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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JI COLLECTION OF WORKS


  • - 주제 : 어문학분야 > 국문학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44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41권 0호 (2014)

<용비어천가>와 전통 생태 담론으로서의 풍수적 사유

조규익 ( Kyu Ick Cho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9-32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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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에 반영되어 있는 풍수 담론을 살펴 본 것이 이 논문의 핵심내용이다. 풍수는 ‘장풍득수’ 즉 ‘바람을 막고 물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땅의 조건’을 압축한 말로서, 인간의 생활환경 생태담론과 연결된다. 인간 삶의 행복 여부는 노력으로 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가 처한 환경적 요인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연의 형세나 방위, 流泉의 有無와 형상, 地表 밑 精氣의 優劣, 전체적인 음양 조화의 정도를 관찰하여 가능한 한 많은 好條件을 갖춘 곳을 선택하려는 이론과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고, 그 사상체계가 바로 풍수지리설이다. 주자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세워진 조선조에서 도성을 설계하거나 건물을 짓고 능묘를 조성할 때마다 예외 없이 풍수담론을 활용했다. 풍수담론이 신앙 차원으로 고착된 점은 부정적이었지만, 사회 전반에 원칙과 표준을 확립시킨 점은 긍정적이었다. 『도선비기』에서 찾을 수 있는 예언과 『택리지』의 ‘가거론’ 등을 조선초기의 국도풍수론과 함께 고려할 경우 한양은 인간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생태 공간이었다. 그런 이상적 공간이 국도로 영속되기 위해서 후왕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 것인가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강조한 것이 바로 <용비어천가>의 내용이고, 그 근원은 작자계층의 철학이었다. ‘후왕들이 지켜야 할 敬天勤民의 수칙’은 왕조를 영속시키기 위한 조건이었고, ‘6조의 王者的 자질/좋은 땅을 찾으려는 모색과 안착/후왕들의 근면’은 그것을 구체화시킨 <용비어천가> 핵심내용의 세 축이다. 따라서 <용비어천가>의 핵심 내용은 생태론적 풍수 담론의 실천과정을 압축한 그것이었다.

반양시사(潘陽詩社)의 활동 양상과 작품 세계

박종훈 ( Chong Hoon Park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33-61 ( 총 29 pages)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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潘陽詩社는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 일대에 거주했던 문인들에 의해 창설된 漢詩 모임이다. 1926년부터 1940년까지 15년간 매년 4월 12일에 반남면 紫薇山에서 시사를 개최했으며, 그때 지은 작품을 『潘陽詩社』로 엮었다.『반양시사』에는 총 86人의 칠언율시 409수와 六言八句 1수, 도합 410수가 수록되어 있다. 반양시사에 참여했던 총 86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羅州 羅氏와 河東 鄭氏 그리고 潘南 朴氏가 시사 모임을 주도했음도 확인된다. 반양시사의 형성 배경과 활동 양상 및 지향은 序文을 통해 살필 수 있다. 무너진 世道와 士風을 바로잡고자 시사를 결성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일제 치하라는 당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반양시사』에 수록된 작품은 일제 치하라는 당대 상황이 배경으로 깔려 있어 일반적인 시사 활동과 동일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일지라도 작가나 독자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다르다. 일제 치하라는 암울한 현실을 직접 언급한 작품도 보이고 亡國의 강개함을 지닌 인물 관련 故事를 적극 활용하여 당대 현실에 대한 울분을 외돌려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반양시사의 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은 소극적인 은거뿐이었다. 어지러운 당대 현실을 등진 채 살았던 伯夷나 魯仲連, 竹林七賢 등을 언급하면서 은거를 읊조렸다. 그러면서도 일제의 통치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도 지속되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쾌거를 詩化했으니, 이 역시 국운을 다시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이 반영된 것이다.

황진이의 연정시 연구

유육례 ( Yuk Rye Yu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63-90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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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이다. 황진이는 연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예술로 승화시켜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층을 매료시키고 있다. 이는 황진이가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연정시를 창안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황진이는 님에 대한 보고픔과 그리움을 시에 있는 그대로 투영시켜 독자로 하여금 감정과 정서를 자각한 이후에 시의 화자와의 일체화, 혹은 동조화되는 공간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황진이만의 독특한 시의 내재적 구조는 우리가 그녀를 우리나라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평가되는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한다. 이에 필자는 황진이의 연정시의 특징을 요약하고자 한다. 1) 황진이의 연정시는 남녀간의 사랑만을 노래한 시가 아니라 이별을 노래하면서, 더 나아가 이별한 후에 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이다. 2) 황진이의 연정시는 한시와 시조로 구별되는 시의 외재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시의 내재적 형식에 독특한 이미지와 자연의 객관적 대상을 자신의 자아정체성에 통합하는 시의 구조적 특징을 갖는다. 3) 황진이의 연정시는 님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보고픔을 객관화한 이후에 다시 자신의 자아와 일체시키는 자아와 객관적 대상의 완전한 통합을 노래한다. 4) 황진이의 연정시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독창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켜 자신의 애절한 감정을 보편성으로 확립하고 있다. 요컨대 황진이의 연정시는 바로 그 자신의 삶의 노래이며, 또한 그녀의 몸과 마음의 영혼을 시의 애절한 이미지로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황진이의 시는 님에 대한 통렬한 사랑과 사무친 그리움이 그녀의 정신과 육체의 자아 정체성으로 인식되게 한다.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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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소재 작품 중 남녀 간의 사랑을 제재로 쓴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을 대상으로 전기소설의 서사기법을 살펴보았다. 전기소설의 바탕은 기이와 신이에 있으므로 이에 기초한 논의였다. 작품을 면밀히 고찰해 본 결과, 이들 인귀교환류작품은 작품 설정에 맞게 애정지속에 따른 서사기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 서사기법은 남녀 간 사랑의 지속을 이상세계로 설정해 놓고, 이상세계를 누리기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고, 구천과 저승세계도 넘나들고, 마지막까지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중요 논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귀교환류작품의 서사기법은 서사장치 정절과 인연, 세계관확대를 통한 사랑과 죽음의 역학관계로 나타났다. 작품에서는 사랑과 죽음의 역학관계 설정을 위해서 ‘이승-구천[중음]-저승’이라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였다. 작가 김시습은 이런 시공세계를 작중인물이 넘나들게 하기 위해서 작품에 죽음을 설정하였다. 사람이 죽어서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작품에서 죽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현실계의 불합리 및 외부횡포에 대한 강력한 항거이면서, 이상세계로 설정한 저승으로 갈 수 있는 통과의례이기도 하였다. 또한 저승을 활용하면 작중인물이 현실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작품에 설정하였다. 곧 작중인물이 저승을 통해 세계관을 넓히면 현실과 대결을 하지 않아도 사랑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때 정절과 인연은 저승에서조차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장치로 설정하였다.

신라 <처용가>와 고려 <처용가>의 내용과 기능의 차이

조영주 ( Young Ju Cho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117-142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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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려 <처용가>가 신라 <처용가>를 모체로 하여 제작되었으나, 두 작품의 내용과 기능, 문체상의 특징, 주술원리 적용 등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두 작품 간 거리를 두고 논의를 전개하되, 고려 <처용가>가 어떠한 점에서 신라 <처용가>와 구별이 되며, 또 어떠한 지점에서 연계선상에 놓이게 되는가에 대해서도 밝히고자 하였다. 신라 <처용가> 부대 설화를 분석하여 당시 신라 불교문화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고찰해 본 결과, 처용은 동해의 용자로서 헌강왕을 도와 치국음조(治國陰助)했던 불교적 관용의 덕성을 지닌 호불호국(護佛護國)의 용신(龍神)이고, 신라 <처용가>는 망해사 또는 신방사 창사연기와 맞닿아 있는 불교적 용신신앙 내지 용신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생성된 불교적 관용(寬容) 내지 사심(捨心)을 노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신라 <처용가>는 민속 신앙적 축사(逐邪)를 노래한 고려 <처용가>와 그 내용이 확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무가로서의 문체상의 특징, 즉 명령법이나 위협적인 요소 같은 주술원리도 전혀 내포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신라 <처용가>를 모체로 하여 출현된 고려 <처용가>는 그 노랫말이 [① 서사, ② 처용아비의 외모 예찬, ③ 처용아비의 威容, ④ 熱病神에 대한 위협, ⑤ 熱病大神의 발원], 즉 [신을 부르는 것(招神) → 신을 찬양하여 즐겁게 하는 것(娛神) → 굿을 하는 것(賽神) → 주문을 외우는 것(呪詞) → 소원을 비는 것(發願)]의 5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창작 과정에서 그 당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이처럼 무가의 형식을 원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처용의 정체도 노랫말 전반부에는 불교적 관용의 덕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후반부에서는 위협적이고 강압적인 열병신의 천적으로 전환되었다.

가야산 기행가사의 작품 양상과 표현방식

최은숙 ( Eun Sook Choi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143-17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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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목적은 영남지역 기행가사 중 ‘가야산’ 체험을 다룬 작품의 존재 양상을 정리하고, 여행체험의 표현 방식을 살피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지역문화공간으로서 가야산 체험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고, 작품의 기행문학적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가야산 기행가사의 텍스트 현황을 정리해 보면, <인사유람>, <가야희인곡>계열, <계묘년여행기>계열 등 크게 세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인사유람>는 창작시기와 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으로서, 해인사를 포함한 가야산 전체 여정이 상세히 드러나 있으며 견문과 감상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가야희인곡>계열 작품은 작자와 창작시기 모두 미상이지만 표기 형태를 통해 <인사유람>와 <계묘년여행기>의 중간에 창작된 작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가야희인곡>,<가야해인곡>,<가야산해인가>등은 가야산 기행가사에 대한 필사가 왕성하게 이루어진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한편 <인사유람>와 <가야희인곡>은 경남지역 여성들의 규방가사 창작의 예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가야희인곡>이 거주지 중심의 유산(遊山)의 체험을 다룬 작품이라면 <인사유람>는 명승지 중심으로 여행의 범위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여행의 형태와 경험의 변화를 추측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계묘년여행기>는 기행가사의 현재적 전승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여행이 개별적 체험중심에서 단체 관광중심으로 변화된 양상을 보여주며, 명승지 중심의 놀이적 성격이 강화되고 여정 중심의 빠른 전개를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상의 가야산 기행가사의 작품현황과 여행양상을 살필 때, 이들 작품은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변화된 여행형태와 체험을 담고 있다는 점, 기행가사의 필사 관행을 엿볼 수 있다는 점, 가야산에 대한 다양한 기행체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존재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가야산 기행가사의 여행체험의 표현 방식을 살펴보면, 장소를 표상하는 건물을 나열하고 그와 연관된 역사적 인물의 상징적 이미지를 끌어내는 방식, 대표적 자연경관에 대해 다양한 이미지를 동원하여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문화경관에 대한 관심을 부각시켜 그를 통해 문화적 욕구를 드러내는 방식 등이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야산을 상징적, 감각적, 정감적 이해의 대상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본 작업은 가야산의 문화적 의미, 영남지역 기행가사의 일면, 그리고 근대적 여행체험의 양상 등에 대한 논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1763年 계미통신사의 일본 문화 인식 -현천(玄川) 원중거(元重擧)를 중심으로-

이홍식 ( Hong Shik Lee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175-200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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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원중거의 일본 문화 인식에 대한 총체적 그림을 그리는 데 주된 목적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그런 만큼 원중거가 구축한 일본 문화에 대한 인식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고, 원중거의 인식이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두루 살펴 조선 후기에 구축된 일본 문화에 대한 학지(學知)의 실체까지 가늠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원중거가 남긴 세 저작을 각각 분석하되, 그 속에 두드러져 있는 일본 문화 인식의 실체를 밝히고 이를 다시 종합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주자학적 화이론의 자장 안에서 일본의 문인과 학자들을 새롭게 평가하고, 일본의 문학과 학문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투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예측하려 한’ 원중거의 일본 문화 인식의 실체와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하여 북학파 지식인에 영향을 주어 병세의식(幷世意識)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 지식인의 이성적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원중거의 세 저작이 가지는 의미를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문화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 속에 감춰진 불안과 위험의 실체를 확인함으로써, 일본 문화에 대한 원중거의 인식의 한계와 문제까지 짚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원중거가 남긴 세 저작, 즉 <승사록(乘梭錄)>과 <화국지(和國志)>와 <일동조아(日東藻雅)>는 일본 문화에 대한 원중거의 인식의 총체일 뿐 아니라 당대 조선 지성계에서 구축한 일본 문화에 대한 학지(學知)의 최전선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육가(陸賈)의 역사사상(歷史思想)에 관한 연구(硏究)

조원일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201-221 ( 총 21 pages)
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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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역시 무력으로 천하를 얻었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통치를 중시하고 문교에 의한 통치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육가는 한고조의 통치 권력을 공고히 만들고자 하는 의지에 부응하기 위하여 당시의 상황이 안고 있는 시대적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면서 그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천명한 저서 『신어新語』를 내놓는다. 육가는 진조秦朝가 단기간에 멸망하게 된 사건에 대하여 냉철한 반성적 사고를 하는데, 그러한 내용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신어』의 다양한 곳에서 역설하고 있다. 육가가 분석한 진나라 왕조의 단명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은 세 가지로 귀납될 수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혹한 형벌의 남용과 오직 법률에 의거한 전제적인 통치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육가는 진나라에서 시행한 강병을 양성하기 위한 무력의 독려와 형벌을 숭상하는 고압적인 통치에 대하여 매우 강렬한 비판을 제기한다. 이러한 비판은 한나라 건국 초기에 행해진 진나라 패망에 관한 반성적 교훈으로 한고조와 대신들에게 매우 강력한 계도작용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육가의 역사사상에 대하여 본문에서 진나라 멸망에 대한 교훈과 방사 및 신선사상 비평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해보도록 하겠다.

한국정치사상의 원형 탐구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중심으로-

안외순 ( Woe Soon Ahn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223-256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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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最古/最高의 한국 역사서 <三國史記>와 <三國遺事>에 대해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지만 본 연구는 후자가 전자를 보완하는 관계의 상보관계에 있다는 관점에서 한국정치사상의 원형을 탐색하는 것이 목적이다. 때문에 적어도 정치사상 측면에서는 <三國遺事> 역시 <三國史記>와 공통의 성격을 지닌다고 보았다. 그 결과 두 저서 공히 국가 최고이념으로서는 홍익적 공존주의를, 통치이념으로는 유교적 仁義主義를, 외교이념으로는 현실적 사대주의를, 문화적으로는 보편적 문명추구의 中華主義와 자주적 민족주의를, 聖/俗 이념에 있어서는 조화를 추구하되 儒主佛補, 俗主聖補의 관점에 있음을 논증하였다. <三國遺事> 역시 주로 불교적 소재를 가지고, 불교적 형식으로, 궁극적으로는 불교적 초월세계를 지향하였지만, 세속세계, 특히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지향가치는 별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공부선(功夫選)의 전개양상과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

염중섭 ( Jung Seop Youm )
온지학회|온지논총  41권 0호, 2014 pp. 257-284 ( 총 28 pages)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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功夫選은 親政을 선언해서 辛旽과 거리를 두게 된 恭愍王이, 불교계의 개편의지를 가지고 실시한 佛敎史상 유래가 없는 최대 규모의 僧科였다. 이때 懶翁이 主盟으로 임명되면서 나옹은 이후 실질적인 고려불교의 1인자 역할을 구축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옹을 이해함에 있어서 공부선의 파악은 필수적이다. 또 功夫十節目은 본래 공부선의 판단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功夫選場에서는 시간문제가 존재하여 사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공부십절목은 나옹의 선사상이 가장 체계적으로 온축되어 있는 자료기 때문에 검토의 필연성을 요청받는다. 공부십절목이라는 명칭은 蒙山의 無字十節目과 유사하지만, 구조적으로는 次第論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양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 의한 독창적인 것이다. 공부십절목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①∼⑤와 ⑥·⑦, 그리고 ⑧∼⑩이다. 이는 각각 선수행의 문제제기와 成熟, 그리고 이의 완성으로서의 頓悟, 끝으로 깨달음 이후의 作用과 나옹 선사상의 목적이다. 나옹은 공부십절목을 단순히 혼자서 창안한 것이 아니라, 禪門의 前說과 당시의 일반론에 근거해서 만들었다. 그럼에도 공부십절목이 주목될 수 있는 것은, 중국선불교를 蒙山 등에서 일부 확인되는 구조화 노력을 넘어서는 선수행의 체계화가 살펴지기 때문이다. 이는 나옹이 당시의 선불교에 안주하지 않고 개혁을 통해서 선의 정신을 새롭게 창도하려고 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즉 공부십절목에는 중국의 선불교를 넘어서려는, 고려 선불교의 정신이 온축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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