문학 분야에서는 많은 논저들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한문학사』와 『조선문학사』는 매우 풍부한 자료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선독(善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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