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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of Korean Literary Criticism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226-7627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56권 0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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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1980년대 후반, 시대의식을 구체화 하며 시적 대상의 파괴와 해체를 통해 새로운 시적 전략을 모색하였다. 장정일의 네 번째 시집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은 1980년대를 마감하며 자신 및 글쓰기에 대한 성찰을 형상화해 낸 시집으로 장정일의 자기반영적 시세계를 고찰하는데 유의미하다. 평론「혹성 탈출: 8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나타나는 낭만주의 열망」에서 장정일은 1980년대 젊은 시인들이 “삶을 거대한 고문장으로 옳게 파악하기는 하였으나, 교신불능→진공관 속에서→성의 도피처→시한폭탄 등의 문제의 질곡과 맞서 부딪치면서 그러한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한 채 훌쩍 혹성탈출로 사라지는 모습”인 낭만주의적 도피의 한계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러한 지적에서 장정일이 1980년대 젊은 시인들의 시에 대한 대타 의식이 분명함을 주목할 수 있다. 1980년대 시인들이 갖고 있던 체제 방임 또는 방조에 대한 무거운 원조 의식이나 이데올로기의 억압성 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장정일은 남다른 시인의 서정으로 이 시대를 또 달리 표현해내었다. 특히 시집 『서울에서 보낸 3주일』 에서 장정일은 자신이 언급한 문제적 특성을 담아내고 있는 동시에 장정일만의 세계관으로 그러한 문제적 특성을 극복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현재의 허무를 심층적으로 밝히는 데 주력하며 그런 존재 상태를 내밀히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1980년대 시인들이 현상의 새로움에 무작정 함몰되어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1980년대 시인들에게 있어 ‘도시’는 불신과 타락으로 점철된 착취의 삶을 낳는 유토피아로 표상된다. 확실한 부재와 상실의, 끝없는 중얼거림의 상품화된 도시는 당시 유일한 텍스트가 되었다. 도시시에 언급되는 재즈와 팝송, 온갖 포르노물, 미국의 대중소설과 영화 등은 일탈과 자유의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장정일은 욕망의 대상이었던 도시 서울이 전망 부재임을 자각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가능성 없는 판타지였음을 인식하고 또 다른 판타지였던 성을 통해 현실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였다. 1980년대 시인들이 유토피아를 꿈꾸고 열망하는 만큼 그 배후에 숨겨진 현재 세계의 고통은 비례할 수밖에 없기에, 장정일은 시인들의 의식 세계를 낭만주의적 도피 열망으로 규정하고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자 한다. 해결할 수 있는 부분과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구별되어야 하기에 ‘낭만주의적 혹성 탈출’과 도피가 아닌 ‘신성한 것의 발견’은 구별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장정일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나름의 철저성을 가지고 응전하고 있으며 단순한 자기부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통해 구속받지 않는 자유의 실천을 감행하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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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국 현대소설에 나타난 ‘서울’의 이미지에 대한 연구이다. 문학사에서 서울을 테마로 한 작품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본 연구에서는 이 성과들을 토대로 1930대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에 드러난 ‘서울’의 이미지에 대해 살펴보고, 2014년에 발표된 손홍규의 장편소설 『서울』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와 소설, 그리고 작품 속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서울’은 문학 작품 속에서 시대별 역사와 문화, 사회 양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되어왔다. 특히 현대의 ‘서울’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면의 중심에 놓여 있으므로 ‘서울’의 문학적 재현양상과 소설 속 이미지를 통한 공간의 의미 고찰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 투영된 ‘서울’은 전후의 폐허와 재생의 이미지, 실존적 방황의 근거지, 차가운 도시적 이미지 등 역사와 사회적 사건들을 문학적으로 반영하여 특수한 형태를 띠기도 하고, 일상의 근거지로서 삶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등 다양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아울러 2000년대 이후 소설들에서는 고유명사로서의 ‘서울’과 대도시의 일반명사로서 ‘서울’의 모습이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소설 속 공간은 단순히 이야기가 일어나는 물리적 장소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시간성과 공간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문학이 담고 있는 공간의 표상은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재해석되고 상징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에서 공간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작품의 의미전달과 구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손홍규의 장편소설 『서울』에 나타난 ‘서울’은 왜 폐허가 되었는지 모르는 이해불가의 상황과 엄습하는 불안이 계속 사람들을 위협하는, 탈출하고 싶은 도시이다. 그러나 동시에 ‘서울’은 다시 되찾고 싶은 ‘사람들이 잊어버린 시(詩)’이며, 기형적인 존재이거나 태어나기 전에 생명을 잃을지라도 새 생명의 잉태를 꿈꾸는 희망의 알레고리로 구현된다. 이것은 현실의 ‘서울’이 삭막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이 없는 폐허의 도시로 변해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문학을 통한 구원을 갈망하는 예술적 지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비극적이나 소설 『서울』은 여전히 우리가 바라는 인간다움과 관계 지향, 삶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남긴다.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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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이뤄진다. 인간 삶을 구현하는 소설에서 시공간은 그 필수 구성 요소이다. 장소로서 서울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울은 고궁과 근대화, 현대화의 첨단이 공존한 곳이며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하고 빈부의 격차도 심한 만큼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문학작품에서 서울을 대상으로 공간 스토리텔링을 하는 작가는 다양성 중 일부분을 포착하게 된다. 본고는 1920-30년대 여성 작가 김명순, 나혜석의 작품을 중심으로 여성 작가에 의한 서울의 이미지, 공간스토리텔링 양상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지방 출신 서울 활동 문인으로서 두 작가의 작품에서 서울 스토리텔링 양상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첫째, 종로구 중구에 국한된다. 둘째, 서울은 사교와 활동의 중심지로 그려진다. 셋째, 낯설고 불쾌한 시선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넷째, 어둠의 이미지가 전반적이다. 서울을 종로구 중구 위주, 교류의 장으로 그린 것은 당대 다른 남성 작가들과도 비슷한 양상이다. 서울 거리에 대한 낯설고 두렵고 불쾌한 시선의 묘사는 신여성에 대한 당대의 시선을 상징한다. 어둠의 강조는 강점 하 수도 서울의 복잡상과 그로 인한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암담한 심경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명순과 나혜석 작품에 나타난 서울 공간 스토리텔링 양상의 문제점은 서울의 구체적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장소가 갖는 역사적인 의미와 공간의 특징에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서울 문단을 장악했던 남성 작가들과 지방 출신 여성 작가들의 낙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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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가 한 사회의 지배적인 현상이 되기 위한 핵심 조건 중의 하나는 산업화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한국문학에서 도시소설 나아가 도시문학이 본격적으로 형성될 물적 기반은 1960년대와 좀 더 정확하게는 1970년대에 걸쳐 확립되었다. 박완서는 도시 소시민들과 중산층의 이중성과 위선에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반성적 자의식’의 단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1970년대 한국 문학에서 도시소설의 한 축을 차지하기에 충분하다. 박완서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대도시화로 인해 발생하는 지속적 도시경험이 인간의 삶의 양식과 가치관에 미치는 충격이 어떤 것인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박완서 도시소설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도시의 흉년』은 구획된 공간이 계급적 상징으로 작동하는 구도를 통해 도시의 개방성이 신기루에 지나지 않으며 오히려 폐쇄적 공간의 집합체로서 도시를 재규정한다. 이와 함께 70년대 서울이 보이지 않는 공간의 구획을 통해 계층적으로 구분되며 형성된 경계들은 그들의 삶의 방식을 구성하거나 재편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박완서는 급속도로 변모하고 있었던 70년대 서울의 삶은 모든 계층에게 각자의 이유로 힘든 것이었음을 일깨운다. 이와 함께 도시의 삶을 지탱해야 했던 사람들은 허위의식과 이중적인 태도를 통해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도시에서 겪는 좌절로 인한 자기파괴적 욕망에서 시달렸음을 보여줌으로써 당시 사람들에게 도시경험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형도 시에 나타난 내재적 유토피아 연구 - 이콘의 변용 양상을 중심으로 -

김수현 ( Kim Su-hyu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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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기형도 시에 나타난 내재적 유토피아의 양상을 이콘의 변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기형도의 시에서는 다양한 인칭과 주체가 드러난다. 즉, ‘나’, ‘김’, ‘그’ 등의 다양한 인칭과 주체의 등장은 일점원근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역원근법의 시선으로 세계를 통찰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이와 같은 관점은 기형도 시가 이분법적으로 삶과 죽음을 구분하기보다, ‘성(聖)’과 ‘속(俗)’이 혼재된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기형도 시에 나타난 다양한 인칭과 주체는 통시적 혹은 공시적 세계관의 혼합을 제시한다. 특히 기형도의 시 속에서 전복된 가족 양상은 현실적 인물을 변용된 성(聖) 가족의 모습으로 드러내어 ‘성’과 ‘속’이 혼재된 세계상을 보여준다. 즉, 기형도의 시에서 나타나는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의 표상으로 드러나며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병들고 무기력한 존재(전복된 신)로 드러난다. 결국 이와 같은 양상은 시적 주체인 ‘나’를 만물의 그리스도 즉, 우주적 그리스도의 표상인<판토크라토르 이콘>으로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시는 ‘성’과 ‘속’이 혼재하는 시·공간에서 침묵의 세계로 나아가는 양상을 보인다. 이때 주목할 것은 이 침묵의 시·공간이 신화적 세계는 물론 현실 세계를 반영하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 쓰기를 통해 내재적 유토피아의 혁명을 꿈꾸던 기형도 시인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박용철 시 연구 - ‘숭고’를 중심으로 -

이찬행 ( Lee Chan-hae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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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박용철의 시편에서 나타나는 숭고를 바라보고자 했다. 그간 박용철의 시에 대한 연구는 그의 시작(詩作) 활동을 ‘1930년대 시문학의 한 부분’으로 여기거나, 그의 시세계를 ‘그리움’과 ‘상실감’에서 비롯된 ‘한의 정서’로 규정해왔다. 특히 ‘한의 정서’의 경우에는 그의 시세계를 분석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활용됐으며, 그것은 시대적 상황에서 기인하거나 그의 상실의식을 대변한다고 여겨왔다. ‘한의 정서’는 도피방식으로써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문학작품을 분석하는 ‘한의 정서’는 화자가 처한 문제에 대한 진취적인 해결방식을 제시하지 못하고, 허무와 비애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을 작품에서 꺼낸다. 이는 작품의 의미와 화자의 정신을 제한한다. 그러므로 작품에 직관적으로 나타나는 감정의 층위를 넘어, 작품 자체에서 생산하는 새로운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가리키는 지향점을 찾을 수 있는 ‘숭고’의 관점으로 작품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진행됐던 박용철 시세계의 ‘한의 정서’에 대한 연구들은 그 자체로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임에는 분명하지만, 시대상황과 시인의 관계에서 벗어나 시 자체로서 새로운 의미를 바라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본고는 박용철의 시편을 ‘숭고’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그의 시가 ‘부정적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 상황과 감정을 뛰어넘어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박용철의 ‘의지의 발현’임을 확인하고자 했다. 박용철 시에서 나타나는 주된 정서는 ‘그리움’과 ‘상실감’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서의 근원은 자유의 박탈과 거대한 존재에서 기인하는 무력감이다. 시인은 작품에 이러한 상황과 감정을 기록하며, 억압된 화자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화자는 자유를 되찾거나 거대한 존재를 넘어서는 힘을 갖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을 찾기 위해 본고에서는 ‘숭고’의 관점으로 박용철의 시를 바라보고자 했다. ‘숭고’의 관점에서 시를 바라본다는 것은 시에 나타나는 ‘부정적 자세’가 긍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의 원천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시 분석이 시에 나타나는 ‘부정적 자세’와 ‘화자’의 관계 또는 ‘부정적 현실’과 ‘시인’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부정’의 반대급부를 찾아 ‘시인’ 또는 ‘화자’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는 방향을 설정하게 한다. 그러므로 작품을 분석함에 있어 ‘숭고’는 ‘한의 정서’와 같은 표면적인 감정의 표현을 파악하고 그것을 넘어 작품이 가리키는 지향점을 찾는 일이다. 즉 ‘숭고’로 시를 바라보는 일은 시와 화자 또는 현실과 시인을 더욱 깊게 파악하는 길이며, 작품의 ‘의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박용철의 시가 표면에 나타나는 ‘부정’을 넘어서려는 의지의 발현이었다는 것을 ‘숭고’의 관점에서 분석해보았다. 그리고 박용철의 시작(詩作)이 ‘한의 정서’의 표현이 아닌, 이미 받아들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발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박용철 시에 대한 이해와 지평이 더욱 넓어지리라 기대한다.

교양소설에 나타난 음식과 그로테스크 - 오수연의『부엌』을 중심으로 -

김미영 ( Kim Mi-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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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수연의 연작소설 『부엌』에 나타난 교양소설의 성격을 음식과 몸의 부조화에서 비롯되는 그로테스크 양상, 코스모폴리탄적 주체에서 살펴보았다. 주인공 ‘나’가 한국을 떠나 인도에 체류하면서 겪은 외국인으로서의 체험과 사유의 행로는 딜타이와 모레티가 제시한 교양소설의 범주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다. 작품에 나타난 교양소설로서의 특성은 주인공이 ‘코스모폴리탄적 주체’ 라는 점으로 드러난다. 인도로 유학을 온 두 여성 화자 ‘나’에게 채식과 육식은 단순한 음식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신분과 권력이 내재된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를 인도 신화인 ‘끼르띠무까(kirtimukha)’의 반복적인 구조로 드러냄으로써 음식과 몸에 의한 그로테스크 미학이 자연스럽게 형상화 되었다. 비대한 몸, 부조화, 식인 등을 통해 그로테스크적 상상력을 환기시키고 있다. 오수연의 그로테스크가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코스모폴리탄적 상상력이라 하겠다. 즉 작가는『부엌』을 통해 ‘위험사회’의 요소를 배태하고 있는 그 어떤 불특정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자 한것으로 보인다. 위험사회의 요소를 지녔기에 그곳은 공동체 사회로 거듭 태어나야 하는 공간이 된다. 첫 번째 여성 화자 ‘나’가 국적과 인종을 넘어선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한 점이나 채식주의자 다모의 생태학적사고, 두 번째 여성 화자 ‘나’의 하층계급에 대한 연민과 평등에 대한 인식 등이 공동체 사회의 코스모폴리탄적 주체의 모습을 담지하고 있다. 이는 오수연이 문학을 통해 평등·생명존중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확장을 세계시민이 추구해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작중인물의 인식 변화는 음식에 의해서, 음식과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양상들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체험하고, 그 안에서 상생, 평등, 생명존중 등의 세계시민의식을 점차 일깨워 나간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나타난 채식과 육식 사이의 갈등은 공동체 사회와 세계시민의식의 심화와 확장을 보여주는 교양소설의 서사장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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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50년에서 1970년대 소설 속에서 다수 이미지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검토하기 위한 글이다. 이를 위해 손창섭, 장용학, 김승옥, 조세희의 소설 속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그리고 위 텍스트에서 다수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 살펴보고, 각각의 이미지들이 가진 특질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손창섭의 소설에서 다수(多數)는 죽어가는 몸 위에서 ‘번성하는 죽음’의 이미지로 나타났다. 전후의 폐허 위에서 삶이 죽음에 노출되어 있었음을 이 이미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정신적, 육체적 불구는 이러한 죽음이 생명과 동거하는 양태의 표출이다. 장용학의 소설에서 다수는 무기력, 무의미, 비운동성의 삶이다. 그것은 인간 인삼 즉 ‘재배되는 삶’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근친상간 모티프는 폭력과 죄악의 표출로 생겨났으나 이후에는 저항과 사랑의 표현으로 재표지된다. 김승옥의 소설에서 다수는 뱀 떼 혹은 그것으로 비유되는 수많은 불꽃으로 드러난다. 이 이미지는 소수인 가족(보다 구체적으로는 누나, 비유적으로는 염소)을 훼손하는 탐욕스러운 인간군상이다. 무력한 사춘기 소년에게 그들은 소수를 해치고 자기들끼리도 잡아먹는 지옥도의 주민들이다. 조세희의 소설에서 다수는 가시고기 떼로 드러나면서 자본가들의 눈에 비친 무서운 노동자로 의미화된다. 자본가들의 논리에 따르면 저들은 거두어 준 은혜도 모르는 뒤틀린 심성의 소유자들이고 볼품없는 외양 너머에 살의를 숨기고 있는 무서운 다수이다.

최인호의 장편소설 『지구인』에 나타나는 폭력 연구

원승종 ( Won Sueng-j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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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최인호의 『지구인』에 나타나는 폭력을 연구하고자 한다. 1970년대의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발전과 군사독재라는 정치적 혼란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대였다. 1970년대 한국소설계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더 많이 요구받았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소설에 형성화하였다. 최인호는 산업화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소외와 고독을 탐구하는 한편, 사회를 위협하는 인물을 통해 국민을 억압하는 국가의 폭력과 부조리를 역설하는『지구인』을 발표하였다. 『지구인』의 이종대는 강력한 사회질서가 요구되는 시대에서 사회질서를 파괴하려는 인물로 최인호는 그를 통해 사회 전반에 형성된 억압과 폭력의 기원을 한국전쟁에서 찾는다. 『지구인』은 1974년에 발생한 칼빈소총 강도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로, 전쟁이라는 폭력에 노출된 이종대·이종세 형제는 자신의 욕망을 획득하기 위해 전쟁의 폭력을 모방한다. 특히 이종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방 메커니즘에 함몰되어 폭력과 차이를 잃고 사회를 위협하는 악인(惡人)으로 거듭난다.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은 전쟁의 폭력을 그대로 유전 받아 폭력을 정당화하고 국민을 억압한다. 획일적인 개인화가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이종대는 갈등과 폭력을 퍼뜨려 집단을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이며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방해하는 이방인이다. 사회는 폭력을 야기하는 인물을 사회체제 내에 편입시켜 폭력을 억압하는 대신 희생양 메커니즘을 통해 제거한다. 여기서 희생양은 사회적 개념으로 집단 폭력의 결과물이다. 희생양은 사회체제의 질서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존재이며 집단 내부에 존재하는 폭력을 해소하는 존재이다. 새로운 역사의 흐름에 편입하여 폭력과 차이를 두는 걸 거부한 이종대는 사회의 희생양으로 파멸한다. 폭력성을 포기한 이종세는 이종대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모방 메커니즘에 대한 허구성을 직시한다. 유년시절부터 자신을 지배했던 모방 욕망이 실은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된 이종세는 악인으로 세상을 떠난 이종대를 구원하기 위해 정화행위를 행한다. 여기서 이종세의 정화행위는 모방 욕망의 허구를 인정하고 소설적 진실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최인호는 한국전쟁부터 이어진 폭력의 허구성을 포착하여 소설적 진실을 밝힌다. 한국전쟁이라는 폭력은 1970년대까지 유전되고 있으며 개인이나 집단 모두를 잠식시키는 유령과도 같다. 폭력을 답습한 집단은 전쟁의 상흔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을 교화하는 대신 제거하여 사회내부의 질서를 확립한다. 최인호는『지구인』을 통해 1970년대까지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포착하였고, 이를 통해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탐구하였다는 점에서 문학적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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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의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 문학이 대상으로 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본고는 이러한 아주 근원적이고 보편적이며 범상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모든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통해 일생 동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질문하고, ‘나’라는 한 인간이 주체로 자리매김 하는 과정에 대해 성찰한다. 문학은 그 물음에 대한 ‘징후’를 언어를 통해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한 문학 속에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삶을 건너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라다니는 문제인 사랑, 죽음, 욕망, 상실, 결핍, 환상, 불안의 문제가 화두로 놓여 있다. 필자는 몇 년 동안 그 화두를 통하여 인간이라는 존재를 해석하여 이해하고 인정하는 길이 정신분석적 통찰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문학은 한결 같이 인간의 최초의 증상을 ‘상실’에 둠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상실하였기에 오늘도 ‘무엇인가 그리워’하며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상실된 것을 향하여 헤매이며 그리워하는 인간의 ‘증상’에 대한 기록이다. 김승옥 작가는 “우리는 그리워하기 위하여 태어났다”고 소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본고에서 관심을 가지고 분석하려고 하는 김승옥의 소설은 무엇인가 그리워, 외로워, 쓸쓸하여, 억울하여, 쓰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처절한 숙명과 같은 이야기다. 어떠한 것도 소유할 수 없으나 존재해야 하고, 살아내야 하는 ‘존재결핍’에 놓인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소설에는 인간의 ‘그리움’의 증상이 시작된 ‘큰사물’의 상실에 대한 사유와 그 상실에 맞서는 주체의 존재 방식이 잘 형상화 되어 드러나 있다. 따라서 본고는 인간에 대한 라캉의 정신분석적 해석을 통해 프로이트가 인간의 최초의 증상이라고 명명했던 사물의 상실(실재계)이 개별 인간의 심리적 현실에서 결핍(상징계), 환상(상상계) 등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되며 주체로 자리매김하게 되는가를 김승옥의 소설「환상수첩」을 통해 독해해 보았다. 라캉의 주체에 대한 정신분석적 접근을 통하여「환상수첩」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주체의 존재 방식을 분석해 본 결과, 현실에서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상상적 주체를 벗어나 상징적 주체로서 욕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라캉의 역설과는 달리 김승옥 소설,「환상수첩」의 주인공들은 ‘환상’이나 ‘위악’, ‘기만’이라는 오인의 구조 속에 갇힌 상상적 주체임을 목도하게 되었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정신분석은 순응과 획일에 응하여 길들여질 때 인간의 주체의 자리는 소멸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주체의 자리가 흔적과 효과로서 존재하는 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신분석의 이 비극의 역사는 우리를 순간, 허무 부조리, 무의미, 불가능, 무, 상실, 결핍, 환상으로 내몰런지 모르겠으나 인간 최초의 증상인 ‘status nascendi’에서 죽음에 이르는 인간 심리의 처절한 길에, 그 정신분석적 성찰의 심급에 문학은 오늘도 동참, 동행하고 있다. 정신분석과 그의 문학적 형상화는 공조하여, 우리 삶을 비극적 차원의 이야기로 만드는 고통을 감수하고 무릅쓰며 우리를 욕망의 주체로설 것을 외쳐 댄다. 라캉에게 있어서 정신분석의 이론과 실천은 욕망의 편에 서서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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