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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8권 0호 (2013)

조선의 산학서로 보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

이광연 ( Gwang Yeon Lee ) , 설한국 ( Han Guk Seol )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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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산학제도에서 훈도라는 하급관리가 중앙 그리고 지방 향교와 관아에도 있었다. 수군의 조직에도 있었던 훈도는 각종 계산을 담당했다는 것을 여러 가지 자료로부터 알 수 있다. 또 조선의 산학서에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섬까지의 거리를 구하는 망해도술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학익진과 같은 새로운 전법으로 왜군을 물리쳤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학익진을 펼쳐 판옥선과 왜선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측량하고 화포의 명중률을 높여 일시집중타로 전투를 승리로 이끈 밑바탕에 조선의 중인계급이었던 산학자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전술은 물론 탁월한 지도통솔력에 의한 용병작전으로 왜군과의 해전에서 항상 승리했고, 그 뒷받침에는 조선의 특수한 수군제도와 거북선 및 화포와 같은 병기를 보유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학익진과 같은 새로운 전법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도록 보이지 않게 도운 조선의 산학자가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중국 관제묘 건축 형식에 관한 연구 -하이저우(해주) 관제묘를 중심으로-

곽항걸 ( Guo, Heng Jie ) , 이건하 ( Keon Ha Lee ) , 김영은 ( Young Eun Kim )
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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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 건축문화재는 관제신앙의 흥망쇠퇴를 파악 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이고 중국 전통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관제묘 건축은 종교건축의 특징을 갖고 있으면서도 황궁의 예제를 만족시키는 독특한 양식을 형성하였다. 관제묘의 건축양식은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지금까지도 제례공간과 기념공간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아래와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1. 관제묘 건축문화재의 핵심공간과 부속공간의 기능을 동시에 살려야 좋은 활용효과를 볼 수 있다. 2. 하이저우(解州) 관제묘는 민속활동과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정부차원에서 엄숙한 제사활동을 의도하였다. 3. 하이저우 관제묘는 정부 관원들의 공간인 관청(官?)과 그들의 제사용품을 보관하는 관고(官?)를 배전(配殿)으로 건설하였다. 4.하이저우 관제묘의 정전은 가장 높은 격을 갖고 있다. 관제묘 건축의 건축요소 면에서 나타난 특징은 관제묘의 설립 위치 선정에 있어서 모두 호수나 강과 같은 수공간과 가까이 배치하고 있으며 남향을 배치계획상 주축으로 삼았고 동남향과 서남향도 많다. 하이저우 관제묘의 정전은 높은 기단을 조성하여, 용조각 기둥과 겹처마로 된 팔작지붕을 사용하여 건축의 격을 가장 높게 구성한 건축물로 평가된다.

『금낭경(錦囊經)』에 나타난 바람의 의미와 논리성

박정해 ( Jeong Hae Park )
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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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풍수를 구성한 바람과 물중에서 특히 바람을 『錦囊經』에서는 어떻게 인식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계절별로 방향별로 부는 바람에 이름을 부여하여 각각의 특징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최고의 풍수서라 인정받는 『錦囊經』에서 제시한 바람은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인식하였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논리적 합리성과 한계성을 살펴보고 ‘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진다.’는 논리의 타당성은 “장풍득수”라는 말을 통해 풍수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의 전통건축은 배산임수와 좌우청룡백호가 둘러싼 장풍국의 지형을 선호하였다. 또한 자연재해를 정면으로 맞서기보다는 효과적으로 피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특징들은 현대건축의 바람에 대한 활용성과 대처법을 제시한 것으로 『錦囊經』 「氣感編」의 순환논리는 가치성을 가진다. 공기의 순환을 통해서 환경오염 물질을 정화하고 바닷물에 산소를 제공하는 작용은 물론 태풍이라는 매개체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람은 최소한 기를 모이게 하지는 못할지언정 흩어지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과 정화와 같은 순기능의 의미가 크다는 점이다. 반면에 이를 명확히 규명하는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성도 동시에 가진다.

추사 김정희와 윤상도 옥사, 그리고 정치권력

안외순 ( Woe Soon Ah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8권 0호, 2013 pp. 109-154 ( 총 46 pages)
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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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추사 김정희(1786~1856) 및 추사일가를 정치세계에서 추방시켰던 일련의 탄핵과정과 그 성격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추사가 濟州道로 유배 가게 되는 계기는 ‘윤상도 옥사에 연루’된 것이라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지만, 정작 지금까지 ‘윤상도 옥사’ 자체에 연구는 없다. 따라서 이 논문의 또 하나의 목적은 ‘윤상도 옥사’의 전말에 관해 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상도 옥사’는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19세기 前半 조선의 勢道政治體制 속에서 전개되었던 일련의 권력투쟁적 사건들의 연속선상에서 나타났던 것이고, 또 추사만이 아니라 秋史一家 전체의 家禍와 연결된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 논문은 ‘윤상도 옥사’를 조명하되 이를 추사 및 추사 일가 전체의 정치적 盛衰과정과 관련하여 그 정치적 탄핵주체는 누구이고, 탄핵의 내용은 무엇이며, 성격이 어떠한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추사 및 추사 일가의 정치적 가화를 3차에 걸친 것으로 구분, 각각 그 정치권력적 배경과 탄핵의 전개과정을 검토하였고, 이어서 왜 하필이면 추사 및 추사일가가 당시 탄핵의 주요 대상이 되었는지 그 요인에 대해 규명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드러나는 세도정치기 조선의 정치사적 성격에 대해 논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의 명과 덕 개념

장영란 ( Young Ran Chang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8권 0호, 2013 pp. 155-186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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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에 대한 기본적인 논의를 중심으로 공자의 명과 덕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러나 엄밀한 비교철학의 관점과 기준을 가지고 분석해보기 보다는 동서양 철학 상호간의 이해 가능한 개념적 기반을 마련하고 인간 사유의 보편적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둔다. 본 논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의 개념이 기본적으로 ‘좋음’이란 주요 개념과 연관이 되어 있으며, 이것은 동양 철학의 천과 도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음’은 공자 시대의 ‘도(道)’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사람은 인생의 갖가지 운들을 가장 훌륭하고 가장 적절하게 견디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의 운(tyche)과 운명(moira)는 동아시아 사상에서 명 또는 천명 개념과 비교하여 설명될 수 있다. 셋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덕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라고 하며 덕은 영혼의 ‘기능’을 올바로 발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공자는 덕이 선천적 자질일 뿐만 아니라 후천적 수양을 통해서 습득되는 측면을 보여주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의 덕은 기능이나 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개념은 우주론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 넷째,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에 따른 행동을 하는 데에는 즐거움이 따른다고 한다. 물론 덕에 따른 행동들은 실천하기에 힘들 수 있지만 본성적으로 즐거운 것들이며 덕을 실천하는데 즐거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공자도 진정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덕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어 "지명(知命)"의 의미 고찰 -논어 전후 전적에 나타난 "지명"의 용례를 통해서-

이택용 ( Taik Yong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8권 0호, 2013 pp. 187-222 ( 총 36 pages)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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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知命)’은 ‘위인(爲仁)’과 더불어 공자사상의 중추를 차지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논어』에 이에 대한 개념 규정이나 이를 가능케 하는 직접적인 맥락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이에 대한 고금 학자들의 개념 규정이 서로 차이를 보여 그 원의를 확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논자는 객관성 있고 충분한 논증에 근거한 ‘지명’의 개념 규정을 시도하였다. 그 방법으로서 중국 고대의 전적 중 『논어』 전후의 것들에서 ‘지명’의 용례를 살펴보고 이들이 『논어』에 ‘명(命)’과 관련하여 직접간접으로 나타나는 맥락들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가장 높은 빈도수를 보이며 나타난 ‘운명의 존재와 이에 대한 바른 대응법을 앎’이라는 용례가 『논어』의 제반 명 관련 맥락들과 부합하거나 모순이 적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따라서 『논어』에 나타난 ‘지명’의 의미로서 이를 채택한다. 공자의 인생에서 위인(爲仁)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의 대결’이었다면 지명(知命)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과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이 양자를 모두 아우를 때 공자사상의 전모가 드러난다.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 고찰Ⅰ-공적 기록의 사실을 중심으로-

주영아 ( Young Ah Jo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8권 0호, 2013 pp. 223-254 ( 총 32 pages)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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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정재 박태보의 『정재후집』 에 실린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 상(上)을 텍스트로 당대 기록물인 공적 사적 기록의 내용을 살펴 공적 기록과 사적 기록의 가치와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1689년 붕당의 세력 다툼의 기화가 된 인현왕후와 숙원 장씨의 갈등은 기어이 인현왕후의 폐비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이러한 혼전의 양상이 격해지자 국가의 기반이 되는 윤리와 도덕, 의리와 절개를 흔들 것임을 걱정한 나머지 산관(散官) 80명을 대표하여 숙종의 마음을 돌리고자 박태보가 <진신소>를 집필하였다. 「기사민절록」 상?하(上?下)의 기사는 총 36편인데 이 연구에서는 「기사민절록」 상의 <대유생소(代儒生疏)>, <진신소(縉紳疏)>, <정원일기(政院日記)>, <금부문안(禁府文案)>, <비망기(備忘記)>, <소차(疏箚)>, <기사록(己巳錄)> 등을 살펴 당시 실상을 파악하였다. 아울러 기사환국의 부당함을 바라보는 집필자 박태보의 시선, 승정원과 의금부의 태도, 숙종의 분기(憤氣), 관료들의 시각 등을 고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기사민절록」이라는 제목에서도 보여지듯이 박태보를 기리는 마음은 절개에서 비롯되었음을 파악하고, 그의 행실이 유교에 바탕을 둔 의리, 도덕, 윤리의 옳음에 따라 간언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군주에 대한 충심이고 절개였음을 밝혔다.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유교 윤리인 군신 간의 신의와 부부 간의 의리에 기반을 둔 간언이었을 뿐, 그가 붕당을 위해 사사로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기사민절록」에서 보여주는 여러 정황은 정치인이 나아갈 방향과 지향해야 할 지표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계인으로서의 한일 여성, 자기서사와 고전장편소설

박연정 ( Yeon Jung Par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8권 0호, 2013 pp. 254-278 ( 총 25 pages)
6,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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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고전문학사에 존재하는, 여성이 주체로서 문학을 향유하고 창작한 일정한 시기의 동인(動因)과 그 결과로서 나타난 여성 장편 소설에 대한 고찰이다. 양국의 두 문학 공간 사이에는 시대의 격차가 존재하고 양국의 직접적인 영향 관계가 성립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태동과 발전 양상에는 많은 유사점을 확인할 수있다. 본고에서는 양국의 고전 장편 여성소설의 주체였던 여성들이 문화와 신분, 공간상에 있어 각각의 경계에 존재했던 경계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각각의 경계에 존재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여성의 내부에는 불완전함이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들이 가지는 통합과 분리의 잠재력은 동력이 되어 그들의 자기서사화를 촉발시켰다. 아울러 그러한 동인에 의해 양국의 여성 장편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7,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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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본 문학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일부다처제라는 사회구조 안에서 그들의 삶에 대처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이해가 각 시대별로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를 특히 상대에서 중세까지를 중심으로 조명하고자 하였다. 상대 『古事記』, 『日本書紀』는 일부다처를 둘러싼 사랑과 질투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를 긍정하였다. 한편 고대 『日本書紀』와 『新猿?記』에는 일부다처제하 남성의 사랑과 관심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불안이 형상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일부다처의 남편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완성할 수도 없고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내재되어 있었다. 한편, 중세사회 자신의 실력으로 가정과 세상을 이끌어가는 여성상이 부상하면서 문학에서는 남성의 일방적 性의 자유에 저항하는 여성상이 등장한다. 교겐에서는 그것이 남편과 드잡이하는 아내와 쫓겨 가는 남편으로 형상화되었다. 또한 오토기조시(御伽草子) 「사이키」에는 가족이라는 속박과 불평등한 부부관계를 깨고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독립적 여성상이 제시되었다. 특히 여성 주인공들이 처첩 관계 속에서도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 사회적 굴레와 자아실현이라는 구도 속에 동지적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앞선 작품들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이상의 고찰에 의해 일부다처제에 대처하는 여성의 자세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꾸준히 진보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으며 중세 문학은 그러한 여성상을 가장 다이내믹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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