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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ry Criticism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762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5권 0호 (2017)

윤동주의 현실인식과 시적 응전 연구

곽효환 ( Kwak Hyo-hwan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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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에 대해 우리 문학사는 “일제 암흑기의 한국시를 지킨 정신의 횃불이 된 시인”이라고 그 위치를 매김하고 있다. 독자들 또한 그를 `자기를 성찰하고 실천을 꿈꾸었던 시인`, 또는 `자기성찰의 시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는 윤동주 시세계의 주요한 특징이 `자기성찰`에 있으며 나아가 이를 통해 지향하는 세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윤동주의 시세계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혹은 역사적 상황이나 현실을 시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시적으로 응전하였는가를 고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의 그늘이 깊을수록 시인의 경험과 인식은 역사적 변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고 그것에 대한 시인의 응전이 빚어내는 의미망은 한 시인의 시세계를 객관적이고 가치 있게 규명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윤동주 스스로가 갈무리한 자필 시선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담긴 열아홉 편을 그의 정선(精選)으로 보고 여기에 이들 작품 앞뒤로 미학적 혹은 의미론적으로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들을 포함시켜 시인의 자기성찰 궤적과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살폈다. 그 결과 고통스럽고 참혹한 현실에 대한 윤동주의 인식과 여기서 빚어지는 시적 응전이 기본적으로는 기독교적 윤리의식과 절대적인 양심으로 표현되는 형이상학적 태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그 깊이를 더하면서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적극적인 의지의 발현으로 나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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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에서 작품 밖의 `나`가 공동체(대타자)의 응시가 개입된 눈으로 작품 안의 `나를` 보는 경우, 김소월 시에는 주격 `나(I)`와 목적격 `나를(me)` 사이의 `저만치`의 거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경우 `나`는 응시의 기준에 이르지 못하는 `나를`의 결여를 성찰한다. 그리고 `나를`의 결여를 통해 `나`는 슬픈 기분의 멜랑콜리에 처한 존재로 현현된다. 김소월 시의 멜랑콜리는 상실한 대상에서 상실 그 자체에 몰입하는 `나를`을 통해, `님`을 소유 불가능한 상태 자체로 소유하는 하나의 시적 전략이다. 김소월 시 `나`가 가진 새로움은 이후 이한직과 김종삼 시를 통해서 전면화되며 한국 현대시사의 새로운 맥락을 형성한다. 이한직과 김종삼의 시는 모더니즘적인 것으로 전통 서정시를 대표하는 김소월 시와는 별 연관성이 없던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이한직과 김종삼 시의 `나`가, 상실된 대상이 약호화된 슬픈 기분 즉, 상실의 이유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슬픈 기분 자체를 자기 준거로 삼는 멜랑콜리적 존재라는 점에서 김소월 시의 `나`와 상호성을 가진다. 이한직 시의 `나`는 `나를`을 투명하게 제시한다. `나를`은 하나의 독립된 부분 현상으로만 제시된다. 그럼으로써 `나를`의 부분 현상 그 자체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그런데 `나를`에게는 항상 설명되지 않는 애매한 결여의 부분이 남는다. 애매한 결여를 통해 `나`는 자기 자신에게로 철회되는 성찰을 지속 반복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기를 보존하고 자기를 구성한다. 반면에 김종삼 시의 `나`는 `나를`의 결여에 대한 성찰을, 결여를 대리로 보충하는 환상으로 연결시킨다. `나`는 죽음(대타자)의 응시가 개입된 `나`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의 결여를 성찰한다. 그리고 이는 `나`가 환상으로의 `나를`의 죽음, 즉 죽음의 유사물을 현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진술 주체 `나`와 대상 `나를` 간의 거리가 작용하는 정도, 그리고 여기에서 발현하는 멜랑콜리의 정도가 성찰의 깊이와 맞물리며 변주된다. 이는 김소월 시 `나`의 멜랑콜리적 슬픈 기분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전통적 서정시와 모더니즘 시의 구분을 넘어서며 그것을 횡단하며 형성되는 새로운 시사적 맥락을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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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소월 시에 나타난 아토포스적 타자성을 `혼`의 타자성을 중심으로 이해, 문학을 순수한 문학내적인 자발성이 아니라 담론적 대상으로 정립, 이를 민족개조라는 사회적 자장의 영역에서 다룬 이광수의 계몽주의 문학과 대비적으로 고찰함으로써 친일과는 다른 윤리적 선택을 고수하였던 소월 시의 특성을 아토포스적 타자성으로서 사랑의 시학으로 이해하였다. 이때 소통의 맥락에서 소월의 시는 주체 욕망에 영합하지 않는 `혼`의 타자성을 통하여 계몽주의가 발화하는 소통의 정치화나 서구 사조 주의에 의해 유입된 낭만적 주체의 나르시시즘적 욕망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월은 시「초혼」에서 보여지 듯 단순히 대상을 호명하는 행위와는 다른 타자의 부름의 소리, 즉 혼의 소리에 응대하는 자로서 화자와 청자라는 주체의 이분법적 소통의 경계를 역행하는 이질적인 목소리를 통해 소통의 정치화에 의한 담론 수행을 거부, 시적 언어의 주술성을 의미하는 `혼`의 타자성인 시혼(詩魂)을 통해 동일자의 언어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 아토포스적 타자성을 노래하였다. 소월 시의 주술적 성격은 이러한 맥락에서 아토포스적 타자성이 비언어적인 특성을 갖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소월의 시는 계몽적 사랑관과 변별되는 지점에서 이별과 죽음을 가로지르는 사랑의 연속성을 통해 전쟁담론과 계몽담론의 주체 욕망의 세계를 부정, 자아의 동일성 욕망을 중단시키는 계기로서 사랑을 노래하였다. 소월의 시가 님과의 만남보다 사랑하던 님과의 이별을 주제로 하는 시를 창작한 것은 과잉된 사랑의 열병을 찬양하는 나르시시즘적 주체의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세계를 중단시키는 존재의 사건으로 사랑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월의 시에서 사랑의 힘을 통해 님과의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합일이나 현실적인 가능태로서의 결합을 형상화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성을 질식시켜버리는 주체의 소유욕망을 인식, 이러한 계기를 공백으로서 타자성의 근원거리-시「산유화」-를 통해 부정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푸코가 생권력으로 지칭한 18세기 이래 특수한 권력 체제인 헤테로토피아적인 식민 공간이 권력의 공간화를 의미한다고 할 때, 바로 이러한 권력의 헤테로토피아들은 계몽의 커뮤니케이션, 즉 권력 담론에 의해 재생산되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내선 일체와 대동아공영의 논리는 환상과 배제의 원리로서 근대 문명 공리를 통해 조선에 헤테로토피아적인 식민지를 건설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문명 공리를 통해 근대=주체=문명=아버지=일본제국주의=합리성과 반근대=소외=낙후=고아=조선인=비합리성의 도식을 구축, 일본은 조선 뿐 아니라 동아시아 공간을 헤테로토피아적인 식민 공간으로 재배치함으로써 조선의 영토 뿐 아니라 역사 및 문화를 왜곡·날조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근대에 대한 환상 속에서 일본은 속세의 권력으로서 제국주의 국가 권력을 천황 폐하가 상징하는 천상의 권력 모델과 뒤섞음으로써 초월적인 권력으로서 아감벤이 지적한 환속화의 권력을 통해 조선 뿐 아니라 중국을 포함한 대동아 지형도를 재구축하였다. 이때 소월의 시는 헤테로토피아와 같은 주체의 공간화 개념을 폐지하는 아토피아의 부정성을 통해 상실된 고향의 장소성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공간이 권력의 특권적인 장소로서 기능한다고 할 때, 1920년대 식민공간에 거주하던 소월에게 `고향`과 서울의 공간성은 식민담론을 통해 공간을 재배치하고, 근대 미학화의 담론을 통해 전통을 전근대적인 것에서 낙후된 것으로 평가절하함으로써 조선은 계몽의 조건에서 비위생적이고 낙후된 부정적인 식민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소월의 시「산」, 「朔州龜成」, 「故鄕」등 여러 시편들에서 `不歸`의 상황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고향`에 대한 천착을 보이는 것은 소월이 낙후된 공간이라 할지라도 `고향`이야말로 영원한 존재의 기반을 의미하는 것이라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토피아의 부정성으로서 소월 시에 나타난 `고향`의 장소성을 이해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문명의 위치에서 용인된 생존을 위한 삶이 아니라, 소월의 시가 생명의 기원으로서 `고향`의 복원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경성`이라는 지명이 표방하듯 식민지 조선의 모든 공간은 헤테로토피아의 무한한 주체 권력의 자장 안으로 편입될 위기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식민 자본주의는 돈을 통해 경제적 법칙이 강제하는 동일성의 지옥 안으로 삶의 모든 차이와 이질성을 제거하고 평준화하는 주체 권력의 또 다른 자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소월은 시를 통해 주체의 공간화와 식민 자본주의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저항으로써 생활의 자유- 시「옷과 밥과 자유」-를 염원함으로써, 생활의 실천으로서 자유를 삶의 영역에 실현하고자 하였다. 비록 주체의 공간화 속에서 식민 자본주의의 자장 안으로 흡수될 위기에 처할 일이지만, 아토피아의 부정성을 통해 소월의 시는 생존의 위기 속에서 계몽 주체의 긍정성의 요구를 거부하는 숭고의 부정성을 통해 저항으로서 시적 의의를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월의 시는 계몽과 제국주의 전쟁욕망이 내세운 주체의 공간화와 소유욕망을 부정하고 아토포스적 타자성으로서 사랑의 시학을 통하여 에로스의 정치로서 저항의 시적 의의를 지닌다. 나아가 자본주의와 포르노에 의해 성애화된 사랑을 경험하게 된 오늘날, 소비의 대상으로서 헤테로토피아적인 주체의 긍정성만이 전유될 수밖에 없게 된 위기 속에서 타자성의 위기야말로 에로스의 종말을 초래한 궁극적인 원인이라고 할 때, 아토포스적 타자성으로서 사랑을 노래한 소월의 시는 현대적 의미에서도 그 시사적 의의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김소월 시의 민속적 상상력

최정숙 ( Choi Jeong-suk )
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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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은 한 나라의 기층문화이며 오랜 시간을 지키며 전승되어 온 살아있는 민중의 영혼이며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그대로 담겨있는 정신문화이다. 이러한 민속적 소재를 작품으로 형상화한 소월의 시에서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시대에 우리의 얼을 지키려는 민족자존 의식이 있었다. 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풍속이 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현실 속에서 식민지적 근대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띤다. 일제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와 풍습을 전근대성, 비생산성, 비문명성이라는 이유로 배척하였다. 고유한 민간 전통을 경찰이 관리하게 함으로써 독자적인 사상과 문화전통을 사회질서의 차원에서 통제의 대상으로 만든 뒤 지배적인 일본문화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김소월은 시에서 민속 수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토적인 소재나 민담적인 배경 등과 어울림으로써 더욱 민족적. 민중적인 호소력을 유발하였다. 그 구체적인 시적 형상화로 죽음의식이나 전통적인 시간의식을 표현하여 시에서 민속적인 정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라져 가는 민속적 소재를 통해 전통을 계승. 유지하려는 의지를 잘 표현하였다. 김소월 시에 표현된 민속적 상상력의 갈래는 다음과 같다. 태양의 순환과 절기, 그리고 넋맞이와 닭의 상징성, 칠성제와 죽음의 상징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전통적인 풍습에 따른 체험은 동일한 문화와 풍습을 공유하는 집단의 내적인 집단 무의식을 전제로 한다. 전통적인 시간의식은 인간존재에 대한 성찰의 의미도 더불어 지니며, 인간 존재의 내면화를 표방한다. 풍습에 의해 체험된 시간은 동일한 문화와 풍습을 공유하는 집단의 내적인 교감을 전제로 한다. 전통적인 시간의식에 내재한 변화는 태양의 순환과 계절의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이러한 변화는 인간존재의 무상성을 인식하게 하며 그것을 통해 자연과 인간, 동일자와 타자의 경계를 지우고 초월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사유를 열어준다. 넋맞이 라는 민속적 상상력에서는 죽음과 저승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민요와 같은 전통시가의 율조를 활용하여 민속적인 정감과 어우러져 민족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다. 칠성제와 죽음의 상징성에서는 님을 향한 그리움이 저승 세계와 더불어 부활의 영원성으로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민족과 시대를 배경으로 그 역경을 전통과 민속적 리듬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우리 것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민족의 정한을 전통적 정서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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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광부·간호여성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과 가치평가에는 그들이 희생자라는 인식이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정치적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1960-70년대 국가주도형 산업화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파독 광부·간호여성은 조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희생한 인물들로 인식된다. 반면 급속한 산업화가 노동자와 농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파독 광부·간호여성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이해한다. 본 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분석하려는 소설 정도상의 「푸른 방」과 변소영의 「거의 맞음」은 한국인들에게 뚜렷하게 자리 잡은 파독 광부·간호여성들에 대한 인식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다. 정도상의 소설「푸른 방」은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역사의 희생자가 되어 온 민중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파독 광부·간호여성 출신 재독동포 부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며, 파독 광부·간호여성에 대한 한국인의 정형화된 인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를 의미화 한다. 그 결과 그들의 현재 삶은 재제되고, 과거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미래 구상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반면 변소영의 「거의 맞음」은 한국인의 기억이나 인식들, 특히 「푸른 방」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파독 광부·간호여성 출신 재독동포들과 그들의 가족 이야기를 노동과 일상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거의 맞음」은 그들의 삶이 있게 한 과거가 배제된 채 현재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파독노동자 출신 한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한계를 보여준다. 정도상, 변소영의 두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각각 파독광부 간호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의의와 한계를 동시에 목격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의의와 한계에 작가를 지배하는 집단기억 유무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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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에서 `비극성`은 인간의 불가피한 고통에서 얻는 비극적 기쁨의 미학으로 나타나며, 고통을 초월하기 위해 고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현대 희곡사에서 `비극성`에 대한 논의는 그 중요성에 비해 부족한 실정이며, 구체적인 논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에 본고는 한국 현대 희곡에서의 `비극성`이 발현되는 양상을 토속적 특징을 지닌 작품을 중심으로 갈등구조와 제의적 요소를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로컬리즘의 특성을 지닌 사실주의 희곡을 대표하는 차범석의 「산불」과 천승세의 「만선」을 중심으로 `비극성`의 발현 양상을 살펴보고, 두 번째 장에서는 샤머니즘을 수용한 작품인 오태석의 「백마강 달밤에」와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을 중심으로 제례의식을 통한 `비극성`의 표출 양상을 고찰하였다. 차범석의 「산불」과 천승세의 「만선」은 1950년대 이후 극도로 피폐해진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과 그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민족들의 애환과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두 작품은 모두 해방 이후 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농어촌 사람들의 삶을 충실히 반영한 로컬리즘의 토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두 작품에서 농어촌의 배경은 인물들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산불」에서는 삶의 터전인 뒷산의 대밭이 불에 타면서 비극성이 강조되며, 「만선」에서는 마지막 남은 아들을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에서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이처럼 두 작품은 농어촌이라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갈등구조를 통해 `비극성`이 표출되는 양상을 보인다. 오태석의 「백마강 달밤에」와 이윤택의 「문제적 인간 연산」은 작품에서 `굿`을 활용하여 비극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샤머니즘의 특징을 갖는다. 역사극이면서도 조상신을 모시는 무속제의의 굿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작품은 제례의식을 통해 비극성을 표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작품에서 제례의식인 굿은 중요한 모티프로 활용되며, `비극성`을 표출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현대 희곡의 `비극성`은 토속적 풍속을 그린 로컬리즘과 토속적 신앙형태인 샤머니즘을 수용한 작품에서 한국 희곡의 특징적인 요소와 함께 발현되고 있다. 사실주의 희곡의 로컬리즘과 토속적 신앙형태인 샤머니즘을 모티프로 한 반사실주의 희곡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비극성`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 희곡의 특징적인 요소를 함께 고찰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조소혜 드라마 연구 - 신파적 비애와 보수적 미덕의 상응 -

이다운 ( Lee Da-un )
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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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텔레비전드라마 작가인 조소혜의 작품세계와 극작술을 분석하고,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소혜의 작품이 대중에게 호응을 받은 원인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1984년 텔레비전드라마 작가로 데뷔한 조소혜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희망> 그리고 <억새바람> 등의 작품을 통해 사랑과 인생에 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었고, 서른 편 이상의 단막극을 집필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주말드라마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전성기를 맞이한 조소혜는 이후 다섯 편의 주말드라마를 연이어 창작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가게 된다. 그중 <첫사랑>은 한국 텔레비전드라마의 시청률 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조소혜는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텔레비전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며 유의미한 자취를 남겼지만 그의 작품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부재한 상황이다. 그러한 까닭에 조소혜의 작품은 언론이나 대중에 의해 단편적인 회상 수준으로만 논의되고 있다. 따라서 본고는 텔레비전드라마 작가로서 유의미한 흔적을 남긴 조소혜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조소혜가 추구했던 세계관과 극작술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소혜는 누구나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거나 인생은 아름답고 희망적이라는 낭만적 판타지를 제시하기보다, 벗어나기 힘든 삶의 고통과 무게를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조소혜는 빈곤의 무대화를 통해 한국인의 신파적 정서를 자극했으며 순정이나 순수, 이타와 희생 같은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미덕을 강조하는 세계관을 보여주었다. 또한 조소혜가 추구했던 비애의 정황과 보수적 세계관은 위로와 카타르시스 그리고 연민과 공감을 제공하며 당대 대중의 호응과 지지를 얻었다.

현대시와 환유

권혁웅 ( Kwon Hyuk-woong )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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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환유가 생성되는 원리에 맞추어, 현대시에서 환유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그동안 환유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환유 자체의 개념과 영역에서 벗어나서 현대시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우리 시사에서 환유는 (제유의 공동체적 상상력과 결합하여) 청자에게 직정적으로 호소하는 수사법으로 활용되었으며, 선동성과 관습성, 청자지향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만 환유를 정의하면, 환유시는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시라는 미학적 열등품의 혐의를 벗을 수가 없게 된다. 환유는 은유와 제유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유비의 지평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유비 체계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환유가 유비의 부산물로 끊임없이 생겨난다. 한 시대의 언어적, 문화적, 상상적 지평이 유비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은유와 제유로 이루어진 체계도 변화하며, 그에 연동된 환유 역시 생성적인 비유로 개신(改新)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환유는 상투성의 결과이거나 타락한 비유가 아니라, 한 시대나 사회의 언어를 (그 언어가 기반하는 유비 체계 자체를 겨냥함으로써) 새롭게 만드는 의미 생산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사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유비의 지평 전체가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재래의 선동적, 청자지향적 성격을 넘어선 새로운 환유시가 산출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환유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부여를 통해 환유시의 지평이 확장되고, 비유 일반의 관계가 재검토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의 <문학> 교과서 수록 양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김영애 ( Kim Young-ae ) , 정재림 ( Jeong Jai-rim )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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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을 중심으로 텍스트의 정전화 과정과 문학교육적 가치에 대해 고찰하고, 현행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수록 양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문학> 교과서에 반복 수록되면서 교과서 정전의 한 편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문학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주제론이나 반영론의 차원에 한정되어 있다. 이 논문은, 이 작품에 대한 형식론을 문학교육에 반영하여 교과서 정전으로서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지닌 문학적 가치를 온전하게 평가하고 문학교육적 가치를 제고하고자 한다. 또한 이 논문은 <문학> 교과서 수록 과정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학적, 문학사적 성취가 온당히 반영되고 있지 못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특히, 부분 발췌 수록과 학습 목표, 학습 활동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교과서 수록 양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교재 선정의 차원, 교수법의 차원과 관련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학 정전으로서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교재 선정 및 다양화 차원은 곧 정전의 다양화, 새로운 정전의 발굴을 의미하며, 이는 궁극적으로 기존 정전의 삭제 혹은 교체로 연결된다. 최근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수록되기 시작한 것은 교과서 생산과 편집의 체계나 논리가 변모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기존 정전에 대한 반성과 교과서 정전의 다양화를 꾀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다. 또한 교수법의 차원에서 `읽기의 세련화와 다양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주제론에 치우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대한 교수법이 내용과 형식의 균형을 통해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백석정 신교의 국문시가에 나타난 담론 특성

육민수 ( Yook Min-s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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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정 신교(1641~1703)는 2편의 가사 작품과 22수의 시조 작품, 그리고 3편의 한시 작품을 남긴 인물로서 호서 지방을 대표할 수 있는 풍류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남긴 적지 않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문학적 특징을 논한 연구는 없는 형편이다. 그 이유는 신교 작품의 미적 수준이 탁월하다고 평할 만하지 못한 점이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문학사의 주요 작품에만 관심을 갖는 연구자들의 연구 경향도 또 다른 원인이 된다. 백석정 신교의 작품은 세 가지 문학적 특징이 있다. 첫째, 귀거래(歸去來)에 대한 강한 지향을 보였다. 신교는 10년 가까운 관직 생활을 했는데 이 기간 중, 혹은 관직 생활을 마친 직후 귀거래를 바라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창작하였다. 22수의 시조 작품 중에서 14수의 작품에서 귀거래 의식이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신교는 일반적 차원에서의 귀거래 의식뿐만 아니라 다소 독특한 차원에서의 귀거래 의식을 보여준다. 고향이 아닌 광주 임경정으로의 귀거래 의식이 그것인데, 이는 관직 생활에서 물러난 지 1년 안팎밖에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 강호 자연에 대한 지향과 정치적, 사회적 현실에 대한 지향이 착종되어 나타난 것이다. 둘째, 도도풍미(陶陶風味)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도도(陶陶)`는『시경집전』에 따르면 `화락지모(和樂之貌)`이다. 따라서 신교가 지향한 도도 풍미는 `화평하고 즐거운 풍류`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순환론적 자연관과 순환론적 세계관에 기반을 둔 풍류 의식이다. 신교는 자연의 순환과 세계의 순환이 화평하고 즐거운 세계를 구현할 요체라는 인식 하에 山水와 거문고 등의 테마를 중심으로 이러한 내용을 작품에 구현하고자 하였다. 셋째, 신교 작품은 선행 문학담론을 많이 활용하였다. 정극인「상춘곡」의 “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生涯 엇더ㅎㆍㄴ고”, 김상헌의 “가노라 三角山아 다시 보쟈 漢江水아”, 이순신의 “閑山셤 ㄷㆍㄹ ㅂㆍㄹ근 밤의 戍樓에 혼자 안자” 등 다수의 선행 문학담론을 차용하여 자신의 작품에 변용하여 사용하였다. 선행 작품 차용의 방식은 그대로의 모방보다는 자기화한 변용의 경우가 많았는데 대표적으로는 역사적 맥락의 강호시가화(江湖詩歌化)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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