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버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논문검색은 역시 페이퍼서치

동방학검색

N/A


  • - 주제 : 어문학분야 > 기타제어문
  • - 성격 : 학술지
  • - 간기: 반년간
  • - 국내 등재 : KCI 등재
  • - 해외 등재 : -
  • - ISSN : 1598-1452
  • - 간행물명 변경 사항 :
논문제목
수록 범위 : 31권 0호 (2014)

중화주의의 시원과 華夷共祖(화이공조)론 비판

장현근 ( Hyun Guen Chang )
7,700
초록보기
이 글은 중국인들의 화이지변(華夷之辨)이 한족(漢族)이 자기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펼치는 논의가 아니라 중화의식의 확장을 통해 관념적으로 주변을 모두 중화화시키려는 문화제국주의적 발상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그 내밀한 이면에 화이공조(華夷共祖) 즉 중화와 이적이 같은 조상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이 근거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기』라는 text에 갇혀 중화주의를 구성하는 context에 대한 이해를 결여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또한 중화주의라는 문화우월의식이 중국의 보수적 정치전통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가장 중요한 인자 가운데 하나였음을 밝히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중화주의는 범주가 정해지지 않는 모호한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의도된 기획이며 주변문화를 먹어치우는 확장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 위해 華夷의 어원에서 출발하여 초기 중화주의 형성과정을 살펴보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형성된 화이공조 관념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사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조선 전기 중화주의와 내치,외교 관계

안외순 ( Woe Soon Abn )
6,700
초록보기
기존 연구들에서 강조되었듯이 중국에서 중화주의의 출발은 지역성, 종족성, 문화우월주의의 성격을 지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제국주의적 요소의 중화주의는 유교와 만나면서 轉變이 일어났다. ‘유교적 중화주의’는 철저하게 도덕적/문화적/덕치적 기준을 중화의 척도로 삼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유교적 중화주의’는 반패권 /반군사 /반전쟁 논리를 속성으로 하게 되었고, 덕분에 공존적/평화적/도덕적 성격을 띠면서 유교 문화권에서 약소국의 안전을 보장받는 보편적 문명관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동북아의 약소국인 한반도의 통치자들 역시 고대부터 적극적으로 ‘유교적 중화주의’는 물론 그 현실태인 사대질서체제, 곧 조공책봉 관계를 수용했던 것이다. 조선의 건국자들 및 전기의 통치자들은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내치와 외교에서 각각 기자조선과 동주건설을, 외천의 사대와 낙천의 사대를 이상으로 표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강대국을 주변국으로 둔 약소국 조선이 자존감을 지키면서 현실적 실리를 취할 수 있는 보편문명의 지향노선이면서도 전략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손문의 "중화주의적" 민족주의의 본질과 한계

김현주 ( Hyun Ju Kim )
7,800
초록보기
청말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은 청조의 전복을 도모하기 위해 만주족을 배척하는 한족중심의 민족주의를 주장하였는데, 청조가 몰락한 이후 소수민족을 모두 포섭하고자 하는 의도로 오족공화라는 포용적 민족주의로 입장을 전환하였다. 그의 민족주의는 한족중심의 편협성에서 탈피하여 중국인민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새로운’ 민족주의로 전환되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이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중화민족주의의 원형으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손문은 한족의 문화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소수민족을 한족중심의 문화로 동화시킴으로써 국가의 민족적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하였고, 평등주의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차별주의적 민족주의(즉 ‘중화주의적’ 민족주의)를 지향하였다. 손문의 민족주의 발전 단계는 근대중국이 다민족 국가로서, 하나의 근대적 국가를 성립하기 위한 정신적 도구로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중국의 다민족이 하나의 새로운 민족, 즉 중화민족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대외적으로는 ‘아세아주의’로 나타나는데, 그 성격상 중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국가의 동화에 대한 요구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현대중국이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제 민족의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한 포용적 중화민족주의를 실현하기위해서, 그리고 아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손문의 중화민족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하고, 그 한계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 수 있다.

『맹자』와 관용-소통과 동락(同樂)을 통한 공감과 치유-

이기원 ( Ki Won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111-144 ( 총 34 pages)
7,400
초록보기
본고는 『맹자』에 나타난 관용의 정신을 타자 및 타문화와의 소통을 위한 다양성과 차이의 수용과 인정, 공감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다양성의 인정과 수용에서 중요한 것은 무한히 확장되는 자기 욕망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가에 있다. 맹자가 추구한 것은 욕망을 줄이는(寡欲) 것이다. 욕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마음속에 내재해 있는 도덕성의 확인과 확충이 필요하다. 그러한 상태가 되었을 때에 비로소 타자와의 소통도 가능해진다. 『맹자』에서 볼 수 있는 자타간 경계 유지를 위한 방법이 갖는 특징은 경제적 측면에서 경계 유지까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한 경제 활동과 그것을 통한 소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경계의 유지는 팽창하는 욕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맹자가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관용의 세계는 측은지심을 바탕으로 하는 함께 즐기는 동락(同樂)하는 세계이며 그것이 바로 맹자가 지향하는 세계관이다. 이러한 점에서 『맹자』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유가철학이 지향하는 관용은 호혜적 관용을 넘은 공감적 관용이다. 이러한 관용 담론에서는 마음의 치유와 함께 시대와 문화의 병리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한 방법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순자(荀子) 윤리학의 이성주의적 특성

김지연 ( Ji Yeon K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145-173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본 연구는 순자(荀子)윤리학 구조에서 이성주의적 특성에 대해 분석하면서 이 중 감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방법론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을 분석하는 도구와 참고 대상으로서 사용했다. 도덕실현을 위해 인간의 이성활동을 인간 삶의 소명으로 삼은 것, 이 부분에서 순자의 생각도 근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견해와 상통한다고 본다. 순자는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은 “판별하는 능력(以其有辨也)”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이성주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참고한 만한 이론적인 형태가 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학인데, 그도 도덕성 실현에서 이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순자에게 지혜(智)란 도덕 행위 주체의 한 가지 능력이자 활동으로서, 선과 악, 시(是)와 비(非), 당(當)과 부당(不當)에 대해 인식하고 판단하는 실천적인 이성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와 유비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적인 덕성 역시 총괄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인 실천적 지혜를 떠난다면 도덕적일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좋은 덕성이란 끊임없는 도덕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순자는 끊임없는 습관, 지속적 노력을 통한 실천을 통해서야 도덕적 인성이 가능함을 주장한다고 판단된다. 또한 순자 윤리학 구조에서 인간의 감정의 역할은 소홀이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윤리학 구조에서 감정의 역할이 맹자(孟子)윤리학에서 가지는 감정의 의미만큼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의문이다. 감정보다 이성을 중시하고 강조한 것은 순자 윤리학의 독특한 이론 특색이다.

17세기 조선을 바라보는 박세당의 역사인식-인조반정과 일련의 사건을 중심으로-

주영아 ( Young Ah Joo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175-202 ( 총 28 pages)
6,800
초록보기
본고는 17세기 인조조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조선 전반에 걸쳐 완전하게 정립되지 못했던 역사에 대한 고찰을 심화하여 박세당의 역사인식을 살폈다. 조선은 전대의 역사인 삼국과 고려에 비해 표면적으로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왕권이 안정되고 문화의 융성이 이루어졌다. 특히 왕권의 강화와 유지를 위해 초기에는 명나라의 힘을 빌리기도 하였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정치적으로 붕당의 세력을 강화 또는 약화시키기도 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졌다. 단종, 세조, 선조, 광해군, 인조에 이르는 시기에는 왕권의 정통성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조선의 왕권과 정치력이 파국을 치닫게 되었다. 쿠데타와 반정으로 옹립된 불완전한 왕위계승은 왕권의 정통성 문제와 직결되었고, 왕권의 약화에 직접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본고에서 이번 연구의 중심에 인조 집권기 일련의 사건 두고 있는 것도 이러한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시기가 인조조이기 때문이다. 혼란의 시기에 발생하게 되는 국내외의 문제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반된 경향으로 나타난다. 혼란이 극에 달했던 인조 집권기를 중심으로 국내외 정황을 파악하고 그에 관련하여 명분보다는 실리를,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심에 두고자 했던 박세당의 역사인식을 살폈고, 아울러 17세기 지식인이 갖는 조선조 역사에 대해 정통성 찾기의 실체를 구명하였다

『묵자』와 『원론』의 기하학적 내용 비교

이광연 ( Gwang Yoen Lee ) , 설한국 ( Han Guk Seol ) , 이유호 ( You Ho Lee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203-239 ( 총 37 pages)
7,700
초록보기
본 『원론』은 초등수학의 기초를 논리적으로 순서 있게 해설하여 서양수학의 기초가 되었다. 『묵자』는 중국에서 기원전 500년경의 춘추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묵자의 사상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원론』과 같은 수학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묵자』와 『원론』의 수학적 내용은 정의가 같은 것도 있고 비슷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것은 거의 없다. 이 논문에서는 『묵자』와 『원론』을 통하여 고대 동양의 수학과 고대 그리스의 수학 차이점과 공통점을 비교한다. 『묵자』는 수학적 내용 자체에 중점을 두었고, 『원론』은 수학적 내용을 전개하는 논리적인 방법에 중점을 두었다. 이는 동양이 수학적인 내용도 철학과 사상으로 해석하려 했던 반면 서양에서는 수학적 내용 자체를 연구하였기 때문이다.
초록보기
본고는 『금오신화』에 나타난 종교성과 서술기법에 대한 논의이다. 이는 傳奇小說이라는 장르에서 나타나는 글쓰기의 특성을 밝히는 작업이다. 한마디로 말해 전기소설의 서술기법이 종교성을 바탕으로 했다는 것이다. 『금오신화』가 종교성을 바탕으로 서술됐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주변상황을 먼저 살폈다. 전기소설의 奇異와 神異, 당대의 일상과 종교에 대한 未分化, 김시습의 종교에 대한 思惟를 볼 때 이미 김시습은 종교성을 바탕으로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종교성을 바탕으로 『금오신화』가 서술된 상황은 작중인물, 서술범주, 서술장치, 서술의도 등에서 알 수 있었다. 작중인물은 인간과 鬼와 神이 교류를 갖고, 서술범주는 죽음이후까지 이어지며, 서술장치는 幻實을 기본으로 인연, 운명 등의 종교성 단어와 종교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술의도는 종교성에 의탁하여 기이와 신이 등으로 일상의 저촉에서 벗어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며 현실계 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리고자 한데 있었다.

온달(溫達)의 주제적 수용 양상과 의의

박종호 ( Chong Boon Park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269-297 ( 총 29 pages)
6,900
초록보기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수록된 「온달전」과 이후 문인들의 온달 관련 설화의 주제적 수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온달과 관련된 설화들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수용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 후대 문인들의 언급을 통해 민간에 지속적으로 구전되는 온달 관련 설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온달의 이름이 ‘于溫達’이었고 온달이 놀림의 대상이 되자, 온달의 姓인 ‘于’를 동일한 발음인 ‘愚’로 바뀌어 불렀다는 언급도 확인했다. 선행연구에서도 온달의 충과 공주의 열행 및 신의를 다룬 성과가 있었지만, 이들 논의는 『삼국사기』 「온달전」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온달과 공주라는 소재 측면에서의 접근만 이루어졌을 뿐, 후대 문인들의 주제의 수용 양상까지 그 편폭을 넓히지 못했다. 온달의 忠에 초점을 맞춘 언급은 공주의 신의와 열행 등의 내조에 대한 부분을 소략하게 다루거나 아예 생략한 채, 온달의 용맹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공주의 열행과 신의에 초점을 맞춘 언급에서는 온달을 성공시킨 공주의 내조에 초점을 맞추어 공주의 열행과 신의를 강조했다. 비록 온달이 공을 세웠다는 언급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주를 칭송하기 위한 장치였다. 온달 관련 작품을 지은 작가들을 시대적으로 조망해 보면, 18세기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공주의 열행과 관련된 작품이 이 시기에 집중된 것은, 열이라는 여성 윤리의 강조가 최고점에 이른 시기와 맞물려 있다.

松廣寺 樓亭題詠詩 硏究

임준성 ( Jun Sung Lim )
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동방학  31권 0호, 2014 pp. 299-333 ( 총 35 pages)
7,500
초록보기
송광사는 고려시대 보조지눌 이래로 16국사가 배출되는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사찰이며, 다수의 禪僧를 배출한 사찰이기도 하다. 본고는 송광사의 수많은 전각 중에서 특히 누정건축에 주안점을 두고 이들 누정을 읊은 시가 다수 남아 있음을 착안하여 송광사 누정제영시를 살펴보기에 이르렀다. 현재 송광사에는 三淸僊閣, 曹溪樓, 枕溪樓, 水石亭 등 네 곳의 누정이 남아 있으며, 이는 여타 사찰보다 높은 수치이다. 이들 누정을 읊은 제영시를 현존 문헌기록인 『松廣寺誌』, 『韓國佛敎全書』, 『韓國文集叢刊』 등에서 모두 28명 57수가 수록되어 있음을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삼청선각 23수, 조계루 10수, 침계루 10수, 수석정 14수 등 총 57수이며, 창작계층으로는 스님 12명에 32수, 사대부 16명에 25수이다. 이로써 보면 송광사 누정제영시는 작자층에서 스님뿐만 아니라 사대부층에서 골고루 분포하는 등 儒佛과 聖俗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되어 문학적 공간으로 기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분석 결과 송광사 누정제영시는 주로 禪定, 禪心, 禪趣, 修行, 探勝, 脫俗, 隱逸, 懷古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누정제영시의 특성상 한시 주제 안에서 송광사의 景物과 작가가 표출한 특정한 意味들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 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으나 보다 정밀하게 하지 못한 점이 본고의 한계이다. 본고는 송광사 누정제영시를 분류하면서 목록화 작업을 병행하였다. 향후 사찰문화콘텐츠자료로써 DB화의 기초로 삼기 위함이다. 누정제영시는 사찰의 명소를 소개하는 자료로써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1 2 >