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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7권 0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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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국유사>는 다양한 각도로 재조명되고 있고 그 부가가치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본고는 이러한 문화적인 <삼국유사>의 풍부한 상상력을 미당 서정주가 <삼국유사>를 직접적 소재로 활용한 시세계와 연결시켜 현대적 문화 욕망으로 풀어가고자 한다. 미당은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를 통해 <삼국유사>속 신라의 상상력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6.25 전쟁을 경험한 시인은 신라를 삼국통일의 정신으로 보고 완성된 민족의 원형을 찾으려했다. 서정주가 <삼국유사>의 상상력을 활용한 것에 주목한 몇몇 논자들은 주로 설화세계와 불교세계의 <삼국유사>의 상상력이 작품 안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그러나 본고는 연구의 대상을 <삼국유사>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시 풀어쓴 서정주의 시를 통해 현대 문화콘텐츠의 생성 욕망과 만나보기로 하겠다. 서정주가 <삼국유사>를 읽는 과정은 신화적 독서의 과정이었고 그러한 신화적 상상력은 서정주의 현실의 창이 되었고 미래를 읽어내는 만화경으로 작용한다. 독서는 과거의 이야기를 독자가 읽는 시점에서 이해하고 반영하게 함으로써 오늘날의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서정주의 <삼국유사> 독해 시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현실 독해 원리들은 신화적 독서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모성의 존재 양상과 특성

최은숙 ( Eun Sook Choi )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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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삼국유사』 설화에 나타난 모성의 존재양상과 특성을 구명하는 것이 목적이다.『삼국유사』 에는 모성성의 비중이 높은데, 작품의 존재 양상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어머니의 위상이 아들의 그것에 비례하여 나타나며, 위대한 아들의 출산이 곧 어머니로서의 자아실현으로 이어진다. 둘째, 서사는 주로 모-자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모성의 역할이 더욱 중시된다. 셋째, 생물학적 모성보다는 사회적 모성이 더욱 주목된다. 한편 모성의 하위 구성자질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의지, 어머니로서의 자애와 이성을 기준으로 이들의 특징을 각각 살폈다.『삼국유사』 에는 예지력이 모태로서의 자아실현을 이루는 중요한 자질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감정적 자애는 종교적으로 추상화되어 강조되고 있을 뿐 약화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생명의 원천이나 비밀을 파악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을 통해 당대가 ‘어머니되기’보다는 ‘어머니노릇하기’를 더 중시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양육의 과정에서 우주와 인간의 이치를 파악하고 강인함으로 자식을 리드할 수 있는 어머니상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는『삼국유사』 에 나타난 여성상에 대한 구명뿐 아니라 당대 모성의 사회적 구성 양상을 추적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소재 설화 <도화녀와 비형랑>의 공연예술적 변용 양상과 가치

하경숙 ( Gyeong Suk Ha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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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녀와 비형랑> 설화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실려서 전하고 있다. 이 설화는 진지대왕의 도화녀를 향한 애정이 사후에야 결실을 맺게 되는 결연(結緣)담과 반인반귀(伴人伴鬼)인 비형랑의 출생과 신이한 행적을 중심으로 하는 영웅담으로 그동안 문학적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설화 <도화녀와 비형랑>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과 연극을 통하여 창작자들은 설화를 새롭게 재창조하였는데, 공연예술로 변용한 작품에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뮤지컬 <도화녀와 비형랑>은 원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애정문제에 비중(比重)을 두어서 작품을 다루고 있는 한편 연극 <로맨티스트는 죽었다>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집중하여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熱望)을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작품 속에는 분명히 현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엿보인다. 불신(不信)과 위기(危機)로 점철된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창작자들은 과거의 모습에 열중하고 형상화한다. 또한 저항(抵抗)과 일탈(逸脫)의 형식을 찾아 나선 대중들에게 원형적이고 본래적인 것에 대한 중요성과 회귀(回歸)를 촉구하고 있다. 뮤지컬 <도화녀와 비형랑>과 연극 <로맨티스트는 죽었다>는 다양한 주제로의 확장을 통하여 원전의 가치를 고양(高揚)시키는 한편 그동안 문학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나 혹은 모호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현실의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공연되었다.

조선후기 한글 대하소설에 나타난 미인도

서정민 ( Jung Min Seo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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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녀와 비형랑> 설화는 일연이 쓴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실려서 전하고 있다. 이 설화는 진지대왕의 도화녀를 향한 애정이 사후에야 결실을 맺게 되는 결연(結緣)담과 반인반귀(伴人伴鬼)인 비형랑의 출생과 신이한 행적을 중심으로 하는 영웅담으로 그동안 문학적 소재로 많이 사용되었다. 설화 <도화녀와 비형랑>를 모티프로 한 뮤지컬과 연극을 통하여 창작자들은 설화를 새롭게 재창조하였는데, 공연예술로 변용한 작품에는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뮤지컬 <도화녀와 비형랑>은 원전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애정문제에 비중(比重)을 두어서 작품을 다루고 있는 한편 연극 <로맨티스트는 죽었다>에서는 사회적인 문제에 집중하여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熱望)을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작품 속에는 분명히 현실에 대한 섬세한 관찰이 엿보인다. 불신(不信)과 위기(危機)로 점철된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창작자들은 과거의 모습에 열중하고 형상화한다. 또한 저항(抵抗)과 일탈(逸脫)의 형식을 찾아 나선 대중들에게 원형적이고 본래적인 것에 대한 중요성과 회귀(回歸)를 촉구하고 있다. 뮤지컬 <도화녀와 비형랑>과 연극 <로맨티스트는 죽었다>는 다양한 주제로의 확장을 통하여 원전의 가치를 고양(高揚)시키는 한편 그동안 문학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부분이나 혹은 모호한 부분들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현실의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공연되었다.

『잡기고담(雜記古談)』서사 연구 -서사 구도 및 유형을 중심으로-

이채경 ( Chae Gyeong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7권 0호, 2013 pp. 123-167 ( 총 45 pages)
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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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談은 조선후기 문학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서사 양식이다. 그 가운데 任邁의『雜記古談』은 흔치 않은 소재를 작가적 역량으로 서사화한 秀作이다.『잡기고담』의 서사는 ‘脫/出’과 ‘歸/還’을 넘나드는 구도를 취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나 화자가 어떤 계기로 집을 나서는[出]것에서 출발하여 의도한 바를 이루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歸]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울러 화자가 불합리하게 여기는 체제나 구조적 모순에서 벗어나는[脫] 것에서 시작하여 자의나 타의로 목적을 이루고 본래 상태로 되돌아오는[還] 것으로 종결된다. 그 서사 과정에서 ‘탈/출’과 ‘귀/환’을 반복하는 유형, ‘탈/출’ 후 ‘귀/환’을 알 수 없는 유형, ‘탈/출’ 후 ‘귀/환’하는 유형, ‘탈/출’ 후 ‘귀/환’하지 못하는 유형, ‘탈/출’ 후 ‘귀/환’하지 않는 유형, ‘탈/출’ 후 ‘귀/환’을 실현한 유형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이러한 여섯 가지 유형의 이야기는 당시 경제구조의 변화, 신분제도의 붕괴, 권력계층의 비리, 국가체제의 구조적 모순, 남녀차별 및 가정해체 등에서 양산되었으며, 작가는 그것들을 소재로 채택하고 서사에 반영하였다. 또 여섯 가지 유형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義’이다. 그들은 이른바 忠, 孝, 俠등 사람의 도리와 세상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脫/出’과 ‘歸/還’을 시도하며, 간혹 그것이 성취될 때까지 ‘脫/出’과 ‘歸/還’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처럼 ‘탈/출’ 과 ‘귀/환’을 넘나드는 서사 구도는 당대 사회상을 배경으로 등장인물이 ‘의’를 찾는 과정을 심도있게 보여주며, 야담 특유의 서사성을 확보한다.

언해본 『양정편(養正編)』 의 경상 방언 문헌으로서의 가치

허재영 ( Jae Young He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7권 0호, 2013 pp. 169-188 ( 총 20 pages)
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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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26년 언해된 정경세의 ??양정편??에 나타난 음운, 어휘, 형태ㆍ통사적인 특징을 기술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언해본 ??양정편??의 음운, 어휘, 형태ㆍ통사적인 현상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경상 방언의 모습을 뚜렷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선행 연구에서 국어 방언사 자료로 이 책을 활용한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이 글에서 논의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음운적인 특징으로는 ‘ㅔ’와 ‘ㅐ’의 중화, ‘단모음화 현상’, ‘전설모음화의 혼재’, ‘역구개음화 표기’, ‘강화, 축약ㆍ탈락’, ‘규칙 활용’의 과도 교정 현상 등이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어휘적인 면에서는 ‘자해(字解)’를 둔 점과 소학 교육용 교재로서의 특징이 반영된 어휘가 많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셋째, 형태ㆍ통사적인 특징으로는 조어법상 접사 파생법에 의한 사동사가 많다는 점, 부사형 어미의 이형태로 ‘-기’ 계통이 많다는 점, 부정문에서 통사적 부정문의 부정어미가 ‘-게, -기, -지, -이’ 등의 이형태로 나타난다는 점, 선어말어미 ‘-거-’와 ‘-시-’의 결합 순서가 혼재한다는 점 등을 기술하였다.

한중해신신앙비교연구(韓中海神信仰比較硏究) -마조(馬祖)와 영등(靈登)을 中心으로-

상기숙 ( Key Sook Sa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7권 0호, 2013 pp. 189-218 ( 총 30 pages)
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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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이자 인신인 마조와 영등 숭배의 역사는 1,000년에서 500년에 이른다. 마조는 40세 정도의 자상한 여신으로 체현되며, 영등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나뉘나 여신이 우세하며 간혹 변덕스러운 성향을 지닌다. 마조는 주로 궁묘에서 공봉하나 가정에서도 섬긴다. 영등은 도서지역에서 무격이 굿을 통해 공봉하나 내륙지역에서는 부녀자가 정화수만 놓고 빌기도 한다. 마조제전은 마조의 탄신일과 기일, 춘절과 원소절에 거행하는 수시제의이다. 반면 영등은 가신신앙이자 마을 공동체신앙으로 2월 초하루부터 보름 혹은 20일까지 거행되는 계절제로 세시풍속이다. 마조는 중화권 연해지역에서 점차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다. 영등은 한국의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성행하나 내륙 농촌과 산촌에서도 숭배한다. 마조의 신격은 해상보호신에서 점차 만능신으로 발전되나 영등은 내륙에서는 농신?풍신의 성격을 띠며, 도서에서는 어업신?해상보호신으로 국한된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해산물번식신의 특징을 지닌다. 두 신 모두 다양한 문화와 설화를 지니며 특히 마조문화는 제 학문 분야의 보고이다. 각종 점복?금기가 따르며 경전 및 풍부한 속신?속담이 전한다. 마조신앙의 사회적 공능은 지역민을 유대감으로 결속시키며 다양한 공익사업을 펼친다. 마조가 지닌 사상은 사람들의 품격을 제고시키며 최근 국가적 브랜드로 그 위상이 높아진다. 영등신앙 역시 지역민의 유대감을 결속시킨다. 그러나 이들 모두 민간신앙의 특징인 공리성을 지니며 사사로운 기복적 성격은 한계를 드러낸다. 2009년 9월 30일 마조와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나아가 이들 제전은 점차 종교성과 함께 축제의 성격을 띠며 오락성이 강조된다.

의암유인석(毅菴柳麟錫)의 화서심설전승양상(華西心說傳承樣相)

박성순 ( Sung Soon Par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7권 0호, 2013 pp. 219-241 ( 총 23 pages)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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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척사사상과 의병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유인석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그의 활동을 뒷받침해준 심설의 위상 검토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유인석의 심설이 어떤 갈래에 속하며,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를 정확히 밝혀내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스승인 이항로의 학문적 연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이항로의 학통에 관해서는 여러 연구자들이 의견을 개진하였으나, 정확한 진단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화서학파가 자임하는 학통과 그들이 견지한 심설이 통념적 견지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본고에서 19세기 심설 논쟁의 전단계인17?8세기의 호락논쟁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았을 때, 이항로의 학설은 호론보다는 낙론의 입장에 더 가까운 것임을 논증하였다. 낙론의 특징은 심성에 대한 기의 제약성보다는 리의 보편성과 우월성을 중시한 것이다. 물욕을 조장하는 器的측면을 앞세운 서양세력의 접근에 맞서, 기질지성을 용인하는 호론을 갖고서는 도도한 서학의 침투를 막아내기에 역부족이라고 느낀 것이다. 서양 세력이 객관적인 힘의 우위에 서 있는 만큼, 조선이 서양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방법은 조선이 리라고 하는 자긍심을 유지하는 길뿐이었다. 따라서 리라는 것은 기질지성에 의해서 쉽게 변화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遍在性과 主宰性을 갖춘 것이라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서양 물건을 趨附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교화하고, 조선이 서양보다 도덕적 우위에 설 수 있는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주리적 심설은 유인석이 위정척사운동에 매진하게 되는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 1861, 2년 사이에 유인석이 이항로에게 여러 가지를 질의한 「問目」을 통해서, 화서학파의 사상사적 갈래와 그들의 지향을 정확히 알 수 있다.

유희재(劉熙載)의 사체정변론(詞體正變論)고찰

이태형 ( Tae Hyoung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7권 0호, 2013 pp. 243-275 ( 총 33 pages)
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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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代劉熙載(1813-1881)는 정밀하고 넓은 학식으로 詞槪를 편찬했는데, 정밀하고 깊이있는 이론을 제기하여 중국사문학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유희재 사체 정변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는 사의 형식인 음악성과 성률적인 측면을 중시하였고 또한 사의 문학적 내용에 있어서도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작가의 사상과 감개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詞體는 그가 처한 시대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하면서, 詞品과 人品이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즉 애국사상과 현실의식이 담긴 사작품을 매우 중시했다. 그래서 豪放詞人으로 대표되는 蘇軾과 辛棄疾의 사를 매우 높이 받들면서 그들을 최상품이라고 평가했는데, 그들이 情과 性에 이르렀고 성정이 진실되고 성실하며 아울러 윤리적인 높은 표준에 부합하여 이렇게 평가한 것이다. 특히 그가 강조한 내용은 悲憤慷慨함을 강조하였고, 사의 言志적인 면을 중요시한 당시의 사회적 시대적 환경과 사문학이 詩經의 뒤를 잇는 諷諫의 기능을 중시하였고, 이를 통해 사의 유가적 공용성을 중시했다. 또한 그는 외세의 침입과 정치적 혼란의 시대에 유약하고 여성적인 전통적인 사풍에서 벗어나서 호방한 기상으로 비분강개한 우국충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한 사를 중시한 현실주의적 사학관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는 기존의 사학계에서 전통적으로 正格의 婉約詞人을 존숭한 것을 모두 부정하고 대다수 사인들이 變格으로 인식하던 호방풍격을 정격으로 보았다. 이처럼 유희재는 기존의 사체 정변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사학이론체계를 마련하여 사체 정변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시도하였다.
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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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배는 동서고금의 많은 철학사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고 재구성하여 평등관을 중심으로 하는 무중심주의철학을 정립한다. 그에게 평등 문제는 철학의 근본 문제이다. 그에게 인간은 본래적으로 평등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래적으로 청정무구한 마음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순수한 마음을 보존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마음은 양선심이다. 그는 이기심을 토대로 하는 자기중심주의적인 생각[念]을 불평등의 원인으로 여긴다. 그에 의하면 이기심과 질투심이 가미된 중심주의적 사고가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별하여 타인을 주변으로 여기도록 유도한다. 그는 이러한 분리와 구획의 경계의식을 실상이 아니라 가상으로 여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가상의 분리의식을 타파하여, 본래적인 마음의 평등을 회복하고 의무의 평등의식을 구현해야 한다.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중국의 전통적 사유와 과학과 민주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의 근대문명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근대전환기의 중국 사회에서 형성되었다. 그의 무중심주의철학이 비록 논리적인 정합성의 문제가 있지만, 그의 무중심주의철학을 비롯한 중국 초기의 아나키즘은 평등의식을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과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여긴 점에서 건강한 삶과 균등한 사회의 방향을 바르게 안내하는 면에 사상적 기여를 한다. 특히 평등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20세기 전반기의 중국에서 보편적인 이념으로 자리 매김하는 측면에, 유사배의 무중심주의철학을 비롯한 중국 아나키즘의 기여도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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