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방학검색

N/A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29권 0호 (2013)

『논어』 속 군자관의 논리 구조와 정치의식

이철승 ( Cheol Seung Lee )
6,800
초록보기
『논어』에서 군자는 성인처럼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군자는 성인을 닮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도덕성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이는 군자란 높은 정치적 지위, 경제적인 부유, 지식과 나이의 많음 등에 의해 결정되지 않음을 말한다. 따라서 군자는 고유(固有)한 도덕성을 자기정체성의 근거로 삼는다. 군자의 정치의식은 이러한 도덕성을 함유하는 자기정체성의 확립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군자는 이러한 자기정체성의 확보에서 만족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것을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확산시킨다. 곧 충만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군자는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풍부하게 전한다. 이것은 사회에 사랑을 전한다는 면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관점과 유사하다. 그러나 군자관의 정치의식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로 환원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관점과 달리,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보편적인 사랑을 전한다는 관점이다. 곧 『논어』 속 군자관의 논리에 의하면 본래적으로 주어진 도덕성을 자기의 정체성으로 확립하고, 이것을 자기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공동체의식으로 발전시켜야 비로소 평화로운 공동체 문화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군자관의 정치의식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이념이 파생시킨 파편화와 분절화로 인한 소외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아우르는 면에 사상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논어』 에 나타난 이상적인 교사 -교사 리더십을 중심으로-

정철민 ( Chul Min Jung ) , 김규태 ( Kyu Tae Kim )
6,600
초록보기
이 논문은 『논어』를 중심으로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과 리더십에 대해 살펴보고, 이런 논의가 오늘날 교사의 역할과 관련하여 제시하고 있는 시사점을 검토한다. 전통적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을 오랜 시간 받아온 우리나라의 경우 유학의 논리에 비추어 교사의 역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논어』 에 나타난 교사의 모습은 인지적?실천적?윤리적 측면에서 오늘날 교사들에게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과 관련해 모종의 시사하는 바를 가지고 있다. 이런 논의는 교사가 교육 현장의 리더라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리더십 이론에 비추어 설명될 필요도 있다. 이 연구는 『논어』 에 나타난 교사의 모습과 현대적 리더십의 관점이 모종의 관련을 맺고 있음을 상정하고 있다. 『논어』 에 나타난 이상적인 교사의 모습은 인지적?변혁적?감성적 측면에서 리더로서 교사가 갖추어야 하는 자질이나 덕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맹자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비교 이해 - 『맹자』와 『군주론』를 중심으로-

안외순 ( Woe Soon Ahn )
7,800
초록보기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를 동양사상과 비교할 경우 대개 한비자(韓非子)에 비견해왔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맹자』(孟子, B.C.372-289)의 『군주론』을 비교, 이해하였다. 흔히 동/서양의 대비는 그것이 각각 전근대와 근대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이 경우 특히 후자는 마키아벨리를, 전자는 법가가 아니라 유가의 공맹(孔孟)을 떠올리는데, 때문에 유교정치사상을 체계화한 『맹자』의 정치사상을 비교하고자 한 것이다. 『군주론』 과 『맹자』를 중심으로 그 『군주론』을 비교분석한 결과 인간본성론에 대해서는 상이한 인식을 보였음에도 불구 나머지 ‘현실’, ‘물리적 폭력’, 이상적인 군주의 정치, 인민과 군주의 관계, 운명과 정치의 관계, 비루트와 덕 및 정치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 이는 기존의 인식, 곧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였고,『맹자』는 윤리주의 중심의 정치를 바라보았다는 인식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마키아벨리는 ‘중세도덕’과 ‘정치’를 ‘분리’시킨 반면 나름의 ‘정치도덕’ 내지 ‘정치윤리’를 ‘중시’하였다.『맹자』역시 ‘초월적 존재’의 ‘주재’나 그에 기초한 윤리관이 ‘아니라’ 인간의 정치적 행위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통한 민생의 구현과 이에 기초한 윤리나 도덕질서 구현을 주창하였다는 점에서 양자는 유사하다. 다만『군주론』에만국할 경우, 마키아벨리의 그것보다『맹자』의 논의가 훨씬 더 위민(爲民)과 민본(民本)의 성격이 강했다. 건국과 치국, 전쟁의 모든 명분에 있어서『맹자』는 강하게 민생, 위민, 민의를 중시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판단과 선택에 위임된 성격이 더 강하였다고 하겠다.

『황제내경』 오행론의 형성 -초기 오행 사유에서 운기설까지-

김혜랑 ( Hye Rang Kim )
6,200
초록보기
『황제내경』 이 등장한 시기로 추정되는 漢대 오행 사상은 춘추전국시기의 사유 형태보다 이론적으로 발달한 체계로 볼 수 있다. 본인은 『황제내경』 오행론에 대해, 전국시대에 있었던 의학적 오행론의 원형적 관념들이 漢대의 발전된 사상체계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 되었고, 내경의 등장 이후에도 운기설의 보충으로 인해 의학이론으로 완성되어 간과정을 통해 파악하고자 한다.

탕현조(湯顯祖)의 문예이론(文藝理論)과 도가사상(道家思想)의 비교연구(比較硏究)

박종학 ( Jong Haak Par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9권 0호, 2013 pp. 121-148 ( 총 28 pages)
6,800
초록보기
湯顯祖는 明代의 중요한 戱劇작가이면서 文藝理論家이다. 특히 그의 희극 작품은 후세 사람들에 많은 감동을 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文藝理論은 信仰的인 도교보다는 理性에 더 비중을 둔道家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湯顯祖는 情’이 생명의 본질이라고 여겨 情’은 좁은 범위로 보면‘愛情’이라 할 수 있지만, 넓은 범위로 보면 生命을 잉태하는 動力이라 보았다. 반면에 道家에서는 無情’의 情’을 주장하여 이는 인위적이거나 도식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지닌 순수한 내면의 情’을 말하였다. 탕현조의 情’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은 이와 같은 道家思想의 기초에서 발전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情’에 대한 생각은 여기에서 더욱 발전하여‘생명‘의 존귀함을 깨닫고 이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湯顯祖는 또한 眞’의 기초에서 예술이 탄생한다고 생각했다. 莊子역시 眞’의 가치를 인정하여 眞’이 근본적인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인간의 내부적 감정표현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湯顯祖는 이와 같은 莊子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그만의 독특한 문예이론을 형성하였다. 즉 진실한 마음을 발전시키면 본인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심미체험의 세계로 인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道家에서 추구하는 예술론과 상당한 類似點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탕현조의 희극 작품이 후세의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것보다도 일반 대중에게 더 오랜 시간 사랑을 받은 것은 바로 이 같은 道家에서 추구한 예술론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진주오광대놀이와 민간도교신앙

안동준 ( Dong Zoon Ahn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9권 0호, 2013 pp. 149-186 ( 총 38 pages)
7,800
초록보기
고구려에 오두미교가 전해졌다는 기록을 검토하면 오두미교의 초기신앙이 민간에 널리 유행했던 사실이 드러나며, 이에 근거한 오방성두 제사가 거행되었으리라고 짐작된다. 오두신앙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천신의 구체적인 실체인 星神과 소통하고자 함에 있다. 중국 동북방 지방과 한반도 일대에서 정초 민속행사로 거행되는 횃불놀이가 이러한 제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오방성두 신앙에 근거한 별 제사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고대에서는 火祭의 형태로 의식이 치러졌고 후대에서는 횃불놀이와 달집태우기 등으로 전승되거나 불교의 연등회로 민간에 전승되기도 했다. 횃불놀이 유형의 것이 비교적 별 제사의 원형에 가까운 반면에 연등회 유형은 도교나 불교 등의 종교 제례에서 민속행사로 변모한 것으로 파악된다. 오늘날 한반도에서 정월 15일에 거행하는 달집태우기는 고대 火祭의 유습이며 그 근원을 더듬어 가면 별 제사의 변형된 형태로 추정된다. 정월 보름날 저녁에 달집을 태우면서 시작하는 오광대놀이의 전통적 풍습은 이와 같은 고대 화제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며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민간도교에서 시행된 별 제사의 흔적임을 시사한다. 요컨대 정월 대보름날 저녁의 달집태우기는 28수 성신들의 대표격인 오방신장을 청하는 의례 형식이며, 진주오광대놀이의 오방신장무는 이러한 제의에 필요한 의식무로 추정된다. 오방신장무를 연출하기 전에 달집태우기 행사를 거행한다는 점은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초록보기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의 편년은 넓게 보면 1260~1268년이고 보다 좁혀 보면 1264~1268년이며, 이는 高麗武人政權중에서 金俊政權期(1258~1268)에 해당한다. 목간에서는 김준정권의 성격을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한 글귀들은 “右三番別抄”, “右三番別抄都領侍郞”, “重房右番”, “金侍郞” 등이며, 이러한 글귀들을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우삼번별초”는 우별초 중 제3번째 별초가 아니라 우별초 전체규모를 나타내는 용어라고 보았다. 우삼번별초는 우별초가 3개의 별초부대로 구성되었고 삼별초 수효가 많았음을 알려준다. 다음으로, “우삼번별초도령시랑”은 우별초의 도령 장군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다. 김준정권 당시 우별초 장군으로는 白永貞, 李劑, 康保忠등이 그 후보로서 지목되었다. 한편, “중방우번”은 중방의 右番으로 파악해 보았다. 이를 통해서 김준정권 당시 중방이 우번과 좌번으로 분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김준정권 시기에 이르러 초기 무인정권(이의방~이의민정권) 시절의 중방의 기능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해석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김시랑”은 ‘金將軍’과 같은 의미이며 김준의 측근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견지에서, 김장군은 김준의 둘째 부인 소생인 金祺?金靖중 한인물임이 확실하였다.

고려(高麗) 공예문화(高麗工藝文化)의 한중교류

조현식 ( Hyun Sik Ch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9권 0호, 2013 pp. 221-254 ( 총 34 pages)
7,400
초록보기
10세기 초 동아시아 역사무대에 출현했던 고려왕조는 무장(武將)세력의 지지와 도움아래 성립되었다. 고려는 건국초기부터 중국 중원의 왕조 등과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서기962년 북송(北宋)과의 수교 후에는 더욱 활발하고 지속적인 문화교류를 추진하였다. 여송(麗宋)양국이 실행했던 교류에는 1.두 나라 조정이 서로 사신(使臣)을 파견해 진행했던 관방(官方)문화교류 2.개인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던 민간문화교류 3.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졌던 국제무역 등의 비공식교류가 있었다. 고려가 중국과 진행했던 각종교류 가운데 모습을 보인 도자기, 종이와 먹, 부채, 인쇄술 등 높은 수준의 고려공예문화는 중국 송(宋), 원(元)의 조정, 일반 백성들 사이에 이루어졌던 문화교류들을 더욱 활발하게 하였다. 이것은 고려가 제조한 많은 공예품들이 이미 10세기부터 동아시아 국제 관방교류의 중요물품이 되었고 상인들이 주도했던 국제무역 등 활발한 민간교류까지 촉진시켰음을 의미한다. 또한 고려가 이룩한 각종 공예문화는 송, 원을 포함한 후대 중국왕조의 공예품 제작기술 발전에도 적지 않은 자극을 주었다. 10세기 초에서 14세기 말까지 고려가 470여 년 동안 실행한 국제문화교류의 중심에 있었던 고려공예문화는 다양한 문화영향력과 강인한 생명력으로 중국의 공예문화발전에 기여했던 중요한 역사문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대 왕조 지방행정 체제에 대한 연구

김유봉 ( You Bong K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29권 0호, 2013 pp. 255-282 ( 총 28 pages)
6,800
초록보기
중국 역대왕조 지방행정 체제에 대한 변화 중 두드러진 특징은 중앙정치권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역대 통일 왕조의 지방행정 체제는 각각의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행정단계가 증가된 추세이나 지방의 직권은 오히려 감소된 상황이었다. 기본향촌(鄕村)조직은 각 왕조에 변경이 있었으나 시종 고도의 종법성과 정치성을 유지하였다. 역대왕조는 진왕조(秦王朝)부터 시작하여 청왕조(淸王朝)까지 약 이천여년 간이었으며 지방행정 체제는 기본적으로 두 단계에서 네 단계로 변화 되었고 세 단계로 유지되는 시간이 가장 길었다. 발전의 전체적인 추세는 “행정중심 기반이 지방위주 즉, 외중내경(外重內輕)”에서 “중앙위주 즉, 내중외경(內重外輕)”으로 그 중심이 변화되었다. 행정기능 가운데 정치적기능이 특별히 증가된 반면 경제, 문화, 사회적 기능이 감소되었다. 행정체제는 군주의 뜻에 의해 모든 것이 폐지되고 새롭게 설치되는 상황임으로 객관적 지도원칙이 결여되었다. 중국역대 왕조 행정체제의 중요핵심은 중앙집권제이며 행정에 있어 활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11,700
초록보기
『윤하정삼문취록』 은 105권이라는 분량의 방대함과 38개 혼사담이라는 서사의 다양함만큼이나 인간이 혼인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되는 수직적 수평적 또는 복합적 인간관계 또한 다양하다. 『윤하정삼문취록』 은 유교적 윤리이념을 거의 종교화시켜서 신봉하는 상층사대부가의 유교적 가정생활을 미시적, 거시적으로 조망하면서 사라져가는 유교적 윤리덕목의 가정내 실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윤하정삼문취록』 의 여러 가족관계속에서 발현되는 상층사대부가의 ‘예’의 실현양상들은 현대인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선대의 유산이다. 특히 『윤하정삼문취록』 내 가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효’와 ‘공경’, ‘우애’와 ‘사랑’, ‘순종’과 ‘복종’, ‘자애’와 ‘용서’, ‘관대함’과 ‘배려’, ‘인내’와 ‘신뢰’, ‘인지상정’과 ‘측은지심’ 등은 인류 보편적인 인간의 심정으로서 대대손손 습득시켜도 될 교훈적 가치가 있는 유교적 윤리덕목이다. 결론적으로 『윤하정삼문취록』 에 나타난 사대부가의 유교적 가정생활은 시대에 관계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행해야 하는 보편적인 윤리덕목의 체화 모델로서, 후대 대대손손 배우고 익히고 행해야 할 교훈적 기능과 역할을 다하리라고 본다.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