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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0권 0호 (2011)

문학 : 박세당(朴世堂)의 개방적(開放的) 학문관(學問觀) 연구(硏究)

주영아 ( Young Ah Joo )
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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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후반 서계 朴世堂의 開放的 學問觀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朴世堂은 기존의 유학자들이 바라보는 四書三經을 高遠한 境地에서 바라보는 것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經典의 實體를 보고자 노력하였으며, 老子와 莊子의 眞正性을 理解하고, 이단시되었던 佛敎를 原始佛敎로 돌아가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였다. 學問의 開放性이 결여되었던 17세기 조선 사회에서 朴世堂의 진보적 비판정신과 다양한 학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朴世堂의 『思辨錄』 저술은 성현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따르고자했던 학문의 다양한 수용에서 비롯되었다. 經書의 根幹을 이루는 理致는 하나지만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千萬 가지의 방법 중에 하나로써 聖賢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따르고자했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문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朴世堂의 老莊 연구는 경전의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문학의 표현도 많은 부분 老莊의 모습을 加減없이 드러냈다. 나아가 老子와 莊子의 사상이 훗날 道家思想으로 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古神仙曲>을 통해 朴世堂의 思想的 變化와 學問의 開放的 受容 態度도 매우 주목할만하다 할 것이다. <論韓歐排浮屠>에서 朴世堂은 韓愈와 歐陽脩는 佛敎排斥에 眞正을 다하였다고 論하였고, 덧붙여 朴世堂 자신도 불교에 대하여 이단시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배척 태도를 강변하고 있다. 朴世堂이 이해하는 불교는 당대 유학자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상적으로는 불교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였지만 原始佛敎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유연함이 있다. 아울러 일상에서는 승려들과의 자유롭고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一面을 보이기도 하였다.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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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7세기 후반에 창작된 장편가문소설 <소현성록>을 소씨 가문의 정실인 화부인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시 읽어 본 논문이다. 그녀는 소현성과 혼인하여 소씨 집안에 들어와 그의 아내로, 양부인의 며느리로, 자녀들의 어머니·시어머니로 살아가면서 가족 관계 내에서 요구되는 덕목에 못 미치는 경우들이 있어 부정적으로 평가된 인물이다. 작품의 여성 인물 중 소현성의 어머니인 양부인이나 아내인 석부인, 며느리인 임부인 등은 가부장제하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상을 그대로 체화한 인물이기에 생동감이 떨어지며, 여부인 같은 악처 유형도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화부인은 좋은 품성과 나쁜 품성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기에 보통 사람에 가까운 인물이어서 소설을 읽던 대다수의 부녀자들이 좀더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면서 공감하거나 교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화부인에 대한 묘사와 행위 서술을 섬세하게 고찰한 결과,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은 온화하지만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투기하지 않고 바깥일에는 간섭하지 않는 아내상, 집안 식구들을 공평하게 다스리며 어머니 말에 순종하는 며느리상, 따뜻하지만 엄하고 식견이 있는 어머니상에 맞추어 살아가야 했다. 특히 화부인은 남편의 또 다른 아내인 석부인과 늘 비교되면서 열등한 인물로 평가되었기에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소현성록>은 그녀의 행동을 교정하는 남편과 시어머니, 시누이의 말과 태도를 통해, 여성이 수신제가(修身齊家)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면서 가문의 번성과 위엄을 중시하라고 권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화부인의 심리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그녀의 욕망과 행동에 대해 동정하거나 공감하는 서술과 장면들을 살림으로써 그녀에 대해 다층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놓았다는 점에 묘미가 있다.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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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전시가 작품 <계녀가>의 텍스트 변이에서 문화읽기와 관련한 교육적 단서를 확인하고, 고전시가 텍스트를 활용한 비판적 문화읽기 교수 학습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하여 <계녀가>의 텍스트 변이와 의미, 그리고 그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학교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교수 학습 방안을 제시하였다. <계녀가>는 교훈가사의 일종으로 주된 내용은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도리이다. 그러나 유통의 과정에서 향유자들의 욕구와 문화의 변동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변이를 나타낸다. 이 가운데 자기서사의 확대는 학습자에게 문학의 당대적 자기화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 작가와 독자의 상호성을 특성으로 하는 고전시가의 형식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 학습자가 처한 현재의 자기 서사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교육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인물형과 관련하여, 인물형의 변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이상적 인물 유형이 당대의 요구에 따라 어떻게 새롭게 구성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비판적 문화 읽기의 실제적 교수 학습 방안을 텍스트 이해와 당대문화 읽기 단계, 문화사적으로 읽기 단계, 현재 문화 읽기 단계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교수 학습 방법은 교육 대상 및 텍스트 이해 방법의 확장, 문학과 문화 간의 역동성 이해, 비판적 사고 과정으로서 고전문학 읽기 등과 같은 교육적 의의를 가질 수 있다.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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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역 구비 설화는 설화가 가진 개방성과 원시성을 보여주면서 인물 설화(48.7%), 자연 설화(32.7%), 인문 설화(18.5%)의 순서로 나타난다. 지역민들은 자신의 주변에 접하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가장 많이 보여주고 있다. 그 이외에도 그들은 자신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자연 환경에 대한 관심을 설화를 통해 인식하고 공유해 나가면서 지역이 가진 고유성을 인식하는 계기로 삼았고 지역이 가진 자연적 환경에 의미 부여를 하기도 했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기본적 요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그것에 대해 그들 나름의 특성을 부여하고 지역의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경주 지역 기록 설화는 인물 설화(63.1%), 인문 설화(31.5%), 자연 설화(5.2%)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에서 두드러진 것은 인문 설화가 부각한 점인데 인문 설화에는 불교적 성격을 강조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이 지역이 과거부터 축적해 왔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인 불교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변용하여 설화에 잘 녹아들게 하였다. 이런 점은 기록 설화에서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 기록 설화가 맡은 문화적 역할이나 기능을 불교적 자장에 두고자 한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경주 지역의 설화는 설화가 가진 생명력과 전승력의 다양한 요소를 추출해 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 지역성에만 머물지 않고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양하는 등으로 의미의 층위를 다양하게 펼쳐 보인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 특성을 탐구하기도 하고 문화적 의미를 탐색하고 정립하려는 의도를 지니기도 한다. 이 지역의 설화는 특성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전승의 양상도 특이하여 한국의 설화가 가진 본질적 성격이 어떠한지를 탐구해 볼만한 문제들을 무궁하게 가지고 있다.

철학 : 공자의 군자론과 철학의 이념

임헌규 ( Heon Gyu L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0권 0호, 2011 pp. 143-166 ( 총 24 pages)
6,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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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君子``는 공자가 그 개념의 정립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주제 중의 하나이다. 이 글은 이러한 유가철학의 주체인 "君子란 진정 누구이며, 어떤 행위와 활동을 하는 자인가?"하는 것을 孔子의 언명을 통해 재구성적으로 제시하면서, 그 철학적 의미를 규명하려는 시도로 기획된 것이다. 유가에서 君子의 문제는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이지만, 일반적인 인식보다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직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측면이 있으며, 나아가 동서철학의 원류와 연관하여 철학적인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는 먼저 선행 연구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하였는데, 그 연구들이 나름으로 문헌 및 사료에 근거를 두고 의미 있는 제안을 하고 있지만 군자에 대한 개념정의에서 단순히 공자의 언명을 답습할 뿐, 결정적인 점에서 소홀히 다룬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 점에 대한 집중적인 보완을 하고자 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1) 好學者로서 君子란 ``배움을 통해 聖人을 希求하는 자``이며, 2) ``형이상자에 통달하여(上達) 천명의 본성으로 자기정립을 이루며, 3) 仁義禮智의 덕으로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가능성``의 존재이며, 4) 하나의 사물이나 사실처럼 자체동일성을 지닌 존재자가 아니라 항상 열린 가능성의 존재로서 자기동일성의 정립을 추구하는 창조적 자유인이며, 5) 목적의 학문에 종사하면서 통치자의 자질을 함양하여 백성의 이익과 교화에 봉사하는 존재라고 측면을 집중 해명하였다. 나아가 공자의 君子개념은 소유되어야할 어떤 외적 존재자가 아니라, 부단한 자기 극복(克己)의 존재방식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전형을 드러낸다고 판단하고, 이러한 인간이념은 서양의 플라톤의 지혜를 사랑하는 哲人처럼 영구적인 인간 이념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공자가 어떤 특정계급의 지배정당성의 논리를 피력했다" 등과 같은 언명은 범주착오적인이라는 것을 시사했다.

철학 : 동서양의 감정이해 -플라톤과 율곡을 중심으로-

리기용 ( Ki Yong Lee ) , 이상인 ( Sang In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0권 0호, 2011 pp. 167-204 ( 총 38 pages)
7,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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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현대적 의미의 ``감정적 지능``이 전통적인 동서철학에서 개념적으로 구현되는 방식을 고찰하고 감정적 지능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정초가 동서양의 전통적 심리학의 감정이해와 본질적인 측면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한편으로 플라톤은 다음과 같은 영혼의 세 가지 활동중심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감정의 지능성과 합리성을 규명한다. 첫째, 인간의 영혼은 욕망과 격정과 이성의 세 부분의 상호작용 속에서 활동한다. 둘째, 특정한 실천적 행위에 이르기 위해서 영혼은 인식하고 쾌와 불쾌의 관점에서 느끼며 유쾌한 것과 불쾌한 것을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관점에서 추구할만한 것과 회피해야 할 것으로 욕구한다. 셋째, 인식과 감정과 욕구는 영혼의 각 부분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영혼의 세 부분에 상응하여 인식과 감정과 욕망의 세 형태들이 나타난다. 넷째, 구별능력으로서 지성과 확신과 감성, 그리고 그것들이 수반되는 쾌와 불쾌의 감정은 유비적-단계적인 합리성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율곡의 심성론 역시 감정의 사유연관성과 합리성을 다음과 같이 규명한다. 첫째, 그의 정의(情意)론은 마음의 허령지각한 기능을 전제하고, 미발의 본성과 이발의 감정과 생각작용을 하나의 연속적 과정 속에서 파악한다. 둘째, 리를 지각한 마음은 본성과 생각과 의지를 주재하여 도덕적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 셋째, 마음속에 생각[意]과 의지[志]와 감정[情]은 불가분리적으로 통합되어 있고, 감정은 생각과 의지를 주재하고 통솔함으로써 이성과 대비되지 않고 오히려 이성적 사유와 상보적 관계를 갖는다. 넷째, 마음의 지각능력이 어떻게 올바른 리를 지각할 수 있고 또 마음이 사욕에 흐르기 쉬운 감정을 어떻게 이성적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성(誠)과 경(敬)의 수양론을 통해 보완된다. 플라톤의 심리학과 율곡의 심성론에서 감정은 이성적 인지능력과 별개의 대립적 능력으로 파악되지 않을 뿐 아니라 주어진 사태에 본능적으로 감응하는 불합리한 피동적 능력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감정적 지능``에 대한 현대의 과학적 논의는 동서양의 전통적 심리학/심성론에 대한 일종의 재발견으로 평가될 수 있다.

문화 : 대만 민간신앙의 제양상 고찰

상기숙 ( Key Sook Sa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0권 0호, 2011 pp. 205-238 ( 총 34 pages)
7,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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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민간신앙은 발생부터 변화 발전과정에 이르기까지 대만개척사와 관련깊다. 일찍이 대륙 연해의 한족은 정치적·경제적 요인으로 해협을 건너 대만으로 이주 개척에 매진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예측불허의 해난사고에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보호신을 찾았다. 특히 마조·현천상제·수선존왕·사해용왕 및 총간공 등이 숭배를 받았다. 이중 마조신앙이 가장 흥성하며 현재 800좌 이상의 마조묘가 건립된다. 마조·왕야·토지공은 민간에서 숭봉하는 3대 신으로 이들에 대한 신앙 동기 및 신의 속성을 통해 대만의 지리환경과 민간신앙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대만의 민간신앙은 4단계 과정을 거쳐 변화 발전한다. 첫째, 신앙 분류시기로 초기 이민자들은 이익 쟁취를 위해 각기 향토신을 모신 묘우를 거점으로 무장전투를 벌려 신앙이 분류된다. 당시 사묘는 신앙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동향의 단결 집회장이었다. 둘째, 신앙 통속화 시기로 이민 생활이 점차 안정된 후 향토 색채와 언어의 장벽을 타파하고 점차 지방 수호신의 성격은 보편적인 신으로 바뀐다. 셋째, 신앙 동요의 시기로 일제는 사묘를 점령 대부분을 훼손했고, 황민화운동과 함께 대만의 장기 통치 목적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의 신도를 장려한다. 넷째, 신앙의 흥성 변혁 시기로 광복을 맞고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옮겨온 후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규정되며 민간신앙은 더욱 흥성 발전한다. 대만 민간신앙의 특색은 향토신 숭배, 불·도교가 혼합된 다신숭배, 새로운 신의 부단한 출현, 수호신 숭배, 가정신의 묘화이다. 묘우는 신앙의 중심지이자 신의 초자연력을 빌려 세인을 위해 봉사하는 공능을 지닌다. 제신의 주요 목적은 신에게 문복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묘우에서는 항상 각종 기도·허원·제사·천도·액막이·보운·재초법회를 거행하며, 목적은 민중의 각종 생존 곤란을 해결하고 현실 생활의 구체적인 이익과 화해를 구하는 한편 전통신앙·윤리도덕 정신을 계승한다. 묘우의 건축방식은 대칭 강구, 봉건계급, 안전 방어, 전통 미학의 성격을 지니며 한 당에 제신을 모시고 풍수지리를 고려하며 전통신앙·윤리도덕 정신을 계승한다. 구사초복의 방법으로 수패, 자패, 와장군, 길간, 도경, 미두고검 등이 있다. 숭배신은 자연신·도교신·통속불교신으로 나누며 서로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들 지방신 대부분은 영혼숭배에 속한다. 현대인은 부단히 새로운 신을 창조하고 인멸시키는 한편 각각의 신이 지닌 고유 공능 외에 새로운 공능을 부여 점차 다양한 신직을 겸한 만능신으로 변모시킨다. 대만의 현대 민간신앙은 민간인의 종교단체로 광범위한 공익사업을 펼쳐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나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사사로운 기복적 성격이 한계성으로 남는다.

문화 : 정선이 그린 정호(程顥),정이(程이) 고사인물화

송희경 ( Hee Kyeong So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0권 0호, 2011 pp. 239-275 ( 총 37 pages)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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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정선이 그린 정호 정이고사도의 시각적 특징과 조선시대 이정고사도의 전개양상, 그리고 정선의 제작방식을 규명하는 것이다. 북송대 유학자였던 정호와 정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한 살 터울의 형제이자, 도학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던 지적 동반자였다. 그들은 강한 개성과 독특한 일화를 남긴 선학으로, 혹은 주자에게 절대적 영향을 준 신유학의 창시자로 기억되었다. ``방화수류(傍花隨柳)``, ``정문입설(程門立雪)``, ``부강(부江)`` 등의 제재로 표현된 이정고사도는 정선이 그린 송대성현의 고사인물 중에서 제재와 작품수가 가장 많았다. 정선이 그린 이정고사도의 형식은 자연배경에 고사상이 배치된 산수인물화이며, 기법은 남종화법을 근간으로 한 수묵담채화였다. 그의 다른 고사인물화와 마찬가지로 고사의 일화를 도해할 때 조선중기의 전통을 계승한 산수인물형식을 도입해서 풍류와 낙도(樂道)를 누리는 정호 정이상을 완성했다. 16세기에는 정호, 정이가 도학의 계승자들과 함께 화첩이나 병풍에 장첩되었는데, 그림의 주인공들은 도통계보의 인명도설에 포함된 인물들이었다. 정선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어유봉의 <병화십찬>을 통해 고사일화형식을 갖춘 송대성현의 고사도가 18세기 전반에 이미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선의 그림에 표현된 정호와 정이는 권위를 내세운 관료도, 위엄을 갖춘 지도자도 아니었다.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유학자였지만, 때로는 자연을 즐기고 때로는 세상사에 초연할 줄 아는 처사이자 참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정선은 정호, 정이의 고사를 해석하면서 자신만의 화법으로 새로운 화면을 창안했다.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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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동양권 국가의 기본적인 이념이자 중국의 전통적인 가족부양가치관인 효와 가족주의 가치관이 현대로 오면서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전통적 가족부양가치관이 가족 부양 스트레스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첫째, 중국 노부모의 가족부양의 실태를 알아보았다. 둘째, 중국 가족부양자와 노부모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부양스트레스의 차이를 파악하였다. 셋째, 중국 가족부양자와 노부모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및 친밀감, 부양서비스가 부양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중국 요녕성 대련시에 거주하는 중국의 가족부양자 328명을 대상으로 하여 설문조사를 하였다. 본 연구의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노인의 가족부양실태를 살펴본 결과 가족 부양자들이 주로 부양하고 있는 노부모는 배우자의 부모였고(시부모님), 부양하는 노부모와는 동거하지 않는 경우가 과반수를 넘었다. 함께 살지 않아도 매일 접촉하는 빈도가 높았다. 둘째, 중국 가족부양자들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부양스트레스의 차이는 가족 부양자의 연령, 학력, 직업, 종교, 거주지역과 노부모의 연령, 경제수준, 가계소득원, 부양대상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중국 가족부양자의 노부모와의 사회인구학적 특성 및 친밀감, 부양서비스가 부양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하여 위계적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친밀감이 부양서비스보다 중국 가족부양자의 부양스트레스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을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종교가 있는 집단일수록, ADL이 낮을수록, 부모의 경제적 자립도가 낮을수록, 친밀감이 낮을수록, 신체적 부양서비스 제공이 적을수록 부양스트레스가 높게 나타났다.

문화 :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전통수기요법(傳統手技療法) 교육(敎育) 비교(比較) 연구(硏究)

정한석 ( Han Suk Jung ) , 함주현 ( Joo Hyun Ha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0권 0호, 2011 pp. 311-336 ( 총 26 pages)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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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옛 동양권 문화에서 발전한 수기요법이 현재 국내에서는 그 역사가 깊지 않고 생소한 학문의 분야 중 하나인 서양의 카이로프랙틱 (chiropractic)으로 알려지고 널리 보급되어 있는 종주국인 미국을 포함한 타 서양의 카이로프랙틱 교육과정과 동양의 교육과정에 대해 비교분석 하였다. 현재 동양권 특히, 국내에서는 카이로프랙틱이라는 학문은 원 명칭보다는 한방에서의 추나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안교, 도인, 안마 등 추나의 옛 명칭이 소개되어있다. 그러나 유교주의 국가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사회분위기로 볼 때 신체의 노출과 남녀의 신체접촉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경향이 만연하여 앞서 언급한 근골격 질환과 통증에 대한 특별한 효과를 가진 수기요법의 발전을 저해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기요법은 의료행위라기 보다는 민간요법으로 전락하였다.30 이러한 사실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동양권 문화의 여러 나라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보여 체계적인 학문으로서 발전하지 못해 한때 수기치료에 있어 많은 발전을 이루었던 동양 보다는 오히려 서양의 수기치료인 카이로프랙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동양의 추나가 서양으로 건너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발전하여 카이로프랙틱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여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전통적인 추나요법은 오랜 임상을 통하여 얻어진 경험에 의한 산물이지만, 현대의 추나요법은 전통적인 방법에 해부학과 생리학 등 현대 의학지식을 결합한 것 이다. 한국추나요법은 동양수기요법인 중국의 추나(Tuina)와 일본의 정체법 및 고동법 그리고 서양수기요법인 카이로프랙틱 및 등의 장점을 수용하여 발전시켜 다양하고 효과적으로 발전시킨 것 이다.30 이렇듯 카이로프랙틱이라는 학문은 1895년 미국에서 캐나다인이었던 D. D. Palmer에 의해 탄생하였고 1897년에 학교가 설립되면서 서양에서는 의학적 지식의 발달과 함께 과학적 근거가 더하여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현재에는 전 세계 27개의 대학에서 동양의 수기치료가 카이로프랙틱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여 정식과정으로 수많은 카이로프랙틱의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지역에서는 한국, 일본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3개의 정식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는 체계적인 교육의 확립에 있어 우리 고유의 한방문화의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그 보급에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관계형성에 있어 동양에서 발전되었던 수기치료법이 현재에 와서는 쇠퇴되어 서양에서 발전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현재 미국을 포함한 서양에서 발전된 카이로프랙틱교육과 동양의 카이로프랙틱교육 특히, 한국 카이로프랙틱교육의 상황을 비교분석하여 그 우수성을 입증하고 향 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으로서 동양 수기치료 발전의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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