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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4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7권 0호 (2013)

문학 : 사설시조에 나타난 현실 인식과 그 의미 - 대상과의 관계 맺기 방식을 중심으로 -

이재준 ( Jae Jun Lee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7-36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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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인식의 변화’라는 측면에 주목해 사설시조에 나타난 당대인들의 현실 인식과 그것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사설시조 속 대상들은 대개 구체화·개별화된 형태로 드러났으며, 다양한 조합으로 하나의 특정한 사건으로 구성되기도 하였다. 그에 대해 화자는 동질화나 분리화와 같은 일견 상반되는 대응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결국 이러한 시적 형상화를 자극한 동인에는 무엇이라고 명확히 규정하길 망설이는 ‘불확정성에의 감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자리·감각의 수용을 거부하고 당면한 심적 상황에 몰두하며 불투명한 내일을 사유하는 달라진 인간상의 발현을 엿볼 수 있어, 사설시조의 ‘후기적 징후’를 감지할 수 있는 대목으로 주목을 요한다 하겠다. 선험적 진리의 약화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하는 성찰의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다. 이에 사설시조는 그러한 성찰에 따라 ‘관계 맺음’의 새로운 문법을 모색하던 당대인들이 선택한 문학적 시도였음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다.

문학 : 방각본 고소설과 신소설에 나타난 청자높임법의 비합의 표현 비교 연구

김정호 ( Jeong Ho Kim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37-6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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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방각본 고소설과 신소설 자료에서 나타나는 국어 청자높임법의 비합의 표현을 살펴보고 이를 비교하여 그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어 청자높임법의 비합의 표현을 협력형과 갈등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다시 자기지향적 비합의 표현과 타자지향적 비합의 표현으로 나누어 각각의 자료를 분석, 비교하였다. 방각본 고소설 자료의 비합의 표현은 거의 대부분 감탄문의 하오체에 국한되어 나타났으며, 이러한 특징은 신소설 자료에서의 비합의 표현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신소설의 비합의 표현은 고소설 자료에 비해 감탄문을 넘어서 매우 다양한 문장 형식으로 나타나며, 청자높임법의 등급 역시 하오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첫째, 고소설과 신소설의 문체적 차이, 즉 대사와 지문이 구분되는가 아닌가의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둘째, 고소설과 신소설의 등장인물의 성격 차이, 즉 고소설의 인물이 당대 사회의 집단성을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이기에 대화 지문에서의 전략적 표현 역시 제약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고소설과 신소설의 시간적 차이를 반영한 언어 변화의 한 측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필사본 고소설 자료에 대한 좀 더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문학 : 설문대할망 관련 전승물의 가치와 활용

이창식 ( Chang Sik Lee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65-9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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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돌 관련 신화자원에 대한 새로운 가치창조의 사례로 신당을 포함하여 설문대할망 수용을 보여준 제주돌문화공원의 향토성, 예술성, 미래성을 주목하였다. 신당의 장소성은 신화, 본풀이, 의례 등을 소통의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음으로 제주신화의 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 확장과 보존, 활용 등이 동시다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제주돌문화공원으로 보아, 신화의 현장, 신당은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 돌 관련 신당, 신화, 심방 등을 묶어서 전승하는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보호법이 필요하고, 이 틀 속에서 현대적 계승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설문대할망의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가치 공유 혁신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다. 제주돌문화공원에는 감성, 재미, 환상 등 창조성과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소스콘텐츠 확보는 정체성의 사실 근거와 제주문화 기반 위의 기획에 좌우되고 인문학적으로 정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방면의 전문가 의견과 산학연관 합동연계사업이 동시다발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 사람들의 신화감성의 성격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부각시켜야 한다. 제주여성신화에는 한라와 탐라 형성의 여신격의 특성은 다양한 화소의 매력적인 유전자로 인해 생산-포용 키워드가 매력적이다. 설문대할망설화를 살린 제주돌문화공원은 테마파크형 신화박물관이다. 설문대할망제는 세계신화축제로 진전하기 위해 제주돌문화공원 때문에 희망적이다. 신화적 상상력은 제주돌문화공원이 보여주고 있듯이 관광문화산업의 원천이 되고 있는 추세다. 신당, 신화, 제주돌문화공원과 설문대할망신화 키워드는 제주신화의 세계화에 있다. 세계 신화유산의 메카로 제주섬, 제주돌문화공원을 신화스토리텔링으로 마케팅해야 한다. 돌과 여성신화의 상생적 연관을 통해 제주신화의 새로운 국면 읽기를 분석해 보았다. 제주도 신화유산은 보존과 활용의 전략이 상생되어 미래로 추진되어야 한다. 신화 관련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다양한 보존책이 제기되었다.

문학 :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에 보이는 견문록의 전통과 확대

구지현 ( Jea Hyoun Koo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99-123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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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일본 사행을 통해 일본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견문록 류가 출현하였다. 18세기 견문록은 일본지리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원중거의 일본 사행 경험은 燕巖學派 인물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이덕무의 <청령국지>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견문록 류의 특징은 개인의 폭넓은 독서와 지식에 대한 개방적 추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공적인 목적을 위한 관료의 기록이었다는 점이다. 유길준은 연암학파의 학문적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은 인물이자, 전통적 사행 담당층과 마찬가지로 정부 관료의 길을 걸었다. <서유견문>의 성립 과정은 전통적 사행 견문록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폭넓은 문헌과 실제 견문을 바탕으로 지식의 찬술이라는 전통적 글쓰기 방식에 의해 작성된 <서유견문>은 공적인 목적의 실현을 위한 기록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나아가 유길준은 문물을 연구하여 조선에 도입시켜야 했다. <서유견문>은 상당 부분 <西洋事情>을 모방하고 있으나 그 배경에는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국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계몽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다. 과학적 지식을 담기에 한문은 적절치 않았으며 국인들을 쉽게 이해시키기에 어려운 문어였다. 좀 더 정확한 번역 추구하기 위해 문체를 선별했던 후쿠자와와 달리 개화에 이끄는 계몽 도구로 국한문혼용체를 선택했던 예에서 보듯 유길준은 경세가의 태도로 지식을 다루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료와 지식인의 경계에 있던 그의 저작물 <서유견문>은 전통적 견문록류와 <西洋事情>과 같은 지식전달서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복합적이고 경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문학 : "꿈" 구현방식으로 본 「조신설화」의 현대적 변용

안민정 ( Min Joung An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125-151 ( 총 27 pages)
6,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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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꿈’의 구현방식을 통해 「조신설화」의 현대적 변용을 고찰하였다. 문학에 있어 ‘꿈’이 주는 의미는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 항상 비교하여 고찰되어야 할 대상이다. 고전소설의 독자나 영화 속 관객은 공간을 지각함과 동시에 자신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시간성을 토대로 공간이 재구축된다.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점유하면서 환상성을 창출하는 서사장치는 대표적으로 ‘꿈’을 들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 고전문학 속 ‘꿈’모티브는 「조신설화」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조신설화」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라 전제하고 「조신설화」라는 원천 텍스트의 변모과정을 고찰하였다. 그래서 「조신설화」가 수용된 이광수의 중편 소설 ``꿈``에서는 꿈속 세계를 통해 현실세계의 비극적이고 잔인한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입몽 전의 욕망의 허무함을 생로병사와 가난, 이별 등의 현실 삶의 고통을 통해 조신 스스로의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의식을 가지게 한다고 보았다.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화 된 배창호 감독, 이명세 극본의 ``꿈``에서는 ‘꿈’모티브가 단선적이고 일회적인 삶을 여러 번 살게 해주어 ‘죽음’에 임박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데 조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꿈’모티브가 종국에 추구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 인셉션 에서는 고소설에서 모티브 가져온 문화 컨텐츠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거 원형 컨텐츠에서 ‘꿈’을 통하여 자아정체성까지 분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즉 ‘꿈’모티브 변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영화 인셉션의 경우는 무한히 증식되는 꿈속의 꿈꾸어진 존재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함으로써 주체도 객체도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신설화」를 바탕으로 현대적 변용이 된 작품들은 대부분 사건이 발생하고 ‘꿈’을 모티브로 항상 자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원천 텍스트인 「조신설화」역시 꿈으로 들어갔다가, 온갖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후, 꿈에서 깨어나 이 일생의 부귀영화가 헛된 것임을 알게 되고 최종적으로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꿈을 깬 후 주인공들은 꿈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조신설화」의 ‘꿈’ 구현방식의 현대적 변용은 현실세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것이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통찰을 요구하는 방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신설화」의 현대적 변용은 시간적 역행구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꿈’모티브를 통해 나타냈다는 점에서 구성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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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은 1693년 울릉도에서 어렵을 하다 일본인을 만나 충돌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울릉도에서 독점적인 어렵을 하여야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어렵을 하고 있었던 조선인을 자주 만나자, 어획량이 줄어든 것을 불안해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조선인이 울릉도에서 어렵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돗토리 번주가 조치를 취해주기를 원하여서, 안용복 일행 중에서 안용복과 다른 한 명을 납치하였다. 이렇게 시작되는 안용복의 납치사건은 그 후 朝·日 양국의 울릉도·독도에 관한 영토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어 ‘竹島一件’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 한·일간 독도에 관한 영토문제가 주목받으면서 안용복의 사건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1693년 안용복이 납치되었을 때, 나가사키 봉행소와 쓰시마번에서의 진술이 위증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에도시대 쓰시마번사가 쓴 『竹島紀事』에 있는 안용복의 진술을 통해 그의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竹島紀事』와 조선의 사료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안용복은 일본인과 울릉도에서 만나기 이전에도 동해의 항로를 잘 알고 있었다. 동해에 있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인식은 6세기 우산국 때부터 시작되어 고려에서 조선의 안용복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나가사키 봉행소의 진술에서는 울릉도의 방향을 말하지 않았지만, 쓰시마번의 진술에서는 방향을 동쪽이라고 했다. 이 사실은 울릉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증하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울릉도에서 어렵을 하였던 안용복이 독도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하는 기존의 견해는 타당하지 못하다. 안용복은 울릉도와 독도의 존재를 인식하며 어렵을 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사학 : 백동수의 생애와 무예관

곽낙현 ( Nak Hyun Kwak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189-213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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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후기 정조대에 무인으로 활동한 백동수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연구의 목적은 『무예도보통지』 편찬에 반영된 백동수의 무예관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백동수는 1743년(영조 19)년부터 1816년(순조 16)까지 살았던 무인이다. 수원백씨로 증조부는 백시구, 조부는 백상화, 부친은 백사굉이다. 2남 1녀 중 장남이다. 둘째, 백동수의 관직은 1788년(정조 12)에 장용영 초관으로 시작하여, 1790년(정조 14) 6월 훈련원주부로 발탁, 1791년(정조 15) 4월 훈련원판관으로 임명, 1792년(정조 16) 윤4월 충청도 비인현감에 임명되었다. 1802년(순조 2) 평안도 박천군수에 임명되어 1806년(순조 6) 5월까지 역임하였다. 이후 1816년(순조 16) 그의 나이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 백동수의 학문적 교유관계는‘백탑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성대중 등과 학문을 논하였다. 넷째, 백동수의 『무예도보통지』 편찬 역할은 무예를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여 무예실기의 오류를 바로 잡고, 하나의 통일된 기법으로 정리하는 것과 24가지 무예를 각 군영에 보급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다섯째, 백동수의 무예관은 무예의 표준화이다. 『무예도보통지』는 명물도수의 기준으로 실용적인 관점에서 편찬되었다. 이를 통해 모든 군영에 하나로 통일되고 획일화된 표준무예를 보급하고자 하였다.

철학 : 원대 이후 <주역> 주석사에 나타난 중부괘 돈어(豚魚)의 의미 연구

황병기 ( Byong Kee Hwang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215-24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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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돈어’ 주석사를 검토한 논문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원대에는 초기부터 강돈설(江豚說)이 우세했다. 강돈설을 주장한 이들은 모두 당(唐)대 허혼(許渾)의 시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하였다. 원대의 학자들이 동시에 돈어를 최신자(最信者)의 단계로 격상시킨 것은 중국적 화이관을 부정하고 문명과 야만의 경계를 허문 파격인 것이다. 명대에는 전통적 견해가 상존하는 가운데 강돈설이 사라지고 하돈설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강돈의 생태를 묘사한 내용을 하돈설을 주장하는 전거로 사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당대 허혼의 시구를 ‘하돈’으로 개작하면서까지 하돈설을 밀어붙인 사람도 있었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했다. 돈어 곧 복어(河豚)는 바람의 신호에 호응하는 존재로서 때를 알고 바람을 아는 지적 생명이며 신뢰성 있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청대에는 이전 시대의 견해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고증학의 영향으로 제사 예법의 하나로 간주하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였다. 고경에서 여러 전거를 찾아내어 사(士)와 서인(庶人)의 박한 제물로 풀이하였다. 희생의 종류 가운데 가장 박한 제물이지만 정성을 다해 충심으로 신을 믿는다면 이런 박한 제물을 바치더라도 좋은 결과를 낳는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현대학자 가운데는 편의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돈어를 무지한 동물들로 보기도 하였으며, 어떤 물고기를 쏘아 맞춘 고사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또한 고대의 제사 예법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돈어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복합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돈어 해석의 시대적 변천은 시대정신의 변화와 아울러 진행된 점이 없지 않지만, 자서류와 의서류 등에 나타난 훈고학적 지식과 자연과학적 지식의 변화에도 영향을 받았다. 여러 사전 등에서 검증되지 않은 생물의 명칭이 등장하였고, 다양한 명칭들이 혼용되면서 오역과 오해가 무한하게 생성되었다.

철학 : 맹자와 순자의 인간이해, 그 윤리적 변별성

김상래 ( Sang Rae Kim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249-274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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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생물과 달리, 사회를 구성하여 삶을 영위해 간다. 사회 속에서 인간은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추구하고자 한다. 동양의 유가사상은 다른 어떤 철학체계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오래 동안 깊이 있고 수준 높은 논의를 전개 해 온 학문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유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맹자와 순자는 둘 다 자신이 윤리도덕에 관한 학설에 있어서 공자 학문의 정통을 계승했다고 자임하고 있다. 하지만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로 대표되는 이들의 철학적 사유방법론, 특히 인간에 대한 이해방식은 공자와 유학의 정통을 이어받은 사상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이들이 서로 다른 철학체계를 보여주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에 대한 이해방식의 차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해의 이러한 차이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대한 그들의 견해 차이와 연계되어 있다. 이 논문은 인간의 본성이 본질적으로 착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에 대한 맹자와 순자의 견해 차이를 해명한 것이다. 맹자는 기본적으로 덕윤리의 입장에서 도덕성의 근거로서의 인성의 문제에 접근하고 있고, 순자는 규칙윤리의 입장에서의 도덕성 개념에 주목하여 성악설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맹자-순자의 학문적 경향성을 각각 덕윤리-법윤리, 향내적-향외적 경향의 윤리설로 대별할 수 있다. 이러한 도덕성의 개념에 대한 이해방식의 차이와 학문적 경향성이 그들의 인간에 대한 시각을 달리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문화 : 향가 <헌화가>의 공연예술적 변용과 스토리텔링의 의미

하경숙 ( Kyoung Suk Ha )
온지학회|온지논총  37권 0호, 2013 pp. 275-30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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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가>는 신라시대의 4구체 향가(說話)로 신라 성덕왕(聖德王)때를 배경으로 소를 몰던 정체불명의 한 노인이 강릉태수(江陵太守)로 부임하는 순정공(純貞公)의 아내인 수로에게 벼랑 끝의 꽃을 꺾어 바치면서 부른 것으로,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 조(條)」에 실려서 대중에게 매우 친근한 노래이다현대에 와서 공연예술로 변용된 <헌화가>는 단지 노옹이 지닌 러브라인에만 주목하던 기존의 해석을 탈피(脫皮)하여 그동안 핵심을 이루던 노옹과 수로부인에 대한 비중보다는 현대사회의 변화 속에서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개인의 상황에 집중하면서 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갈등과 가치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공연예술이 지닌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방식을 내세워 현대인의 욕망을 구체화하였고 그것을 해소하거나 실현해야 하는 당위성을 대중에게 꾸준히 인식시키는 한편 흥행성 역시 확보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무엇보다 <헌화가>의 부대설화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모호성을 제외하면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스토리텔링의 가능하다는 것과 작품이 폐쇄성보다는 개방성이 나타나며, 현대적 스토리텔링에 적당한 다양한 소스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헌화가>를 공연예술로 변용한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원본의 가치와 의미를 충실히 지키고, 현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장르로의 변용은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통해서 문화적 가치와 현실의 맥락을 사실적으로 구현(具現)할 수 있다. 또한 <헌화가>는 고전서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에서 활발하게 자리를 넓히면서 대중의 변함없는 관심과 스토리텔링의 큰 축을 이루었다. 앞으로도 <헌화가>는 다양한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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